23. 나는 어떡하라고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물론 멧돼지 세계에서 새해는 그닥 큰 의미도 없지만 말입니다. 11월부터 시작된 짝짓기의 계절이 새해가 시작되는 1월에 마무리되는 까닭에 미처 자신의 짝을 찾지 못한 수컷 멧돼지의 공격성이 날로 더해져 우리를 미워하는 인간들로부터 더욱 큰 미움을 받게 되는 것도 바로 이맘때입니다. 리더 멧돼지인 나로서는 이 시기에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짝도 없이 이곳저곳을 떠도는 지질한 멧돼지의 우발적인 공격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닙니다. 인간에 대한 괜한 공격으로 인해 가뜩이나 낮은 나의 지지율이 더욱 낮아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우려하던 일이 오늘 결국 터지고 말았습니다. 나를 지지하는 부산의 어느 지질한 멧돼지 한 마리가 인간을 공격한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대한민국의 차기 지도자로 물망에 오른, 유명 정치인 중 한 명이었습니다. 백주대낮에 벌인 어처구니없는 짓에 나 역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 범죄 혐의를 받는 아내 멧돼지로 인해 가뜩이나 골머리가 아픈 이 시점에 나를 추종하는 멧돼지 한 마리가 벌인 최악의 노상 공격으로 인해 나는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럴 땐 언제나 일본에 있는 기시감 멧돼지를 만난다는 핑계로 일본을 찾고는 했는데 갑자기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그마저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기시감 형님의 지지율은 나보다도 낮은 10%대에 머물고 있다고 하니 이제 나는 사면초가에 처한 듯합니다. 올해 선거가 있는 미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날리면 멧돼지의 지지율 역시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합니다. 나는 리더 멧돼지로 당선되자마자 두 나라의 형님 멧돼지에게 충성을 맹세했는데 그들 멧돼지마저 정계에서 물러난다면 그야말로 나는 고립무원의 신세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며칠째 하늘이 어둡습니다. 나의 앞날을 예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무슨 말을 할까요. 울고 싶은 이 마음. 눈물을 글썽이며 허공만 바라보네'로 시작되는 옛노래가 떠오릅니다. 노랫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는 듯합니다. 아아, 나는 어떡하라고.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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