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하게 따져볼 일이 있다. 예컨대 나훈아의 무료 콘서트가 열렸고 그곳에 갔던 다수의 노인들이 압사당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경우에도 위패와 영정 사진도 없이 국화꽃만 가득한 분향소를 설치할 것인지... 그분들의 이름이나 사진을 공개하면 패륜이라고 강하게 비난하면서 이를 공개한 언론들을 고발할 것인지... 내 생각에는 아닐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번 '10.29 참사' 희생자들은 왜 그런 식으로 대접했을까? 여기에는 정부와 여당의 분명한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강력하고도 확실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에이, 이름이나 사진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정부에 유리한 게 뭐 있겠어?' 하고 의심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음모가 음모다워지기 위한 전제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는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내가 서두에서 제시했던 가정으로 돌아가 보자. 만일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모든 언론을 통하여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발표하고 약간의 위선이 섞였을지언정 진심 어린 애도 분위기를 조성하려 애쓸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발생한 '10.29 참사'와 무엇이 다른 것이기에 이런 추측이 가능한가? 단지 희생자의 나이만 다를 뿐인데...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와 지자체 또는 행안부와 경찰, 소방 등의 책임은 전혀 달라진 게 없는데 단지 희생자의 나이가 젊고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대하는 대우가 이토록 달라진다는 건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닌가. 게다가 노인들이 왜 쓸데없이 그런 곳에 가서 그런 사달을 일으켰느냐고 말한다면 그 사람을 오히려 패륜이니 망언이니 하고 나무랄 게 분명하다.


이와 같은 논지에서 젊다는 건 하나의 '죄'이자 유족들에겐 '천형'일 수밖에 없다. 사실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임이 분명한데 모든 잘못을 희생자 본인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유족들 또한 자신의 아들, 딸들이 하필이면 그날, 쓸데없이 그곳에 가서 값싼 죽음을 당한 것일 뿐 누군가에게 억울함을 주장할 것도, 그렇다고 모르는 일반 대중에게 떠벌릴 일도 아니라는 의식을 갖게 한다. 말하자면 희생자의 신분이 밝혀짐으로써 인터넷상에 떠돌게 될 여러 가짜 뉴스와 악성 댓글이 두려워지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인식은 희생자의 이름이 익명으로 처리됨으로써 더욱 공고하게 유지되거나 강화된다. 희생자의 신분이 밝혀지고 여러 가짜 뉴스가 떠돌 경우 그것은 정부가 앞장서서 지켜주고 보호할 일이지 유족들이 떠안을 고통이 아님에도 현 정부의 태도로 보아하니 그럴 것 같지 않은 것이다. 유족들은 그게 두려운 것이다. 어차피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것도 아닌데 조용히 덮어두는 게 그들로서는 최상의 방책인 듯 여겨지는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정부와 지자체는 면죄부를 얻고 지지율 하락이나 국민들의 분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고맙게도 말이다. 물론 희생자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국민들 역시 희생자들을 쉽게 잊을 수 있을 테고.  이처럼 강력한 효과가 있는데 굳이 희생자의 신분을 노출시킬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의 입장에서는 어떤 협박이나 핑계를 대서라도 막아야 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오늘은 대입 수능일. 연말이면 다시 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예비 성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테다. 우리는 그들에게 죄책감을 담아 충고할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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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22-11-18 0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길가다 이런 어이없는 죽임을 당해도 죽었다 말 할수없고 책임 지지도 않으며 알아서 살아가야하는 독재의 나라를 6개월만에 만들어내는 똥멍청한능력은 세계최고네요.
아직 1567일남았어요. 제발 이 날짜가 빨리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꼼쥐 2022-11-19 16:26   좋아요 1 | URL
그렇게 긴 시간을 견딜 수나 있을지 걱정입니다. 차라리 그 전에 뭔 수를 내지 않으면 국민들이 먼저 죽지 않을까 싶은데 말입니다.
 

1. 소심한 멧돼지의 복수


그해 나는 리더 멧돼지가 되었다. 나를 지지하는 뒷골목 똘마니들의 단합과 응원 덕분에 어찌어찌 뒷골목을 통솔하는 총장 멧돼지에 오르기는 했었지만 나의 출세는 거기에서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스승인 천공(千空) 멧돼지의 적극적인 출마 권유가 나와 아내 멧돼지의 마음을 움직였고, '설마 되겠어?'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일단 출마하는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게다가 천공이 누구던가! 건강 관리를 잘하는 멧돼지의 평균 수명이 17~20년인 걸 감안할 때 평생 천 개의 구멍(空)을 판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는데 15세인 천공 멧돼지는 이미 950공(空)을 넘어 천공(千空)을 목전에 둔, 가히 멧돼지계의 전설로 불리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멧돼지의 습성상 눈만 뜨면 땅을 파는 여느 멧돼지와는 달리 그를 찾는 많은 멧돼지들을 상대하면서도 구멍을 뚫는 성과면에서는 다른 멧돼지들을 월등히 앞서가는 걸 보면서 우리와 같은 보통의 멧돼지들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여 많은 멧돼지들이 그를 칭하여 "가히 천공(千空)이로고!" 하는 감탄을 쏟아냈던 것이다. 그런 분이 나의 출마를 권유했을 뿐만 아니라 리더 후보들이 등장하는 토론장에 나갈 때면 친히 나의 네 발에 왕(王) 자를 써주기까지 했으니 나로서는 감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결국 상대 후보를 가까스로 물리치고 리더 멧돼지가 되는 데 성공했다. 그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6개월이 지났다.


며칠 전에는 리더 멧돼지 관사로 이사를 했다. 남산 자락에 위치한 한적한 곳이지만 식구라고는 아내 멧돼지와 비상식량이자 도시락 대용으로 키우고 있는 강아지 몇 마리가 전부이니 이전 리더가 살았던 북악산 밑의 관저가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리더 멧돼지를 보호하기 위해 상주하는 많은 멧돼지들의 북적거림으로 인해 그곳에서는 적어도 지금과 같은 정적에서 오는 불안과 두려움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이 머리를 맴돌았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아내 멧돼지의 히스테리성 발작이 점점 더 심해지는 걸 보면 이곳으로의 이사는 나에게나 아내 멧돼지에게나 결코 이롭지 못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했다. '진작 천공 스승을 찾아뵙고 상의를 드릴 걸...'


나는 사실 겁도 많고 소심하며 누구보다도 이기적이며 속 좁은 멧돼지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런 성격이 형성된 데에는 아버지 멧돼지의 영향이 컸다. 유년 시절 나는 나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모든 것을 아버지 멧돼지의 계획에 따라야만 했었는데 이런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멧돼지에게 대들거나 반항하지 못했다. 그것은 순전히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리더 멧돼지가 된 후 내가 했던 모든 연설에서 '자유'를 역설했다. 그것은 어쩌면 자유를 누리지 못한 어느 멧돼지의 분노이자 넋두리였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약간의 분노조절장애가 있던 나는 나약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선공(先攻)이라고 믿게 되었다. 뒷골목에서 잔뼈가 굵은 나는 일명 '선빵'을 통하여 나를 증명했고, 내 편에 서는 멧돼지는 누구나 진심을 다해 애정을 쏟았다. 그것이 어쩌면 적자생존의 멧돼지계에서 겁 많고 소심했던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유일한 생존전략이었는지도 모른다. 리더 멧돼지가 된 뒤에도 나는 나의 권력에 위협이 될 만한 멧돼지란 멧돼지는 모두 제거해버렸다. 전임 정권에서 뒷골목의 총장(총대장이라는 의미)을 지냈던 나는 당시 차기 리더로 지목되었던 한 인물을 잔인하게 도륙했고, 그 결과 그의 가족 전체가 재기불능의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시에도 일부 멧돼지들은 너무 잔인하다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반대하기도 했었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는 걸 나는 일찌감치 어둠의 세계에서 배워 익혔었다. 그것을 일부 소문 멧돼지들이 나의 행동을 두고 정의롭다며 추켜세웠고 나의 이미지는 그렇게 굳어졌다. 집요함은 끈질기다로, 잔인함은 정의롭다로...


겁 많고 소심한 성격인지라 만성 변비와 소화불량을 달고 사는 통에 아무데서나 방귀를 뿡뿡 뀌는 건 막을 수가 없다. 다른 멧돼지들은 내가 인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까닭에 어린 인간들이나 하는 도리도리를 따라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항상 생명의 위협을 느껴왔던 나로서는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하여 사방을 훑어보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졌던 것인데 남 말 하기 좋아하는 멧돼지들이 도리도리로 표현했을 뿐이다.


일기를 처음 쓰다 보니 말이 길어졌다. 다음 일기에서는 나의 영역인 용산에서의 일상을 써보기로 한다.


*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히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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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가을 하늘을 보니 문득(이라고 말하면 너무 가식적일 테고 아무튼) 소설이 쓰고 싶어 졌다. 소설을 써본 경험은커녕 짧디 짧은 리뷰 한 편도 쩔쩔매면서 갑자기 웬 소설? 하고 뜬금없어하는 사람들이 다수이겠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이 개판을 넘어 돼지판으로 흐르는 실정이다 보니 사람이 아닌 멧돼지를 주인공으로 삼아 우화를 한 편 써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용산 시민공원을 어슬렁거리는 멧돼지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현실을 조금 과장되거나 부풀려서 혹은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다른 멧돼지 무리를 등장시켜 풍자적으로 그려보는 것은 요즘처럼 웃을 일 없는 시기에 개인의 정신건강을 돌보는 차원에서라도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우화의 배경은 주로 용산 시민공원으로 하고 멧돼지 무리를 지휘하는 리더 멧돼지와 그의 아내 멧돼지 그리고 리더 멧돼지의 지시를 따르는 몇몇 멧핵관(일명 멧돼지 핵심 관계자)들을 등장시켜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을 동물의 차원에서 해석해보고자 함이다. 그렇다고 특정 정치인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말해야 하겠지만).


물론 내가 소설이나 우화를 쓸 깜냥이 되지 못한다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공모전에 출품할 것도 아니고, 판매를 위한 상업용 목적도 숫제 없으니 단순한 오락이나 도락의 차원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인 듯싶은 것이다. 마감일자가 있어 빨리 쓰라고 들볶일 일도 없을 테고 말이다. 쓰고 싶을 때 쓰고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을 테니 못할 것도 없겠다 싶은 만용이 불끈 솟는 게 아닌가. <멧돼지의 일기>(물론 정해진 건 아니고 가제에 불과하지만)라는 제목으로 아주 천천히... 그에 필요한 소재는 어느 정치인이 무한정으로 제공할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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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워서 하는 말이겠지만 '왜 거기까지 가서 이 사달이냐?'며 마치 그곳에 간 사람들이 문제라는 식의 말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거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울분이 치솟곤 했다. 대한민국의 거리에서 걷다가 황당하게 압사를 당했으면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나 지자체의 잘못이지 어떻게 길을 걷던 시민의 잘못일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일 년 삼백육십오일 매일 있는 것도 아니고, 일 년에 딱 하루 있는 핼러윈데이를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그곳에 모여 자신의 에너지를 발산하려고 했던 것이 뭐 그리 잘못된 행동이며 모든 것을 잃은 그들을 비난할 빌미가 된단 말인가. 내가 가진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국가가 아닌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에 있어서도 직원들이 출퇴근길에 사고를 당해도 법원은 직원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 회사의 책임을 묻는다. 하물며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세금을 걷어 대통령을 뽑고 공무원을 임용하는 국가가 자신들의 책임을 방기함으로써 이와 같은 참담한 사고가 발생했다면 마땅히 국가의 잘못을 따져야 할 일이지 어떻게 희생당한 시민의 책임을 묻는단 말인가. 그들의 논리로 따지자면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어디든 위험하니 모두 집 밖으로 나갈 생각은 말고 오직 집안에서만 머물러야 하지 않겠나. 그게 말이나 되나. 그렇게 자유를 강조하는 대통령의 의지에도 반하고 말이다. 코로나 발생 즉시 지역 전체를 봉쇄하는 중국의 모습과 뭐가 다른가. 이태원에 간 젊은이들이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빨갱이란 말인가.


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 사고의 책임을 져야 할 모든 사람들이 진심 어린 사과는커녕 책임을 회피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는 점이다. 쏟아지는 책임 회피성 발언에 대한 외신과 우리 국민의 비난과 분노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심지어 총리라는 자는 외신과의 질의응답 시간에 수없이 반복되는 면피성 발언으로도 모자라 농담까지 섞어 물의를 빚고 말이다. 도대체 이 정부는 대한민국의 국격을 어디까지 떨어뜨릴 셈인가. 무능하여 국정을 책임질 자신이 없다면 자진하여 물러나는 게 그나마 국민들에게 속죄하는 그들의 마지막 남은 양심이리라. 그러나 이런 엄청난 사고가 터졌음에도 그들은 하위직 공무원 몇몇에게만 책임을 물을 게 뻔한 일, 그들에게 일말의 양심을 기대한다는 건 죽은 나무에서 꽃이 피는 걸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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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2-11-02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사에 분노하는 분이 있어 찾았습니다. 이번의 참사는 국민들이 분노해야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곳에 가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갑니까, 라고 되묻고 싶습니다. 그들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책임자들에게 향해야할 비난이 어찌 희생자들을 향한단 말입니까. 정말 실망입니다 그런분들.

차트랑 2022-11-02 1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헌법 34조 6항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국민을 보호하기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이번 참사는 방치의 결과입니다.

꼼쥐 2022-11-06 14:05   좋아요 0 | URL
참사의 책임은 전적으로 국가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져야 할 국가가 그 의무를 방기한 탓이지요. 국민들은 그것에 대하여 당연히 분노해야 하고 정치권에서는 그 책임을 물어야 하겠지요.
 

새벽 어둠은 깊었습니다. 이렇게 점점 깊어지는 밤의 어둠은 성탄 무렵까지 내처 이어질 것입니다. 푸르스름한 안개가 더해진 오늘 아침의 어둠은 내 허리께로 차오릅니다. 오늘따라 무겁기만 한 내 발길은 산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허방을 짚듯 어둠 속으로 푹푹 빠져듭니다. 그리고 발바닥엔 무거운 어둠이 한 움큼씩 묻어납니다. 냉정한 어둠은 도시의 소음을 내 쪽으로 슬쩍 밀어냅니다. 아침 운행을 준비하는 덤프트럭의 엔진 소음과 멀리서 들리는 비행기 소리.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 소음은 어릴 적 듣던 맷돌 소리를 닮았습니다.


어둠 사이로 깊은 슬픔 한 줄기 뻗어갑니다. 이태원에서 있었던 젊은 영혼들의 비명과 아우성. 대학생 아들을 둔 사람으로서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비통함이 고스란히 전해옵니다. 나는 그렇게 아무도 없는 등산로 허공의 어둠 속으로 눈물 한 방울 흘려보냈습니다. 생과 사의 갈림길은 너무나 가깝고 넘나듦의 시간도 한순간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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