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메르스 사태를 바라보는 다른 나라의 시각은 상당히 싸늘한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유럽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온 친구가 전하는 바로는 그 심각성이 보통이 아닌 듯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농담삼아 툭툭 던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가시가 돋아 있었고 듣고 있는 자신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만났던 어떤 사람은 어디서 보고 알게 되었는지 자신도 알지 못했던 문화관광체육부의 '외국인을 위한 안심보험'에 대해 묻더랍니다. 얼마 전에 발표되어 혹독한 비난을 받았던 정부의 대책 말이지요. 이를테면 입국한 외국인이 국내에서 메르스에 걸리면 돈을 준다는 내용이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 보니 보상 내용은 여행경비+치료비+3000달러(사망 최대 1억원)이더군요.

 

이번 사태로 외국인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은 에볼라가 만연했던 소말리아나 에티오피아의 수준으로 떨어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제 친구가 딱히 애국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받은 수모가 상당했던지 도대체 이 나라의 정부는 뭔 짓을 한 거냐며 나를 만났던 내내 씩씩거렸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힘도 없는 제가 정부를 대신해서 친구에게 사과를 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요.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정부에 갖는 불만은 제 친구의 일시적인 불만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따금 들르는 식당의 사장님은 차마 그 속내를 말로 하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은퇴를 하고 올해 초 식당을 차렸던 그 분은 퇴직금이며, 적금이며, 그가 갖고 있던 대부분의 돈을 식당에 투자한 듯했습니다.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분은 어찌할 줄 모르더군요. 오죽하면 식당을 찾는 손님이 하루에 열 명도 안 될 때가 많다고 하면서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더군요.

 

메르스 사태는 결국 시간이 가면 어떤 식으로든 사그라들겠지만 개개인이 입은 손해는 고스란히 각자의 몫으로 떠안아야 할 듯 보입니다. 잔인한 유월의 하루하루는 그들에게 뼈를 깎는 아픔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뒷짐만 진 채 행복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 어떤 분들은 그러더군요. 원자폭탄은 안 무서워하고 메르스만 무서워 한다고. 대한민국 사람들은 웃긴 사람들이라고 말이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웃긴 사람들의 웃픈 얘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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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5-06-19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미국인 친구와 이야기하다 메르스에 대한 정부의 거짓말 (?) 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어느 나라 정부나 거짓말을 다 한다에 서로 동의를 했습니다.
단지, 얼마나 능숙하고 치밀하냐 또 약간의 선을 얼마나 더 생각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좌우지간 ㅠㅠ 그래도 어서 좀 종식되었으면 좋겠네요.

꼼쥐 2015-06-20 15:07   좋아요 0 | URL
물론 어느 나라나 가릴 것 없이 거짓말을 하겠죠. 하지만 이렇게 무능한 정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부는 보지 못했어요. 이명박 시절에도 이것보다는 나았던 것 같아요.
 

사람의 감정은 표정이나 몸짓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지만 그것이 타인에게 전달되는 과정은 흥미롭다. 그것은 때로 이제 막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초겨울의 어느 휴일 아침에 초록색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저 쪽 큰길가의 연탄 배달차에서부터 이쪽 언덕의 오막살이에 이르기까지 한 줄로 길게 늘어 선 채 연탄을 나르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몸통을 돌려 다음 사람에게 연탄을 전달하는 사람들. 검댕을 묻힌 사람들의 얼굴에 하나둘 피어나는 웃음. 어쩌면 그들은 단순히 연탄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옆에 선 동료에게 행복해진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공감한다'는 것은 타인의 기분이나 느낌이 내게로 전해지는 것일 테지만 나는 솔직히 '전해진다'는 느낌보다는 '젖어든다'는 느낌일 때가 더 많다. 겉보기에 공감은 그렇게 한 장의 연탄처럼 배달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한지에 물이 배듯 그렇게 젖어들기도 한다는 얘기다. 처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젖어듦'이란 재료에 따라 그 흡수하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데서 문득 들었던 생각임은 분명하다. 예컨대 습자지처럼 얇고 부드러운 종이는 금세 젖어들지만 광고 전단지처럼 코팅이 된 종이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물 한방울 흡수하지 않는다.

 

우리네 마음의 질료도 세월에 따라 그렇게 변해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파에 시달리다 보면 한 겹 두 겹 코팅이 되어 타인의 마음을 흘려버리기만 할 뿐 빨아들이려는 생각은 점차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따금 '가짜 울음'을 우는 엄마를 보면서도 금세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기를 볼 때가 있다. 다들 저만했던 때가 있었을 텐데... 그때의 내 마음은 습자지와 같았을 것이다. 타인의 느낌이나 기분이 내 마음에 그대로 투영되지 않았을까. 습자지를 대고 글씨를 쓰듯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지금 내 기분이 이렇다' 설명에 설명을 거듭하여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내 마음은 이미 몇 겹으로 코팅된 종이로 바뀐 까닭이다. 어찌하면 마음의 코팅을 벗겨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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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는데 비를 만났다. 가늘고 성긴 비가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듣는 빗소리가 반가웠던지 한껏 들떠 보이는 청설모가 자신의 잰 발로 이쪽 우듬지에서 저쪽 우듬지로 거침없이 건너뛰는 게 보였다. '저러다 혹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나무는 아스라이 높았다. 가벼운 비가 밤꽃 냄새를 진하게 우려내었던지 산에는 온통 비릿한 밤꽃 냄새로 가득했다.

 

산을 얼추 다 내려왔을 때 등산로 한가운데 엎디어 있는 고양이를 보았다. 산에서 고양이와 마주친 것은 처음이었다. 크림색의 고양이는 어떤 무늬의 색깔도, 특징도 없이 그저 평범하였다. 다만 오랫동안 바깥 생활을 한 탓인지 몸은 땟국에 절어 꾀죄죄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자 고양이는 소리도 없이 자리를 피했다. 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앞서 걸어가는 녀석을 자세히 보니 출산이 임박한 듯 배가 불룩했다. 고양이는 내가 산을 벗어나기도 전에 숲으로 사라졌다.

 

비는 오지 않지만 하늘은 여전히 어둡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습습한 기운과 주말을 맞는 사람들의 들뜬 기분이 메르스의 공포를 조금쯤 누그러뜨리는 듯하다. 점심시간에도 손님이 거의 없는 작은 식당들이 유난히 썰렁해 보인다. 정부의 안일한 대처로 화를 키웠다는 생각이 든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격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의 몫으로 남는다. 복지부 직원들이라 복지부동의 습관이 몸에 배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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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5-06-05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벽하게 현충일을 잊고 있던 현충일 전날 읽고 갑니다. :)

꼼쥐 2015-06-06 07:3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
 
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재채기나 기침 소리만 들려도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때마다 "Bless you!"를 외칠 만큼 여유롭지도 않고 말이죠.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는 가고 싶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메르스(MERS)의 확산과 그로 인한 깊어지는 공포는 나로 하여금 '바른 생활 사나이'가 되도록 강제하였습니다. 물론 좋은 점도 있습니다. 거절하기 애매한 술 약속이나 저녁 약속도 메르스를 둘러댐으로써 단박에 거절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저녁을 먹고 느긋하게 책을 읽을 수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5월에 나온 신간 에세이를 둘러보며 그 중 읽고 싶은 책 몇 권을 골라보았습니다. 책을 고르는 시간의 숨결 속으로 투명한 고요가 내려앉았던 것도 나는 몰랐습니다.

 

제목이 맘에 들었어요. 사실 은퇴 후의 제 꿈이기도 하답니다. 이루어질지 아닐지 저로서도 장담할 수 없는... 누구나 꿈을 꾸는 건 자유니까요. 작가의 이름도 생소한 이 책을 고른 후 저는 주문을 외듯 "이루어지리라. 이루어지리라." 중얼거렸습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어느 날 어쩌면 제 꿈이 마법처럼 이루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아빠가 자신의 딸을 위해 도시락을 싸고 그 속에 담긴 냅킨에 마음을 담아 꼭꼭 눌러 쓴 사랑의 편지를 읽는 딸의 느낌은 어떤 것일까요? 위지안의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나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를 읽었을 때의 감동이 지금 이 순간에 되살아나는 느낌이 듭니다. 살면서 감동이 느껴졌던 그 순간은 너무도 쉽게 잊혀집니다. 어쩌면 내일이 있다는 여유 때문인지도...

 

 

 

 

 

 

 

자주 보면 그닥 감흥이 없지만 이따금 읽는 서간집은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게다가 장르가 다른 두 예술가의 편지는 좁혀질 것 같지 않던 머릿속 간극을 단박에 좁혀놓습니다. 루시드 폴과 마종기 시인의 서간집 <아주 사적인, 긴 만남>처럼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들과 내가 하나도 다를 게 없다는 느낌도 들고, 인생이란 게 영화처럼, 한 편의 시처럼, 한 곡조의 음악처럼 흐른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입니다. 이 책의 소개글에는 "1996년 <첫눈 오는 날 만나자>, 2001년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2003년 <위안>으로 발간되었다가 이제 다시 <우리가 어느 별에서>란 이름으로 새로이 증보된 이 산문집은, '작가의 말'에 밝힌 대로 "책에도 운명이 있다"는 말을 그대로 체현한다."고 적혀 있더군요. 저는 사실 이 책 이전의 산문집을 모두 읽었습니다. 개정 증보판이라고는 하여도 제가 읽지 않았던 산문은 몇 편 되지 않겠지요. 그렇더라도 정호승 시인의 산문은 읽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한 편의 시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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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5-06-05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냅킨 노트˝에 거론된 책들을 주섬 주섬 담아 봅니다 :)
행복한 날 되세요 :)

꼼쥐 2015-06-06 07:38   좋아요 0 | URL
두 건 모두 좋은 책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위지안의 책이 더 좋았지만 말입니다.
 

어제는 아침에 운동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비가 내리더군요. 비를 보는 건 근 한 달만이었던 듯합니다. 그동안 어찌나 가물었던지요. 마치 우리나라가 갑자기 사막으로 변한 느낌이었습니다. 해가 지면 기온이 빠르게 떨어지고 해가 뜨면 금세 뜨거워지는, 먼지바람 날리는 몽골 초원에 있는 느낌이랄까요.

 

오늘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급격히 늘어난 탓도 있고, 날씨도 뜨거운 탓에 특별한 볼일이 없는 한 밖에 나갈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항상 그렇지만 처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신경도 쓰지 않다가 뭔 일이 터져야만 그때서야 허둥대는 걸 보면 우리나라의 행정은 여전히 주먹구구식에 머물고 있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다른 건 몰라도 메르스 확산의 주범은 정부 당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메르스 의심 환자가 중국으로 출국하는 것조차 미리 막지 못했으니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지요.

 

며칠 있으면 또 국무총리 내정자의 인사청문회가 열리겠군요. 이건 뭐 숫제 코미디와 다를 게 없지만 말입니다. 전임 국무총리처럼 이번 내정자도 부패척결을 말하고 있던데 그러다가 또 어느 날 갑자기 내정자에게 돈을 줬다는 사람이 불쑥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럴 거면 차라리 국무총리도 길거리 캐스팅을 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 싶어요.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맘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옆에 가서 조용히 물어보는 거지요. "자네, 혹시 국무총리 해볼 생각 없나?"

 

야구 중계를 보면서 느긋한 휴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6월이 시작되는군요. 세월, 참 빠릅니다. 곧 장마철이 시작될 테구요. 슬슬 졸음이 밀려올 듯해서 책을 펼쳐보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네요. 모든 게 귀찮아지는 나른한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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