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감정은 표정이나 몸짓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지만 그것이 타인에게 전달되는 과정은 흥미롭다. 그것은 때로 이제 막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초겨울의 어느 휴일 아침에 초록색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저 쪽 큰길가의 연탄 배달차에서부터 이쪽 언덕의 오막살이에 이르기까지 한 줄로 길게 늘어 선 채 연탄을 나르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몸통을 돌려 다음 사람에게 연탄을 전달하는 사람들. 검댕을 묻힌 사람들의 얼굴에 하나둘 피어나는 웃음. 어쩌면 그들은 단순히 연탄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옆에 선 동료에게 행복해진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공감한다'는 것은 타인의 기분이나 느낌이 내게로 전해지는 것일 테지만 나는 솔직히 '전해진다'는 느낌보다는 '젖어든다'는 느낌일 때가 더 많다. 겉보기에 공감은 그렇게 한 장의 연탄처럼 배달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한지에 물이 배듯 그렇게 젖어들기도 한다는 얘기다. 처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젖어듦'이란 재료에 따라 그 흡수하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데서 문득 들었던 생각임은 분명하다. 예컨대 습자지처럼 얇고 부드러운 종이는 금세 젖어들지만 광고 전단지처럼 코팅이 된 종이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물 한방울 흡수하지 않는다.

 

우리네 마음의 질료도 세월에 따라 그렇게 변해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파에 시달리다 보면 한 겹 두 겹 코팅이 되어 타인의 마음을 흘려버리기만 할 뿐 빨아들이려는 생각은 점차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따금 '가짜 울음'을 우는 엄마를 보면서도 금세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기를 볼 때가 있다. 다들 저만했던 때가 있었을 텐데... 그때의 내 마음은 습자지와 같았을 것이다. 타인의 느낌이나 기분이 내 마음에 그대로 투영되지 않았을까. 습자지를 대고 글씨를 쓰듯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지금 내 기분이 이렇다' 설명에 설명을 거듭하여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내 마음은 이미 몇 겹으로 코팅된 종이로 바뀐 까닭이다. 어찌하면 마음의 코팅을 벗겨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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