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는데 비를 만났다. 가늘고 성긴 비가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듣는 빗소리가 반가웠던지 한껏 들떠 보이는 청설모가 자신의 잰 발로 이쪽 우듬지에서 저쪽 우듬지로 거침없이 건너뛰는 게 보였다. '저러다 혹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나무는 아스라이 높았다. 가벼운 비가 밤꽃 냄새를 진하게 우려내었던지 산에는 온통 비릿한 밤꽃 냄새로 가득했다.

 

산을 얼추 다 내려왔을 때 등산로 한가운데 엎디어 있는 고양이를 보았다. 산에서 고양이와 마주친 것은 처음이었다. 크림색의 고양이는 어떤 무늬의 색깔도, 특징도 없이 그저 평범하였다. 다만 오랫동안 바깥 생활을 한 탓인지 몸은 땟국에 절어 꾀죄죄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자 고양이는 소리도 없이 자리를 피했다. 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앞서 걸어가는 녀석을 자세히 보니 출산이 임박한 듯 배가 불룩했다. 고양이는 내가 산을 벗어나기도 전에 숲으로 사라졌다.

 

비는 오지 않지만 하늘은 여전히 어둡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습습한 기운과 주말을 맞는 사람들의 들뜬 기분이 메르스의 공포를 조금쯤 누그러뜨리는 듯하다. 점심시간에도 손님이 거의 없는 작은 식당들이 유난히 썰렁해 보인다. 정부의 안일한 대처로 화를 키웠다는 생각이 든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격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의 몫으로 남는다. 복지부 직원들이라 복지부동의 습관이 몸에 배었는지도 모르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초딩 2015-06-05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벽하게 현충일을 잊고 있던 현충일 전날 읽고 갑니다. :)

꼼쥐 2015-06-06 07:3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