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우리는 대한민국이 정치 후진국임을 증명하는 하나의 사례를 목격하였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과거를 향해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꼴이 된 것이지요. 사실 진보나 발전은 누군가의 불편함을 전제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그런 불편함을 용인하려 들지 않는다면 진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옛말에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지요. 인간 개개인은 각자의 생각이 서로 다른 까닭에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지 않으면 공존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맘에 들지는 않지만 타인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겠다는 자세와 그에 따른 불편을 참아내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역사는 언제나 정체와 퇴보만 거듭할 것입니다.

 

5공화국 시절 정권에 동조하거나 그들에게 아첨했던 정치인들을 충신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그 시대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했다고 믿지 않는 것처럼, 한 시대의 권력자에게 기대어 눈치를 보는 정치인들을 우리는 결코 애국자라고 칭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김정은이 지금 공포정치를 하고 있다지요? 그래서 고위층의 탈북 러쉬가 이어지고 있다지요? 남한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권력자가 도끼눈을 뜨고 '배신의 정치' 운운했다고 여당의 원내대표가 물러나는 꼴이라니... 이것이 21세기 대한민국 정치의 참모습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의견을 조율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발전하지 않습니다. 그런 불편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개나 고양이에게 내각의 장관이나 원내대표를 맡겨야지요. 누구라고 이름을 거명할 필요도 없지만 이번 사태에 동조했던 정치인들은 개나 고양이와 무에 다르겠습니까. 지금 여당 내의 모습은 동물의 왕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운 센 암사자에 의해 통솔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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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산을 찾는 사람 중에는 몸과 마음 중 어느 하나가, 또는 둘 모두가 아픈 사람이 많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저는 숫제 그런 쪽으로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지냈습니다. 적어도 그런 사람들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종편 프로그램의 <나는 자연인이다>에나 나올 법한 그런 곳에서나 살아갈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었기에 지병을 다스리기 위한 방편으로 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야산을 매일마다 오르내릴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여느 날처럼 산에 올라 가볍게 몸을 풀고는 등산로를 따라 걷고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숨을 헐떡이며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꼭 마주치던 분이었습니다. 일년 사계절 동안 거르지 않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인데 아주머니도 그 중 한 분이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걸음의 속도를 늦추었습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이 걷다 보니 아주머니께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아주머니의 등산 연륜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자신에게 인사를 하고 지나치는 분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방금 지나간 사람은 나이가 에순이 넘었고, 그전에 지나쳐 간 빼빼한 여자는 대장암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고..." , 아주머니는 마치 중계를 하듯 말씀하셨습니다. 본인도 산을 오르기 전에는 많이 아팠다고 했습니다. 젊어서는 안 해본 일 없이 억척스럽게 일을 해서 아이들 교육시키다 보니 몸이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더랍니다. 그래서 산을 찾기 시작했답니다. 어떤 날은 밥도 거른 채 하루 종일 걸었던 적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먹는 약 때문에 한동안 빠지지 않던 붓기도 그렇게 걸으면서 뺐다고 했습니다.

 

왜 아내와 같이 나오지 않았느냐 묻기에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주말부부로 지낸다고 하면 이런 저런 질문이 한동안 이어질 것 같아서 말이죠. 아내는 산에 오는 걸 싫어해서 나 혼자 다닌다고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더 멀리까지 간다는 아주머니와 헤어져서는 왔던 길을 되짚어 산을 내려왔습니다. 아주머니의 보조에 맞추느라 천천히 걸었던 탓에 시간은 꽤난 지체되었더군요. 산을 찾는 사람 대부분이 산을 오르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있게 마련이라던 아주머니의 말이 지금도 머릿속에서 뱅뱅 맴을 돕니다. 나는 산을 찾는 사람 대부분이 나처럼 그저 산이 좋아서 찾아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 아픔을 보지 못했습니다. 귀찮다는 이유로 일부러 외면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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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7-03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굴인지 몸인지 동병상련은 어딘가 흔적을 지문같이 나타내는 건가 하고말이죠,
드러나는 모양이라는 생각을 가끔합니다. 어디를 이동하거나 턱없이 서있는
길에서도 저한텐 아무나 말을 걸어옵니다. (도를..이 아니고..) 무슨 말이든 자꾸
하고 싶은 건지, 시키고 싶은 건지, 사정을 말하곤 해요. 어디가 아팠다는 둥...
지금은 어떠하다는 식으로..저는 들리니 듣는 것 뿐..처방을 하는 사람도 뭣도 아닌데..
금방 제 볼일이 있음 지나쳐 가야 하는 데도..그럽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붙잡고
...그렇게 말하는 이, 그런데 그러고 나면 가벼운 모양입니다. 어쩐지 제게 올 때 보단
가면서의 인상이 한결 편안해 뵈는, 웃으니까 그런가 하고 느낍니다. 별일 이죠..^^

꼼쥐 2015-07-07 13:04   좋아요 0 | URL
유난히 편해 보이는 인상의 사람이 있지요. 다가가기 거북하지 않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아마도 그장소 님의 인상도 그렇게 편하고 푸근해 뵈지 않을까 싶군요. 저는 편한 인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만만해 뵈는 인상이 아닐까 싶어요. ㅎㅎ

[그장소] 2015-08-13 18:04   좋아요 0 | URL
^^ 만만이..맞을것 같아요..제게도 역시. 부러 낮추자 하는 것이 아니라.싱거운 거죠. 슥~ 지나도 될 정도로요! 벽이나 뭐..그런 것과 같이..그런 것이 저는 또 싫지 않고요. 그것도 좋다고..생각하거든요.
 

밤새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오랜 가뭄 끝에 꿀처럼 내리는 비. 어제 저녁부터 시작된 비는 밤새도록 나의 잠을 방해하면서 늦도록 잠 못 들게 했다. 마치 한가로운 쇼핑에 억지로 끌려 나간 사람처럼 나는 빗소리에 이끌려 내 기억의 골목 여기저기를 하염없이 헤매었다. 간헐적으로 빗소리는 강해졌다가 다시 약해지곤 했다.

 

피곤이 가시지 않은 부스스한 얼굴로 아침운동에 나섰다. 구름에 가린 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가는 빗줄기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었다. 먼지 풀풀 날리던 등산로는 반가운 듯 조용히 비에 젖고 있었다. 오늘따라 아침 시간이 유독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산새들 울음 소리. 소리가 클수록 침묵이 깊었다.

 

빗줄기는 오전 내내 이어지다가 슬몃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습습한 대기의 흐름은 한결 여름다워졌음을 느끼게 한다. 사람들도 나이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얼굴을 갖게 되는 것처럼 계절에도 그 계절에 어울리는 풍경이 있는 법이다. 봄처럼 메말랐던 대기는 이제 여름을 닮아가고 있다. 주말을 앞둔 하루의 기억들이 순번을 정하지 않은 채 쌓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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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신경숙 작가의 표절 사태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엉뚱하게도 '아, 신경숙 작가는 여전히 젊구나' 하는 것이었다. 표절을 주장한 이응준 작가도 참 까칠하다거나 신경숙 작가가 잘못했다거나 하는, 사태의 본질에 대한 내 자신의 어떤 의견이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보다는 오히려 신경숙 작가가 아직은 젊구나 하는 생뚱맞은 생각이 먼저 들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사실 나는 신경숙 작가의 소설을 좋아한다. 말하자면 나는 그녀의 애독자인 셈이다. 꼭 그렇다고 해서 작가의 표절 의혹에 대해 의견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말이다.

 

작가가 젊다고 생각했던 까닭은 그녀의 물리적인 나이도 나이려니와(사실 그녀는 53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를 먹었다) 그정도 나이가 되었으면 세상 이치를 어느 정도 알 만도 할 텐데 여전히 젊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인생이란 어차피 나와 세상과의 한판 싸움이다. 그러나 지는 쪽은 항상 나라는 사실이다. 삶에서 배우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수백 번, 수천 번 지고, 그로 인하여 상처 받고,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아파보았으면 이제 세상에 맞서 싸우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만도 한데 작가는 여전히 세상과 맞서려 했다는 것이다. 물론 마지못해 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말한다고 해서 내가 생각하는 내 자신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지 않고 버틴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사죄하지 않고 버티면서 너희들은 너희들, 나는 나 따로 분리되어 사는 방법과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할지라도 미안하다, 죽을 죄를 지었다 사과하고 그들이 용서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 방법이 그것이다. 잘못했다고 싹싹 빌고 사과함으로써 그들의 생각을 바꿔볼 요량이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세상을 덜 산 사람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오직 시간과 환경에 의해 바뀔 뿐 내 사과의 말 한 마디로 금세 바뀌는 건 아니다.

 

이런 이치를 알고 나면 세상 살기가 조금 편해진다. 그들이 나에 대해 믿고 생각하는 대로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옳다고 인정해주면 된다.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고 세상과 싸울 일도 없다. 그보다 편한 방법을 나는 지금껏 보지 못했다. 황희 정승이 했듯이 당신도 옳고 또 당신도 옳다고 인정하면 된다. 굳이 나를 내세워 분란을 만들 이유는 없다. 그렇게 한다고 하여 나에 대한 세상의 인식이 바뀌는 건 결코 아니다. 다들 경험해 보았겠만 내가 아무리 얼르고 구슬른다고 해도 가장 사랑하는 배우자의 생각조차 바꾸지 못한다. 평생 동안 말이다. 다만, 내가 배우자의 생각을 무작정 인정하면 그 순간부터 배우자의 생각도 바뀌기 시작한다. 참, 신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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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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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 안에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일들과 마주칠 때면 아직 오지도 않은 가까운 미래를 향해 심통 사나운 노크를 해대곤 한다. 물론 그 시발점은 언제나 나의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말이다. 예컨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날, 한동안 미루기만 했던 방청소를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거나, 몇 개 되지도 않는 밥그릇을 적당히 돌려가며 사용하다가 이제는 그마저도 어렵게 되었다고 판단될 때, 우렁각시도 기대할 수 없는 나는 내 손으로 직접 설거지며, 빨래며, 청소 등등을 말끔하게 끝마치고 식탁에 느긋하게 앉아 냉커피 한 잔을 달게 마시는 장면을 상상하곤 한다. 이를테면 나는 김칫국부터 마시는 셈인데 그렇게 하고 나면 이따금 움직거릴 힘이 나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긴 기다림 끝에 내리는 단비처럼 야금야금 아껴가며 취해야 할 대상인 듯 여겨져 상상도 가끔 미안해진다. 내가 상상한다고 그 달콤한 기분이 쉬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동시에 예술가로도 이름이 난 박상미를 알게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번역을 맡았던 그녀에게 큰 빚을 진 셈이었다. 게다가 나는 번역 문체를 꼼꼼히 따지는 까탈스러운 독자가 아니던가. 박상미 작가는 줌파 라히리의 소설에서 풍기는 차분하고도 따뜻한 느낌을 무리없이 제법 잘 표현했었다. 영어로 씌어진 작품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이 영어만 잘한다고 생각처럼 쉽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작가로서의 기질과 섬세한 감성뿐 아니라 뛰어난 한글 실력이 덧붙여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신작 <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는 내내 여동생 생각이 났다. 1996년 대학을 졸업한 후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뉴욕으로 갔다는 작가와는 달리 여동생은 그보다 늦은 2003년에 단순히 그곳에 살기 위해 뉴욕으로 갔다. 같은 도시에 살고는 있지만 그 큰 도시에서 동생과 작가가 서로 안면이 있을 것이다 장담할 수만은 물론 없다. 애 둘을 키우며 이제는 완전한 미국 아줌마의 태가 나는 동생은 지난해 있었던 아버지의 장례식에 뒤늦게 참석했었다. 그 자리에서 동생은 꺽꺽 울음을 삼키며 대상도 없는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되내었었다.

 

작가가 말하는 '사적인 도시' 뉴욕은 그야말로 '사적'이다. '사적인 도시'를 나는 '고향'과 '여행지'의 중간쯤으로 인식한다. 그것은 삶의 권태와 익숙함에으로부터 살짝 벗어난 낯섦과 긴장감이 상존하는 공간일 터이다. 작가에게 뉴욕은 딱 그런 곳이다. 삶의 무게는 느껴지지 않지만 여행자의 외경과도 사뭇 거리가 있는... 동생이 사는 뉴욕은 또 다른 '삶의 기착지'였다. 서울에서 뉴욕으로 주소와 우편번호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건 없었다. 작가에게 뉴욕은 취미 생활을 하는 어느 공간처럼 가볍고 분주하다. 살짝 긴장감이 묻어나지만 진득한 땀냄새는 없는, 매일매일이 소풍을 가는 어느 봄날처럼 설레는 그런 곳이다.

 

"내가 태어난 도시가 아니라 내가 살기로 선택한 도시, 뉴욕은 나라는 개인에게 매우 사적인 은유였다. 내가 자라나며 불만을 품었던 중산층적 가치들의 전복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 안정과 위생과 효율보다 도전과 거침과 우회가 인정되는 곳. 불가능하게 치솟은 빌딩처럼 위대함이 꿈꾸어지고 시도되는 장소로서의 은유. 뉴욕은 내 삶의 변명들을 뭔가 다른 것으로 바꾸어가는데 필요한 나만의 내면적 장치였다." (p.87~p.88)

 

<나의 사적인 도시>는 삶의 진실성보다는 약간의 겉멋을 부린 그런 책이다. 몸빼 바지가 아닌 원피스와 스카프로 한껏 멋을 부린 어느 여인이 연상되는.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2005년 11월부터 2010년 6월까지 4년 반의 시간 동안 뉴욕에서 써 내려간 블로그의 포스트를 간추리고 재구성해 묶은 산문집이라고 한다. 지인들은 물론 다수를 차지하는 익명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블로그에서 포스팅 주제로 쓰기에는 땀내 풀풀 나는 일상보다는 오히려 공연과 전시회와 문학이 더 어울렸을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에도 우아함을 잃지 말라고, 누군가 내게 그렇게 말해주었다고 상상할 때가 있다. 뜻은 높고, 판단과 실행은 군더더기 없이 단순해야 하고, 태도는 부드러워야 한다고. 외롭고 외로운 여왕이나 장군을 떠올리라고. 영예로운 뜻과 반듯한 말과 생각, 칼날 같은 실행이 있다 해도 관용이나 인간적 연민이 없다면 우아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곧음만을 자랑하던 직선이 몸을 살짝 구부려 공간을 품을 때 비로소 우아한 곡선이 된다. 베라자노 브리지는 브루클린의 한 지점에서 스태튼 아일랜드의 한 지점까지 그렇게 건너간다." (p.237)

 

어느 곳에서 산들 한 점 삶의 애환이 어찌 없을까. 나도 안다. 너무나도 잘 안다. 반짝거리는 빌딩의 유리에도 칙칙한 삶의 시간이 주책없이 달라붙는다는 사실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뉴욕, 그곳이라고 삶의 번잡함이 왜 없으랴. 작가라고 이방인의 슬픔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이 책에서 작가는 예술과 문학과 공연과 전시회와 자신의 일과 만남만 이야기할 뿐 보편적 삶이 수놓는 저지대의 풍경은 그리지 않는다. 내가 공감할 수 없었던 까닭은 거기에 있다. 나는 내가 사는 지구위 어느 곳의 또다른 삶이 아닌, 다른 우주의 한 귀퉁이를 보고 있는 듯했다. 나는 이 책을 읽어내기 위해 마지막 페이지를 읽는 나의 모습을 수백 번 상상해야만 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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