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잘 드는 양지쪽 산비탈에는 어린 묘목의 가녀린 가지 위로 파릇한 새순이 돋고 있었다. 산의 능선을 따라 길게 늘어선 참나무 군락과 각각의 나무를 감싸고 있는 껍질은 굵은 힘줄이 툭툭 불거진 듯 강인한 생명력을 뽐내고 있었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풀섶에서 먹이를 찾던 참새떼가 포릉포릉 날았다. 부지런한 딱따구리 한 마리가 죽은 소나무 기둥에 앉아 열심히 나무를 쪼고 있었다. 더없이 푸른 하늘에 덩그러니 걸린 구름 한 조각이 갈 길을 몰라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다. 바람은 잦아들었지만 영하로 떨어진 아침 기온 탓인지, 아니면 휴일 아침마저 부지런을 떨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는 반발심 때문인지 산을 오르는 등산객은 많지 않았다. 여러 동식물이 공존하는 숲속 풍경은 다채로웠다. 다양성이 공존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도 자연을 닮아가야 한다고 나는 오늘 아침 산길을 오르며 생각했다. 다채로운 숲속 풍경을 짙푸른 하늘이 감싸고 있었다.


나는 현 정부의 행태를 생각할 때마다 '서슴없다'라는 단어가 떠오르곤 한다. '서슴거리다'의 사전적 의미는 '말이나 행동을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자꾸 머뭇거리며 망설이다.'이다. 그러므로 '서슴없다'는 '말이나 행동에 망설임이나 거침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마음 사전>을 썼던 김소연 시인은 자신의 다른 저서 <시옷의 세계>에서 '서슴거림의 기록'이라는 소제목에 '침묵 단상'이라는 제하를 달았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침묵이라는 것은 내가 행할 때는 가장 신중한 방패지만 타자가 행할 때는 가장 뾰족한 창일 수 있다. 나의 침묵은 방패처럼 나를 방어해주지만, 너의 침묵은 뾰족한 창처럼 나를 찌를 수 있다."  (p.70 '시옷의 세계' 중에서)

"침묵 자체가 아니라, 침묵하는 인간의 태도에 대해 내 입장이 바뀌게 된 이야기를 쓴 것이기 때문에 서슴거림이란 말이 필요했던 거 같아요. 나는 '서슴거리다'는 말을 참 좋아해요. 망설임이나 흔들림 하고도 다른, 어떤 이상한 신중함 같은 게 느껴져요. 전 말도 되게 서슴거리면서 하고, 성격도 서슴거려요. 그런 모든 것들 때문에 종국엔 입을 다물고, 글을 쓰는 거겠지요."


어느 조직에서나 최종 결정권자는 말과 행동 모두에 있어 신중해야 한다. 말하자면 매사에 서슴거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매사에 서슴이 없다. 최종 결정권자의 결정은 돌이킬 수 없는 까닭에 서슴이 없다는 것은 곧 파국을 의미한다. 그것은 개개인이 행하는 경솔함이나 사사로움과는 다르다.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치솟고 합계출산율 0.7이라는 극단의 시대로 가는 요즘, 다양성을 말살하기 위해 모든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주요 피의자를 호주로 빼돌리는 이런 서슴없는 결정은 모두 대통령실에서 재가된 것이 아닌가. 과거 호주는 범죄자들의 유배지로 선택된 나라였고 그렇게 만들어진 국가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범죄자들을 호주로 보낸다는 건 호주 국민들이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는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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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3-13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슴거리다... 침묵...!
좋아요~♡
배워갑니다.

꼼쥐 2024-03-15 16:40   좋아요 1 | URL
김소연 시인의 저작 ‘마음 사전‘을 읽어보면 서슴거리는 시인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아요. 어쩌면 그렇게 단어의 적확한 의미와 쓰임을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28. 간만의 독서


마음에 난 상처는 부둥켜안을 수 없습니다. 펄펄 뛰는 상처가 또 다른 상처로 이어져 지난 상처를 자꾸 덧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날아드는 보이지 않는 칼날을 막거나 피할 재주는 우리에게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상처가 깊지 않도록 서로를 보살필 뿐입니다. 마음의 상처가 깊은 아내 멧돼지는 며칠째 두문불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이 세운 욕심의 칼날을 향해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던 아내 멧돼지는 난도질도 모자라 죽음 직전까지 자신을 몰아붙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칼날에 처참하리만치 상처를 입은 아내 멧돼지를 향해 한 마디 위로의 말을 전한다는 건 되려 상처만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쭈뼛쭈뼛 아내 멧돼지의 눈치만 살필 뿐 어떤 위로의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아내 멧돼지의 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아내 멧돼지와 내가 사지가 묶인 채, 활활 타는 장작더미 위에서 통구이가 될 준비를 하고 있더랍니다. 주변에는 일반 멧돼지들이 겹겹으로 우리를 감싼 채 성난 표정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구호를 외치는가 하면 개중에는 우리를 향해 돌을 던지는 멧돼지도 있더랍니다. 장작불 위의 등허리는 곧 타들어갈 듯 뜨겁고 멧돼지들의 성난 구호와 우리를 향해 던져지는 무수한 돌멩이들로 인해 곧 죽을 것만 같았다고 했습니다. 살려달라고 아무리 외쳐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는 멧돼지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선거가 끝난 후 우리 부부가 처할 운명을 미리 보여주는 예지몽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리더 멧돼지인 나와 나의 똘마니들을 지지하는 멧돼지들은 그 부류가 일정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려는 멧돼지, 너무 무지하거나 먹고 사는 게 팍팍해서 우리의 잘잘못을 따질 능력이 되지 않는 멧돼지,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우리를 공포스럽게 여기는 멧돼지 외에는 우리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그럴 수밖에요. 자식이 없는 우리 부부는 우리 나라의 미래나 다음 세대의 삶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부 멧돼지가 사는 동안 하고 싶은 일,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뭐든지 다 이루면서 행복하게 살면 그뿐, 다른 건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멧돼지들이 뭐라 하건 우리는 못할 게 없습니다.


나는 요즘 전국을 돌며 일반 멧돼지들에게 뻥과 구라를 치고 있습니다. 한 달을 넘지 못하는 멧돼지들의 기억력을 감안할 때 내가 아무리 뻥을 쳐도 그들은 선거 전에 했던 나의 말을 기억조차 하지 못할 것입니다. 설사 기억하는 멧돼지가 있다 할지라도 입을 틀어막으면 그뿐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나의 충복인 동운 멧돼지는 요즘 자뻑에 취해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제2의 리더 멧돼지라도 되는 양 목에 잔뜩 힘을 주고 자신을 연호하는 일반 멧돼지들에게 머리를 흔드는 모습은 가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거만 끝나면 목이 달아날 수도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듯합니다. 우리 부부나 동운 멧돼지는 같은 운명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모든 걸 잊고 책이나 읽어야겠습니다. 제목은 '레미제라블(너 참 불쌍타)'입니다.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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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지 않은 순한 시간의 궤적 위에 추억이라 할 만한(혹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될지도 모를) 목록 몇 개를 별다른 목적도 없이 툭툭 던져보는 날 하늘은 조금 우중충했고, 따사로운 대기엔 탁한 미세먼지가 고였다. 아파트 주변의 너른 공원을 마스크도 없이 걸었고, 아침에 읽다 만 어느 소설의 스토리를 잠깐 생각했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원의 낯선 풍경. 사람들과의 대화나 공감보다는 동물에게 내리는 일방적인 명령이 더 편하고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버린 도시인의 정서가 오늘의 미세먼지보다 더 탁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


몇몇 동물에 대한 애정이 깊어질수록 인간의 생명에 대한 가치는 비례하여 줄어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 식용 금지법'을 통과시켰던 우리 국회는 가자 주민들에 대한 이스라엘 시오니스트의 잔인한 학살을 그저 남의 일인 양 외면하고 있다. 먹을 게 없어서 구호품을 향해 달려드는 가자 주민들을 향해 총을 겨눴던 이스라엘 병사들과 그와 같은 명령을 내린 이스라엘 정치인들의 잔인성이 이스라엘 전체 국민을 대변하는 이스라엘 국민성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럴 리도 없을 테고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나치의 잔인성을 닮아가고 있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와 같은 잔인한 학살에 대해 국제사회는 마땅히 분노해야 한다. 적어도 인권을 존중하는 자주 국가라면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 정부는 이스라엘이 전쟁을 시작한 이후 이렇다 할 논평을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침묵은 암묵적인 동의와 다르지 않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악의 평범성'은 바로 이런 것을 지적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2022년 11월 15일 기준의 세계 인구는 이미 80억 명을 넘었다. 1900년경에 20억 명이었던 세계 인구는 불과 100여 년만에 4배가 증가한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마구잡이로 학살해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올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0.6명대로 진입할 것이라며 국가 소멸 운운하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걸 기억한다. 사실 출산율을 늘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젊은 사람들에게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주택을 보급하고 양질의 일자리만 제공하면 된다. 그와 같은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정책을 시행하는 순간 젊은 사람들에게 비싼 가격으로 자신의 주택을 팔려고 했던 중장년층이나 건설업체가 큰 피해를 입게 된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려면 정년이 가까운 장년층의 희생이 필수적이다. 현시점에서 기득권층인 그들이 자발적으로 희생을 감내할 리가 없다. 여당의 공천 결과만 보더라도 그와 같은 사실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디올백을 받았던 어느 여인은 관종 욕망을 억누른 채 잠행을 계속하고 있다. 디올백 수수 이후 세계적인 셀럽 반열에 올랐는데도 말이다. 세상은 참으로 요지경이다. 학살의 피해자였던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을 대상으로 학살의 가해자로 돌변했고, 관종 욕망이 강했던 어느 여인은 세계적인 셀럽이 되자 모습을 감춰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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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람이, 키가 큰 나무의 우듬지를 쏴쏴 휩쓸고 갈 때마다 나무들은 버티기 힘들다는 듯 끽끽 소리를 냈다. 등산로에 쌓인 낙엽들이 앞뒤로 몸을 뒤채며 가볍게 흩날렸다. 겨우내 계곡에 몸을 숨기고 있던 추위가 바람과 함께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 갑작스러운 추위 때문인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볼에 닿는 공기가 꽤 차가웠다. 등산객의 스틱 자국이 뿅, 뿅, 뿅 지워지지 않은 채 얼어붙었다. 마치 쥐라기나 백악기의 어느 동물이 남긴 발자국처럼.


오늘은 삼일절. 일제의 강압에 맞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순국선열들의 의지가 온 나라에 울려 퍼진 날이 아닌가. 그럼에도 현 정부는 일제를 찬양하는 친일 인사를 독립기념관 이사로 임명하였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들으면 우리가 마치 일제 침략으로 인해 큰 덕이라도 본 줄 알겠다.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보수정권이 집권했었지만 현 정부처럼 근본이 없는, 막무가내의 정치를 하는 꼴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여권의 한 인사는 문화방송의 일기예보에 나온 숫자 1을 두고 '일기예보를 통해 사실상 민주당 선거운동성 방송을 했다.'고 말함으로써 정치를 개그의 한 부분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이런 인사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으니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담할 수밖에... 더구나 일본은 정부 관료와 언론을 통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주장과 공세를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는데 대통령은 삼일절 기념 연설에서 "한일 양국이 교류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고, 역사가 남긴 어려운 과제들을 함께 풀어간다면, 한일관계의 더 밝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참으로 안일하기 짝이 없는, 일본의 야욕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바보 같은 연설이 아닌가.

스테판 에셀의 저서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를 읽고 있다. 2010년 당시 92세의 나이로 발표했던 32쪽 분량의 작은 책 <분노하라>를 통해 세계적으로 분노 신드롬을 일으켰던 그의 저력은 이 책에서도 십분 발휘되는 듯하다.

"분노는 우리를 자각하게 해주고, 의식을 일깨우고, 체념한 사람을 무관심에서 빠져나오게 하고, 좌절로부터 걸어나와 우리의 마음을 자극하는 일에 맞서 저항하고 싸우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게 해준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의 첫 단계, 붉은 신호등,  '길의 시작'에 불과하다. 이 도약의 순간이 또다른 움직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정당하고 중대한 임무를 달성하기 위한 우리의 능력을 결코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내가 나의 아이들, 친구들,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전하고자 하는 바이기도 하다. 우리의 모든 노력이 아직 큰 결실을 거두지 못했을지라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리가 실천해온 앙가주망이 아직 성공의 화관을 쓰지 못했을지라도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중에서)

오늘은 삼일절.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부정하고 우리나라를 향해 독설을 쏟아낼지라도, 대한민국 정치인 중 일부 친일 세력들이 그들의 만행을 미화할지라도 우리는 역사의 진보를 믿고 불의에 저항해야 한다. 그리고 부정에 동조하는 여당의 정치인들과 현 상황에 분노해야 한다. 그것이 곧 우리가 정당하고 중대한 임무를 달성하기 위한 우리의 능력을 믿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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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달이 밝았다. 부옇게 번지는 새벽안개를 통과한 달빛은 도심의 밝은 조명에 흔들려 땅에 닿기도 전에 스러지면서도 어스름한 등산로에 희미한 숲의 그림자를 그려놓곤 했다. 어제부터 불던 바람은 밤을 꼬박 지나 신새벽이 되어서도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새벽의 어둠을 틈타 멀리서 목이 쉰 듯한 고라니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새벽마다 오르는 이 산의 느낌이 오늘따라 꽤나 생경했던 것은 아마도 오랜만에 듣는 고라니 울음소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몇 년 전 이 산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후로 이따금 보이던 고라니도, 이맘때면 분주히 오가던 청설모 가족도 마치 구전설화의 주인공으로 변한 양 등산객의 시야에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총선이 멀지 않은 요즘, 각 당의 공천 작업이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어느 지역에 누가 후보로 지명되었는지 세세히 알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지역구에 누가, 어떤 공약으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는지 정도는 유권자로서 당연히 살펴야 하지 않을까. 고대 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당신이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해서 정치가 당신을 자유롭게 두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던 것처럼 지난 대선에서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까닭에 작금의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국민의힘 당적만 갖고 있을 뿐 보수주의자라고 말할 수 없는 대통령을 이유도 없이 지지하는 까닭과 대통령실에서 근무했던 낙하산 후보자들을 과감히 배제하지 못하는 이유, 그리고 세수결손으로 인해 서민들의 복지 혜택이 줄줄이 삭감되는 현 상황을 보면서도 여당을 지지하는 철부지 유권자들의 행태는 논리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참으로 웃긴 것은 세계사에 독재자로 이름을 올린 아돌프 히틀러의 말이다.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 것은 그들을 관리하는 정부에게는 얼마나 행운인가." 당시에도 히틀러는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들처럼 여당을 지지하는 생각 없는 유권자들이 있어 행운이라고 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말하길 "정치에 대한 참여를 거부한 형벌 중 하나는 자신보다 하등한 존재에 지배당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당신도 그런 형벌을 받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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