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람이, 키가 큰 나무의 우듬지를 쏴쏴 휩쓸고 갈 때마다 나무들은 버티기 힘들다는 듯 끽끽 소리를 냈다. 등산로에 쌓인 낙엽들이 앞뒤로 몸을 뒤채며 가볍게 흩날렸다. 겨우내 계곡에 몸을 숨기고 있던 추위가 바람과 함께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 갑작스러운 추위 때문인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볼에 닿는 공기가 꽤 차가웠다. 등산객의 스틱 자국이 뿅, 뿅, 뿅 지워지지 않은 채 얼어붙었다. 마치 쥐라기나 백악기의 어느 동물이 남긴 발자국처럼.


오늘은 삼일절. 일제의 강압에 맞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순국선열들의 의지가 온 나라에 울려 퍼진 날이 아닌가. 그럼에도 현 정부는 일제를 찬양하는 친일 인사를 독립기념관 이사로 임명하였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들으면 우리가 마치 일제 침략으로 인해 큰 덕이라도 본 줄 알겠다.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보수정권이 집권했었지만 현 정부처럼 근본이 없는, 막무가내의 정치를 하는 꼴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여권의 한 인사는 문화방송의 일기예보에 나온 숫자 1을 두고 '일기예보를 통해 사실상 민주당 선거운동성 방송을 했다.'고 말함으로써 정치를 개그의 한 부분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이런 인사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으니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담할 수밖에... 더구나 일본은 정부 관료와 언론을 통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주장과 공세를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는데 대통령은 삼일절 기념 연설에서 "한일 양국이 교류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고, 역사가 남긴 어려운 과제들을 함께 풀어간다면, 한일관계의 더 밝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참으로 안일하기 짝이 없는, 일본의 야욕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바보 같은 연설이 아닌가.

스테판 에셀의 저서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를 읽고 있다. 2010년 당시 92세의 나이로 발표했던 32쪽 분량의 작은 책 <분노하라>를 통해 세계적으로 분노 신드롬을 일으켰던 그의 저력은 이 책에서도 십분 발휘되는 듯하다.

"분노는 우리를 자각하게 해주고, 의식을 일깨우고, 체념한 사람을 무관심에서 빠져나오게 하고, 좌절로부터 걸어나와 우리의 마음을 자극하는 일에 맞서 저항하고 싸우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게 해준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의 첫 단계, 붉은 신호등,  '길의 시작'에 불과하다. 이 도약의 순간이 또다른 움직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정당하고 중대한 임무를 달성하기 위한 우리의 능력을 결코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내가 나의 아이들, 친구들,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전하고자 하는 바이기도 하다. 우리의 모든 노력이 아직 큰 결실을 거두지 못했을지라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리가 실천해온 앙가주망이 아직 성공의 화관을 쓰지 못했을지라도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중에서)

오늘은 삼일절.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부정하고 우리나라를 향해 독설을 쏟아낼지라도, 대한민국 정치인 중 일부 친일 세력들이 그들의 만행을 미화할지라도 우리는 역사의 진보를 믿고 불의에 저항해야 한다. 그리고 부정에 동조하는 여당의 정치인들과 현 상황에 분노해야 한다. 그것이 곧 우리가 정당하고 중대한 임무를 달성하기 위한 우리의 능력을 믿는 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