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간만의 독서


마음에 난 상처는 부둥켜안을 수 없습니다. 펄펄 뛰는 상처가 또 다른 상처로 이어져 지난 상처를 자꾸 덧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날아드는 보이지 않는 칼날을 막거나 피할 재주는 우리에게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상처가 깊지 않도록 서로를 보살필 뿐입니다. 마음의 상처가 깊은 아내 멧돼지는 며칠째 두문불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이 세운 욕심의 칼날을 향해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던 아내 멧돼지는 난도질도 모자라 죽음 직전까지 자신을 몰아붙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칼날에 처참하리만치 상처를 입은 아내 멧돼지를 향해 한 마디 위로의 말을 전한다는 건 되려 상처만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쭈뼛쭈뼛 아내 멧돼지의 눈치만 살필 뿐 어떤 위로의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아내 멧돼지의 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아내 멧돼지와 내가 사지가 묶인 채, 활활 타는 장작더미 위에서 통구이가 될 준비를 하고 있더랍니다. 주변에는 일반 멧돼지들이 겹겹으로 우리를 감싼 채 성난 표정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구호를 외치는가 하면 개중에는 우리를 향해 돌을 던지는 멧돼지도 있더랍니다. 장작불 위의 등허리는 곧 타들어갈 듯 뜨겁고 멧돼지들의 성난 구호와 우리를 향해 던져지는 무수한 돌멩이들로 인해 곧 죽을 것만 같았다고 했습니다. 살려달라고 아무리 외쳐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는 멧돼지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선거가 끝난 후 우리 부부가 처할 운명을 미리 보여주는 예지몽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리더 멧돼지인 나와 나의 똘마니들을 지지하는 멧돼지들은 그 부류가 일정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려는 멧돼지, 너무 무지하거나 먹고 사는 게 팍팍해서 우리의 잘잘못을 따질 능력이 되지 않는 멧돼지,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우리를 공포스럽게 여기는 멧돼지 외에는 우리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그럴 수밖에요. 자식이 없는 우리 부부는 우리 나라의 미래나 다음 세대의 삶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부 멧돼지가 사는 동안 하고 싶은 일,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뭐든지 다 이루면서 행복하게 살면 그뿐, 다른 건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멧돼지들이 뭐라 하건 우리는 못할 게 없습니다.


나는 요즘 전국을 돌며 일반 멧돼지들에게 뻥과 구라를 치고 있습니다. 한 달을 넘지 못하는 멧돼지들의 기억력을 감안할 때 내가 아무리 뻥을 쳐도 그들은 선거 전에 했던 나의 말을 기억조차 하지 못할 것입니다. 설사 기억하는 멧돼지가 있다 할지라도 입을 틀어막으면 그뿐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나의 충복인 동운 멧돼지는 요즘 자뻑에 취해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제2의 리더 멧돼지라도 되는 양 목에 잔뜩 힘을 주고 자신을 연호하는 일반 멧돼지들에게 머리를 흔드는 모습은 가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거만 끝나면 목이 달아날 수도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듯합니다. 우리 부부나 동운 멧돼지는 같은 운명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모든 걸 잊고 책이나 읽어야겠습니다. 제목은 '레미제라블(너 참 불쌍타)'입니다.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 고지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