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감정을 억누른 채 점잖은 척 짐짓 에둘러 말할 때가 있습니다. 아파트 화단에 핀 벚꽃을 보면서도 나는 "벚꽃이 환하게 피었네." 무심한 듯 한마디 했을 뿐입니다. 화산처럼 튕겨져 나오는 꽃의 분화를 그렇게 무심히 맞을 일은 아니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담아 자지러질 듯 떠들 일은 아니었을지라도 그윽한 상념과 함께 시선은 오래 머물렀어야 했습니다. 매년 피는 꽃일지언정 반갑다는 인사는 했어야 옳았습니다. 새롭게 핀 벚꽃을 맞는 것처럼 새롭게 나온 에세이를 둘러봅니다.

 

 

나의 마지막 모습이 이러했으면, 하고 오래 생각한 적은 없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그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연명치료를 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되기 때문이지요. 이 책의 저자인 다비드 메나셰도 그런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고등학교 영어 교사였던 저자는 100여일 동안 미국 전역을 떠돌며 75명의 옛 제자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 여정에 동행하고 싶은 까닭은 나의 마지막 모습도 그러했으면 바라기 때문입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다룬 빌 브라이슨의 저서 <나를 부르는 숲>을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던지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완주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면 꼭 한 번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습니다. 35년 동안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며 열한 명의 아이를 키워낸 게이트우드가 가까스로 이혼하고 예순일곱의 나이에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완주하였다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몇 년 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위지안 교수의 저서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를 읽고 깊은 감동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유학을 마친 후 결혼을 하여 아들을 낳고 이제 막 교수로서 인생을 즐기려던 찰나에 그녀는 암 선고를 받고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케이트 그로스도 비슷했었나 봅니다. 20대에 이미 총리 관저에서 일할 정도로 성공한 인생을 살았던 그녀가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16일만에 완성했다는 이 책은 그래서 더 값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전적으로 사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열성팬인 저는 하루키의 신간이라면 그저 좋아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루키의 글과 고인이 되신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이라고 하니 더욱 욕심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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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미세먼지로 목이 칼칼하고 멀쩡하던 눈마저 따끔거리는 날이 연일 이어지다 보면 과거 2,30년 전으로 되돌아가 산 위의 맑은 공기 한 바가지 퍼마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계절은 봄꽃이 만발하여 우리를 유혹하고 차지도 덥지도 않은 기온은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데 문이란 문은 꽉꽉 쳐닫고 빗물 자국으로 꾀죄죄한 유리창을 통하여 바깥 풍경을 보고 있자니 한심한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자연을 생각하지 않는 발전은 결국 인간을 죽이고 만다. 전국의 공기 좋다는 곳을 아무리 다녀봐도 예전만 못하다. 남들은 날 보고 '기분 때문이겠지' 말하지만 완전히 기분 탓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발전이고, 누구를 위한 자연파괴인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인간이 제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 한들 자연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발전만이 능사인 줄 안다.

 

꼭 자연만 망가지는 건 아니다. 인간의 심성도 따라서 망가진다. 욕심이 자꾸자꾸 커지는 탓이다. 법무부에 근무하는 한 고위직 공무원은 넥슨 주식 80만주를 팔아 구설에 오르고 있다. 비상장 주식을 80만주나 대량으로 매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그것도 회사와 업무 연관성이 없는 개인이 말이다. 그럼에도 그 사람은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민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뭐하러 개 돼지들한테 신경을 쓰시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영화 '내부자들' 중에서)라고 누군가 조언했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양심 또한 썩어간다는 걸 그는 모를 것이다.

 

봄햇살이 저리도 따사로운데 문이란 문은 모두 닫은 채 실내에만 머무르자니 속이 터진다. 어렸을 적 이맘때면 들로 산으로 해가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쏘다녔을 텐데 말이다. 정말이지 그 시절의 공기를 어디서 구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다.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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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30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30 1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오늘 잊혀졌던 추위가 되살아난 듯 꽤나 쌀쌀했다. 그야말로 '서'하고도 '프라이즈'한 날씨였다. 길게 이어졌던 포근한 날씨 때문에 더 쌀쌀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변덕스러운 봄날씨에 사람들은 조금쯤 겁을 집어먹은 듯 고개를 떨구고 잔뜩 웅크린 채 걷고 있었다. 봄바람에 쫓기는 듯 파랗게 질린 모습이었다.

 

바람이 불고 쌀쌀해진 날씨로 인해 좋아진 게 하나 있다면 아마도 청명한 하늘이 아닐까 싶다. 미세먼지로 연일 뿌옇던 하늘은 마치 가을 하늘처럼 선명하다. 그 아래, 갑작스러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봉긋봉긋 피어오른 꽃망울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꽃망울이 한껏 부푼 목련이 금방이라도 탁 터질 것만 같다. 마치 심판의 출발 신호를 기다리며 대기선에 서있는 육상선수의 심장처럼 말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목련은 하늘의 푸른빛을 배경으로 바라볼 때가 가장 예쁘다. 그러자면 사람의 눈높이에서 핀 목련보다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높은 곳의 목련이어야 한다. 비취색의 하늘과 순백의 목련이 빚어내는 조화는 봄의 절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목련이 피는 짧은 순간의 봄은 사람을 때로 미치게 한다. 올해도 아마 그럴 것이다.

 

얼마 전 어느 인터넷 기사에서 본 바로는 2015년 가구당 한 달 평균 책값으로 1만 6천원을 썼다고 한다. 신간 단행본의 평균 정가가 1만 7천원이 넘는 것을 감안할 때 2인 이상 가구가 한 달에 한 권도 사지 않앗음을 의미한다. 경기가 좋고 나쁨을 떠나서 너무 심하지 않은가 싶다. 나야 책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아니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나라의 장래를 생각할 때 위기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책을 읽지 않는 민족에게 밝은 미래를 기대하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요즘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개미]를 읽느라 정신이 없다. 엊저녁 전화를 했을 때 4권을 읽고 있다고 했다. 아내도 읽지 않은 [개미]를 아들이 읽고 있다.

 

누가 뭐래도 봄이다. 벚꽃 만개한 거리의 벤치에 앉아 좋아하는 시 한 수 읊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春興 -정몽주

春雨細不滴하니(봄비가 가늘어 방울도 듣지 않더니)
夜中微有聲이라(밤중에 희미한 소리가 나는 듯했네.)
雪盡南溪漲하니(눈 녹아 남쪽 개울에 물이 불었거니,)
草芽多少生인고(풀싹은 이미 얼마나 돋았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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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알아요, 당신?

아무도 없는 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았을 때 TV를 켜는 것보다 라디오를 트는 게 아무래도 기분 전환이 된다는 것 말이에요. 낮게 깔리는 DJ의 목소리가 마냥 넓어만 보인던 빈 공간에 울타리를 치고 나와 침묵 사이의 비밀스러운 공간을 헤집고 들어와 별 의미도 없는 싱거운 얘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가 하면 대중가요의 경쾌한 곡조가 주변의 우울을 띵가띵가 날려보내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어깨를 짓눌러 도통 소파에서 일어날 기운조차 없게 만드는 TV와는 사뭇 다르지 않나요? 요즘과 같은 스마트한 시대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들으면 될 것을 굳이 라디오를 트는 이유가 뭐냐고 당신은 묻는군요. 이따금 그런 날이 있지요. 온종일 같은 노래만 반복해서 듣고 싶은 그런 날 말이에요. 괜히 쓸쓸해지거나 창밖의 빗소리가 조금 전까지도 없던 우울을 좁은 틈새로 쫄쫄 흐르게 하는 날, 김광석의 노래를 '무한반복'으로 들었던 적이 저도 있답니다.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목까지 차오른 우울이 나를 질식시킬 듯한 오후, 침묵 속으로 속속들이 배어든 우울을 정말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팔랑팔랑 가벼워지기 위해서는 라디오만 한 게 없습니다.

 

당신 , 그거 알아요?

산길을 오래 걷다 보면 인간의 아주 작은 흔적조차 눈에 걸린다는 것을요. 오늘 아침의 일이었답니다. 날씨가 풀리면서 산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탓인지 등산로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가 종종 눈에 띄더군요. 오가는 길에 눈여겨 보면서도 주을까 말까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그저 고민만 하면서 며칠을 보낸 셈이지요. 그러나 오늘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겠더군요. 양파즙 파우치며, 홍삼 캔디 포장지며, 플라스틱 커피 용기며, 500ml 생수병이며, 먹고 버린 소주병이며, 검은 비닐 봉지며, 심지어 강아지 용변 처리를 하고 버린 화장지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쓰레기만 한아름 주워 들고 내려온 오늘, 다른 어느 날보다 개운했던 아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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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운동을 나서려는데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람도 없이 내리는 순한 비였다. 집에 다시 들러 우산을 들고 나오는데 이유도 없이 피식피식 웃음이 흘렀다. 아파트 화단의 산수유나무에 꽃이 피었다. 올해 들어 산수유꽃은 처음 본다. 아침이 채 밝기도 전의 옅은 보랏빛 어둠을 배경으로 산수유꽃은 그야말로 그림자처럼 어른거린다. 깡똥하게 자른 조팝나무 울타리에도 새순이 돋고 있다.

 

먼짓내에 섞여 비 비린내가 훅하고 끼쳐왔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아파트를 벗어나면 편도 일차로의 좁은 도로가 나온다. 그 도로를 따라 산자락에 이르는 지점까지의 공터에는 요즘 아파트를 짓기 위한 터닦기 공사가 한창이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그 어수선한 공사 현장을 어슬렁거린다. 조립식 건물을 부순 건축 폐자재와 사람이 떠난 자리의 각종 쓰레기가 어수선하게 뒤섞여 있다. 흉물스러운 풍경이었다.

 

우산에 듣는 빗소리가 싫지 않았다. 나무가 많은 등산로에서는 빗소리마저 엇박자로 들린다. 조용한 숲에 먹이를 찾는 까투리 소리만 요란하다. 일정한 크기로 늘어선 소나무들 사이로 길은 이어진다. 이따금 보이는 상수리 나무 위로 부지런한 청설모들이 무리를 지어 내달린다. 높이 매달린 까치둥지도 보인다. 비 오는 날에는 사람의 흔적마저 끊긴다.

 

산을 다 내려왔을 때에도 올라갈 때 보았던 길고양이가 공사 현장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도 한두 사람 보이고 아파트 화단에는 산수유꽃이 여전히 비에 젖고 있었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 나오는 한 대목이 생각났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의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산수유꽃을 처음 보아서인지 나도 한바탕 꿈을 꾼 듯하였다. 비는 여전히 찔끔찔끔 내리고 있다. 높은 건물 위에서 비 내리는 오후를 내려다 보면 건물 저편에서 마치 한낮의 졸음이 건듯 불어올 것만 같다. 그러지 말고 꿈을 꾸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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