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릿 Grit - 잠재력을 실력으로, 실력을 성적으로, 결과로 증명하는 공부법
김주환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아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공부'와 관련된 서적에 저절로 손이 가거나 한동안 시선이 머물곤 합니다.  이럴 때 드는 생각은 '나도 별수 없이 대한민국의 학부형이구나' 하는 자괴감입니다.  주말부부로 지내다 보니 아이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그리 많지 않은데 말입니다.  괜한 욕심만 키우는 셈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조바심에서 읽게 되는 것이 또 '공부'에 관한 책입니다.  이 정도면 병적인 집착이지요? 참으로 구제불능입니다.

 

그렇게 읽게된 책이 김주환 교수의 <그릿>입니다.  <회복탄력성>으로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 김주환 교수 바로 그분입니다.  사실 '공부'에 대한 책은 수를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책이 시중에 나와 있는지라 어떤 책이 좋고, 어떤 책이 그저 그런 책인지 구분조차 하기 어렵지만 초등학교 이상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새로운 책이 출간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눈길이 가는 것 또한 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자신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은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책에 비해 비교적 솔직하고 체계적으로 쓴 책인 듯 여겨집니다.

 

"선유(작가의 딸)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도 나는 꼭 일류대학에 갈 필요는 없으며, 심지어 대학을 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선유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진심이냐고 되물었고, 나는 정말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이는 나의 개인적 신념이기도 하다."    (p.125)

 

사실 이런 책을 한두 권 읽다 보면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아이들마다 타고난 재능도 제각각이고 자라는 환경도 각기 다른데 일률적으로 어떤 법칙이나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도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책이 꾸준히 팔리는 걸 보면 우리나라 부모님들의 불안감이 이만저만 심한 게 아니구나 하는 딱한 마음도 듭니다.  어쩌면 저도 그 중 한 사람에 속하겠지만 말이죠.  딸을 서울대 경영대에 입학시킨 저자에게 특별한 공부 비법 하나쯤 배워볼까 싶어 이 책을 읽었던 저로서도 딱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비인지능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릿(grit)이다.  그릿은 자신이 세운 목표를 위해 꾸준히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릿은 자신이 세운 목표를 위해 열정을 갖고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이다.  그릿은 스스로에게 동기와 에너지를 부여할 수 있는 힘, 즉 '자기동기력'과 목표를 향해 끈질기게 전진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조절하는 힘, 즉 '자기조절력'으로 이루어진다."    (p.84)

 

책은 총 5개의 장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공부를 둘러싼 오해와 착각  2. 그릿, 성취의 원동력  3. 그릿을 시작하는 힘, 자기동기력  4. 그릿을 완성하는 힘, 자기조절력 5. 시험 잘 보는 법, 그릿을 발휘하라  부록: 서울대 경영대 합격생 선유가 말하는 공부전략 이 그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의 학창시절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 블로그에서도 두어 번 말한 적이 있지만 저는 비교적 열악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이 책의 기준으로 본다면 공부와는 거리가 먼, 절대로 공부를 잘할 수 없는 그런 환경이었죠.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있었고, 그런 날이면 항상 가족들에게 폭력을 일삼았고, 그게 두려웠던 저는 아버지가 잠들 때까지 같은 동네의 친구집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었습니다.  위로 있었던 형과 누나들은 일찍부터 아버지를 피해 도시에 나가 학교를 다니거나 취직을 한 상태였고, 저와는 나이차가 있는 어린 여동생과 저는 무지비한 폭력을 고스란히 감당해야만 했었죠.

 

그 끔찍했던 시절에 저의 유일한 소망은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의 빈곤 때문이었는지 아버지는 자식들이 국민학교를 졸업하는 순간부터 학교는 이제 그만 다니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습니다.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받았던 장학금으로 중학교를 그럭저럭 다닐 수 있었고, 중학교 2학년 무렵 형들이 있던 도시로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해방의 순간이었죠.  저는 그때부터 지독하게 공부만 했던 것 같아요.  밤 11시에 잠들어서 새벽 2시에 일어나는 강행군을 끝까지 버텼었죠.  2시에자명종 시계를 맞춰 놓으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어요.  2시에 자명종이 울리면 혹시나 곤히 잠든 형이 깰새라 단박에 일어나곤 했었죠.  2시부터 5시까지 책을 읽고 5시에 전기밥솥에 쌀을 씻어 안치고는 자취방 근처의 산을 휘감고 도는 우회도로를 따라 전력질주하듯 1시간을 뛰었습니다.

 

사실 저는 어려서부터 체력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장염으로 죽음의 문터까지 갔었죠.  당시의 저는 자신의 한계까지 저를 몰아붙였던 셈입니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도시락을 싸고 아침을 먹고 학교에 등교하여 남들처럼 수업을 받은 후 학교에서 돌아오면 밤 11시까지 책을 읽고 잠을 자는 반복적인 생활.  학원 수강은 고사하고 참고서 살 돈도 없어 친구의 문제집을 베껴서 수학문제를 풀거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이면지를 얻어 연습장으로 쓰곤 했던 힘겨운 나날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누나와 학교 선생님들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입시를 치른 후 장학금 때문에 서울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지금도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4년제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하였지만 형의 등록금과 저의 용돈을 벌기 위해서 낭만적인 대학생활은 즐길 수 없었고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어찌 버텼나 싶은 세월입니다.

 

제 얘기가 자랑질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공부에 관한한 저는 할 얘기가 많은 것 같아요.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저는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설명을 연습장에 빠르게 받아 적으면서 암기와 집중을 동시에 해결했었습니다.  말을 글씨로 받아 적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속기사도 아닌데 말입니다.  선생님 얼굴을 보면서 연습장에 글씨를 쓰는 저만의 방식은 수업 내내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물론 다시 보기 위해 그랬던 건 아닙니다.  그러나 효과는 만점이었죠.  시험을 치를 때 그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으니까요.  굳이 시간을 들여 복습을 할 필요도 없었구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제 생각과 달랐던 점은 더러 있었지만 바로 이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계획을 짤 때는 '이만큼 하면 많이 하는 거지 뭐.'라는 한계를 두는 대신,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많은 공부량을 전제로 한 계획을 세워보자.  그러고는 불도저처럼 밀어붙여라.  일별 계획을 세워놓고 목표량을 달성할 때마다 자신이 지킨 것을 펜으로 지우면서 뿌듯한 성취감을 느껴보라.  그럴 때마다 자신과의 투쟁에서 싸워 이긴 듯한 뿌듯한 승리감을 만끽할 것이다."    (p.240)

 

이 부분에서 저는 저자의 생각과는 다르게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저자의 말처럼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천의지가 부족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십중팔구 며칠 지나지 않아 계획표 쓰는 것마저 그만둘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계획과 실천 결과는 늘 엇나가기 때문이죠.  오히려 '최소한 이만큼은 하자.'라는 식으로 최소 학습량을 계획하면 실천 결과와 계획이 맞아떨어져 게획을 세우는 본인 스스로도 놀랄 것입니다.  그때부터 공부에 재미를 느낄 수 있을 테구요.

 

장황한 얘기를 늘어놓았네요.  아무튼 공부를 잘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독서를 좋아한다는 것과 체력이 좋다는 것이겠지요.  독서와 체력이 우선순위에서 빠진 공부 관련 책이라면 읽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의 공부를 지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어쩌면 공부 방법의 선택도, 부모의 확고한 신념도 일정 부분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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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4-03 23:39   좋아요 0 | URL
아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꼼쥐님 겪어오신 얘기를 해주시는게 그 어떤 책보다 더한 가르침이겠어요.
저 역시 지금도 공부에 관한 이런 책들에 저도 모르게 눈길이 간답니다. 아마 해결못한 어떤 아쉬움이 무의식중에 남아있기 때문인가봐요.
공부법은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서 저도 제 아이에게 이래라 저래라, 자신있게 말 못하겠더군요.

꼼쥐 2014-04-04 20:45   좋아요 0 | URL
제 주변에서 보더라도 자신만의 확고한 주관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잘 보지 못하겠더군요. 늘 휘둘리고 말이죠. 이 방법이 좋다 하면 이 방법으로, 저 방법이 좋다 하면 저 방법으로, 그렇게 시간만 보내는 게 현실인 것 같아요. 아이들이 공부 방법을 실험하는 마루타도 아닌데...
 
강물이 될 때까지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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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향이 푸지게 퍼지는 천변 산책로에 선뜻 들어설 용기가 나지 않있다.  상춘객이 줄나래비를 선 주말 오후.  어쩌면 꽃내음보다 더 진한 향수 냄새에 머리가 아파질 것만 같아 강둑 위에서 멀뚱히 보고만 있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당하다는 말은 사람들을 얼마나 안심시키는지.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시간 동안, 적당한 감정의 기복으로 만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삶은 얼마나 쾌적할 것인지...  벚꽃향은 향수로나마 자신을 더 치장하고 싶어 안달하는 저 상춘객의 무리 속에서 흔적도 없이 스러질 것임을 나는 그렇게 추측하며 한동안 서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신경숙의 초기 작품인 <강물이 될 때까지>를 무심히 꺼내 들 때는 언제나 마음이 메마른 때였다.  건조한 바람이 휑한 마음 한켠으로 소리를 내며 훑고 지나가고, 바람이 다 지나간 방심한 시간에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 짐더미 위에서 툭 떼구르르 구르던 빨간 고무 다라이처럼 봄철의 건조한 풍경이 마음속에서 내내 떠나지 않는 매년 이맘때의 연례행사와 같은 것이리라.  이야기의 구조 보다는 문장 하나하나에, 단어 하나하나에 먼저 눈길이 먼저 가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마음속에 흥건한 슬픔이 내려 앉을 무렵이면 시큰둥하게 던져버리곤 했던 그런 책.

 

"그때마다 망연해진다.  나도 모르는 구덩이 속으로 미끄러지는 기분이다.  생의 강줄기 한 자락을 움켜잡고 스물여섯 해를 흘러오는 동안 스스로 파놓은 구덩이 속으로.  잃어버린 것들을 찾느라 허둥대고 있으면 부지불식간에 찾아온 허전한 욕망이 가슴을 휘젓기도 한다.  곧 시들어버리긴 하지만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은 그 구덩이로부터 올라올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에 가슴이 달아오르기도 한다.  그 내팽개쳐짐과 희망 사이의 기복에 나는 잘 길들여져 있다."    (p.12  '겨울 우화' 중에서)

 

깊게 패인 생채기 이후 뽀얗게 되살아나는 새살처럼 작가의 글은 수없이 찢겨나간 원고지의 깊은 고뇌를 떠올리게 한다.  인간의 보편적인 삶과 그 삶 속에서 망령처럼 떠도는 원죄의 주변을 호시탐탐 노리며 칼끝처럼 등장하는 성당과 최루탄 가스가 매캐하게 풍기던 8,90년대의 시대적 아픔이 겉도는 듯 등장인물의 주변을 끝없이 서성이는 작가의 글을 읽노라면 낡은 토담 위로 햇빛이 쏟아지는 골목길을 한나절 걸어야만 할 것 같다.  그늘 한 점 없는 그 길을.  

 

"돌아다본 성당 첨탑이 뾰족하다.  꽤 넓게 퍼지고 있는 햇빛이 그 위에선 공평하지 못하고 이국적이다.  성당의 흰 벽칠은 삶아 널어 말린 흰 빨래보다 더 희고, 푸른 지붕은 마을의 낡은 슬레이트 지붕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햇빛 아래 성당은 늘, 학기가 반이나 지난 어느 날 불현듯 전학 와 운동장 포플러나무 밑을 걷도는 도회의 여자애 같다.  석양이 마을의 큰길 끝에 걸릴 때는 슬퍼보이기까지 하며, 아아, 이내 몸은 무엇 찾으려고......, 다시 이어지는 제창일까?"    (p.223 '황성옛터' 중에서) 

 

하늘에는 약솜을 찢어 놓은 듯한 구름이 몇 장 떠 있고 아랑곳없는 햇살이 쏟아지는데 나는 무료한 권태를 껴안은 채 무겁게 서있었다.  답장을 기대할 수 없는 편지처럼 환한 벚꽃에는 꽃망울처럼 숱한 추억이 자라고 있다.  신경숙 작가도 그랬을까?  데뷔작이었던 <겨울 우화>를 비롯하여 나중에 장편 소설로 개작한 <외딴 방>에 이르기까지 11편의 중,단편을 엮어 만든 그녀의 첫 소설집 <강물이 될 때까지>를 받아들었을 때 그녀의 가슴에도 추억의 벚꽃이 망울망울 벙글고 있었을까.

 

"내가 사는 이층방에서 내다보면, 늙은 한옥들 사이로 멀리 아득하게 높은 계단이 보인다.  의자에 앉아 그 계단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어딘가에 잊혀진 샛길이 있을 듯하다.  나 아니면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개인적인 추락들을 바라보며 한없는 무망에 빠져 소설이라고 쓰면서, 내 소설들이 자연, 미학, 실천, 그 어느 울림도 되지 못하고, 무엇보다도 희망이 못 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여전히 그런 마음으로 책으로까지 묶는다.  나는 이 슬픈 꼴을 버리고 다른 사유를 원한다."    (p.6  작가의 말'중에서) 

 

휴일의 해는 서둘러 진다.  울긋불긋 원색의 아웃도어 차림을 한 사람들이 벚꽃 만개한 천변을 따라 걷고 있다.  그 끝 어디쯤에서 그들이 만날 추억이 무엇일지 나는 알지 못한다.  시간 속으로 점묘화처럼 사라지는 저 현실의 명멸이 언젠가 다시 3월에 만개하는 저 벚꽃처럼 피어나겠지.  늘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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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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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만 잘 한다고 해서 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거나 변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어떤 실수나 그로 인한 비난과 질책이라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말하자면 상황을 수용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을 다듬는 것이 삶에 있어서는 더 유용하다 하겠다.  젊은 시절에 나는 그것이 꼭 패배주의인 양 생각했었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텨내거나 어떤 상대와도 맞서 싸우리라 결심했었다.  그럴수록 상황은 점점 더 꼬이거나 악화되었다.  젊은 시절의 만용은 때가 되면 서서히 사그라드는 것이지만 이따금 생각하면 후회가 되는 일도 많았다.   

 

소설가 은희경의 다섯 번째 소설집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를 읽었다. 표제작을 포함해 6편의 단편이 묶인 이 소설집은 은희경 특유의 섬세한 표현과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체로 '역시, 은희경이야!'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각각의 소설들은 내용을 달리하여 전개되지만, 제 살던 터전을 떠나 이방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학업을 위해서, 독립을 갈망하여, 결혼과 함께, 또는 피치 못할 이유로 우리는 고향으로부터 멀어진다.

 

"내가 갇혀 있는 T아일랜드가 세계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섬처럼 느껴졌다.  나는 거기 실려서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더이상 깨어지지 않는 안전함이나 변하지 않는 소중함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질 거라고 나는 믿었다.  가을에는 언제나 좋은 일이 적어도 한 가지는 있었다."    (p.143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중에서)

 

우리는 알고 있다.  절망과 고독의 황무지에서 기적처럼 사랑이 움튼다는 것을.  작가는 끝내 희망과 번영의 미래를 약속하지 않지만 인물들의 고독한 삶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냉정하리만치 등장인물의 삶을 속속들이 파헤친다.  삶의 깊은 곳에는 언제나 욕심과 타락이 빚어낸 어설픔과 군색한 그 무엇이 있게 마련이지만 먼 훗날 그것은 타인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때 마리는 언니가 마리를 오해하듯 자신 역시 언니를 잘 알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뭔가를 잘 안다는 건 또 무슨 뜻일까.  그것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고 싶어하는 젊은 사람들에게나 중요한 문제일 뿐이었다.  때로 마리는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조차 오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야말로 자기 인생의 이방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리는 늘 낯선 시간을 원했고 낯선 곳으로 데려다주는 남자를 사랑했다.  그런데 진정 낯선 곳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제 마리에게 남은 낯선 곳은 뒷걸음질쳐서 발에 닿는 어떤 시간의 시원에 있는 것일까."    (p.223~ p.224 '금성녀'중에서)

 

각자 저마다의 삶을 살고, 저마다의 개별적인 죽음을 맞는 것이지만 사는 동안에 철석같이 믿었던 나만의 특별했던 삶은 하나의 각기 다른 눈송이가 땅에 닿아 스러지는 것처럼 어느 한순간 자신의 개별적인 특별함을 잃고 서로가 연대하는 보편성의 강물로 만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영속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배운다.  특별했던 사랑도, 특별했던 추억도 결국은 죽음과 함께 보통의 그 무엇이 된다는 것에서 자신만의 그 무엇을 꿈꾼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자 하룻강아지의 무모함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알고 있다.  이 이야기는 배고픈 고양이와 슬픔에 빠진 소년의 이야기이다.  허기와 절망.  그런 감정들은 행복의 변방에서 서로를 알아본 순간 경계를 넘어 조용히 연대한다.  서로 이용하지만 거짓은 끼어들지 않는다.  스치듯 짧은 포옹을 끝낸 뒤 영원히 다시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아마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연대일 것이다.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날씨로만 이루어졌던 열세 살의 그 여름날.  어떤 고독과 죽음도 그렇게 만났다."    (p.116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중에서) 

 

가장 수준 높은 철학은 결국 문학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각자의 삶은 비교할 수 없이 진지하고,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며, 더할 수 없이 성스럽다.  어느 위대한 철학자인들 눈송이처럼 많은 저마다의 삶을 한마디의 말로 확정할 수 있으랴.  다만 사랑으로 이어진 개별적인 삶의 슬픈 연대만 계속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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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4-03-28 21:53   좋아요 0 | URL
 
 
 아, 정말.
 이 책이 다른 녀석이 갖고 있어서 그러는데
 단편집이었어요 ? 엣, 저 정말 몰랐는데 .. . 그랬구나 ..
 그렇다면 첫 부락에 실린 단편은 정말 굉장한거네요.
 은희경이라면 그 진부한 스토리를 얼마든지 천 페이지가 넘는
 장편으로 이어나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단편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 .
 워낙에 단편이라면 편식하는지라, 구매하지도, 읽지도 않는데 !
 
 굉장해요 !
 
 

꼼쥐 2014-03-29 12:46   좋아요 0 | URL
단편소설이라기보다는 연작소설이라고 하는 게 옳을 듯싶어요.
각자 다른 이야기이지만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죠. 그 연결고리를 꼼꼼히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인 거 같아요. 한번 읽어보세요. 생각보다 훨씬 재밌답니다.
 
일생에 한번은 고수를 만나라 - 경지에 오른 사람들, 그들이 사는 법
한근태 지음 / 미래의창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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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문학작품만 읽다보면 다른 분야의 책이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책이나 무턱대고 잡았다가는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입니다.  비행기도 항로를 따라 운행하듯이 독서에도 보이지 않는 길이 있는가 봅니다.  익숙해진 길을 따라 걷다가 낯선 길로 접어들 때면 조심,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독서의 길을 찾아나설 때 나침반처럼 이용하는 것은 또한 책입니다.  책에서 또 다른 길을 찾는 것이지요.  그러나 문제는 달달한 문체에 익숙해진 나의 뇌가 싫다고 버티는 경우입니다.  그럴 때면 살살 달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한근태 님이 쓴 <일생에 한번은 고수를 만나라>를 읽었습니다.  아마도 이 책은 자기계발서의 범주에 속할 듯합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즐겨 읽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권유나 제목에서 오는 강한 끌림으로 인해 책을 집어드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자기계발서의 특성상 내용은 그닥 신통한 게 없습니다.  기업체의 임직원이나 일반 대중을 위한 강의 목적으로 쓰인 까닭에 이 책 저 책에서 옮겨 적은 것이 대부분이고 그런 내용들은 이미 다른 책에서도 여러 번 읽어보았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짜깁기'이자 요약본이라고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살짝 덧씌운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 이런 종류의 책이 잘 팔리는 것을 보면 때론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평소에 책을 자주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럭저럭 유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책 속에는 참고도서로 등장하는 여러 권의 책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해 놓았기 때문에 한 권을 읽어도 여러 권의 책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인의 연간 독서량이 비교적 낮은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종류의 책이 잘 팔리는 이유는 아마 그런 목적도 숨어 있겠지요. 

 

아무튼 이 책에서 말하는 '고수(高手)'는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라고 저자는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그들을 직접 만나서 인터뷰를 하거나 자문을 구함으로써 자신이 터득했던 '고수가 되는 길'을 책으로 정리한 듯 보입니다.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 고수로 가는 길, 2장. 고수 그들이 사는 방식, 3장. 고수의 마음 관리, 4장. 고수의 생각법, 5장. 고수, 사람을 얻다'가 그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목차만 읽어도 책의 내용을 대충 짐작할 수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결국은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열심히' 또는 '최선을 다하여'라는 말만큼 막연한 말도 없습니다.  무작정 열심히 하자고 결심하는 것은 안 하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꾸준히 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내가 관심있게 보았던 부분은 제3장 '고수의 마음 관리'였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고수들의 마음 관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호기심이 강하다.  2. 주제파악을 잘 한다.  3. 자신에 대해 스스로 광고하거나 자랑을 하지 않는다.  4. 화를 내지 않는다.  5. 모든 것에서 자유롭다.  6. 철학적 뼈대가 있다.  7. 자신의 일에 정성을 다한다.  8.매사에 긍정적이다.  9.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10. 근검절약하며 절제하는 삶을 산다.

 

"나는 새벽마다 차를 마시며 혼자 명상하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새로운 하루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어제 일을 복습하고 오늘 벌어질 일을 예습한다.  오늘 만날 사람을 떠올리며 그들과 나눌 얘기를 정리하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한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게 한다.  내 영혼을 샤워하는 시간이다.  영혼의 중심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p.184)

 

칼럼니스트 조용헌은 그의 책 <고수 기행>에서 고수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한 고수의 기준은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산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그 분야의 프로페셔널들이다.  고수란, 자기분야에 열심히 몰두하되 스스로 즐거움과 의미를 찾고, 나아가 주변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다.'라고.    말은 참 쉬워 보입니다.  그러나 고수가 되는 길은 그리 녹록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고수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럴 필요도 없구요.  분명한 것은 자신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느냐가 아니겠습니까.  일생을 단 한푼의 후회도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요.  그것은 우리와 같은 하수뿐만 아니라 고수에게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자신의 그릇됨을 알고 만족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품격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다들 바쁘고 번잡해 보입니다.  한가할 틈이 없습니다.  오히려 여유를 일부러 피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누구를 위한 바쁨인지, 무엇을 위한 바쁨인지 도통 짐작할 수조차 없습니다.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 결심하는 것, 그것이 고수로 가는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내가 이만큼 바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라도 바쁜 흉내를 내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따사로운 주말 오후입니다.  햇살 속에서 잠시만 눈을 감아도 이렇게 편하고 여유로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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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ph 2014-03-29 22:2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바쁜 사람은 고수는 아니군요. 어찌 보면, 요즘같은 세상을 살면서 바쁘지 않으면 그 자체로 어쩌면 고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꼼쥐 2014-04-01 16:01   좋아요 0 | URL
바쁘게 살면서도 순간순간을 즐길 줄 아는 여유가 있는 분이라면 고수라 하겠지요. 저는 늘 바쁘다고 불평만 할 줄 알지 여유라고는 도통 없으니...
하수도 그런 하수가 없겠지요.
 
칼 비테의 공부의 즐거움 - 아이와 함께 읽어야 더 효과적인 자녀교육 바이블
칼 비테 지음, 남은숙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 대학생들과 대화를 할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 교육의 실상은 우리나라의 교육 이념인 홍익인간의 정신을 구현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국가에서 그렇게 부르짖는 전인교육과도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게 됩니다.  가끔 나는 그들에게 고등학교까지의 학교 생활이 행복했느냐? 물어 볼 때가 있습니다.  우문(愚問)이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마치 '불행한 수재(秀才)나 불행한 둔재(鈍才)' 중 어느 하나에 속하는 듯 보입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아이를 키우는 아비의 마음에서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닙니다.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 오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공교육의 무용론이라도 주장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을 비판하려는 게 아닙니다.  제도와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것이죠.  학교에서 밤 10시, 11시까지 붙잡아 둔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지옥도 그보다 더한 지옥이 없지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구요?  그런 논리로 우리나라 교육은 지금까지 버텨온 것일 뿐입니다.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 하에서 공부의 즐거움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는 학생이 과연 있는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칼 비테의 공부의 즐거움>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을 말해보려 합니다.  조기교육과 영재교육에 관심이 있는 학부모라면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는 책일 것입니다.  부연하자면 이 책은 미숙아로 목에 탯줄을 감고 태어난 칼 비테 주니어가 자신의 아버지인 칼 비테 목사의 철저한 교육에 의해 천재로 자라나게 된 그의 경험과 아버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기록한 책입니다.        

 

"아버지는 모두가 저능아라고 말한 나를 교육시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때 아버지의 심적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조기교육이 오히려 아이의 지능발달을 해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버지는 자신만의 방법과 신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냈고 마침내 사람들의 찬사와 인정을 받았다."    (p.59)

 

1800년에 태어난 Jr. 칼 비테는 8세 때 이미 호머, 키케로 등 어른에게도 어려운 고전, 철학책을 독파했으며, 9세 무렵, 6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등 그의 천재성을 인정받아 라이프치히 대학의 입학허가증을 받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는 13세 땐 기젠 대학으로부터 철학박사의 학위를 수여받았고, 5년 후 그는 이탈리아로 유학, 피렌체에 머물며 법학을 연구하는 한편 <단테의 오해>라는 유명한 책을 저술했으며 83세로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여러 대학에서 법학 강의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칼 비테 목사는 유아기의 언어 교육과 식단에 특히나 많은 신경을 썼던 듯합니다.  예컨대 우리가 흔히 쓰는 맘마, 멍멍이 등 유아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고 사투리도 금했으며, 세 살 이전에는 고기도 먹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곡물과 야채, 과일을 위주로 식단을 짰으며 운동을 중요시 여겨 생후 15일부터 운동을 시켰다고 하니 그 정성이 놀랍기만 합니다.

 

"현재 많은 부모들이 어린 자녀를 가르칠 때, 종종 완전한 표준어가 아닌 말이나 지극히 유아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고 아이가 자신의 말을 따라하면 즐거워한다.  하지만 이는 아이를 자신의 장난감으로 삼는 부모들의 크나큰 실수이다."    (p.66~p.67)

 

칼 비테 목사의 교육 방침 대부분이 익히 알고 있었거나 수긍이 가는 것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던 것들도 있었습니다.  이를 테면 규칙적인 습관이나 놀이를 통한 학습, 배움의 즐거움과 성실함, 자신감과 겸손, 용기와 신념, 사랑의 중요성과 올바른 인간관계 등 인성과 학습을 함께 배양하려 했던 점은 본받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에게 시를 읊어주거나 노래를 불러주는 등 일찍부터 체계적으로 정성을 다했던 점도 좋았습니다.  반면에 아기의 손과 발을 냉수로 씻겼다는 부분에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했고, 어린 나이에 대학에 보냈던 것도 과연 옳은 일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게다가 도시 생활을 하는 현대인이 아이들과 함께 식물을 관찰하며 이름뿐 아니라 그 효능까지 가르쳐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참고로 칼 비테 목사의 8대 공부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법칙 1 공부가 잘 되는 환경을 만들어라. 

법칙 2 공부에도 휴식이 필요하다.
법칙 3 배움을 즐겁게 유도하라.
법칙 4 학습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라.
법칙 5 잘 노는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
법칙 6 반복암기법에 효과가 있다.
법칙 7 공부에도 리듬이 필요하다.
법칙 8 공부하는 내용과 과목을 적절히 바꿔주는 교차학습법.

 

이 책은 칼 비테 주니어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일화들을 회상하면서 그 당시에 자신이 느꼈던 기분이나 생각은 어땠는지, 아버지와의 갈등은 어떻게 해소했는지에 대하여 에피소드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기가 아버지가 되어 아들을 키우는 지금의 입장에서 어떤 느낌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책의 중간중간에는 자신을 키우며 육아일기를 꼼꼼히 기록하였던 칼 비테 목사의 일기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느꼈던 제 생각은 따로 있습니다.  큰 틀에서 아이의 인생을 계획하는 것이 자녀 교육의 으뜸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인생 전체로 볼 때 아이의 행복이 다른 무엇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때로 눈 앞의 결과에 집착하여 아이의 행복을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가 아이를 가르치는 동기와 목적은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부모가 그 순수한 동기를 잊지 않는다면 아이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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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ph 2014-03-19 12:17   좋아요 0 | URL
인생에서 "행복하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의문입니다. 행복한 돼지라느 말도있듯이..

꼼쥐 2014-03-20 13:43   좋아요 0 | URL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만족하게 생각하느냐, 또는 순간순간 얼마나 즐거움과 기쁨을 맛볼 수 있느냐에 따라 행복하다고 느끼는 정도는 달라지겠지요. 물론 이것은 행복을 정의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의 삶보다는 미래의 삶에 대한 기대를 크게 가질 수 있다면 현재가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죠.

Ralph 2014-03-22 14:54   좋아요 0 | URL
달콤한 사탕에 취하여 행복감을 느낄 수도 있고.. 구린내 나는 치즈를 만끽하면 느끼는 행복감도 있을 것 입니다. 그렇다면 고통과 행복이 크게 다르지않을 수도 있지않을 까요..

꼼쥐 2014-03-26 14:13   좋아요 0 | URL
그렇겠지요. 자신의 상황에서 만족할 수만 있다면 고통도 행복처럼 느낄 수 있겠지요. 문제는 어떻게 느끼느냐일 테고, 교육이 그것에 집중할 수만 있다면 지금의 상황보다는 많이 좋아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