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 그렇다고 무슨 자격증 획득이나 자기계발을 위한 영어회화 등 목적이 있는 공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공부에 관련된 책에 눈길이 간다는 것일 뿐 실제적으로 무엇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은 아니다. 황농문 교수의 <공부하는 힘>은 다 읽고 리뷰도 올렸지만 그 외에도 '칙센트미하이의 몰입(flow)', 마리아 코니코바의 '생각의 재구성' 등 전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책들을 딴에는 열심히(?) 읽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또래의 사람들은 20년 이상을 공부하는 데 시간과 열정을 소비했음에도 자신이 최종적으로 공부에 재능이 있는지 또는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하는 데 있어 지금도 여전히 주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장장 20년 이상을 공부했음에도 말이다. 인간의 수명을 80년으로 가정할 때 인생의 1/4을 하나의 활동에만 헌신했음에도 그 활동에 있어 자신의 능력이 적합한지 그렇지 않은지 전혀 알 수 없다면 우리는 인생에 있어 도대체 무엇을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최종적인 판단을 유보한 채 주저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학창시절 자발적 노력이 부족하여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판단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지 못하였거나 공부에 재능이 없다고 판단할 만한 충분한 정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존심 상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일종의 자기기만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공부에 대한 재능의 유무와 직업 선택의 적절성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보여진다. 내가 어렸을 때 남학생들의 대부분은 직업과 관련된 자신의 꿈이 판,검사나 변호사, 혹은 의사와 같은 소위 '사'자가 들어간 직업을 선호했고, 여학생들은 '현모양처'가 꿈이라는 대답이 많았다. 세상에, 현모양처가 꿈이라니! 요즘 학생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대답이 아닌가.
아무튼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자신이 갖게 되는 직업은 공부에 대한 재능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를테면 부모의 경제적 능력, 부모의 교육 정도, 인맥, 사회적 압력(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선택을 강요하는), 시대적 환경, 기타의 배경 등)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예컨대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환경이라는 거대한 홍수에 떠밀려 잠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자신도 알지 못하는 낯선 곳에서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직업인이 된다는 얘기다. 학생 신분에서 사회인으로의 갑작스러운 점프.
공부와는 조금쯤 멀어질 만한 나이에 공부에 관심을 두는 것도 생뚱맞다는 생각이 든다. 학창시절에도 그랬고 나는 지금도 여전히 공부가 재밌는 걸 어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