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렸습니다.
가문 들녘을 적시는 단비였습니다. 우산을 쓰고 나서니 '싸르르 싸르르' 키 위에서 콩을 까부르는 소리가 납니다. 문득 떠오른 시는 그 옛날 교과서에서 배웠던 이수복의 <봄비> 한 구절이었습니다.
봄 비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빗길을 천천히 걷노라니 세상은 온통 풍요롭습니다. 또한 고요합니다.
가로등의 여린 불빛으로도 얼어붙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다 녹일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집 근처에 이르러서야 '도서관에서 시집이라도 한 권 빌려 올 걸'하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는 것처럼 이 짧은 계절이 다 지나고 난 후 가버린 계절을 아쉬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칼 비테의 공부의 즐거움>을 마저 읽어야 할까 봅니다.
어쩌면 빗소리에 취하여 읽어야 할 책마저 까맣게 잊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다 싶습니다. 물웅덩이에 파문처럼 일던 물동그라미를 밤새 생각한들 또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