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외국인을 만나 함께 차를 마시며 꽤 긴 시간 동안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캐나다에서 한국에 온 지 5년이 되었다는 그녀는 우리나라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비록 한국어를 잘 구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이런저런 애기가 오가다가 딱히 할 말도 생각이 나지 않아 구태의연한 질문을 하게 되었는데 그녀의 답변이 놀라웠습니다.  외국인을 만났을 때 우리가 흔히 하는 질문으로서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그런 취지의 질문이었습니다.

 

그녀의 답변을 요약하면 이런 것이었습니다.  한국 사회는 불안이 만연(spread of anxiety)한 사회라는 것과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불안을 판매하고 조장하는 듯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불안을 판매함으로써 자신들의 이득을 취한다는 것이죠.  가장 크게는 전쟁의 가능성에 대한 불안, 노후의 삶에 대한 불안, 경쟁에서 자신이 뒤처지는 것에 대한 불안, 외모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 건강과 질병에 대한 지나친 걱정, 돈에 대한 지나친 집착 등 그녀가 나에게 말했던 것은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지적이었습니다.

 

한국에 머문 기간이 그리 긴 것도 아닌데 그녀는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알 수 있었을까요?  그녀는 자신이 한국인의 불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아주 우연한 일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필요한 책을 사려고 동네의 한 서점에 들렀는데 베스트 셀러 코너에 꽂혀 있는 책들이 어떤 종류의 책인지 궁금하여 서점 주인에게 물어보았답니다.  그 책들의 대부분이 '행복'을 주제로 쓰여진 것이라는 서점주인의 대답에 그녀는 무척이나 놀랐다고 했습니다.  행복을 주제로 쓴 책들은 대부분 다분히 철학적이어서 읽기도 어렵거니와 캐나다 사람들에게는 별 관심도 없는 주제였기 때문이랍니다.

 

'왜 한국인들은 행복에 대해 그토록 관심이 많을까?'하는 궁금증이 한국 사회 전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증폭되었을 뿐이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녀의 결론은 어떤 목적으로든 '불안'을 파는 국가는 '나쁜 국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불안을 판매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비합리적인 방법으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이죠.  게다가 '불안'을 수요하는(또는 구매하는) 국민은 구매를 거부할 권리마저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언론을 통한 일방적 강요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지적에 반론을 펼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내게 들려주었던 것은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현실, 추한 자화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한 명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근거도 없는 '불안'을 수요하는, 교육만 많이 받은 일개 무지렁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즘 TV 뉴스에서는 각 방송사 공히 곧 있을 지방자치선거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불안'을 판매함으로써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려고 하지는 않는지 의심하고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 자신에 대해 외국인보다 더 아는 게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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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ph 2014-03-16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적절하고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그런대 왜 우리나라가 유난히 그럴까요? 실제로 불안 요소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전쟁의 워험은 우리는 잘 못느끼지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군요. 무었보다도 워낙 짧은 기간동안 사회가 급변하다보니,, 모두가 불안을 느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합니다. 불안 마켓팅이 현대사회, 자본주의 의 특징이기도 하구요. 무었보다도 다른사람..예르 들어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인느데는.. 불안감을 조장하는게 가장 효과적이죠.. 실제로 우리사회가 불안한 사회라는 생각도 듭니다.

마립간 2014-03-17 10:18   좋아요 0 | URL
건강 검진이 대중화된 것도 암공포증(cancer-phobia)를 부축인 면이 있죠. 그렇게 불안이 일반화되어 있는 상황이 의료인에 좋은 것만도 아닌데요.

꼼쥐 2014-03-18 21:52   좋아요 0 | URL
저랑 대화를 나누었던 분은 그렇게 말하더군요.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불안을 미끼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그에 대한 정부의 규제도 존재한다고 말이죠. 한국에서는 이를 외면할 뿐만 아니라 조장하는 측면이 강하고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에 대한 불안도 일부러 키우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이죠.

qualia 2014-03-17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사회가 실제로 불안한 사회인 것은 사실이죠.

그것도 아주 지극히 불안해서 어디 한 군데 잘못 건드리면 즉각 터져버릴 듯한...

그런데 문제는 이 불안한 사회의 불안을 제거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더욱 더 증폭시켜 정치적/경제적/권력적 지배체제를 더욱 더 확고히 하려는 집단/세력이 있다는 것이죠.

분석/비판은커녕 한국의 식자층이 놀고 먹구 있으니까, 울나라 사람도 아닌 외국 일반인이 저렇게 나서서 비판하는 것입니다.

책 100권을 읽으면 뭐하죠? 울나라 지식인들...


꼼쥐 2014-03-18 21:5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워낙 만성적인 불안 사회에 살다 보니 어제 지하철역 폭발물 해프닝도 예사로 보이지 않더라구요. 이건 뭐 숫제 양치기 소년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21세기에 이런 국가가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그렇습니다.

마립간 2014-03-18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 처음 댓글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위에 댓글을 다신 두 분은 우리 나라가 불안 사회라고 판단하십니다. 그런 사회에 속한 일원으로서 좀 더 합리적 행동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꼼쥐 2014-03-18 21:5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마립간 님.
제 생각에는 어떤 불안에 대해 무작정 불안해 할 것이 아니라 확실한 근거를 찾아보는 게 순서겠지요. 언론이나 정부에서는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막연한 불안을 부추기는 경우가 허다하니까요. 게다가 그런 위험요소나 불안요소가 있다면 정부가 먼저 해결하고 국민들은 안심시키는 게 정부의 역할 아닐까요?

무지개분수 2014-03-23 0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 생각에는 외국인에게 비친 한국의 불안감은 비정상적으로 보여지겠지만, 한국은 정말 불안속에서 성장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리고 현재도 불안한 요소들이 너무 많이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 단순비교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특히 캐나다 처럼 땅 넓고 자원많고, 복지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나라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여건에 있기 때문이죠. 남북한 문제, 고령화문제등의 내부적인 부분과 대외적으로 미국, 중국, 일본 등과의 외교적인 문제도 캐나다와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내부적으로 지나친 경쟁의식이 불러 일으키는 불안도 더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남이 하면 나도 해야 하는 것... 서양은 그런면에서 한국보다 덜 심하기 때문에 각자의 인생을 즐기면서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자라나는 세대들의 교육에 있어서 스스로의 자신의 삶의 스타일을 찾고 만들어 나가는 것부터 연습해야 할 것 같아요.

Ralph 2014-03-23 18:19   좋아요 0 | URL
오히려 불안하지 않다면 비정상적일 겁니다. 현재도 휴전중이고, 작은땅에 인구는 많고.. 갑작스런 사회 변화.. 불안한게 정상인데.. 오히려 불안하지 않은 것 처럼 사는 것인지도.. 굳이 우리 사회가 불안을 부추인다기보다는 .. 당연히있는 불안을 영리한 사람들이 나름대로 적절히 이용하고있다고 해야 할지.. 아뭍튼 정신 바짝차려야 살아갈 수있는 사회인것만은 사실인듯합니다.

꼼쥐 2014-03-26 14:20   좋아요 0 | URL
국가 간에 불안의 정도를 절대적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라마다 사정이 있고, 환경이 다르니까요. 그리고 때로는 적당한 긴장감이 삶에 활력이 되기도 하고 말이죠. 다만 우리나라에 만연한 불안을 더욱 부채질하고 조장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죠. 국가의 책임은 불안을 조장하기보다는 불안을 해결하여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이 아닐까요? 불안 요소가 있으면 그 해결책을 내놓고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없던 불안감도 일부러 만들어내고 있으니...

Ralph 2014-03-29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가가 개인보다 더 도덕적?이기를 바라는 맘이야있지만.. 현실은 그럴리도, 그럴수도 없는 상황인듯합니다.

꼼쥐 2014-04-01 16:04   좋아요 0 | URL
제도가 잘 갖추어진 나라라면 그 시스템 속에 있는 공직자는 어떤 도덕심이나 윤리의식을 따지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도덕적인 공직자가 되겠지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시스템의 부재로 인해 편법과 불법이 판을 치는 건 아닌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