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견문록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 지식여행자 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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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부르는 음식 - 미식견문록-요네하라 마리




“아침은 자신을 위해 먹고, 점심은 친구와 나누고, 저녁은 적에게 줘라”



 

러시아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건강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 같다. 늦은 저녁 9시에 저녁을 먹는다는 러시아의 식 문화에 기반을 둔 속담이라고 하니, 더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러시아 통역을 오랫동안 한 마리 여사의 러시아 음식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오랫동안 사 놓고 못 읽고 있다가 문득 그녀의 책 중에 고양이와 관련된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러다 발견된 이 책. 왜 이 책을 다 못 읽었을까 기억해 보니 재미가 없었던것 같다. 큰 감동도 없고 읽으며 키득 거렸던 부분도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저자가 고른 음식들에 나도 모르게 나만의 추억 소환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런 일을 절대 할 수 없겠지만, 저자는 40년 전의 도쿄에서도 집안의 쓰레기를 모아 태우다 그 속에서 발견된 노란 것을 발견하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며 화가 났던 그 물건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는데, 그것이 그 당시에 상당히 비쌌던 바나나였다는 것에 나의 바나나 추억도 소환되었다. 지금은 한 다발에 3천원이면 사는 바나나지만 당시에는 비쌌던 그 바나나의 소중한 맛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잠든 두 딸들을 놓고 부모님이 먹었던 바나나는 나의 비슷한 경험이었다.

 

저자가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프라하에 살면서 주변국들의 음식을 먹으며 자신의 나라의 음식을 그리워하는 부분에서는 태어나서 자라고 먹었던 그 처음의 맛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껴진다. 그런데 그녀의 그 자국문화의 자긍심은 잘 알겠는데, 이런 부분은 읽다가 다음장으로 넘기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있었다.



 

“ 아시아 여러 나라 가운데 일본의 근대화가 한발 앞선 것은 다른 나라들처럼 서구의 식민지가 도지 않고 오히려 주변 국가를 식민지로 삼은 덕분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일본군이 강했던 것은 군인들이 형편없는 음식을 참고 견뎠기 때문이 아닐까. 전쟁은 무기나 연료, 식량 등을 조달하는 병참 능력에 달려 있고, 병참에서 식량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으면 낮을수록 국가로서는 이롭다.” P208~209



뒷부분에 소개된 이야기의 요점은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싸워 죽는 것보다 굶어 죽었던 병사가 더 많았다는 자료도 나왔고, 영국이나 미국의 음식의 맛이 밍밍하고 맛이 없기 때문에 그런 맛에 익숙한 이들은 전쟁 통에 맛없는 음식을 줘도 잘 싸웠지만 미각이 훌륭한 자국민들은 그러지 못했다는 뭐 그런 이야기 같은데, 이게 전범 국가로서 할 얘기일지는 잘 모르겠다. 그녀의 의도는 알겠지만, 읽는 동안 나는 실소가 터졌던 부분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미각만큼 보수적인 것도 없다” (P65)는 말처럼 미각에 대한 편견만 사라진다면 어느 민족이나 미각이 상당히 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말을 했던 저자의 말을 곱씹으며 다른 나라에 가서 먹어 보았던 생경한 음식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분명 있기는 하다. 방콕에 갔을 때 전갈 꼬치를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고 계속 먹을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생소한 음식이더라도 그 문화의 존중이 있다면 되는 것 아닐까.

 

39바트 팟타이를 놓고 마주 보고 앉아 맥주를 마셨던 날들이 지나간다. 낡은 거리를 거닐며 여행 친구를 만나 어색한 영어로 인사를 하고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웃었던 날들. 그렇게 인연이 닿아 각자의 나라에서 그리워하며 메일을 썼던 그 순간들이 그 팟타이라는 음식과 함께 자리 잡았다. 아, 음식이란 함께 한 이들까지 소환되는 즐거운 추억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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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9-10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오후즈음 2021-09-10 20:1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09-10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네하라 마리책~!@ 당선 축하드려요 😆

오후즈음 2021-09-10 20:17   좋아요 2 | URL
감사해요~^^

초딩 2021-09-11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오후즈음 2021-09-11 22:43   좋아요 0 | URL
초딩님도 축하드려요~~ ^^
 
아가미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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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푸른 아가미를 가진 곤을 떠올리며

아가미-구병모



곤,

그의 이름을 불러 본다. 이름을 부르는 호흡이 끝나자 입 밖으로 물밑의 짙은 흙냄새가 풍겨온다. 푸른 아가미에서 훅 뿜어져 나오는 물밑 냄새가 싫지 않다. 곤은 그런 존재이니까. 곤의 향기가 싫지 않은 것은 목과 귀밑으로 이어져 있는 그의 아가미에서 깊은 상흔의 흔적 때문일까.



어느 날, 아들과 함께 삶을 끝내기로 한 남자는 호수로 뛰어 들었다. 하지만 남자만 목숨을 잃고 아들은 살아남았다. 아비만 죽고 아들은 어찌 살아남았을까? 그에게는 목과 귀 사이에 깊게 패어 있는 상처를 가졌다. 그것은 물고기들에게서 볼 수 있는 아가미였다. 호숫가에서 살고 있는 노인과 손자 강하는 아가미를 가진 아이를 구하고 그의 이름을 “곤”이라고 지었다. 그런 곤은 부모의 사랑을 받아 본적 없는 강하에게 늘 분풀이 대상이 되어 매를 맞고 아가미를 가진 그를 악랄하게 호수에 집어넣고 못나오게 했다. 그런 강하의 폭력을 조용히 견뎌내야 했던 곤은 물속에서 오히려 자유를 느끼며 점점 더 오랫동안 아가미를 펄럭이며 살아나갔다. 흔들리는 곤의 유년시절은 강하의 물리적인 폭력과 함께 커갔다.


 

해류는 강하를 만나게 되면서 강하와 해류, 그리고 곤의 연결고리가 만들어 진다. 해류가 없었다면 곤은 홍수로 노인과 강하가 떠내려갔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강하와 노인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곤이었지만, 강하의 친모가 집으로 찾아오면서 벌어진 일로인해 어쩔 수 없이 곤이 집을 떠나게 되었다. 그것 때문에 곤은 강하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해고 된 가게에서 받은 남은 월급 30만원이 들어 있는 조끼를 곤에게 줄 수 있었던 것도 곤을 위한 것이었다. 곤을 괴롭혔지만 강하는 늘 곤의 아가미가 타인들에게 들킬까봐 가리고 다니게 해주었다. 사랑을 배워보지 못한 강하가 누군가에게 행할 수 있었던 애정의 마음은 투박하고 거칠었지만 곤은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소중한 가족과도 같은 그들이 물속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곤은 그들을 찾아야 했다. 이제는 살점 하나 남지 않고 백골이 되었을 그들이라도 강화와 노인을 만나야 했을 것이다. 그것이 강하가 곤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그 말을 자신이 잘 실현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까.


 

<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


살아줬으면 좋겠다니! 곤은 지금껏 자신이 들어본 말 중에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예쁘다’가 지금 이 말에 비하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폭포처럼 와락 깨달았다. 언제나 강하가 자신을 물고기가 아닌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랐지만 지금의 말은 그것을 넘어선, 존재 자체에 대한 존중을 뜻하는 것만 같았다. P159>


 

그래서 곤은 그들을 찾기 위해 강에서 바다로 점점 더 멀리 헤엄쳐 나갔다. 곤은 강하를 만날 수 있을까.

 

구병모의 <아가미>는 2011년에 자음과 모음에서 한번 출간되었다가 2018년에 위즈덤하우스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그의 이야기가 나온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문장들에 감탄이 나온다. 이상하게 짧은 문장에 긴 한숨이 나왔다. 슬프고 애가 타는 이야기를 이렇게 아름답게 쓸 수 있다니.

나는 심연 공포증이 있어서 물을 싫어한다. 아득하게 보이는 물속의 기억 때문에 필리핀 바다에서 한번은 스노클링을 시도했다가 실신을 한적 있다. 그 이후 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수영을 배워보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고 결국 포기했다. 곤을 만날 수만 있다면 까만 어두운 심연을 벗어 날 수 있지 않을까 어이없는 생각도 해 본다.


 

언젠가는 이 어둡고 숨이 막혀오는 그 순간을 벗어나고 싶다. 물속에 있으면 어디선가 곤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사나운 물이 강하의 흔적을 모두 가져갔다고 해도 곤은 찾아내겠지. 푸른 아가미를 반짝이며 헤엄치고 있을 곤의 모습을 떠 올려본다. 그리고 어디 선가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고 있을 곤의 이름을 다시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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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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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무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 청춘이 끝나고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



 

재수를 위해 도쿄로 상경한 다무라 히사오의 10년 정도의 시간을 다룬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20대 시절이 당연하게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도시로 올라온 다무라의 모습에는 나의 20대 시절의 모습은 없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을 벗어난 적이 없는 서울 사람이었지만 나의 부모님들은 서울 사람들이 아니었다. 각각 다른 지역에서 태어난 두 분의 갈등 속에서 나는 도시에서 자랐고, 대학교도 서울에서 다녔다. 대학교에서 처음 맞는 여름 방학에 큰 당혹감은 친한 친구들이 두 명 빼고 모두 서울을 떠났다는 것이다. 방학이 되면 같이 여행도 가고 스터디도 하며, 더 많은 음주가무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집으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동아리 활동을 너무 극심하게 했기 때문에 고향으로 내려간 친구들의 빈자리를 많이 느끼지는 못했지만 허전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살고 있었던 곳에서 떠나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을 늘 하고 있었던 것은 어쩌면 방학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 미련 없이 자취방을 떠났던 친구들의 어질러진 집안을 보았을 때 였을까.


 

만약, 내가 다시 스무 살이 되어 도시로 올라간다면 어떤 것을 가지고 올라갔을까. 음악을 사랑했던 청년 다무라는 사랑하는 음악이 담긴 레코드 100여장을 짐에 넣어 올라왔다.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겠다는 녀석이 레코드 100장을 올라갔다는 것에 실소가 터졌다. 집안의 간섭과 갑갑한 고장의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도쿄에서 대학생이 되는 것이었고 그것을 핑계 삼아 떠날 수 있었다.

 

자신의 자서전같이 써 내려간 오쿠다 히데오의 [스무 살, 도쿄]속 다무라는 1980년대에서 일어났던 사건들과 그의 청춘을 녹였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토닥여줄 수 있는 청춘이라는 푸른 이름으로 지내는 동안 그가 사랑했던 존 레논이 떠났고, 나고야가 아닌 서울 올림픽이 열렸다. 레코드 백여 장을 들고 도쿄로 상경한 다무라가 대학에 들어 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는 대학에 들어갔고, 우연치 않는 말실수로 자신을 좋아했던 여자를 알게 되며 청춘에 걸맞은 첫사랑이 왔다가 지나갔다.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다무라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대학을 중퇴하게 되었다. 동기들보다 늦게 들어갔던 대학이지만 사회생활은 더 빨리 시작하게 되었다. 한때는 신이나서 열심히 있했던 곳에서 다무라는 이름도 날리며 잘나가는 직장인이 되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어머니의 당부로 선도 보게 되지만 레코드 백여 장을 들고 도쿄에 올라왔을 때의 설렘은 이제 사라진지 오래라 모든 것이 시큰둥하게 변해갔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일까.

서른을 앞둔 그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다무라는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 군중이 장벽을 기어올랐다. 양손을 높직이 하늘로 쳐들고 있었다. 불꽃이 올라갔다. 환성이 메아리쳤다.

“동서냉전도 끝났군.” 오구라가 불쑥 말했다.

“좋은 일 아니냐?”라는 미와. “세계는 바야흐로 물이 오른 거야. 이게 시작이지.”

“우리도 그렇다면 좋을 텐데.” 히사오가 취기 오른 머리로 말했다.

“청춘은 끝나고 인생이 시작된다, 라는 거지.”

누가 한 말인가 했더니 모리시타였다. 녀석. 시건방진 소리를 다 한다.

하지만 비웃어줄 생각은 없었다. 녀석이 꽤 괜찮은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른이 된 사내의 얼굴이었다.

화면에서는 군중이 환희의 퍼레이드를 거듭하였다.

청춘의 끝을 맞이한 사내들은 그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고 있었다. > P 385~386




 1989년이 끝나고 이제 1990년을 앞둔 청춘이 끝이 나고 인생이 시작된 그들은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청춘이 끝나고 인생이 시작된다는 모리시타의 말에 밑줄을 쫙 그으면서 나의 시간을 떠 올려본다. 오래전 청춘이 끝이 나고 인생이 시작된 것이 분명한데 왜 아직도 청춘이 끝이 나지 않아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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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키우는 고양이 - 유튜버 haha ha와 공생하는 고양이, 길막이의 자서전
하하하(haha ha) 원작, 길막이와 삼색이 감수 / 다독임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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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인간을 키우는 고양이]




어느 양어장, 싱싱한 잉어들이 헤엄쳐 다니는 곳. 굶지 않고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어미 고양이는 그곳에 터를 잡아 새끼를 낳아 키웠다. 일정 기간이 되면 영역을 떠나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 나가는 길고양이인 어미는 영역을 벗어나기도 전에 어느날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어미를 잃은 고양이중 한 마리였던 길막이는 그곳에 자신의 어미처럼 새끼를 낳았다. 그 고양이들에게 밥은 주고 정은 주지 않겠다는 양어장 주인인 haha ha님은 길막이의 딸들, 그 딸들이 낳은 아들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고양이들에게는 무릉도원이 아닐까?


 

여름에는 잉어를 삶아주고, 겨울에는 빙어를 잡아 먹방도 찍게 해준다. 고양이를 위해 따뜻한 집도 만들어 주고 감자, 맛동산(고양이들의 오줌과 똥을 그렇게 말한다.)도 걸러주는 수동 화장실도 만들어줬다. 물론 고양이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복막염에 걸린 고양이 무(조, 무, 래기는 연님의 아들들. 연님이는 길막이의 딸)는 절대 집으로 들이지 않겠다는 하님의 집으로 들어가 치료까지 받게 되었다. 순진무구한 얼굴, 늘 하님의 집을 염탐했던 무는 결국 집에 눌러 앉았다. 타고난 금손으로 뭐든 뚝딱 만드는 하님에게 핸드메이드 캣휠까지 얻었다.


 

길막이의 딸들과 그의 자식들, 어느 날 굴러온 돌로 양어장에 눌러 앉은 삼색이, 그녀의 딸들 둘이 뒹굴 거리는 이 양어장의 모습을 담은 유튜브는 어느덧 구독자 100만을 찍었다. 구독자 40정도 되었을때 쓰인 이 책은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의 모습을 닮았지만 사실 절대 고양이들에게 정을 주지 않겠다는 하하하라는 사람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이런 무릉도원을 만들어주면서 고양이들보다 사실 개들을 더 좋아하고, 고양이들과 한 겨울 캠핑을 하며 책을 읽는 그는 어떤 사람일까.


 

어느 날 작은 몸으로 양어장을 찾아온 삼색이는 길막이 식구들에게 구박을 받았지만 결국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지만 인간에게 절대 곁을 주지 않았다. 원래 고양이들은 다 그렇다. 절대 처음부터 호락호락하지 않고 도도하다. 삼색이도 그랬지만, 그가 가져다 준 밥은 아주 잘 먹었다. 한 달이 지난 후 그를 향한 마음을 변했는지 사람의 손을 허락했던 그 순간의 모습은 가슴이 먹먹했다. 길막이네 식구 사이에서 머리 드밀고 밥을 먹다가 솜방망이로 맞고, 우리 애들 먹을 것도 없으니 너는 빨리 가라며 얼마나 크게 하악질을 하던지. 하지만 삼색이는 굴하지 않고 그곳에 알박기를 성공했다. 하님도 모르게 새끼 두 마리도 낳았다. 문득 생각해 보니 삼색이가 어쩌다 이 양어장을 찾아 왔을까 궁금해지곤 했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는 태어나 3개월이 지나기도 전에 어미의 곁을 떠나 다른 영역으로 옮긴다. 그렇게 떨어져 나온 삼색이는 어쩌다가 양어장에 도착했을까.


 

haha ha님의 유튜브를 알고 있다면 이 책은 그동안의 양어장에서 있던 고양이들과 정을 주지 않겠다는 그의 기록, 그리고 그가 애정을 담아 찍은 고양이들의 사진에 입꼬리를 올려 줄 것이다. 우주 최강 미모 삼색이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는 길막이의 딸 연님이가 걱정이 된다. 길막이의 딸중 연님이는 유독 사람 손을 안탄 고양이였다. 동배에서 나온 야통이와 달리 사나운 연님이는 건너편 집의 삼색이네도 제일 쫄게 만들었던 고양이였다. 연님이가 낳은 아들 셋중 한 마리는 독립을 했고 두 마리는 양어장을 떠나지 않았다. 길막이의 딸 연님과 그의 자식들, 그리고 야통이와 빈집이의 아이들. 건너편에서 자주 넘나들고 있는 삼색이네 식구들. 넓은 양어장에 함께 사는 것이 힘들어 보이지 않았는데, 영역을 아들들에게 남겨주고 연님이는 다른 곳으로 떠난 것 같다. 더 이상 연님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영상을 보며 내가 키우는 고양이도 아닌데 눈물이 흘렀다. 인사 한마디 하지 못하고 떠난 옛사랑도 없는데 왜 그런 마음이 들어 울컥하게 만들어 놓는 걸까, 고양이들이란. 부디 연님이가 어느 곳에서 인간을 길들이며 잘 살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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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나버린 엄마의 생일 케이크를 찾아왔다. 엄마가 좋아하는 케이크로 주문을 넣었는데, 정작 엄마는 생일 케이크 맛을 보지 못하셨다. 주인을 잃은 케이크는 제 값을 하는 맛이었고 다음에 또 주문하고 싶은 맛이었다. 그래서 슬픈 케이크였다. 



새벽, 응급실로 들어간 엄마의 보호자로 들어가기 위해 코로나 검사를 처음 받았다. 다소 당황스러운 순간이 두 번 지나가고 나서 세 시간 이후에 음성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엄마와 함께 병실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틀 엄마 옆에 붙어 나는 처음으로 간호라는 것을 했다. 30년 전 수술을 하셨던 엄마의 간호는 나의 몫이 될 수 없었고 그 이후 입원 한번 없이 건강하게 사셨다. 처음으로 환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엄마 옆에서 잠깐 졸거나 뜬 눈으로 이틀 지난 후 간병인 선생님에게 인계 후 집으로 돌아와 절망했다. 엄마가, 이제 내가 알던 그 엄마는 이제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엄마는 갈수록 낯선 엄마가 되었다. 한 달 동안 엄마의 가슴에 저런 역정이 있었다는 것에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어떤 문제가 있어도 이성적이셨던 엄마가 저런 감정적인 모습만 하루 종일 보이는 것에 동생이 울며 전화를 했다. 감정 기복이 심해지며 화를 내는 엄마의 말에 속에서 천불이 났다가 꺼졌다가 한다고.


나는 모든 것들을 잊고 싶어 책을 읽었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 하나도 읽을 수 없고 사소한 말들도 귀를 거치지 못하고 사라졌다. 하지만 때로는 웃기도 했다. 그렇게 웃다가 내가 이렇게 웃어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에 웃음이 눈물로 바뀌기도 했다. 그렇게 나도 엄마처럼 감정이 조율이 안 되고 있다. 그래도 웃어야겠지. 엄마, 늦었지만 생신 축하해요. 라는 말을 하며 전화를 했다. 엄마는 오랜만에 예전의 엄마로 돌아와 웃으셨다. 엄마, 우리 서로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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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1-03-13 0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마가 웃으셨다.˝ 이 대목에서 안도가 되네요.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쾌유를 바랍니다.

2021-05-22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13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후즈음 2021-05-22 23:49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었네요. 감사합니다. 힘든 시간이 잘 지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