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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하는 책읽기 - 나를 다독여주고 보듬어주세요
서유경 지음 / 리더북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때론 어느 하루는 황량한 사막에 서 있는 것 같다. 존재감 없는 어느 날은 더욱더 아무리 걸어도 그늘 하나 없는 사막 고비에 서서 해도 지지 않는 하루만 맞이하는 것 같다. 밤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고 백야도 아닌 백야를 맞아 온 몸을 태우며 서 있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날. 그 때는 그늘보다 눈부신 현실을 잠시 가려줄 작은 손짓이라도 필요하다. 그것이 함께 나눌 수 없는 부재된 공감일지라도 그 순간을 위로 받았다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어떤 이는 긴 시간이나 짧은 시간을 통한 여행으로 치유를 할 수 있고,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치유 할 수 있다는 말처럼 상처받은 사람들과 멀어져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을 통해 상처를 보듬고 치유 받는 방법들을 찾는다.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명제를 놓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결론을 맞아 눈물 흘렸던 20대의 어느 날 나는 그 시간을 공유했던 음악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치유 받았다. 그리고 길거나 짧은 문장을 통해 울고 웃으며 힐링 받았다. 그런 이유에서 <치유하는 책읽기>는 당신이 혹시 상처 받았다면, 치유를 통한 마음을 회복하고 싶다면, 혹은 새로운 사랑을 단단하게 하고 싶다면 다시 한 번 읽어 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보통은 하루 길게는 삼일정도 책을 나눠서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참 오랫동안 읽었다.

7개의 chapter로 나눠져 있는 책속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한국 문학이 자리 잡고 있다. 그간 알려졌던 문학 고전이 주를 이루지 않고 김훈부터 김애란, 황정은, 이은조 신인 소설가부터 이재니의 시까지 그녀의 에세이와 함께 적절한 대목들의 얘기들 속에 문학의 얘기들이 길잡이를 해 주고 있다.

이 책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던 이유는 책속의 나오는 소설들을 다시 마주하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그녀의 방대한 독서는 한국 문학을 건너뛰며 읽은 나에게 추가 목록을 넣어준다. 읽고 싶었지만 어떤 책에 밀려 주문을 해 놓고 읽지 못한 책이라던가, 책이 출판 된걸 알았지만 지나치고 말았던 책들이 소개되고 부분 발췌 글이 소개 될 때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져서 집에 있는 책이 있다면 찾아서 그 부분을 읽어야 했다. 물론 소장하지 않은 책들은 따로 구매를 한 책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책들도 많다.

 

부지런 하지 못한 독서라서 늘 책장에 쌓아두기만 한 책들을 다시 펼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줬다. 그래서 <치유하는 책읽기>는 더욱더 오랫동안 읽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닫고 잊고 있던 나의 잃어버린 상실감속의 사람들이 지나갔다.

편중된 책 읽기 때문에 끌리지 않는 작가의 책은 보지 않을 때가 많았던 독서였는데 이 책을 통해 김형경의 책을 읽고 싶어졌다. 그녀의 오랜 소설 <세월>을 읽으며 그녀의 삶을 너무 고스란히 담아 놓아서 안쓰러웠다가 비슷한 그녀의 처지를 비관하는 소설을 읽고 자신의 인생을 팔며 글을 쓰는 그녀의 글이 싫었다. 그래서 그녀의 신간은 관심이 없었다가 <꽃피는 고래>에 대한 부분을 발췌를 읽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나에게도 딱 맞는 제목 때문이었다. 우리는 상실을 통해 어른이 된다는 것. 어쩜 우리는 상실과 치유를 통해 과거와 헤어지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일 테니 그 상실을 겁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게는 비가 오는 날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비가 오면 나약하고 초라한 자신을 가려줄 우산을 쓰고 나가면 빗속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에게는 그녀의 아픈 모습을 가려줄 우산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녀를 보듬어줄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런 그녀에게도 어쩜 글속의 위로들이 찾아와 빗속을 함께 걸어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얘기들은 상실감이 많다. 그중에 가장 심하게 요동치며 공감했던 부분은 지인들의 연락처를 옮기며 사라지는 몇몇 번호들의 상실감을 얘기한 부분이다. 회사에서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으로 바꿔야 하는 이유로 핸드폰을 바꾸면서 나는 일 년에 한 번도 연락이 닿지 않는 지인들의 번호를 과감하게 옮기지 않았다. 물론 일 년에 연락 한번 못하는 동창 녀석들도 있다. 그들의 번호는 그대로 옮겨 놓았다. 어쩌면 연락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연락이 닿지 않아도 인연의 끈을 놓고 싶지 않은 순서에서 밀려난 이들의 번호가 사라졌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그녀가 옮겨 놓은 구절이 마음에 들었다가 깜짝 놀랄 때도 있다. 사실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인생>은 어떤 책갈피를 만들지도 못하고 단번에 읽어버린 책이라 어린 주인공이 물을 끓여 먹는 과정을 말하면서 살아가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주인공의 대견스러움을 말한다.

 

나는 주인공의 상황만 이해하며 읽었던 부분을 그녀는 그런 사소한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대견함을 찾아내고 안쓰러워해 주고 위로해주고 있다. 그렇게 똑같은 상황에 놓은 우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 받을 것이다.

책속에 참 많은 책이 담겨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부터 이름을 들어도 잘 모르는 신인 작가까지 참 많은 작품들 속에 수많은 감정들을 꺼내 놓았다. 참 부지런한 독서가 아니라면 이런 책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의 끝임 없는 독서와 다신의 성찰, 감성의 치유까지 고루 스며있는 얘기들이다.

 

 

책을 읽으며 간혹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분명 그녀 또한 책을 통한 마음의 치유를 했을 것이다. 지금은 또 어떤 책으로 치유의 과정에 있을까. 문득 지금 내 앞에 놓인 책을 들여다본다. 그 속에서 나는 잃어버린 나의 기억을 치유 받을 수 있을까. 혹시 책을 통한 치유가 되지 않는다고 한들, 현실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책속의 세상으로 잠시 나를 던져 놓고 그 시간을 즐기면 될 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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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0 1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4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를 생각해
이은조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책을 구입하는 여러 동기도 있겠지만, 여러 이유 중 잘 모르는 작가이지만 제목 때문에 혹해서 구입해서 읽게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내가 선택하는 기준은 오로지 출판사, 작가, 리뷰 서평을 읽고 흥미가 생기는 것들이 기준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구입했다는 것이 놀라운 것은 제목 때문에 동굴 같은 집으로 책이 들어 왔다. 책을 다 읽고 앞으로 즉흥적으로 제목에 홀릭 되어 책을 구입해야 하는 것일까 고민이 쌓였다.

 

<나를 생각해>라는 아주 단순하면서 감성적인 제목임에도 불구하고 자아 성찰적인 내용이 있을 것 같아서 읽고 싶다는 생각에 두꺼운 양장본을 좋아하지 않지만 (책을 진열하기에는 참 좋은) 펼쳤다. 그리고 무수히 낚이는 인터넷 찌라시 같은 기사들을 읽었을 때의 불편한 성질이 났다.

 

 

얼굴과 몸만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작가는 문체도 나이를 먹는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지금은 환갑인 작가지만 20대에 쓴 작품에는 확실히 젊고 예리하게 날이 선 글들이 있다. 그래서 문체나 분위기만 읽다가 작가의 나이가 몇인가 표지를 펼쳐 볼 때가 있다. 그래서 이 책 또한 읽다가 작가의 나이가 몇인지 궁금해 표지를 다시 한 번 살폈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읽고 너무 감동 받아 원작을 찾아 읽었을때의 괴리감이라고 할까. 너무 늦게 우리나라로 번역된 그 책 속의 작가는 환갑이 넘은 나이였는데, 문체는 젊은 아네고 스타일이었다. 뭐 이런 것도 책을 구입하는 조건의 고정관념일 수 있다.

 

 

작가가 대학에서 극작을 공부했고 희곡이 신춘문예에서 당선되었으며 몇 년후 이름 있는 신문사에서 소설로 신춘문예 당선이 된 나름 글 좀 쓴다는 사람의 스펙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글 솜씨가 이상할리는 없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캐릭터들의 조합이 이상하게도 겉돌고 소설을 읽을수록 얇은 습자지 같은 깊이들만 가지고 있는 주인공과 주변인들은 조금만 물을 먹으면 찢어질 것 같은 조화 속에 있다. 발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깊은 물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얕아서 잘 보이는 냇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인물들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극단 ‘명우’의 직원이자 작가인 유안이 자신의 첫 작품을 올리기 위한 과정에서 5년째 사귀고 있는 애인은 매번 만날 때마다 모텔에 가는 일이 전부인 지지부진한 관계,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가족과 대학 동기 또한 마치 그녀가 몸담았었던 극작가 시절의 한 부분을 도려내서 소설을 써내려 간 것 같다. 자신이 경험한 일을 제일 잘 쓸수 있기 때문에 작가가 몸담았던 곳에서 나오는 에피소드들을 피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긴 하지만 다소 안일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봤다.

 

극단이 망할지 모를 상황에서 그녀의 대처법도 너무 시크하다. 그런 시크가 이해되지 않는다. 시대가 쿨 함을 요한다고 관계마저 시크하게 돌아설 필요는 없지 않는가. 그녀가 주인공인데.

 

 

나를 생각해하라고 해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말인 줄 알았는데 작품속의 주인공 유안은 자신을 잘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좀 더 들여다봤다면 많이 재미있게 읽어 줬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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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서만 _ 유인경 _ 위즈덤 경향

 

 

나는 그녀의 글보다 사실 방송으로 그녀를 너 많이 접했던것 같다. 기자인 그녀인데, 그녀의 기사가 아니라 그녀의 입담으로 그녀를 더 많이 기억한다. 입담은 결국 필력인가? 하는 의문도 들기도 했지만, 언제가 그녀가 긴 장문의 글을 쓴것을 보고 감탄했던 적이 있었다. 참 밝고 건강한 그녀도 그냥 하나의 사람이며 그 아픔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사람이라는 것.

그런 그녀가 참 오래도록 기자라는 직업을 오래도록 하고 있는 이유, 그런 모습, 마음가짐, 그녀의 또 다른 얘기들을 들어 보고 싶다.

 

 

2. 파리, 날다 _ 설정환 (글) / 한스 미디어

 

 

표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림이 아닌 정말 파린인거야? 라며 확대까지 하며 봤다.

책 내용이 몇장 첨부 되었던데 책 속의 내용의 그림속의 파리도, 정말 리얼 파리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파리"는 지저분하고 귀찮고, 날아오면 무조건 때려죽이려고 하는 존재가 아닌가. 그런 파리를

이렇게 익살스런 책을 내다니...당장 책장을 펼쳐 보고 싶은데, 파리 때문에 뜨악하면 어쩌나? 그래도 더러운것이 아닌 이야기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곤충을 잡아 책도 내는 작가의 선택에 올인해서 읽어 주고 싶다.

 

3.   내면 산책자의 시간 _ 김명인 / 돌베개

 

 

대학 시절 그의 이름을 많이 들었다. 선배들에게서도 그의 에피소드들을 많이 들었고, 책으로 읽었다.

무다가 실천적 글 쓰기와 행동에 많이 고민했었는데, 지금의 그런 노고와 희생이 왜 필요했을까?

80년대 시대를 바꾸고자 싸워왔던 그들의 노고는 21세기에도 전혀 변한 것이 없다. 그의 시린 좌절과 고독에

공감 하면서 쓸쓸한 그의 고백을 들어 주고 싶다.

 

4.  너를 잊지 못할 거야 _ 바바라 애버크롬비 /  오픈하우스

 

 

 

지난해 동물농장에서 본 가슴 아픈 사연이 기억난다.  한 섬에 버려진 개들의 애기였다. 여름만 되면 섬으로 사람들이 놀러와서 키우던 반려 동물들을 버리고 간다고 했다. 한 작은 개가 까만 차만 오면 교통사고가 날지도 모를 위험은 생각하지도 않고 달려 주인인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동물들을 자신이 왜 버려지는지 모르고 한없이 주인을 기다린다. 키우던 동물을 끝까지 책임지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다. 그리고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그 순간까지 책임을 지는 사람들의 따뜻한 얘기를 많이 읽고 주인을 잃고 떠도는 동물들이 적어졌으면 좋겠다.

 

 

 

12월중 나온 에세이들이 너무 좋은 책들이 많다. 읽어도 읽어도 줄지 않을 것 같은 목록들이다. 행복한 한달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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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대되는 1월의 에세이
    from 미실이님의 서재 2013-01-06 08:47 
    많은 책들이 또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행복한 2013년을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구요.그럼 제가 마음대로 고르는 기대되는 책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소개할께요. 1.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 석지영 하버드법대 최초 아시아여성 종신교수 석지영이 처음으로 쓴 에세이입니다. 심사위원인 교수단의 만장일치로 아시아여성 최초로 하버드 법대 종신 교수가 된 그의 지식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인문학, 예술, 법,,,그녀를 만든 지식과 교양을 배
 
 
 
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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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과 고등학교 때까지 보름에 한 달에 두 번씩 나오는 만화 잡지가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가 연재하는 작품의 뒷얘기를 기다리는 잡지를 읽고 또 읽느라 보름이 훌쩍 가버리곤 했다. 좋아하는 대사나 그림은 읽고 또 보고 보름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더니 어느덧 초등을 지나 중학생으로 고등학교에서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감동을 주는 작가들의 만화를 기다리며 보낸 세월처럼 때론 주간지나 계간지가 아니더라도 매년 혹은 더 늦게라도 기대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은 내 유년시절의 보름이라는 시간의 단비 같을 때가 있다.

 

 

<완득이> 때문에 김려령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고 그녀의 다음 작품을 매번 기다리게 되었다.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동화 이후 그녀의 장편 소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오랜 짝사랑에게서 전화가 온 것처럼 덥석 손을 잡지도 못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그런 작가였는데, 이번 <가시 고백>에 대한 느낌은 뭔가 좀 서운한 마음이 드는 기분은 뭘까.

 

좋아했던 교회 오빠를 다시 만났는데 내가 나이가 먹은 것처럼 그도 나이를 먹어 배 나오고 머리 벗겨진 중년의 아저씨를 만났을 때의 그 당혹스러움과 지난날의 설렘이 아련해지는 그런 기분, 이라고 할까.

<가시 고백>에는 여전히 익살스럽고 재미난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부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주인공이라고 해야 할 해일이보다 진오가 훨씬 더 재미있는 조연의 역할을 하게 배치 해 놓았다.

 

가발 공장에서 30년이 넘게 일하며 숙달된 손놀림이 죽지 않은 엄마의 피를 물려받아 손놀림이 빠른 해일, 새 아빠와 함께 살고 있지만 여전히 이혼한 아빠의 연민을 버리지 못하고 이혼한 부모 밑에서 감당해야 하는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지란, 태생부터 틀렸는지 초등부터 고등까지 반장 한 번도 놓치지 않고 한 다영, 이들 사이에 적절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진오는 한반의 친구들이다. 고등학교 2학년을 살고 있는 이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들이 있다.

 

 

엄마의 빠른 손을 물려받은 해일은 도둑이다. 호기심으로 슈퍼에서 껌이나 사탕을 훔쳤던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손이 반응하는 그런 도둑이다. 해일은 머리보다 손이 먼저 반응하며 물건을 훔치게 되었다. 그렇게 지란의 전자수첩을 훔치고 자신의 빠른 손에 대한 죄책감과 마음의 짐을 덜어 놓고자 일기를 쓴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진다. 이것이 해일의 가슴에 박혀있는 가시 고백이다.

 

지란은 새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 처음부터 새 아빠와 친해지지 못했지만 천천히 새 아빠와의 거리를 좁혀 가려 했지만 새 아빠의 전자수첩을 학교로 가져간 후 도둑맞은 후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새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으로 지란은 재혼한 엄마부터 가슴의 가시로 박혀있다. 하지만 진짜 가시는 지란의 친부다. 친부는 지란에게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며 딸을 찾는다. 지란은 모른 척 하고 싶지만 친부를 떨치지 못하는 자신에게 원망의 가시를 가슴에 박고 살고 있다. 지란 역시 이런 가시를 뽑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누구에든 이런 가시가 있다는 얘기를 할 수가 없다.

 

다영은 고3 반장을 하면 만랩을 찍는 반장다운 반장이다. 옛날과 같지 않게 요즘 반장들을 하고 싶어서 하기보다는 가산점을 얻기 위해 하기도 하지만 다영은 희생과 배려를 가진 반장이다. 아이들을 위해 항상 먼저가가 아닌 다음에 서 있다. 그래서 담임과의 면담도 일찍 가고 싶은 아이들을 위해 가장 나중에 하지 않았던가. 다영은 늘 반장이기 때문에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갑갑하다. 이런 답답함이 가슴에 박혀 있다. 이런 가시들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반장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한다고 다영 스스로 다독일 뿐이다. 그런 다영을 잘 알고 있는 담임은 다영의 가슴에 박혀 있는 가시들을 빼지며 보듬어 준다.

 

네명의 주인공들 사이에 가장 어정쩡한 입장에 있는 사람은 준오다. 준오의 가시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해일이 지란의 친부의 집에서 넷북을 훔치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 친구에 대한 우정과 의리, 진실 사이에서 가장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해일을 발고해야 할 것인가 친구로서 지켜줘야 하는 것인가 많은 고민들이 가시로 남았을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는 말을 듣게 되면 웃으며 넘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들 그 말들이 가슴에 박혀 내내 생각 날 때마다 아플 때가 있다. 그럴 때 상처 받음 마음을 가슴에 못이 박힌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가시 돋친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말들이 가시로 박혀 아프다는 말을 하곤 한다. 이런 부분에서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가시는 상처지만, 이들에게 가시란 고민과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해일이 도둑이 되는 것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갈등,지란의 친부에 대한 연민과 새아빠와의 갈등, 반장으로 지켜야 할 역할과 고민을 가지고 있는 다영 또한 갈등의 가시를 가지고 있다. 소설의 중반으로 가면서 해일이 병아리를 부화시키며 그들은 갈등의 고리를 풀어 나간다. 병아리가 후라이드 반, 양념반으로 자랄 때까지 그들에게도 시간이 필요 했다.

만나게 되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완득이의 담임 동주의 캐릭터는 <가시 고백>에서 분산되어서 나온다. 해일이의 형 해철, 해일의 담임 용창느님으로 따뜻함을 가지고 캐릭터가 분산되다 보니 모두에게 애정을 쏟기 힘든 부분이 있다. 해일의 담임의 역할을 좀더 힘이 실어 줬거나 혹은 지란도 가슴을 뛰게 하는 독특한 해철에게 좀 더 실어줬다면 좋았을 것 같다.

 

 

비록 전작에 비해 감동이 사라진 부분은 없지 않지만, 작가의 착한 심성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주인공들을 모두 보듬어 주려는 작가의 마음, 어느 누구 하나도 낙오자 없이 작품속에 잘 녹아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느끼지 못했다면 김려령을 잘 모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알뜰살뜰하게 남을 잘 챙겨주는 이웃 언니 같은 사람이니까.

그녀에게 완득이를 또 불러와 달라고 하고 싶지 않다. 그건 그냥 완득이가 완득이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득 다른 곳에서 그들이 오지 않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은 독자의 욕심일지 모르겠다. 다만, 그녀의 끊임없는 작품 활동에 발을 걸어 넘어뜨리게 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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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6 0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6 0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재와 빨강
편혜영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소통할 수 없는 지금의 현실같은 소설.

며칠 동안 인터넷을 하지 않았다. 한다고 한들 고작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뿐이었다. 기사를 읽는 것이 싫다. 현관 밑에 구부려 넣어진 신문은 며칠째 구부려져 있는 채로 방치되어 있다. 아마도 올해가 가고 내년이나 되어 재활용 수거함으로 던져 넣어질 것 같다. 인터넷 기사의 덧글들은 현실을 알려주는 기사를 보는 것보다 더 소름이 돋는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누군가를 몰아세워야 하는 것일까. 진실이 있는데 그 진실은 왜 외면을 받으며 우상이 아닌 인물에 우상시 되어 흔들리는 것일까. 답답했다. 누군가와 이런 답답함을 속 시원하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C국으로 발령을 받은 그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이렇게 답답하고 스산했을까.

어느 제약회사에서 약품개발원으로 있었던 그는 쥐를 잘 잡는다는 이유로 감기 바이러스 같은 것이 창궐한 그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우연치 않게 C국으로 오던 그는 가방을 잃어버리고 그가 증명할 어떤 것들이 사라져 버렸다. 마치 모국이 그를 다른 나라로 버린 것처럼 그는 버림받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그녀의 아내와 이혼을 했을 때 기분 같은 것이다. 아내와 이혼을 하고 그는 더욱더 아내와 얘기를 하고 싶어 했다. 소통의 부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C국으로 서둘러 왔던 그는 그의 개가 혼자 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생각지도 못한 인생의 반전에 놓인다.

 

소설은1,2,3부로 나눠져 있다. 1부는 그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출국 전날 밤의 일과 그가 왜 자신의 집에 그의 개와 전처가 난자당해 살해 되어 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이야기는 끝났다. 그리고 그는 살인사건의 주범이 되었다. 기억나지 않는 일들 떠올려 보았지만 그는 왜 자신의 전처가 자신의 집에 죽어있는지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기억이 날 때까지 그의 누명이 벗겨질 때까지 부랑자가 되어 떠돌게 되었다.

 

자신을 C국으로 부른 담당자는 없고, 자신은 전처를 살해한 용의자로 되어 있고, 본사로 전화를 해보면 자신은 C국으로 발령조차 없는 있지도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누군가와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간절한 소통이 필요했을 것이다. 정말로 자신이 전처와 개를 죽였는지 기억해 내고 싶었을 것이다.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쓰레기 더미로 떨어지던 그때를 벗어나 안락하지 못하더라도 있었던 그 자리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와도 소통 할 수 없는 공간에 떨어져 길거리를 방황하며 구석에 숨죽여 사는 쥐들처럼 숨어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내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쥐들을 잡으며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C국에 남아 기억나지 않는 지난날을 뒤로하고 또 하나의 생명채로 살아 가게 된다.

모든 것이 다 타버린 이름도 없는 도시속의 그곳에서 그는 어떤 얼굴로 살아가는지 마지막 페이지는 인간이 인간에 흡수되어 살아가는 모습에 소름이 돋는다.

 

편혜영의 단편을 한권 선물 받기 전에 장편이 한권 집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묵혀 놓은 소설을 꺼내고 한 번에 숨도 쉬지 않고 읽어 내려갔다. 문득 작가란 무엇인가 생각되었다. 소설가란 무엇인가. 글을 쓰는 일은 어떤 삶의 소통인가.

호숫가의 안개가 아닌 모든 것이 타버리고 새벽을 맞이하는 지구의 종말 다음 날을 연상하게 하는 소설, 마치 어떤 날의 다음날 같은 그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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