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의 발톱, 캐나다에 침투한 중국 공산당 미디어워치 세계 자유·보수의 소리 총서 4
조너선 맨소프 지음, 김동규 옮김 / 미디어워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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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호의'는 어떻게 '중국의 권리'가 되고 말았나

누군가의 호의가 시간이 지나면 당연한 권리처럼 여겨지는 경우에 대해 우리는 살다보면 생각보다 쉽게 그 예를 경험하게 되곤 한다. 하지만 개인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저자는 50여년간 캐나다의 언론인으로 살아오면서 중국공산당이 지난 50년동안 캐나다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차곡차곡 데이터를 모은 것 같다. 그래서 캐나다 선교사의 호의가 현재는 중국 공산당의 권리가 되었다고 개탄하며 이 책을 써냈다.

나는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인종주의적 시각에 비롯된 게 아니라는 점을 처음부터 분명히 강조하고자 한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외국에 있는 한 정당, 즉 중국 공산당이 품은 국제적 야심에 관한 것이다. 중국 당국과 그 공작원들은 캐나다뿐만 아니라 호주, 뉴질랜드, 미국 등의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이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 (p. 15)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도 따로 쓸 정도로 이 책이 한국의 상황에도 유의미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얽혀온 중국의 정책에 대해 한국은 이미 민감하게 반응해 왔던지라 캐나다인으로서 느끼는 심각성과 우리의 느낌은 좀 다를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해외에서 이토록 활발하게 움직여 왔다는 점은 한국에서도 분명 주지해야 할 사안일 것이다.

베이징에 들어선 공산당은 현대판 중화제국 왕조라고 하는 편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p. 24)

중공과 접촉하면서 이런 풍조를 경험하는 것은 꼭 캐나다만이 아니다 미국, 유럽, 특히 뉴질랜드와 호주에서도 이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호주에 중공의 입김이 스며드는 것은 정확히 캐나다에서 벌어지는 일과 똑같다. 차이점이 있다면 호주이 정치인, 학자, 언론, 그리고 대중은 중공이 꾸미는 일에 대해 좀 더 크고 명확한 반대 의사를 표시해왔다는 사실이다. (p. 30~31)

중국의 공작원들은 이미 이곳에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고, 그들은 캐나다의 가치를 경멸한다는 것 외에 다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p. 37)

저자는 초반부터 조금은 격렬하게 중국의 '공작'에 대해 비판한다. '이 책은 최후의 심판을 알리는 공상 소설이 아니다. (p. 34)' 라며 독자에게 지금의 현실을 보고 중국의 실체를 파악하기를 강권한다. 이러한 강한 태도는 이 책이 일단 캐나다인들을 향해 쓴 책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이해해야 한다. 저자는 자국민들이 자국의 상황을 좀더 심각하게 판단해야함을 깨닫게 하고 싶어한다.

캐나다가 중공 공작원들이 활개 치는 사냥터가 되다시피 한 이유는 이 나라가 중공을 피해 중화권에서 벗어난 수많은 이주민의 매력적인 종착지가 되어왔기 때문이다. (p. 45) 비록 모두는 아니겠지만 중공의 스파이, 비밀경찰, 여론공작원 및 기타 비밀공작원 중 많은 수가 국제엠네스티 보고서에 나오는, 캐나다의 인권 및 정치개혁 단체에 대한 학대와 협박사건에 가담하고 있다. 중공이 꼭두각시처럼 부리는 기관 및 공작원의 전체적인 실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를 자랑하며, 그들의 말대로 움직이는 또 다른 심복들도 캐나다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p. 69)

저자는 이 '공작' 들에 대해 세계대전 이후 부터 차근차근 사건들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 사건들이 최근의 일들은 아니라서 너무 옛날이야기 처럼 읽힌다는 점이 저자의 강한 주장에 비하면 그닥 와닿지 않는, 호소력이 약해지는 원인인것 같다. 예를 들어,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반공독후감이나 이승복어린이 등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릴땐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며 죽어간 이승복어린이에 대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냈었다. 책속에서 제시하는 중국공산당의 (저자의 표현에 따르자면) '공작'들은 그 이승복어린이 이야기 같다. 지금은 읽어도 별 감흥이 없는.

중공이 다른 나라를 파괴하려는 시도를 보면서 캐나다가 교훈을 얻어야 할 사례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찾아볼 수 있다. (p. 389)

중국공산당은 이제 캐나다의 자유민주 체제를 위협하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p. 418)

캐나다의 언론인으로서 중국의 활동에 대핸 위기감은 충분이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저자가 말하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사례에 대해서는 파이브아이즈 관련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캐나다, 영국, 미국, 호주, 뉴질랜드 는 파이브아이즈 동맹국가다.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는 영국의 연방체 이므로 크게는 미국와 영국이라고, 간단하게 영미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럽과 영미권은 좀 다른 듯 싶다. 여하튼,) 미국과 중국은 오랜 경쟁관계이니 중국이 공작을 해야 한다면 영연방국가가 될 것이다. 그런데 호주와 뉴질랜드는 중국에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이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작년엔가 중국과 호주사이에 있었던 이런저런 뉴스들이었다. 호주는 정치권에 로비자금이 허용된 국가이고 중국이 호주의 정치인들을 많이 포섭해왔는데 중국의 자금을 받은 호주의 부패정치인들이 발각되고 호주의 '다윈항' 관련 중국이 원하는 협정이 호주의 주권을 위협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호주와 중국은 냉전이라고 부를 만한 상황중이라고 한다. 뉴질랜드는 작은 국가이긴 하지만 일찌감치 독립적 의견을 주지하고 있었고 영국과 미국은 상대적으로 강대국이라 이 파이브아이즈 동맹국들 중에서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 살펴보야 할 국가는 캐나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있어서 아프리카 아시아 호주 북미대륙을 있는 라인에서 캐나다는 필요한 입지의 국가일테니 중국이 캐나다에 은밀한 '공작'들을 꾸준히 해왔을 것 같긴 하다. 그런데 호주에 비해 캐나다내에 그런 위기의식이 없다는 것은 분명 문제다. 하지만 저자는 좀더 현대적 쟁점들을 최근의 사안들을 제시했어야 한다. 언제적 일화들로 지금 중국의 활동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게 할 수 있겠는가. 또한 전반적으로 문체가 너무 옛스럽고 선동적이다. 이러한 낡은 선동으로 과연 얼마나 캐나다내에서 이슈가 되었을지 의아하다. 저자의 논리가 좀 약하긴 해도 위기의식을 가져야 할 문제이기에 기대하고 읽었는데 이정도 내용으로는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여하튼, 중국의 활동이 얼마나 세계적인가는 깨달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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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소피 유니버스 - 29인 여성 철학자들이 세상에 던지는 물음
수키 핀 지음, 전혜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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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질문과 깊이 있는 대답이 빚어낸 더 나은 삶

'29인 여성 철학자들이 세상에 던지는 물음'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이 책은 '물음'이 아닌 '대답'을 모은 책에 가깝다. '좋은 질문과 깊이 있는 대답'은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철학의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철학적 질문과 답을 여성철학자들에게 한다면 무엇이 다를까? 아니... 다른가??

이 책의 원제는 'women of ideas : interviews from philosophy bites' 인데 구글번역기에 의하면 '아이디어의 여성: 철학 물음에서 인터뷰'라고 한다. 제목이 어째 좀 부자연스럽다;;; 여성 철학자들의 생각도 아니고 여성의 아이디어들도 아니고 아이디어의 여성 은 어떤 의미일까? 철학 물음으로부터의 인터뷰 라는 것도 그렇고;;; 이해할 수 없는 원제 때문일까, 나는 원래 번역서의 원제를 존중하는 편이지만 이 책은 한글판 제목이 더 나은 것도 같다;;;

이 책은 철학자 나이절 워버턴과 데이비드 에드먼즈가 <철학 한입>이라는 팟캐스트를 운영하면서 진행한 인터뷰를 모아 엮은 인터뷰 모음집이다. <철학 한입>은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4천만 이상의 다운로드 수를 기록했으며, 옥스퍼드대학교 출판사를 통해 <철학 한입> <철학 한입 더> <다시 철학 한입>이라는 총 3권의 시리즈 책이 발간되었다. (중략) 팟캐스트 <철학 한입>에서 영향력 있는 여성들과 나눈 인터뷰를 찾아보니 거의 100편에 달했다. 하나같이 흥미로운 주제들이었다. 이 중에서 30편 이내로 고르자니 고난에 가까웠다. (p. 373~374)-감사의 말 中-

이 책은 영국의 두 철학자가 진행했던 팟캐스트 인터뷰들 중 29명의 영미권 여성 철학자들 인터뷰를 골라 엮은 책인 것 같다. 두 명의 인터뷰어 중 '나이절 워버턴'은 <철학의 역사>라는 책을 읽고 느꼈던바 쉽고 재밌는 철학이야기로 이미 신뢰할 만한 저자였기에 팟캐스트를 바탕으로 나온 책만으로도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필로소피 유니버스> 를 엮은 수키 핀 저자는 '여성 철학자'들만 따로 모으는 것도 또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정리한 내용들을 소개하기에 앞서 29명의 여성철학자들에게 '여자로서 철학을 한다는 건?' 이라는 질문을 하고 그 답을 모은 것들로 책의 서문을 대신한다.

여성철학자가 되기까지 누군가는 '여성'을 그닥 의식하지 못했고 누군가는 힘들었으나 결국엔 그저 '철학자'로서 그 생각의 깊이를 함께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철학자'는 여전히 희소하기에 그들의 생각은 비슷하면서 또 달랐다. 책의 의도에 분명 '여성' 이라는 중심 주제가 있었기에 여자란 누구이며 남녀의 본질은 무엇인지로 시작하는 인터뷰의 주제순서는 이 책의 맥락을 따라가는 데 의미가 있는 시작이었다.

페미니즘은 정치적 운동이에요. 정치적 운동은 누구를 포함하고 배제할 것인지, 누구와 연대하고 연대하지 않을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포괄적이지 못한 페미니즘은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아주 좋다고 할 수 없어요. 정치적 목적과 페미니즘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어떤 식으로 연대해야 하는지, 다시 말해 가부장제에 맞서 누구와 함께 싸울 것인지를 두고 '여자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그 싸움에서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이미 싸움터에 있고요. (p. 33~34)

첫 주제가 '여성'관련 질문인만큼 페미니즘 이야기가 안 나오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페미니즘 책은 아니다. 여성 철학자가 여성 관련 질문에 대한 답을 한다고 해서 모두 페미니즘 이라고 단언하면 안되지 않을까?

페미니스트들은 남녀의 기질이 선천적으로 다르다는 진화론적 주장을 전면 거부하고 싶을 거예요. 성 역할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과 진화론적 주장이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는 듯 보이잖아요. 그렇지만 그건 오해에요. 진화론적 입장이 보수파와 같아 보일지라도 이 둘은 서로 결이 다르고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진화론측 과학자들은 절대 변할 수 없는 타고난 남성성과 여성성을 이야기해요. 남녀는 다르다는 둥 서로 그만의 특징이 있다는 둥 이런 식의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단지 남녀의 타고난 기질과 일반적인 차이에 대해 말할 뿐이에요. 남녀를 다르게 대우해야 한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에요. 과거 보수파 주장과 현대 진화론적 입장 간의 차이를 분명히 이해해야 해요. 페미니스트들이 원하는 변화가 무엇이든 생물학적 작용을 거부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어요. 페미니스트들이 맞서야 하는 건 광범위하게 퍼진 진화론적 주장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왜곡이에요. (p. 49~50)

남녀의 본질을 따지면 신체구조적 차이를 말하지 않을 수 없고 진화론적 인식을 바탕으로 얼마나 상반된 주장이 가능한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철학적 사고와 질문은 여성철학자이건 남성철학자이건 상관없이 그저 인간으로서 철학자로서 가능하고 또 실제 그렇게 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따라서 여성철학자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페미니즘적 질문으로 시작한 이 책은 '성'구분이 딱히 필요없어 보이는 질문 동시에 어떻게 보면 '성 역할의 구분에 절대적 기준'처럼 여겨지고 있는 '과학'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물론 이 철학질문들의 흐름은 엮은이의 편집방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제들의 편집방향을 훑다보면 이 책의 가치가 첫장을 펼칠때와 또다른 기분으로 마무리하게 되는데,

과학이 이타성의 필요 여부까지 판단해줄 수 있을까? 동물의 도덕적 지위는 어디까지일까?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을까? 과거에는 당연했으나 지금은 용인할 수 없는 행동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인간의 사회적 교류는 권리일까? 등의 과학과 관련된 철학적 질문은 진화론을 넘어 과학이 증명해주는 철학적 논리들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국가와 개인의 관계, 다문화주의와 자유주의, 암묵적 편견, 혐오, 취향차이, (의료)사전 동의서 등의 주제들은 여성철학자들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갑을의 관계가 약간 바뀐것 같은 입장에서의 철학자들의 대답을 들으며,

언어와 맥락, 욕설, 교양, 신뢰 등의 주제에 대해서는 각 항목들의 새로운 정의랄까... 현대철학의 새로운 사고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고,

'안다'는 것, 직관적 앎, 미셀 푸코와 지식, 보부아르의 삶과 업적, 메를로 퐁티와 신체, 흄과 불교, 아프리카 철학, 플라톤과 전쟁 등의 주제에서는 선배?!철학자들의 견해를 현대철학자들이 어떻게 발전시켜왔는지 살펴 보며,

가능세계, 철학자들의 비유법, 철학의 발전, 철학과 대중의 삶 등의 주제에 대해선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대한 정리를 하고 나면

어느새 책의 마지막장을 덮게 되는데

그렇가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책은 29명의 여성철학자들의 의견들 이라기 보다 그냥 현대 철학자들의 다양한 연구주제들을 흥미롭게 읽고난 기분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저자는 여성철학자들을 묶은 것으로 여성철학자들을 강조하는 것처럼 시작하지만 결국은 철학을 하는데 있어 여성이건 남성이건 그러한 구분은 필요치 않고 중요치도 않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그보다는 세상 모든 고민을 포용할 수 있는 철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턱을 좀더 낮추어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철학자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도덕 발전과 사회 진보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항상 그 시작은 철학적 논쟁이었고요. (p. 360)

철학자만이 삶을 관통하는 철학 문제를 논해야 한다면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요. 인간이라면 내가 왜 그렇게 믿고 행동하며, 왜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지에 대해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전문가에요. 그런데 학교에서 배웠다는 일부 지식인들은 이러한 인간의 핵심 활동이 본인들의 영역이라고 말해요. 타인의 인간성을 깍아내린다고밖에 볼 수 없어요. 이게 플라톤이 창조한 바로 그 분야예요. 즉 철학에 암시되어 있던, 플라톤이 꼬집은 진짜 문제요. 플라톤은 철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재능 없는 플루트 연주자처럼 유연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사회를 재배열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이 방식에 동의하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적어도 이 문제를 발견한 플라톤의 공로만은 인정해야 겠죠. 화이트헤드가 말했던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이 말에 숨은 뜻은 바로 이거에요. (p. 362~363)

마지막 인터뷰는 철학과 대중의 삶이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 철학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형식적 관행에 얽매여 있는지 안타까워 하는 철학자가 '저는 철학을 이제 대학 강의실보다는 학교 교실에서 가르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p. 372)' 말하는 것으로 끝맺음된다. 현대철학자들의 형식성을 비판하는 이면에는 분명 여성철학자들에 대한 차별이 없지않아 있었다. 하지만 몇몇 철학자들의 생각만 읽어보아도 곧 깨달아지는 것이다. 철학을 하는데에는 그러한 성역할도 철학자이냐 아니냐도 사실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러니 우리 모두 철학을 하자.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고민을 반으로 뚝 줄어들게 하는 것이 철학의 힘이니까. 철학은 저마다의 인생고민을 모두 포함할 수 있는 그런 거니까. 쓸데 없어보이는 고민들도 계속되고 확장된다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되게하는 것이니까. 그게 바로 철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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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선생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 : 서양 편 - 지리로 ‘역사 아는 척하기’ 시리즈
한영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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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럽부터 중동, 아프리카까지!

화제의 유투브 채널 <두선생의 역사공장>의 세상에서 가장 쉬운 지리 수업

산맥과 바다가 어디에 있는지만 알아도

수천 년 켜켜이 쌓인 역사가 읽힌다!

나는 역사책 읽기를 참 좋아한다. 학창시절에도 역사선생님이 아무리 재미없건말건 역사라는 과목을 참 좋아했었는데... 그 기억을 한동안 잊고 살다가 나이가 한참 든 후에야 다시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내가 역사를 참 좋아했다는 것을. 책 읽는 것을 워낙 좋아하지만 역사책 읽기는 더욱 좋아한다. 역사책이라고 다 재미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책을 읽다보니 나름 고르는 요령도 생겨서 점점 실패한 책선택의 횟수가 줄고 있다. ㅎㅎ

역사책들을 읽으며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은 지도와 지리가 정말 중요하다는 점이다. 학창시절에는 몰랐었다. 그저 이야기로서의 역사만으로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역사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지도와 지리에 눈이 뜨여지고 그렇게 지도와 지리적 지식이 쌓일 수록 역사에 대한 이해도 쉬워졌다. 어렸을때 알았더라면 참 좋았을 것을;;; 세상이 좋아질수록 책도 참 좋아져서 더 재미있고 더 쉬운 책들이 참 많이도 나온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정말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지리로 '역사 아는 척하기' 시리즈 의 서양편 이라고 한다. 이제 시작하는 시리즈의 첫권 같고 기자였던 저자가 역사유투버로 활동하면서 쓴 책이라서인지 깔끔한 정리가 돋보이는 책이다. '지도로 읽는 세계사' 인만큼 다양한 지도가 등장하는데 실사지도가 아니라 그림지도라서 장단점이 좀 있다. 여튼, 두껍지 않은 이 한권에서 아시아를 제외한 전 세계를 다루니 세계사에 대한 지대넓얕 이라고 할 수 있다.

중동, 유럽, 미국, 중남미, 아프리카 의 5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컬러풀하지만 간략한 스타일의 그림으로 그려진 지도를 바탕으로 그 지역에 대한 역사를 짧게 훑는다. 오래전부터의 역사를 연대기순으로 쭈욱 설명한다기 보다는 현재의 국경선이 어떻게 그어졌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상식들만 조금씩 간추리고 있다. 매 챕터마다 끝부분에 요약정리도 해놓아서 핵심내용을 기억해두기에도 용이하다. 읽다보면 새록새록 세계지도를 머릿속에 조금씩 그려나가게 되므로 다 읽고나면 커다란 세계지도퍼즐을 꽤 많이 끼워맞춰놓은 기분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

지정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지리의 힘> 과 지구적 움직임과 인류사를 연결한 <오리진>을 책을 쓰면서 참고했습니다. (p. 237) 또한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과 답이, 각 지역의 우열을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책을 쓰면서 참고한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도 이런 시각을 경계했습니다. (중략) 따라서 같은 호모사피엔스가 각지역에서 어떻게 정착하고 어떻게 역사를 진행했는지, 그 과정의 차이를 이해하는 차원으로 책을 썼습니다. '서구 중심주의'라고 비판하신다면, 부족한 필력 때문에 생긴 오해니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이 책은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주장을 전하는 책이 아닙니다. 많은 책에서 나온 내용을 정리한 대중 인문서입니다. (p. 238)

저자의 후기에서 저자가 언급한 책들이 내가 읽었던 책들이라 반가웠다. 역사관력 책을 읽는데 있어 책선택을 잘해왔구나 하는 새삼스런 뿌듯함을 느꼈달까. ㅎㅎ 저자도 말하고있듯이 이 책은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주장을 전하는 책이 아니라 다른 책들에서 나온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따라서 역사에 대한 이해나 분석은 이 책의 의도가 아니다. 그저 지도와 역사는 밀접한 관계에 있고 지금의 세계지도가 어떤 식으로 그려졌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래서 세계시사뉴스를 들었을때 간단하게 참고할만한 책이다.

전지구적 혹은 글로벌하게 라는 등의 수식어구도 식상해진지 오래이건만 세계사에 대한 지식은 생각보다 널리 퍼지지 않은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세계사에 역사에 박학다식할 필요는 없지만 상식으로 알아두면 도움되는 경우가 참 많다. 저자가 유투버라니 유투브로 봐도 좋겠지만 나처럼 영상보다 문자나 책이 더 편한 사람들이라면 책으로 보는 유투브라 생각하고 이 책을 읽으며 좋을 것 같다. 쉽고 재밌으면서 다양하게 세계사적 시사상식을 꽤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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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 - 신진 작가 9인의 SF 단편 앤솔러지 네오픽션 ON시리즈 1
신조하 외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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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휴머노이드, 가상세계를 소재로

진정한 '인간다움'에 대해 탐구하는,

신진 작가 9인의 강렬한 감성 SF 단편 앤솔러지

새로운 작가들을 알게 될 때마다 세상엔 대체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엔 한권에 여러 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앤솔러지형 책이 많아서 한꺼번에 신진작가들을 만나게 될 때면 더더욱 놀라게 된다. 씨앗이 심어져 있는줄도 몰랐는데 봄이면 여기저기서 돋아나는 파릇한 새싹을 보며 감탄하게 되는 기분이랄까. SF 라는 장르가 다른 장르보다 좀더 새로움을 많이 느끼게 하는 장르이긴 하지만 이렇게 한권으로 신진작가 9명의 새로운 SF를 읽는 경험은 또다른 즐거움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뇌가 없다.

뇌가 없는 변호사다.

자조하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무뇌증으로 태어난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는 건 '투명한 뇌' 기술 덕분이고, 실질적으로 나는 뇌가 없는 존재니까. (p. 9)

신조하 <인간의 대리인> 中

판사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된 지는 오래이지만 '투명 뇌'를 이식받은 일명 ALP가 변호사 자격을 얻는데는 여러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ALP는 AI가 아니었고 투명뇌는 인공지능이 아니었기에 변호사 자격증은 인정되었다. 다만 취업이 되질 않았다. 그러다 작은 법률사무소에 취직이 되긴 했는데 국선변호사 업무를 전담하다시피 하는 소소한 사무실이었다. 사무실 대표가 AI와 ALP를 구분하지 못하여 발생한 일이었지만 그럭저럭 잘 타협하며 소소하게 지내던 중이었다. 거대제약회사가 개발한 치매약을 테스트복용한 사람들이 좀비상태가 되고 피해자 가족들이 소송을 냈으나 그들은 거대로펌과 계약할 돈이 없었고 그렇게 국선변호사와 다름없던 김변이 사건변호를 맡게 된다. 투명뇌를 가진 변호사인 김변호사.

나는 인간의 기능을 상실한 인간은 마땅히 죽는 것이 인간의 존엄에 부합한다고 주장하는 무뇌 변호사다 그는 변을 지리며 미친개처럼 바닥을 기는 인간이라도 살아 있을 가치가 있다고 믿는 엘리트 변호사고. 그 가치가 실험용 쥐 정도라 해도. (p. 29)

나는 알게 된다. 인간이 되고 싶은 존재는 인간이 아니다. (p. 38)

인간을 변호할 수 있는 건 인간이 아닌 자일 것이다. (p. 39)

스스로의 뇌를 해파리라 부르며 자신이 인간인지 아닌지 되묻곤 하던 김변은 이 사건을 변호하며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다. 기계들이 보내오는 신호를 해파리가 뇌파로 읽어내고 감응할 수 있기에 자신의 투명뇌는 인간들의 뇌와 다르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기계라고 볼 수도 없던 자기자신에 대해.

예에, 그럼 베타파가 희미해지고, 스키마가 능동적으로 정보를 분석하지 못한다고 보면 됩니까? 아! 당연히 그냥 그러면 신경안정제나 마약류하고 차이가 없겠네요. 상대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한다라.... 신기하네요. 이 기계는 어떻게 그런 작용을 할 수 있습니까? (p. 47)

유이립 <스키마 리셋터>

어느 대학교의 연구팀이 스키마 리셋터 라는 것을 개발하여 테스트 중이었다. 마침 당시 굴지의 자동차기업에서 노사분쟁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회사측과 노조대표 그리고 하청업체 대효는 이 스키라 리셋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용하고 싶어한다. 교수와 의견이 달랐던 조교는 이 세명을 따로 접촉하고 허락받지 못한 테스트를 시행하려 한다. 하지만...

"자네, 나한테 리셋터를 사용해서 무엇을 이루려 하나?"

"제가 옳았다는 것을 가르쳐드리려고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어차피 난 제정신으로 돌아올 텐데? 리셋터는 잠시 생각을 바꿀 뿐이야. 자네는 한순간만 옳게 되겠지. 그런데 나는 왜 자네한테 리셋터를 사용하려는 걸까?"

"......"

"나는 잠시 생각을 바꿀 뿐이지 세상은 바꿀 수 없다는 걸 자네에게 영원히 기억시키려고 사용하네" (p. 75)

두 대의 리셋터가 분실되었고 그중 한대만 사용되었다. 하지만 누가 누구에게 사용한 것일까...

원래부터 휴머노이드들이 이렇게 고장에 취약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인간과 비슷하게 발전시키면서 점점 더 약해졌다. 꼭 그 옛날, 전화만 되던 핸드폰보다 그다음 세대의 스마트 핸드폰이 쉽게 망가지던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요즘의 휴머노이드들은 한번 방전되면 메모리도 완전히 손상됐다. 꼭 인간처럼. (p. 82)

"휴머노이드를 혐오해서 누군가는 바이러스까지 풀었다. 그런 세상에 살아가면서 인간인 넌 뭘 했는가? 방관하는 것도 결국은..." (p. 99)

임하곤 <나와 올퓌>

세계적 전염병이 지나간 뒤 사람들의 삶의 형태가 완전히 바뀐 시대가 되었다. 가족이든 누구든 무조건적 거리두기로 1인1가구 시대에 인간이 하던 많은 일들을 휴머노이드가 맡게 되었다. 어느날 갑자기 인터넷에 바이러스가 퍼지고 전력이 차단되자 손녀와 연락이 끝긴 희재는 수십년간 창고에 박아두었던 태양열충전식 자동차를 꺼내 손녀에게 향한다. 가는 길에 휴머노이드 청년 한대를 구조하게 되는데 그는 자신의 이름을 올퓌 라고 했다. 오르페우스의 약자인 올퓌.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 전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나만이라도 그런 불평등한 관계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애초에 내가 올퓌에게 정식으로 금지 명령을 내린 적도 없었다. 원래 진정한 관계에 강요나 강제 따위는 필요하지 않은 법이니까. (p. 104)

휴머노이드를 꺼려하던 희재였지만 올퓌와 함께 손녀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게 되면서 희재는 휴머노이드란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초창기 인피니티3호의 별명은 '윤리적인 뇌'였다. 인피니티 3호가 뇌 신경세포 간의 연결을 조정해서 윤리적인 판단과 감정 조절 기능을 강화하는 것을 강조한 표현이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폭력이나 학대사건이 눈에 띄게 감소했고 양극성 정동장애 환자의 조증 삽화가 짧아지거나 증상이 완화됐다. 그런데 우울증은 환자 수가 조금 줄었을 뿐 발병 빈도나 증상이 뚜렷하게 개선되진 않았다. 인류의 과반수가 인피니티 3호를 장착한 뒤로는 획기적인 예술 작품이나 발명품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회에서 용인되는 행동에 대한 기준에 점점 더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다. (p. 116)

최희라 <영원>

'반세기 전에 내가 내린 결정을 씨앗 삼아 현재의 세계가 만들어졌다. 곧 종료될 내 뇌가 불러들일 미래는 어떨까. 그것이 어떻든 그에게는 내어줄 수 없다. 방문자가 떠난 뒤 책상 서랍을 열어 총을 꺼낸다. (p. 117)' 한설박사는 노년의 나이가 되어 죽음이 목전에 왔다고 느껴졌을때 어렵게 구식 총을 구했다. 자신의 뇌를 '그'가 스캔할 수 없도록. 뇌를 통째로 날리기 위해. 인류에게 인피니트를 장착하게 만든 '그'는 반세기전 한설박사가 만났을때 어린 소년이었다. 가정폭력의 피해에서 구조된 천재소년 '영원'이었다.

"정신노동은 대체로 인간관계에 따른 스트레스를 수반합니다. 감정적 에너지가 거의 고갈되는 거죠. 그래서 피하는 거예요. 감정을 소모해야 할 상황 자체를 차단해버리는 식으로 말이죠. 예를 들면 돈을 주고 여러분 같은 대리인에게 상황을 넘긴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그런 점에서 여러분은 '감정 대리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라고 할 수 있겠죠" (p. 155)

여자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매번 공모에서 떨어졌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누군가의 역할을 대신하는 대리알바를 시작한다.

남자는 색소폰 연주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레슨비로는 생활비가 감당되지 않았고 그역시 대리알바를 하게 됐는데 어느날 자신처럼 대리알바로 나온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둘은 누군가의 대리가 아닌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함께하게 됐는데, 그러던 어느날 '토탈 이모션'이라는 회사에서 둘에게 동시에 연락을 해오고 둘에게 그동안의 '대리'로서의 경험을 데이터로 넘겨달라 제안한다. 토탈 이모션이 개발한 앱은 대박을 터트리고 여자와 남자는 풍족한 처우를 보장받게 되었으나 언제부턴가 여자는 토탈 이모션이 '대리'해주는 것들에 염증을 느낀다.

두 사람의 사랑은 여전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점점 공허해졌고, 형태만 유지한 채 서서히 낙엽처럼 메말라, 굳어갔다. 그렇게 점점 화석이 되어가는 사랑을 두 사람은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오가는 몸짓은 진심을 담았지만 그 모든게 AI의 산물이었다. 서로의 귓가에 속삭이는 달콤한 말들마저 AI가 제시한 가이드를 이행하는 것에 불과했다. 서로를 향한 진심이 오히려 허상의 연쇄를 빚어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결국 지쳐버렸고, 마침내 이혼에 합의했다. (p. 167)

남자는 이혼후 과거를 찬찬이 돌이켜보았다. 어디서부터가 무엇이 문제였을까... 여자는 왜 그렇게 변할수밖에 없었을까... 자신이 어떻게 해야 했을까...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내가 그 자리에 함께해도 될까요? 나는 색소폰만 연주할게요. 당신과 당신 애인이 있는 자리에서 연주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비용을 지불하겠습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두 사람 곁에서 연주하게 해주세요. 액수는 상관없습니다." (p. 169, 170)

남자는 오래 묵혀둔 색소폰을 들고 무작정 거리에 나갔다. 그리고 낡은 기술로 녹슨 색소폰을 연주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남자는 그렇게 10여년간 더 대가를 지불하고 색소폰을 연주하다 행복하게 죽었지만 자신의 그 행동이 사회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고 어떤 산업을 탄생시킬지 전혀 알지 못했다. '물질적 빈부는 이제 공감과 연민의 빈부로 확장되었다. (p. 173)'

"이건 회사 공식 지침이야. 그리고 정부에서도 버전 4이하의 도덕을 소유한 자는 일 시키지 말라더군" (p. 188)

클레이븐 <도덕을 도매가에 팝니다>

정수는 택배기사다.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처지였기에 최신 버전의 도덕을 업그레이드할 비용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날 도덕을 업그레이드 해오지 않으면 퇴사하라는 통보를 받는다. 정수는 일단 도덕 버전을 알아보러 가지만 업그레이드 된 도덕은 점점더 이상해져가고 있어 보였다.

처음엔 별거 없겠거니 싶었는데 불행히도 도덕4.7 베타와 5.0 베타는 많은 차이를 보였다. 우선 이성애와 동성애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사랑은 경계의 대상에서 혐오의 대상으로 격상되었다. 이제 인간은 오로지 도덕만을 사랑할 수 있었다. 또한, 라면과 만두를 함께 먹는 것은 새로 비도덕적 범주에 편입되었다. 몸에 해롭기 때문이었다. (중략) 그는 전에 도덕법을 어긴 사람을 본 적 있었다. 길거리에 깡통을 버린 여자였다. 깡통을 버리기 무섭게 여자는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아 다리가 마비되었다고 소리를 쳤다. 몇 분 뒤, 경찰이 와서 연행할 때까지 여자를 돕는 이는 없었다. (p. 195)

사람들의 척추에는 도덕칩이 내장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비용을 지불하며 꾸준이 그 도덕칩을 업그레이드 시켜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업그레이드 된 도덕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일은 '도덕법 위반' 이라는 글자를 이마에 새긴 죄인들을 법원 광장에서 폭행하고 화형시키는 것이었다. 정수는 갈수록 '도덕'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살기위해선 업그레이드 시켜야 했다. 그러다 옆집 할머니의 칩을 훔칠 생각까지 하게되었고 갑작스런 화재로 정수는 오히려 느닷없이 영웅이 된다.

임신 방식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여성 임신은 64.2퍼센트, 움시스 임신은 26.7퍼센트, 남성 임신은 9.1퍼센트 였다. (p. 225)

강윤정 <대통령의 자장가>

지수는 대통령이었고 인공자궁인 움시스 임신을 진행중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지수의 움시스가 납치된다. 납치법을 추적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난다.

기본 소득이 보편화되고 10년 정도가 지나면서 사람들은 직업이 없는 삶에 적응했다. 비관론자들의 예상처럼 모두가 무기력하고 게으르게 살지는 않았다. 무료함을 주된 원인으로 하는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으나, AI 시대의 개막 전, 경제적 빈곤 때문에 우울증을 앓던 사람들의 쉬에 비하면 현저히 적었다. 무직자 중 대다수는 현실세계나 가상세계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거나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며 살았다. (중략) 하지만 무제한 복제가 가능한 정보와는 달리, 물질적 자원을 모두가 원하는 만큼 가질수는 없었다. 결국인 그것이 기본소득 이상의 돈을 버는 유직자들이 엘리트 계층을 형성하게 된 이유였다. (p. 256)

이성탄 <정신의 작용>

기본소득이 보편화된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업없이 살아갔다.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오히려 부유하고 특수한 엘리트계층이 되어갔다. 부자들은 더더오래 살기를 바랐고 자신의 기억이라도 영원히 지속되길 바랐다. 이러한 바람을 실현시키려 노력중인 기업의 뇌공학 연구소 실장 연경은 그동안 테스트해왔던 뇌업로드 가 성공적이라 생각했었다. 처음으로 고객의 뇌를 100% 업로드 하여 신체는 죽었으나 정신은 살아있는 따라서 영생이라 부를만한 테스트 또한 성공했다고 여겨졌을 때 이유를 알수 없는 오류가 발생하여 결국 실패했다. 오류의 원인을 과정에서 연구소의 핵심연구원이었던 수연의 AI우울증에 대해서 알게 된다. 수연은 연경과 다른 가설을 세우고 있었다. '문호의 추산으로는 현존하는 인류의 어떤 컴퓨터로도 그런 연산을 해낼 수 없었다. (p. 282)' 그러다 사고가 발생했다... '당신은 당신의 정신을 수연의 뇌에 업로드하는데 동의하십니까? (p. 290)' 그렇게 둘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후배는 자신이 이번에 개발을 주도한 게임에 캐릭터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프로세스를 적용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언어인 PROLOG를 변형하여 활용한 것인데, 그는 그걸 '자기 결정 프로세스'라고 불렀다. 물론 말이 자기 결정이지 결국에는 프로그래머가 짜놓은 명령어대로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유저들 입장에서는 캐릭터가 스스로 자기 행동을 결정한다고 착각할 만큼 세련된 프로세스였다. 문제는 캐릭터가 자기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드문 확률로 오류가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베타 테스트 과정에서 그 문제가 발견되었는데 내가 오류의 양상을 묻자 그는 캐릭터가 갑자기 동작을 멈춘다고 말했다. (p. 298)

안리준 <미래의 죽음>

후배가 의뢰한 프로그램은 아무리 분석해도 오류를 찾아낼 수 없었다. 자신이 가르친 것이 뿌듯할 만큼 완벽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한 캐릭터가 마지막 선택에서 멈추는 오류를 분석하던 그에게 오히려 기이한 오류가 일어난다. 아내인 미래가 곧 죽는 영상을 본 것이다. 꿈이 아니었다. 그에겐 분명 실재한 미래체험이었다.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으나 겪은 일. 나는 이 모순된 문장 앞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겪은 일과 겪을 일 사이에 갇혀버린 셈이었다. (p. 304)' 아내인 미래는 과도하게 자신의 죽음을 걱정하는 남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고 남편의 지인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한다. '오류가 생겼으면 그걸 고쳐야 하잖아요? 그런데 선배는 지금 거꾸로 오류에 맞춰서 프로그램 전체를 뜯어고치려고 하고 있어요. 멀쩡한 선배 삶을 망치고 있다고요. 그건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p. 316)' 라는 후배의 말은 타당했다. 하지만 하지만 아내의 죽음은 아니 곧 다가올 아내의 죽음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나의 에피소드에서 한 캐릭터가 맞닥뜨리는 선택의 순간은 대략 30번쯤 되는데, 에피소드의 마지막 선택과 함께 게임이 종료된다. 게임은 리셋되고, 같은 에피소드의 첫 번째 선택부터 게임이 다시 시작된다. 이때 마지막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30번의 선택이 공교롭게도 이전 게임의 선택들과 똑같이 반복되면 마지막 선택을 앞둔 캐릭터가 갑자기 동작을 멈춘다. 후배의 설명이 끝났을 때 나는 캐릭터가 자신이 처한 부조리한 상황을 깨닫고는 스스로 멈춰버린 것 같다고 느꼈다. (p. 321)

완벽한 프로그램의 캐릭터가 일으킨 오류의 해결점은 결국 캐릭터에게 주어진 자기결정권 문제였다. 선택을 하고 또하고 또했는데 같은 결과가 된다면 그 선택을 처음부터 다시 또 반복해서 또 같은 결과가 나오기 직전 캐릭터가 멈춘 오류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절망을 느꼈을 때, 후배가 만든 게임 속 캐릭터 (p. 325)' 를 떠올린 '나'의 선택은 어찌되었은 미래의 죽음이 되고 말았다. 이 미래가 과연 아내일까 본인인일까...

9편의 단편들은 최근 SF작품 소재들로 많이 사용되는 것들을 채택했으나 저마다 다른 설정과 해석을 해놓았기에 그 중첩성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SF가 유토피아적이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SF는 디스토피아적인것 같다. 그러한 미래예언적 디스토피아는 현재에 영향을 주게 되고 현실은 그렇게 다른 미래를 준비해 간다. 이 책에서는 미래에 사용될 기술에 대한 윤리적 부분들을 많이 건드리고 있었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SF는 늘 '인간'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장르보다 오히려 인간적인 장르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다양한 색깔의 SF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그 SF가 보다 인간적인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게 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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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먼 - 장애 운동가 주디스 휴먼 자서전
주디스 휴먼.크리스틴 조이너 지음, 김채원.문영민 옮김 / 사계절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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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애인이 되었고,

시민이 되었고,

결국 내가 되었다

Being Heumann 이라는 원제를 봤을 때 Heumann 이라는 단어를 '인간'으로 순간 해석했는데 또한 그순간 이상했다. 휴먼 철자가 저거였나;;; 나의 영어사용능력은 항상 믿을 수 없으므로 검색을 해보았을때 인간이라는 단어는 Human 이었다. 그제서야 저자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묘한 발음의 동일성으로 인해 한국어로 읽으면 더욱 의미심장해지는 저자의 성씨가 '휴먼' 이었다. '휴먼이 되다' 라는 문장에 대한 한글발음적 의미로는 '인간이 되다' 혹은 '(성씨로서의)휴먼이 되다' 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이 짧은 한 문장이 곧 저자의 삶을 대표할 수 있게 되다니 장애운동가로서의 저자의 삶은 운명적인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자의 삶은 그야말로 '장애인이 되고 시민이 되고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장애인이 아니고 특이한 시민이 아니고 그저 '주디스 휴먼'이 되어가는 과정은 그토록 험난한 시간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장애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의 부모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부모님에게 그에 대해 물어본 적은 없지만, 만약 내가 그런 질문을 했더라도 부모님은 나에게 장애가 없었다면 우리 삶이 훨씬 더 나았을 것이란 식의 대답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님은 나의 장애를 수용했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이 바로 나의 부모였다. 그들의 방식이었다. (p. 10) -들어가며 中-

주디스의 부모는 나치의 만행을 피해 미국에 이민온 분들이었다. 옳지 않은 것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던 가치관을 가졌고 소아마비인 딸을 시설에 보내라는 의사의 권고를 거부했다. 주디스가 학교에 입학을 거부당하자 갖은 노력을 다해 비록 장애인전용학급에나마 뒤늦은 입학을 시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어린 주디스가 집밖에서의 경험들로 인해 상처를 받으면서도 '함께' 맞받아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부모의 교육관 영향이 컸다.

나는 아픈 사람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내가 아픈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왜 그 아이는 내게 그렇게 물어본 걸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사라졌다. 나는 아픈 사람인가? 그 아이의 눈을 통해 나 자신을 보니 주변의 빛이 사라졌다. (중략) 나는 달랐다. 항상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온 세상은 내가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픈 사람은 집 안에서 침대에 누워 있다. 아픈 사람은 밖에서 놀지 않고, 학교에 가지도 않는다. 아무도 그들이 밖에서 놀거나, 어떤 무리의 일원이 되거나, 세상의 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p. 35)

주디스가 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지날 때 한 아이가 물었다. 신기하다는 듯이 휠테어를 타고 있는 주디스를 보며 아프냐고 물었다. 어린 주디스는 아프지 않았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과 그 아이의 다름에 대해 설명할 수 없었다. 교육관계자들도 특수교육반 아이들이 공부하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특수교육반은 일종의 돌봄케어였다. 하지만 주디스는 책을 많이 읽었고 공부를 열심히 했으며 대학에 입학했다. 그렇게 교사자격증을 땄으나 신체검사에서 교사먼허를 불허당했다. 스스로 걷지 못한다는 이유로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통보받았다. 다른 모든 시험은 모두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신체검사에서 탈락했던 것이다.

나는 분노했고 마음 깊이 큰 상처를 입었다. (중략) 내 이야기를 세상에 직접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장애인이 교육, 고용, 교통 접근성 측면에서 마주하는 삶의 장벽이 일회성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리기 위해 내 이야기를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p. 91)

주디스의 장애는 재활로 치료될 수 없는 영구적인 것이었는데도 의학적인 이유로 취업을 거부당했다. 주디스는 지인들을 통해 신문에 기사를 내고 법정 소송을 시작했다. 미디어는 교육당국을 맹공격했고 천운으로 개혁성향의 판사를 만나 소송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주디스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 운을 자신만의 성공경험으로 만드는데서 그치지 않았다. 주디스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생각했고 멈출 수도 그만 둘 수도 없었다. 그렇게 정치와 법의 세계에서 '장애'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없애는 활동에 주력하게 되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3류시민으로 본다면,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당신이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당신과 함께 싸워줄 친구들이다. (p. 104~105)

1970년대 였다. 온갖 새로운 문화와 가치관들이 넘쳐나던 시대였고 온갖 새로운 활동이 태동되던 시대였다. 시대적 억압이 끝나고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겨나던 때였다. 장애를 갖고 살아가던 사람들은 늘 보이지 않던 사각지대에 있었기에 그들이 거리에 건물에 학교에 나타나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에도 우호적인 시대였다. 언론과 시민들은 대체로 장애인들의 외침에 관심을 가져주었고 그렇게 정치권과도 연결될 수 있었다. 주디스는 그러한 장애인운동의 선두주자로서 백악관에서 일할 기회가 생기기도 했고 그렇게 활동범위와 영향력은 점점 커질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장애 활동가들은 기술적인 부분을 지원하고, 엔지니어 및 재무 분석가와 이야기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논쟁하기 위해 준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해야 했다. 그 결과 더 많은 공부를 하면서 점차 전문화되기 시작했다. 이는 우리의 일이 탄력을 받는데 큰 힘이 되었다. 동시에 우리는 변화가 일어날 때 사람들이 학습 곡선상에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임을 인정해야 했다. 사람들이 장애인의 시각에서 삶을 바라보는 것에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거부감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이야기를 들려줌녀서 우리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안내해야 했다. (p. 220)

평등이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도 문제였다. 그게 아닐 때도 말이다. 평등은 공정성에 관한 이야기다. 접근 기회의 형평성에 대한 이야기다. (p. 221)

요근래 몇년간 공정하다는 생각이 착각임을 알려주는 책들이 꽤 많았었다. 자유와 평등에서 자유가 그나마 획득되었다면 평등은 아직 획득되지 못한 가치인것 같았다. 평등은 다시 공정의 문제로 이어졌다. 무엇이 공정한가? 같은 출발선상에 선다는 것이 어떤 조건들을 필요로 하는가? 한날한시에 동일한 장소에서 시험을 보는 것이 공정한가? 그 시험을 보기까지 준비하고 공부했던 과정은 결코 동일하지 않았는데? 그 시험장소에 오기까지 누군가는 자가용으로 오고 누군가는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지 못할 수도 있는데? 접근기회의 형평성이란 문제는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문제다. 게다가 주디스는 장애인 사회에서도 남녀의 처지가 다름을 체감해왔다. 장애인이자 여성인 경우 더욱 불공정한 상황에 처해지게 되곤했다.

사실 법안이 하원 위원회에서 교착 상태에 빠질 무렵까지는 미칠 것 같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민주주의는 본래 느리기 때문이다. 민주적 정부의 일은 오래 걸리고, 느리고, 힘들기 마련이다. 그래야 맞다. (p. 242)

민주주의 정부를 소중히 여기고, 그것에 지속적으로 투자한다면 우리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것이 복잡하다고 느껴질 때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복잡하고 그 과정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본래 그러해야 한다.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포함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보호하고, 미국의 다양성을 드러내는 이 모든 것은 사안을 깊이 들여다보고, 다양한 토론과 회의를 거치며, 시간이 걸리는 견제와 균형의 방식을 따르기 따르기를 민주주의에서 요구한다. 의사 결정에는 시간이 걸린다. 무엇보다 우리는 사실을 검증하고, 납득할 만한 객관성을 보이며, 내 말을 듣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정부를 원한다. (중략) 불편하고 원망스럽다고 느껴진다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p. 297~298)

저자의 투쟁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때로는 성과가 없다고 느껴질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민주주의는 그래야 맞다고 말한다. 오래 걸리고 그래서 힘들고 그래서 그 느림을 참을 수 없을 때도 있지만 그러한 민주주의여야 다양한 소통을 해내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며 다양한 입장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오바마가 잘 해놓은 일을 트럼프가 망쳐놓아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는 저자는 계속 활동해야 함을 강조한다.

'장애는 인간사의 자연스러운 한부분이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질수록, 더 많은 전쟁을 일으킬수록, 의학이 발달할수록 이전 시기라면 아마 죽었을 사람들이 점점 더 오래 살게 될 것이다. 아마도 장애를 가진 채.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을 중심으로 사회를 설계해야 한다. (p. 281)' 라는 저자의 말은 미래사회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별이 무의미해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 우리는 그동안 장애에 대해 너무나 협소한 범위로 생각해 온 것이 아닐까.

사회 안에서 전체 집단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될 때 민주주의 구조는 약화된다. 서로 거리를 두고 분리되다 보면 이해와 공감에 실패하고, 궁극적으로 불의를 초래하거나 타인의 권리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상상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나라로 서서히 변해가는 것을 내버려둔다면 우리는 차별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어떻게 느껴지는지 그 복잡성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면 불평등과 가난의 책임을 사회 구조가 아니라 개인에게도 쉽게 돌리게 된다. 서로를 비난하는 데만 급급한다면 평등을 중요하고 가치있게 여기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겠는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종종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수동적인 태도, 즉 우리가 혼자이고 개별적인 목소리일 뿐이라고 느끼는 데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모두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p. 300~301)

저자의 인생역정을 고스란히 담은 이야기들은 생생했고 읽을수록 그 생동감에 빠져들어 읽게 되는 책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첫 페이지의 문장이 문득 생각났다.

'무엇보다 '나 홀로'가 아니라 '우리'였다는 말을 먼저 해야겠다. (p. 20)'

저자는 늘 '함께'였다. 그것은 물론 운이 좋아서였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저자의 노력이 통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이고 따라서 함께일때 그 해결능력도 높아지게 된다. 사회가 갈수록 개개인으로 분리고립 시키고 민주주의는 갈수록 더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꾸준히 느리게 '함께' 해야 한다. 당장 눈앞에 한쪽으로 치우친 빠른 해결법을 강조하는 이들을 조심하자. 느리지만 합리적인 해결을 위해 우리는 계속 '함께' 소통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장애운동가의 삶의 이야기이자 함께하는 소통의 이야기로 의미있게 읽히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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