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소피 유니버스 - 29인 여성 철학자들이 세상에 던지는 물음
수키 핀 지음, 전혜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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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질문과 깊이 있는 대답이 빚어낸 더 나은 삶

'29인 여성 철학자들이 세상에 던지는 물음'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이 책은 '물음'이 아닌 '대답'을 모은 책에 가깝다. '좋은 질문과 깊이 있는 대답'은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철학의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철학적 질문과 답을 여성철학자들에게 한다면 무엇이 다를까? 아니... 다른가??

이 책의 원제는 'women of ideas : interviews from philosophy bites' 인데 구글번역기에 의하면 '아이디어의 여성: 철학 물음에서 인터뷰'라고 한다. 제목이 어째 좀 부자연스럽다;;; 여성 철학자들의 생각도 아니고 여성의 아이디어들도 아니고 아이디어의 여성 은 어떤 의미일까? 철학 물음으로부터의 인터뷰 라는 것도 그렇고;;; 이해할 수 없는 원제 때문일까, 나는 원래 번역서의 원제를 존중하는 편이지만 이 책은 한글판 제목이 더 나은 것도 같다;;;

이 책은 철학자 나이절 워버턴과 데이비드 에드먼즈가 <철학 한입>이라는 팟캐스트를 운영하면서 진행한 인터뷰를 모아 엮은 인터뷰 모음집이다. <철학 한입>은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4천만 이상의 다운로드 수를 기록했으며, 옥스퍼드대학교 출판사를 통해 <철학 한입> <철학 한입 더> <다시 철학 한입>이라는 총 3권의 시리즈 책이 발간되었다. (중략) 팟캐스트 <철학 한입>에서 영향력 있는 여성들과 나눈 인터뷰를 찾아보니 거의 100편에 달했다. 하나같이 흥미로운 주제들이었다. 이 중에서 30편 이내로 고르자니 고난에 가까웠다. (p. 373~374)-감사의 말 中-

이 책은 영국의 두 철학자가 진행했던 팟캐스트 인터뷰들 중 29명의 영미권 여성 철학자들 인터뷰를 골라 엮은 책인 것 같다. 두 명의 인터뷰어 중 '나이절 워버턴'은 <철학의 역사>라는 책을 읽고 느꼈던바 쉽고 재밌는 철학이야기로 이미 신뢰할 만한 저자였기에 팟캐스트를 바탕으로 나온 책만으로도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필로소피 유니버스> 를 엮은 수키 핀 저자는 '여성 철학자'들만 따로 모으는 것도 또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정리한 내용들을 소개하기에 앞서 29명의 여성철학자들에게 '여자로서 철학을 한다는 건?' 이라는 질문을 하고 그 답을 모은 것들로 책의 서문을 대신한다.

여성철학자가 되기까지 누군가는 '여성'을 그닥 의식하지 못했고 누군가는 힘들었으나 결국엔 그저 '철학자'로서 그 생각의 깊이를 함께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철학자'는 여전히 희소하기에 그들의 생각은 비슷하면서 또 달랐다. 책의 의도에 분명 '여성' 이라는 중심 주제가 있었기에 여자란 누구이며 남녀의 본질은 무엇인지로 시작하는 인터뷰의 주제순서는 이 책의 맥락을 따라가는 데 의미가 있는 시작이었다.

페미니즘은 정치적 운동이에요. 정치적 운동은 누구를 포함하고 배제할 것인지, 누구와 연대하고 연대하지 않을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포괄적이지 못한 페미니즘은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아주 좋다고 할 수 없어요. 정치적 목적과 페미니즘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어떤 식으로 연대해야 하는지, 다시 말해 가부장제에 맞서 누구와 함께 싸울 것인지를 두고 '여자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그 싸움에서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이미 싸움터에 있고요. (p. 33~34)

첫 주제가 '여성'관련 질문인만큼 페미니즘 이야기가 안 나오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페미니즘 책은 아니다. 여성 철학자가 여성 관련 질문에 대한 답을 한다고 해서 모두 페미니즘 이라고 단언하면 안되지 않을까?

페미니스트들은 남녀의 기질이 선천적으로 다르다는 진화론적 주장을 전면 거부하고 싶을 거예요. 성 역할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과 진화론적 주장이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는 듯 보이잖아요. 그렇지만 그건 오해에요. 진화론적 입장이 보수파와 같아 보일지라도 이 둘은 서로 결이 다르고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진화론측 과학자들은 절대 변할 수 없는 타고난 남성성과 여성성을 이야기해요. 남녀는 다르다는 둥 서로 그만의 특징이 있다는 둥 이런 식의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단지 남녀의 타고난 기질과 일반적인 차이에 대해 말할 뿐이에요. 남녀를 다르게 대우해야 한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에요. 과거 보수파 주장과 현대 진화론적 입장 간의 차이를 분명히 이해해야 해요. 페미니스트들이 원하는 변화가 무엇이든 생물학적 작용을 거부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어요. 페미니스트들이 맞서야 하는 건 광범위하게 퍼진 진화론적 주장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왜곡이에요. (p. 49~50)

남녀의 본질을 따지면 신체구조적 차이를 말하지 않을 수 없고 진화론적 인식을 바탕으로 얼마나 상반된 주장이 가능한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철학적 사고와 질문은 여성철학자이건 남성철학자이건 상관없이 그저 인간으로서 철학자로서 가능하고 또 실제 그렇게 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따라서 여성철학자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페미니즘적 질문으로 시작한 이 책은 '성'구분이 딱히 필요없어 보이는 질문 동시에 어떻게 보면 '성 역할의 구분에 절대적 기준'처럼 여겨지고 있는 '과학'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물론 이 철학질문들의 흐름은 엮은이의 편집방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제들의 편집방향을 훑다보면 이 책의 가치가 첫장을 펼칠때와 또다른 기분으로 마무리하게 되는데,

과학이 이타성의 필요 여부까지 판단해줄 수 있을까? 동물의 도덕적 지위는 어디까지일까?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을까? 과거에는 당연했으나 지금은 용인할 수 없는 행동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인간의 사회적 교류는 권리일까? 등의 과학과 관련된 철학적 질문은 진화론을 넘어 과학이 증명해주는 철학적 논리들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국가와 개인의 관계, 다문화주의와 자유주의, 암묵적 편견, 혐오, 취향차이, (의료)사전 동의서 등의 주제들은 여성철학자들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갑을의 관계가 약간 바뀐것 같은 입장에서의 철학자들의 대답을 들으며,

언어와 맥락, 욕설, 교양, 신뢰 등의 주제에 대해서는 각 항목들의 새로운 정의랄까... 현대철학의 새로운 사고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고,

'안다'는 것, 직관적 앎, 미셀 푸코와 지식, 보부아르의 삶과 업적, 메를로 퐁티와 신체, 흄과 불교, 아프리카 철학, 플라톤과 전쟁 등의 주제에서는 선배?!철학자들의 견해를 현대철학자들이 어떻게 발전시켜왔는지 살펴 보며,

가능세계, 철학자들의 비유법, 철학의 발전, 철학과 대중의 삶 등의 주제에 대해선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대한 정리를 하고 나면

어느새 책의 마지막장을 덮게 되는데

그렇가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책은 29명의 여성철학자들의 의견들 이라기 보다 그냥 현대 철학자들의 다양한 연구주제들을 흥미롭게 읽고난 기분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저자는 여성철학자들을 묶은 것으로 여성철학자들을 강조하는 것처럼 시작하지만 결국은 철학을 하는데 있어 여성이건 남성이건 그러한 구분은 필요치 않고 중요치도 않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그보다는 세상 모든 고민을 포용할 수 있는 철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턱을 좀더 낮추어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철학자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도덕 발전과 사회 진보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항상 그 시작은 철학적 논쟁이었고요. (p. 360)

철학자만이 삶을 관통하는 철학 문제를 논해야 한다면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요. 인간이라면 내가 왜 그렇게 믿고 행동하며, 왜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지에 대해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전문가에요. 그런데 학교에서 배웠다는 일부 지식인들은 이러한 인간의 핵심 활동이 본인들의 영역이라고 말해요. 타인의 인간성을 깍아내린다고밖에 볼 수 없어요. 이게 플라톤이 창조한 바로 그 분야예요. 즉 철학에 암시되어 있던, 플라톤이 꼬집은 진짜 문제요. 플라톤은 철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재능 없는 플루트 연주자처럼 유연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사회를 재배열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이 방식에 동의하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적어도 이 문제를 발견한 플라톤의 공로만은 인정해야 겠죠. 화이트헤드가 말했던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이 말에 숨은 뜻은 바로 이거에요. (p. 362~363)

마지막 인터뷰는 철학과 대중의 삶이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 철학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형식적 관행에 얽매여 있는지 안타까워 하는 철학자가 '저는 철학을 이제 대학 강의실보다는 학교 교실에서 가르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p. 372)' 말하는 것으로 끝맺음된다. 현대철학자들의 형식성을 비판하는 이면에는 분명 여성철학자들에 대한 차별이 없지않아 있었다. 하지만 몇몇 철학자들의 생각만 읽어보아도 곧 깨달아지는 것이다. 철학을 하는데에는 그러한 성역할도 철학자이냐 아니냐도 사실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러니 우리 모두 철학을 하자.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고민을 반으로 뚝 줄어들게 하는 것이 철학의 힘이니까. 철학은 저마다의 인생고민을 모두 포함할 수 있는 그런 거니까. 쓸데 없어보이는 고민들도 계속되고 확장된다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되게하는 것이니까. 그게 바로 철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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