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 - 신진 작가 9인의 SF 단편 앤솔러지 네오픽션 ON시리즈 1
신조하 외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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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휴머노이드, 가상세계를 소재로

진정한 '인간다움'에 대해 탐구하는,

신진 작가 9인의 강렬한 감성 SF 단편 앤솔러지

새로운 작가들을 알게 될 때마다 세상엔 대체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엔 한권에 여러 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앤솔러지형 책이 많아서 한꺼번에 신진작가들을 만나게 될 때면 더더욱 놀라게 된다. 씨앗이 심어져 있는줄도 몰랐는데 봄이면 여기저기서 돋아나는 파릇한 새싹을 보며 감탄하게 되는 기분이랄까. SF 라는 장르가 다른 장르보다 좀더 새로움을 많이 느끼게 하는 장르이긴 하지만 이렇게 한권으로 신진작가 9명의 새로운 SF를 읽는 경험은 또다른 즐거움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뇌가 없다.

뇌가 없는 변호사다.

자조하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무뇌증으로 태어난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는 건 '투명한 뇌' 기술 덕분이고, 실질적으로 나는 뇌가 없는 존재니까. (p. 9)

신조하 <인간의 대리인> 中

판사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된 지는 오래이지만 '투명 뇌'를 이식받은 일명 ALP가 변호사 자격을 얻는데는 여러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ALP는 AI가 아니었고 투명뇌는 인공지능이 아니었기에 변호사 자격증은 인정되었다. 다만 취업이 되질 않았다. 그러다 작은 법률사무소에 취직이 되긴 했는데 국선변호사 업무를 전담하다시피 하는 소소한 사무실이었다. 사무실 대표가 AI와 ALP를 구분하지 못하여 발생한 일이었지만 그럭저럭 잘 타협하며 소소하게 지내던 중이었다. 거대제약회사가 개발한 치매약을 테스트복용한 사람들이 좀비상태가 되고 피해자 가족들이 소송을 냈으나 그들은 거대로펌과 계약할 돈이 없었고 그렇게 국선변호사와 다름없던 김변이 사건변호를 맡게 된다. 투명뇌를 가진 변호사인 김변호사.

나는 인간의 기능을 상실한 인간은 마땅히 죽는 것이 인간의 존엄에 부합한다고 주장하는 무뇌 변호사다 그는 변을 지리며 미친개처럼 바닥을 기는 인간이라도 살아 있을 가치가 있다고 믿는 엘리트 변호사고. 그 가치가 실험용 쥐 정도라 해도. (p. 29)

나는 알게 된다. 인간이 되고 싶은 존재는 인간이 아니다. (p. 38)

인간을 변호할 수 있는 건 인간이 아닌 자일 것이다. (p. 39)

스스로의 뇌를 해파리라 부르며 자신이 인간인지 아닌지 되묻곤 하던 김변은 이 사건을 변호하며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다. 기계들이 보내오는 신호를 해파리가 뇌파로 읽어내고 감응할 수 있기에 자신의 투명뇌는 인간들의 뇌와 다르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기계라고 볼 수도 없던 자기자신에 대해.

예에, 그럼 베타파가 희미해지고, 스키마가 능동적으로 정보를 분석하지 못한다고 보면 됩니까? 아! 당연히 그냥 그러면 신경안정제나 마약류하고 차이가 없겠네요. 상대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한다라.... 신기하네요. 이 기계는 어떻게 그런 작용을 할 수 있습니까? (p. 47)

유이립 <스키마 리셋터>

어느 대학교의 연구팀이 스키마 리셋터 라는 것을 개발하여 테스트 중이었다. 마침 당시 굴지의 자동차기업에서 노사분쟁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회사측과 노조대표 그리고 하청업체 대효는 이 스키라 리셋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용하고 싶어한다. 교수와 의견이 달랐던 조교는 이 세명을 따로 접촉하고 허락받지 못한 테스트를 시행하려 한다. 하지만...

"자네, 나한테 리셋터를 사용해서 무엇을 이루려 하나?"

"제가 옳았다는 것을 가르쳐드리려고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어차피 난 제정신으로 돌아올 텐데? 리셋터는 잠시 생각을 바꿀 뿐이야. 자네는 한순간만 옳게 되겠지. 그런데 나는 왜 자네한테 리셋터를 사용하려는 걸까?"

"......"

"나는 잠시 생각을 바꿀 뿐이지 세상은 바꿀 수 없다는 걸 자네에게 영원히 기억시키려고 사용하네" (p. 75)

두 대의 리셋터가 분실되었고 그중 한대만 사용되었다. 하지만 누가 누구에게 사용한 것일까...

원래부터 휴머노이드들이 이렇게 고장에 취약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인간과 비슷하게 발전시키면서 점점 더 약해졌다. 꼭 그 옛날, 전화만 되던 핸드폰보다 그다음 세대의 스마트 핸드폰이 쉽게 망가지던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요즘의 휴머노이드들은 한번 방전되면 메모리도 완전히 손상됐다. 꼭 인간처럼. (p. 82)

"휴머노이드를 혐오해서 누군가는 바이러스까지 풀었다. 그런 세상에 살아가면서 인간인 넌 뭘 했는가? 방관하는 것도 결국은..." (p. 99)

임하곤 <나와 올퓌>

세계적 전염병이 지나간 뒤 사람들의 삶의 형태가 완전히 바뀐 시대가 되었다. 가족이든 누구든 무조건적 거리두기로 1인1가구 시대에 인간이 하던 많은 일들을 휴머노이드가 맡게 되었다. 어느날 갑자기 인터넷에 바이러스가 퍼지고 전력이 차단되자 손녀와 연락이 끝긴 희재는 수십년간 창고에 박아두었던 태양열충전식 자동차를 꺼내 손녀에게 향한다. 가는 길에 휴머노이드 청년 한대를 구조하게 되는데 그는 자신의 이름을 올퓌 라고 했다. 오르페우스의 약자인 올퓌.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 전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나만이라도 그런 불평등한 관계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애초에 내가 올퓌에게 정식으로 금지 명령을 내린 적도 없었다. 원래 진정한 관계에 강요나 강제 따위는 필요하지 않은 법이니까. (p. 104)

휴머노이드를 꺼려하던 희재였지만 올퓌와 함께 손녀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게 되면서 희재는 휴머노이드란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초창기 인피니티3호의 별명은 '윤리적인 뇌'였다. 인피니티 3호가 뇌 신경세포 간의 연결을 조정해서 윤리적인 판단과 감정 조절 기능을 강화하는 것을 강조한 표현이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폭력이나 학대사건이 눈에 띄게 감소했고 양극성 정동장애 환자의 조증 삽화가 짧아지거나 증상이 완화됐다. 그런데 우울증은 환자 수가 조금 줄었을 뿐 발병 빈도나 증상이 뚜렷하게 개선되진 않았다. 인류의 과반수가 인피니티 3호를 장착한 뒤로는 획기적인 예술 작품이나 발명품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회에서 용인되는 행동에 대한 기준에 점점 더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다. (p. 116)

최희라 <영원>

'반세기 전에 내가 내린 결정을 씨앗 삼아 현재의 세계가 만들어졌다. 곧 종료될 내 뇌가 불러들일 미래는 어떨까. 그것이 어떻든 그에게는 내어줄 수 없다. 방문자가 떠난 뒤 책상 서랍을 열어 총을 꺼낸다. (p. 117)' 한설박사는 노년의 나이가 되어 죽음이 목전에 왔다고 느껴졌을때 어렵게 구식 총을 구했다. 자신의 뇌를 '그'가 스캔할 수 없도록. 뇌를 통째로 날리기 위해. 인류에게 인피니트를 장착하게 만든 '그'는 반세기전 한설박사가 만났을때 어린 소년이었다. 가정폭력의 피해에서 구조된 천재소년 '영원'이었다.

"정신노동은 대체로 인간관계에 따른 스트레스를 수반합니다. 감정적 에너지가 거의 고갈되는 거죠. 그래서 피하는 거예요. 감정을 소모해야 할 상황 자체를 차단해버리는 식으로 말이죠. 예를 들면 돈을 주고 여러분 같은 대리인에게 상황을 넘긴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그런 점에서 여러분은 '감정 대리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라고 할 수 있겠죠" (p. 155)

여자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매번 공모에서 떨어졌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누군가의 역할을 대신하는 대리알바를 시작한다.

남자는 색소폰 연주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레슨비로는 생활비가 감당되지 않았고 그역시 대리알바를 하게 됐는데 어느날 자신처럼 대리알바로 나온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둘은 누군가의 대리가 아닌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함께하게 됐는데, 그러던 어느날 '토탈 이모션'이라는 회사에서 둘에게 동시에 연락을 해오고 둘에게 그동안의 '대리'로서의 경험을 데이터로 넘겨달라 제안한다. 토탈 이모션이 개발한 앱은 대박을 터트리고 여자와 남자는 풍족한 처우를 보장받게 되었으나 언제부턴가 여자는 토탈 이모션이 '대리'해주는 것들에 염증을 느낀다.

두 사람의 사랑은 여전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점점 공허해졌고, 형태만 유지한 채 서서히 낙엽처럼 메말라, 굳어갔다. 그렇게 점점 화석이 되어가는 사랑을 두 사람은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오가는 몸짓은 진심을 담았지만 그 모든게 AI의 산물이었다. 서로의 귓가에 속삭이는 달콤한 말들마저 AI가 제시한 가이드를 이행하는 것에 불과했다. 서로를 향한 진심이 오히려 허상의 연쇄를 빚어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결국 지쳐버렸고, 마침내 이혼에 합의했다. (p. 167)

남자는 이혼후 과거를 찬찬이 돌이켜보았다. 어디서부터가 무엇이 문제였을까... 여자는 왜 그렇게 변할수밖에 없었을까... 자신이 어떻게 해야 했을까...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내가 그 자리에 함께해도 될까요? 나는 색소폰만 연주할게요. 당신과 당신 애인이 있는 자리에서 연주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비용을 지불하겠습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두 사람 곁에서 연주하게 해주세요. 액수는 상관없습니다." (p. 169, 170)

남자는 오래 묵혀둔 색소폰을 들고 무작정 거리에 나갔다. 그리고 낡은 기술로 녹슨 색소폰을 연주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남자는 그렇게 10여년간 더 대가를 지불하고 색소폰을 연주하다 행복하게 죽었지만 자신의 그 행동이 사회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고 어떤 산업을 탄생시킬지 전혀 알지 못했다. '물질적 빈부는 이제 공감과 연민의 빈부로 확장되었다. (p. 173)'

"이건 회사 공식 지침이야. 그리고 정부에서도 버전 4이하의 도덕을 소유한 자는 일 시키지 말라더군" (p. 188)

클레이븐 <도덕을 도매가에 팝니다>

정수는 택배기사다.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처지였기에 최신 버전의 도덕을 업그레이드할 비용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날 도덕을 업그레이드 해오지 않으면 퇴사하라는 통보를 받는다. 정수는 일단 도덕 버전을 알아보러 가지만 업그레이드 된 도덕은 점점더 이상해져가고 있어 보였다.

처음엔 별거 없겠거니 싶었는데 불행히도 도덕4.7 베타와 5.0 베타는 많은 차이를 보였다. 우선 이성애와 동성애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사랑은 경계의 대상에서 혐오의 대상으로 격상되었다. 이제 인간은 오로지 도덕만을 사랑할 수 있었다. 또한, 라면과 만두를 함께 먹는 것은 새로 비도덕적 범주에 편입되었다. 몸에 해롭기 때문이었다. (중략) 그는 전에 도덕법을 어긴 사람을 본 적 있었다. 길거리에 깡통을 버린 여자였다. 깡통을 버리기 무섭게 여자는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아 다리가 마비되었다고 소리를 쳤다. 몇 분 뒤, 경찰이 와서 연행할 때까지 여자를 돕는 이는 없었다. (p. 195)

사람들의 척추에는 도덕칩이 내장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비용을 지불하며 꾸준이 그 도덕칩을 업그레이드 시켜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업그레이드 된 도덕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일은 '도덕법 위반' 이라는 글자를 이마에 새긴 죄인들을 법원 광장에서 폭행하고 화형시키는 것이었다. 정수는 갈수록 '도덕'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살기위해선 업그레이드 시켜야 했다. 그러다 옆집 할머니의 칩을 훔칠 생각까지 하게되었고 갑작스런 화재로 정수는 오히려 느닷없이 영웅이 된다.

임신 방식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여성 임신은 64.2퍼센트, 움시스 임신은 26.7퍼센트, 남성 임신은 9.1퍼센트 였다. (p. 225)

강윤정 <대통령의 자장가>

지수는 대통령이었고 인공자궁인 움시스 임신을 진행중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지수의 움시스가 납치된다. 납치법을 추적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난다.

기본 소득이 보편화되고 10년 정도가 지나면서 사람들은 직업이 없는 삶에 적응했다. 비관론자들의 예상처럼 모두가 무기력하고 게으르게 살지는 않았다. 무료함을 주된 원인으로 하는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으나, AI 시대의 개막 전, 경제적 빈곤 때문에 우울증을 앓던 사람들의 쉬에 비하면 현저히 적었다. 무직자 중 대다수는 현실세계나 가상세계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거나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며 살았다. (중략) 하지만 무제한 복제가 가능한 정보와는 달리, 물질적 자원을 모두가 원하는 만큼 가질수는 없었다. 결국인 그것이 기본소득 이상의 돈을 버는 유직자들이 엘리트 계층을 형성하게 된 이유였다. (p. 256)

이성탄 <정신의 작용>

기본소득이 보편화된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업없이 살아갔다.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오히려 부유하고 특수한 엘리트계층이 되어갔다. 부자들은 더더오래 살기를 바랐고 자신의 기억이라도 영원히 지속되길 바랐다. 이러한 바람을 실현시키려 노력중인 기업의 뇌공학 연구소 실장 연경은 그동안 테스트해왔던 뇌업로드 가 성공적이라 생각했었다. 처음으로 고객의 뇌를 100% 업로드 하여 신체는 죽었으나 정신은 살아있는 따라서 영생이라 부를만한 테스트 또한 성공했다고 여겨졌을 때 이유를 알수 없는 오류가 발생하여 결국 실패했다. 오류의 원인을 과정에서 연구소의 핵심연구원이었던 수연의 AI우울증에 대해서 알게 된다. 수연은 연경과 다른 가설을 세우고 있었다. '문호의 추산으로는 현존하는 인류의 어떤 컴퓨터로도 그런 연산을 해낼 수 없었다. (p. 282)' 그러다 사고가 발생했다... '당신은 당신의 정신을 수연의 뇌에 업로드하는데 동의하십니까? (p. 290)' 그렇게 둘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후배는 자신이 이번에 개발을 주도한 게임에 캐릭터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프로세스를 적용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언어인 PROLOG를 변형하여 활용한 것인데, 그는 그걸 '자기 결정 프로세스'라고 불렀다. 물론 말이 자기 결정이지 결국에는 프로그래머가 짜놓은 명령어대로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유저들 입장에서는 캐릭터가 스스로 자기 행동을 결정한다고 착각할 만큼 세련된 프로세스였다. 문제는 캐릭터가 자기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드문 확률로 오류가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베타 테스트 과정에서 그 문제가 발견되었는데 내가 오류의 양상을 묻자 그는 캐릭터가 갑자기 동작을 멈춘다고 말했다. (p. 298)

안리준 <미래의 죽음>

후배가 의뢰한 프로그램은 아무리 분석해도 오류를 찾아낼 수 없었다. 자신이 가르친 것이 뿌듯할 만큼 완벽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한 캐릭터가 마지막 선택에서 멈추는 오류를 분석하던 그에게 오히려 기이한 오류가 일어난다. 아내인 미래가 곧 죽는 영상을 본 것이다. 꿈이 아니었다. 그에겐 분명 실재한 미래체험이었다.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으나 겪은 일. 나는 이 모순된 문장 앞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겪은 일과 겪을 일 사이에 갇혀버린 셈이었다. (p. 304)' 아내인 미래는 과도하게 자신의 죽음을 걱정하는 남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고 남편의 지인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한다. '오류가 생겼으면 그걸 고쳐야 하잖아요? 그런데 선배는 지금 거꾸로 오류에 맞춰서 프로그램 전체를 뜯어고치려고 하고 있어요. 멀쩡한 선배 삶을 망치고 있다고요. 그건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p. 316)' 라는 후배의 말은 타당했다. 하지만 하지만 아내의 죽음은 아니 곧 다가올 아내의 죽음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나의 에피소드에서 한 캐릭터가 맞닥뜨리는 선택의 순간은 대략 30번쯤 되는데, 에피소드의 마지막 선택과 함께 게임이 종료된다. 게임은 리셋되고, 같은 에피소드의 첫 번째 선택부터 게임이 다시 시작된다. 이때 마지막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30번의 선택이 공교롭게도 이전 게임의 선택들과 똑같이 반복되면 마지막 선택을 앞둔 캐릭터가 갑자기 동작을 멈춘다. 후배의 설명이 끝났을 때 나는 캐릭터가 자신이 처한 부조리한 상황을 깨닫고는 스스로 멈춰버린 것 같다고 느꼈다. (p. 321)

완벽한 프로그램의 캐릭터가 일으킨 오류의 해결점은 결국 캐릭터에게 주어진 자기결정권 문제였다. 선택을 하고 또하고 또했는데 같은 결과가 된다면 그 선택을 처음부터 다시 또 반복해서 또 같은 결과가 나오기 직전 캐릭터가 멈춘 오류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절망을 느꼈을 때, 후배가 만든 게임 속 캐릭터 (p. 325)' 를 떠올린 '나'의 선택은 어찌되었은 미래의 죽음이 되고 말았다. 이 미래가 과연 아내일까 본인인일까...

9편의 단편들은 최근 SF작품 소재들로 많이 사용되는 것들을 채택했으나 저마다 다른 설정과 해석을 해놓았기에 그 중첩성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SF가 유토피아적이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SF는 디스토피아적인것 같다. 그러한 미래예언적 디스토피아는 현재에 영향을 주게 되고 현실은 그렇게 다른 미래를 준비해 간다. 이 책에서는 미래에 사용될 기술에 대한 윤리적 부분들을 많이 건드리고 있었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SF는 늘 '인간'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장르보다 오히려 인간적인 장르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다양한 색깔의 SF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그 SF가 보다 인간적인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게 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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