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러지는 말들 - 사회언어학자가 펼쳐 보이는 낯선 한국어의 세계,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백승주 지음 / 타인의사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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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차별의 시대, 지금 여기의 말들을 다시 들여다보다

우리는 단일민족국가, 단일언어 사용이라는 표현등으로 '공통된 하나' 라는 일체감을 너무 깊이 각인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 공유된 하나가 아니라고 여겨질때면 더욱 가차없이 혐오와 차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그런 공통의 일체감이 가리고 있던 균열들을 보여준다. 다름아닌 우리의 언어를 통해서. 순수를 위해 거부되고 미끄러지고 있는 말들이 내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자신이 실제 사용하는 언어를 부정한다. 그러면서도 이를 인지하지조차 못한다. 외계인들 입장에서는 사뭇 생경하게 느껴질 풍경이다. 그러니까 이 글을 통해서 내가 하려는 일은 이런 것이다. 외계인의 눈으로 사회와 언어, 삶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들여다보는 것. 당연하다는 듯 지나치는 그 '접촉의 순간'들을 정지 버튼을 누르고 살펴보는 것.

어쨌든 부디 다른 평행 우주에 있는 내가 여러분과 지구를 구할 수 있기를 빌어 본다. 그런데 우리들 사이에 숨어 있는 외계인이 한국어 초급 교재풍으로 이렇게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이게 책입니까" 네, 책입니다. (p. 6~7)-프롤로그 中-

저자는 사회언어학자로서 아주 적당한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후 대학내 한국어교육원에서 10년동안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다음 지금은 5.18의 도시에서 전남대 한국어교육학과 사회언어학 교수로 있다. 나는 내가 사용하는 말과 글에 대해 타자로서 생각하거나 경험해본 적이 없는데 저자는 시종일관 타자의 입장에서 한국어를 익히고 배우고 가르쳐온 것이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들려주는 사투리에 관련된 경험이나 외국인들의 한국어에 대한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진실되게 다가오고 공감대가 남다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뒤늦게 내가 사용하는 말과 글이 휘둘러온 혐오와 차별을 깨닫기 시작한다.

<어벤져스>시리즈를 모두 섭렵한 아들에게 우주란 하나의 우주인 유니버스가 아니라 당연히 멀티버스, 곧 다중 우주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 우주는 하나였다. 슈퍼맨의 고향 별인 크립톤 행성은 지구로부터 50광년 떨어져 있고, <스타워즈>는 '오래 전 멀고 먼 은하계' 저 너머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 우주는 내가 속한 나의 우주다. 내게 우주는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내가 속한 우주의 저 반대편, 그곳에서 산다는 제다이 기사들의 '포스'를 생각하다, 문득 우주의 언어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단일한 우주이기는 하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는 광대한 우주, 얼마나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인지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스타워즈에서는 외계인들이 영어가 아닌 온갖 종류의 다른 언어를 구사한다. 이를테면 스타워즈의 우주는 다중 언어의 세계다. 이와 달리 <어벤져스>의 우주 '들'에서는 영어라는 단일한 언어가 사용된다. 우주의 끝 타이탄 행성에서 온 최강의 악당 타노스도 영어를 사용하고, 아스가르드 왕국의 왕자 토르도 영어를 사용한다. <어벤져스>의 세계는 다중 우주이지만 단일 언어가 사용되는 곳이다. (p. 22~23)

<스타워즈>의 유니버스 에서는 다종다양한 외계어들이 난무하지만, <어벤져스>의 멀티버스 에서는 단 하나의 언어가 공용된다것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 왜 여태 없었을까;;;; 저자는 언어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힘과 권력의 관계가 보인다고 이야기 한다. 사투리만 해도 남자들이 사용하면 유대감의 표현이지만 여자들이 사용하면 계몽되지 않은 야생의 존재로 여겨질 뿐이라고, 그래서 여성들이 표준어 구사를 훨씬 빨리 습득한다고. 그러고보면 한국어는 전혀 하나의 한국어가 아니라고 저자는 또한 말한다. 다양한 지역방언들과 외국인들이 사용하는 한국어와 신세대들이 만들어낸 신조어의 세계등등, 한국어의 세계는 결코 하나가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한국어는 단 하나의 종류뿐이라고 착각해 왔는가? 어벤져스의 멀티버스 우주에서 영어가 공용어로 사용되는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말들은 결코 균질하지 않다. 그러나 '한국어'라는 가공품의 '발명'은 이러한 차이를 일거에 제거해 버린다. 한국어라는 말 속에는 '언어=영토=국민'이라는 성스러운 삼위일체의 구도가 숨어 있다. 그리고 이 구도를 통해 한국 영토 안에 거주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동일하고 균질한 하나의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환상이 만들어진다. 이 환상을 만들어내는 장치는 다름 아닌 표준어 제정이다. 표준어 제정 과정에는 우생학과 위생학이 개입한다. 우생학 처리 과정은 서울말을 우등한 것으로, 지역어를 열등한 것으로 만들어 표준어에서 지역어를 제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음은 위생학적 처리과정. 이 처리과정을 통해 토착어가 아닌 외래어들은 '오염된 말'이 된다. 순수한 언어란 있을 수 없지만 만들자면 쉽게 만들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한다. 어떤 것을 오염된 것으로 지목해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는 순수한 것이 된다. (p. 34)

유럽이나 미국 처럼 하다못해 가까운 중국처럼 다민족 국가들엔 당연히 다양한 언어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반도라는 좁은 땅에서 전쟁은 잦았어도 이민이나 이주는 거의 없이 전국 어디를 가나 대화를 할 수 있었기에 한국어는 하나의 단일한 언어인 것으로 당연스레 생각해 왔다. 하지만 지역방언은? 특히 제주도 말은? 축약을 하든 뒤집든 기이하게 만들어지는 신조어들은? 해석되지 않는 말은 순수하지 않아서 한국어가 아닌가? 표준어와 서울말을 기준삼아온 것은 결국 차별과 혐오의 토대를 만든 것일수도 있었다. 아니라고? 그런 방언과 조어들도 존중해왔다고?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언어학은 노동하는 인간의 언어에는 관심이 없다. 언어학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언어 자료를 다룰 것 같지만 돈 놓고 돈 먹는 세상에서 설마 그럴 리가. 언어학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본을 움직이는 자들의 언어, 자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언어, 또는 자본을 대변하는 국가의 '정상 언어'이다. 본래부터 언어학은 근대 부르주아 국민국가의 국가 장치로 기능해 왔다. 이 국가 장치가 충실하게 수행하는 일 중 하나는 언어를 정상적인 범주와 비정상적인 범주로 구분하는 것이다. 이런 범주의 구분은 그 자체로 권력으로 작동된다. 이렇게 비정상적인 범주로 분류된 언어들, 다시 말해 순화해야 할 범주의 언어들은 이등 시민의 언어가 된다. 그리하여 노동하는 삶 속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들은 정작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된다. (p. 47~48)

노동하는 언어에 대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면 건설현장을 떠올려 보라. 가장 흔히 쓰이는 노가다라는 단어부터 이미 비하의 기운을 풍긴다.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해 무시의 분위기가 풍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년동안 계속 사용되어져 온 단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무엇을 소외시켜 온 것인지 누구를 소외시켜 온 것인지 이제 좀 감이 잡히는가.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상범주의 언어라고 말하는 언어들 조차 잘못 사용되곤 한다는 점이다.

N번방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것을 보라. 죽음을 택한 정치인의 성폭력 피해자에게 그 죽음의 책임을 묻고 2차 가해를 하는 행태를 보라. 차별을 법으로 금지하자는 움직임을 신의 이름으로 저주하는 모습을 보라. 이것이, 한국의 '교육'이다. 많은 한국인들은 거리낌 없이 혐오와 차별의 언어를 가르치고 배운다. 이 교육 속에서 소년들은 여성을 성적 욕망을 위한 도구라고 배운다. 이 교육 속에서 상급자는 위력으로 하급자를 유린할 수 있다고 배운다. 무엇보다도 한국사회는 이 교육을 통해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난민들에게 말하지 말 것을 강요한다. 요컨대, 혐오와 차별의 산맥 사이, 깊은 계속에 갇힌 이들의 목소리는 지층 밑에 묻혀서 들리지 않아야 한다. 이들의 말은 지형을 이루고 풍경을 만들 권리가 없다. (p. 74)

현재 한국의 언어 지형에 대해 저자는 지옥도를 그려낸다. 별것 아니라고 그럴수도 있지라며 넘겨왔던 작은 말과 글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나니 엄청난 지옥도가 그려져 버렸다. 뭐 그렇게까지 해석하냐 할수도 있지만 말이 씨가 된다고도 했고 말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고도 했다. 말은 그런 것이다. 사소할수도 있지만 결코 무시해서는 안되는 그런 것. 더구나 인터넷 시대가 된 현대엔 더더욱.

분노가 지금은 인터넷 산업이 대량으로 생산하는 공산품이 되었다. 그것도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다. 오늘도 구매자들은 매력적인 분노 상품을 찾아 인터넷 공간을 기웃거린다. 사람들은 기사의 답글에, 자신의 SNS에 방금 쇼핑해 온 따끈따끈한 신상 분노를 전시힌다. 소금의 생산과 유통이 고대 문명의 기반이 되었고, 향신료라는 상품이 근대를 만들었다면, 분노라는 상품은 21세기 사회를 건설(파괴?)중이다. (p. 89~90) 분노라는 포장 안에 싸여 있는 것은 결국 혐오이겠지만 말이다. (p. 92) 분노 산업의 언어는 실재를 왜곡시킨다. 그리고 그 왜곡된 언어는 다시 일그러진 실재를 구축한다. 이 무한 반복의 개미지옥에 빠져 한국 사회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 (p. 93)

편안하게 읽히는 에세이겠거니 생각했던 내 예상은 첫장부터 찬물을 머리에 뒤집어쓴 듯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문장들로 완전히 벗어났다. 2020년 2월부터 한국일보에 <언어의 서식지>라는 제목으로 기고하고 있는 칼럼을 바탕으로 저자의 글들을 엮은 이 책은 최근의 사회적 현상들에 대한 저자의 날선 비판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국 사회라는 언어의 서식지에서 내가 가장 많이 관찰한 것은 혐오와 차별, 억압의 말들이었다. 이는 칼럼을 쓰기 시작한 시점이 코로나19가 본격화되던 시기라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 터이다. (p. 271)' 라고 저자가 설명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비판들은 하나같이 너무 따끔한 주사였고 너무 쓴 약이었다. 하지만 '약'이 되는 지적들임은 분명했다.

자신이 나고 자란 제주를 한국의 식민지라 부르며 근로가 아닌 노동을 강조하는 저자는 한국어교육원에서 자매들의 언어로 자신을 참교육으로 이끌어준 상사에 대한 추모글로 에필로그를 마무리한다. 자신의 미끄러진 말들이 누군가에 닿길 바라며.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그동안 내 주위에서 미끄러진 말들은 무엇이었나.. 혹여 내가 일부러 미끄럼틀 위에서 밀어내버린 말들은 없었나... 다행히 내 언어의 미끄럼틀의 경사는 무척 낮은 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이 사회의 경사도는 확 올라간 느낌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 미끄러지는 말들을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계속 그렇게 경사도를 높여가며 기름칠을 해가며 더더 미끄러지게 놔두기만 할 것인지... 부디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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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새소설 11
류현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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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게 가족이에요"

가족, 그 징글징글한 시작과 끝에 대한 처절한 애증의 이야기

제목 참 맘에 든다. 제목만 읽어도 고개 끄덕이며 시원함의 위로를 받게 되는 기분인건 나만 그런 걸까...? 뭐...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심리에세이의 제목으로, 그것도 가족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이 읽으면 좋을 그런 심리서의 제목으로 적당할 것 같은 이 책은 소설이다.

그리고 제목만큼 섬뜩한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찹쌀떡이 목에 걸린 채 죽어가는 어머니와 칼에 찔린 채 피 흘리는 아버지, 누가 그들을 죽였나.

갓 빚어놓은 찹쌀떡처럼 뽀얗고 탐스러운 자식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고, 남들이 부러움의 눈길이라도 던질 때면 세상을 다 가진 듯 뿌듯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자식들한테 나 역시 존경받는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어 최선을 다했다. (중략) 그런데 자식들이 뒤늦게 뒤통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찰지고 탱글탱글하던 내 자식들이 어느 순간 돌아보니 발길질에 짓이겨진 찹쌀떡처럼 형편없이 지저분해져 있었다. 충격이고 치욕이었다. 어떻게 내 자식들이... (p. 9)

충격적인 살해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죽어가는 노 부부의 네 자식들의 입장이 한 챕터에 한 명씩 소개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모의 심정이.

사연 없는 사람 없다고 하지 않는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장을 따로따로 들여다보면 그때그때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사연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 모두에게는 노부부를 죽일 만한 이유가 있었다. 노부부 본인들 스스로에게도.

다른 부모들보다 신식이고 개방적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부모는 어디로 가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남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는 앞뒤 꽉 막힌 추한 늙은이들만 자기 앞에 있었다. (p. 29) 육체적인 쇠락이 찾아와 이제는 자식이 그들의 보호자가 됐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존심을 내세우는 부모가 어처구니 없었다. 혼자 화장실도 못 가는 엄마의 상태와 자신이 없으면 밥도 못 찾아 먹는 아버지의 처지를 생각하면 더 기가 찼다. 그런데도 그들의 정신은 자식들을 호령하던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p. 32) 김은희는 정말 진절머리가 나고 신물이 넘어왔다. 늘어질 대로 늘어진 인내의 고무줄은 이제 실처럼 가늘어져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p. 33)

김은희

셋째이자 둘째딸인 김은희는 4년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고 있다. 어머니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반신마비가 왔을때 다른 형제들은 요양원으로 모시자 했지만 극구 거부하는 부모님을 보며 자신이 모시겠다고 말했었다. 이혼 후 혼자 아들을 키우며 빡빡하게 살던 삶이 부모집으로 들어가면 조금은 안온해지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갈수록 악화되는 어머니의 상태와 그런 병수발을 인정해주기는 커녕 매사에 불평불만인 아버지의 힐난에 상처는 아물사이도 없이 점점 더 벌어지고 커지기만 했다. 게다가 이젠 응급실에 실려간 어머니의 상태를 전화해도 형제 들 중 누구도 달려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생일날 아무도 오지 않던 그날 늦게 4개의 찹쌀떡이 들어있는 팩 하나를 사들고 온 언니의 훈계에 은희의 인내의 고무줄이 끊어져버렸다.

"살아 계실 때 효도해라,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은 죄다 효도라고는 눈곱만큼도 안 해본 사람들이야. 해봤으면 그게 얼마나 징글징글한 건지 기약없는 지옥인지 아니까 그런 말 못 하지. 그래서 세상에는 효도하는 사람들보다 후회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거야. 그게 효도보다 훨씬 더 쉽고 짧으니까. 나도 빨리 좀 그래봤으면 좋겠다." (p. 50)

시댁 문제로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자기 가족과 아내 사이에 자신이 벽을 만들어줬다고 믿었는데 아내는 그보다 더 멀리, 자기 앞에까지 벽을 세운 것 같았다. 자신이 그린 '우리 가족' '내 가족'의 벤다이어그램 안에는 아내가 한가운데 있는데, 아내의 벤다이어그램에는 자신이 '우리 가족'이 아닌 '네 가족'에 속한 것 같아 배신감이 밀려왔다. (p. 79)

김현창

둘째이자 장남인 김현창은 부모의 자랑이었다. 일류대학을 나와 의사를 하고 있는 아들이었기에 부모의 기대도 높았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며느리에 대한 노골적인 태도를 보며 현창은 아내를 자신의 가족에게서 떨어뜨려 놓았다. 장남이지만 몸이 불편하신 부모님을 모시지 않는 자책감은 위암 말기의 장모 소식에 자신의 집에서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하겠다는 아내의 말에 폭발했다. 하지만 그 폭발처는 아내가 아니라 아버지를 향해버렸다. 생신이었는데 늦은 밤에서야 혼자 찾은 그 집, 폭언을 퍼붓던 자신의 아버지에게.

그때의 자기를 생각하면 지금 은희는 무척 좋은 조건에서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었다. 자신은 시부모님의 집이 아니라 자신의 아파트에서 두 분을 모셨고, 간병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도 남편과 자신이 충당다. 현창이처럼 다달이 돈을 보내주는 사람도 없었다. (p. 89) 명예훼손범을 찾겠다고 온 하굑를 들쑤셔놨는데, '살인자 가족'이란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자신보다 더 먼저 알고 있다는 공포심이 목까지 차오른 절망의 수위를 더 높였다. 김인경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친정에 온 거였다. (p. 108)

김인경

첫째이자 맏딸인 김인경은 교사다. 어려서부터 동생들을 가르치며 집에서 선생님이라고 불렸던 것처럼 직업이 선생님이 됐다. 하지만 고작 초등학교 3학년의 할망구 소리에 폭력교사로 전락했다. 삼수를 하던 아들은 음주사고를 쳤고 조기퇴직해있던 남편은 인경 몰래 집안의 모든 돈을 선배 회사에 투자해놓고 담배만 뻑뻑 피워댈 뿐이었다. 변호사는 합의금이 당장 필요하다 했고 그렇게 찾아간 친정에선 동생과 싸움만 한채 입도 뻥긋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아들은 동분서주하고 있는 자신에게 세상에서 제일 나쁜 엄마라며 가출해 버렸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던 것도 생각났다. 자식은 선불이고 부모는 후불이라고. 자식은 태어날 때 이미 기쁨과 행복을 다 줘서 자식한테는 베풀기만 해도 억울하지 않는데, 부모한테는 이미 받아먹은 건 기억나지 않고, 내가 내야 할 비용만 남은 것 같아 늘 부담스러운 거라고. 김인경의 지금 심정에 꼭 맞는 말이었다. (p. 119)'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핸드폰을 받을 수 없는데, 하루에도 몇 통씩 전화하는 아버지 때문에 김현기는 괴로웠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불효자식을 저주하는 문자를 보냈는데 처음엔 기분이 나빴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문자를 볼 때마다 재밌는 유머라도 읽는 듯 웃음이 났다. 불효자라는 말에 그런 마법이 있는 것 같았다. 처음 들을 때는 욕 같은데 자주 듣다 보면 '그래, 나 불효잔데 어쩌라고, 배 째!' 하는 심정이 되면서 더 엇나가게 됐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 함부로 대했다. (p. 128)

김현기

막내이자 둘째 아들인 현기는 공무원 시험에 십년 째 떨어지고 간병하느라 힘들어하는 작은 누나의 불평을 견디다못해 집을 나왔다. 은희 누나가 자신의 동창인 광수와 사귄다는 얘길 들었을 때 화가 솟구쳤다. 하지도 못하는 주먹다짐을 주고받던 사고뭉치 동창은 오히려 자신을 비난했다. 은희누나는, 가족들 다 나쁜 인간들이라고 소리치는 광수의 편을 들었다. 자신의 불평을 들어주고 함께 술을 마셔주던 광수가 낫다고. 그런데 아버지는 그런 누나를 찾아 나서며 광수를 혼내주겠다고 자꾸 자신에게 전화를 해대는 것이었다. 현기는 자수했다.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김현기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최 형사는 더 이상 김현기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김현기를 조사하면 할수록 사건이 이상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고령의 부모를 죽이는 자식들은 대부분 직접 병간호를 하다가 지쳤건, 재산 문제로 부모와 갈등을 빚었던 사람들이다. 홧김에 저지른 우발적 살인이어도 그런 모종의 이유가 있을 거라 짐작했다. 그런데 김현기는 둘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최 형사는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p. 159)

노인이 노인을 모시는 시대가 됐다. 나는 대체 왜 장수 사회, 백세 시대를 환영하는 지 이해가 안 간다. 젊고 어린 나이의 병을 치료하고 원인을 찾아내는 의학 연구보다 수명을 연장하고 노화를 방지하는 데 더 돈을 들이는 의료계도 더더욱 이해가 안 된다. 왜 그렇게들 오래 살려고 하나? 오래 사는 게 힘들지도 않나? 노인이 노인을 모신다는 건 정말이지 너무나 힘든 일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기에 나는 그 어려움을 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이 곧 내 앞에 닥쳐올 것이라는게 너무나 두렵다. 나는 정말이지 오래 살고 싶지 않다. 오래 사는 건 너무 큰 불행이다.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 누구나 알고 있는 징글징글한 가족 이야기를 왜 쓰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내 대답은 '대신 말해주고 싶어서'다. 부모가 늙고 병들게 되면 어느 가족이나 거쳐야 하는 고민과 선택의 순간들, 길고 긴 간병의 세월 동안 겪게 되는 고립감과 외로움, 다른 형제,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 죄책감, 분노, 가족이란 말만 들어도 치밀어 오르는 피곤과 싫증에 대하여.

당신만 이기적이어서 그런게 아니라고, 당신에 가족만 이상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p. 215~216) -작가의 말 中-

작가는 위로의 말을 전해주고 싶다고 한 만큼 이 작품은 새드엔딩은 아니다. 하지만 여느 소설들처럼 내가 깊이 인상적으로 기억하게 될 장면은 이런 엔딩장면이 아니었다. '나한텐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게 가족이에요.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이 가족이라고요! (p. 194)' 라는 은희의 외침이었다. 이런 공감어린 가족소설을 써준 작가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런 가족 소설이 읽혀져야 할 시대다, 지금 시대는.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소설은 답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답은 독자의 몫이다. 그러니 이 소설을 읽은 후 피하지 말고 생각해보길, 지금 내 가족에 대하여, 나와 내 가족의 노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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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사라진 스푼 - 주기율표에 얽힌 과학과 모험, 세계사 이야기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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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주기율표와 원소들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들로 배경지식을 넓혀주는 책이에요. 쉽게 읽혀서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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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사라진 스푼 - 주기율표에 얽힌 과학과 모험, 세계사 이야기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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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 발견의 역사부터 과학자들의 실수와 경쟁까지

주기율표에 담긴 전쟁과 신화, 열정과 탐험의 순간들

주기율표에 얽힌 과학과 모험, 세계사 이야기

저자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이라는 책에서 저자가 공기에 관련한 이야기들을 화려한 입담으로 펼쳐내는 것을 보며 과학이야기를 이런식으로 풀어낼 수도 있구나 싶어 신선했더랬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사라진 스푼>이라는 책의 청소년 버전이다. <사라진 스푼>이라는 저자의 책도 관심을 갖고 있던 책이었기에 청소년 버전을 반갑게 펼쳤다. 청소년 버전은 아무래도 좀더 쉽고 짧으니까. ㅎㅎㅎ

주기율표는 인류학적으로도 경이로운 대상이다. 이 인공물에는 경이롭거나 예술적이거나 추한 것까지 포함한 인간의 모든 속성과 인간과 자연 세계의 상호 작용 방식까지 반영돼 있다. 다시 말해서, 주기율표는 간결하고도 우아한 문자로 표시된 우리 종의 역사이다. 그러니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차 복잡성이 증가하는 순서에 따라 이 모든 층들을 자세히 살펴볼 가치가 충분하다. 이 주기율표 이야기는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치지 않고, 교과서나 실험 안내서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주기율표를 이해하게 해준다. (p. 12)-머리말 中-

화학이라는 과목을 생각했을 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주기율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기율표의 원소 하나하를 알아가는 과정이 곧 화학이고 그 원소들의 결합과 해체와 충돌을 연구해나가는 것이 화학이기 때문이다. 화학은 과학관련 교과과정에서도 중요한 과목이다. 중요한 과목 대부분 그렇듯이 화학도 어려운 과목이다;;; 어려운 과목에 접근하는 여러 방법들 중에서 이야기처럼 술술 읽고 친근하게 느껴보는 방법은 어떨까? 바로 이 책을 읽는 것처럼 말이다.

주기율표라고 하면, 아마도 여러분은 과학실 뒤편에 걸려 있던, 많은 가로줄과 세로줄로 이루어진 여러 가지 색의 도표를 떠올릴 것이다. 수업 시간에 주기율표에 대해 이야기했을 수도 있고, 심지어 시험을 칠 때 주기율표를 마음대로 참고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을 수도 있다. 불행하게도 활용하는 법을 제대로 몰라 이 거대한 커닝 페이퍼는 여러분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기율표와 각각의 칸에는 풀리길 기다리는 비밀이 아주 많이 들어 있다. (p. 17)

저자는 주기율표의 구조와 읽는 법부터 차근차근 시작한다. 주기율표를 구성하고 있는 원소란 무엇이고 주기율표에서의 위치가 그 원소의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면서 화학의 기본바탕이라 할 수 있는 주기율표 자체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원소들 하나하나가 발견된 역사들을 살펴보기 전에 주기율표를 그려낸 과학자들을 먼저 소개한다. 대부분 주기율표는 멘델레예프 라는 과학자가 만든 것으로 알고 있지만, 모든 발명과 발견이 그러하듯이 어느날 뚝딱 한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은 없는 법, 주기율표도 그러했다.

거의 모든 언어는 왼쪽에서 오른쪽(혹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읽는다. 하지만 주기율표는 위에서 아래방향으로 읽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될 때가 많다. 그러면 경쟁 관계를 비롯해 원소들 사이의 흥미로운 관계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주기율표에는 그 나름의 문법이 있으며, 행간을 잘 살피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들이 드러난다. (p. 46)

자, 이제 본격적으로 원소들 하나하나를 살펴볼 차례다. 원소 하나하나 마다 그 탄생기가 하나의 역사이자 발전사였다. 그런데 원소 이름들을 알게 되면서 대한화학회에 아쉬운 마음이 커졌다. 책의 앞쪽에 '일러두기'에서 '대한화학회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써오던 원소 이름을 영어식으로 대폭 바꾸었다.' 라고 안내하고 있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갔다. 이 책의 옮긴이 또한 '대한화학회는 이런 역사적, 지리적, 언어적 배경을 무시하고 이테르븀, 테르븀, 에르븀이 아니라 영어식 발음을 따 이터븀, 터븀, 어븀으로 표기하기로 결정했다. (p. 45)' 라면서 안타까워하는데 나또한 그런 마음이었다. 많은 학문들에서 학명은 라틴어를 사용한다. 라틴어 학명은 만국공통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굳이 영어식 발음으로 고치려 하는가? 우리나라 언어가 영어도 아닌데. '대한화학회는 '두브나'라는 러시아 지명을 무시하고 105번 원소를 두브튬이 아니라 영어식으로 '더브늄'으로 표기하기로 정했는데, 이는 파리Paris를 패리스라고 표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옮긴이 (p. 105)' 프랑스의 도시 파리를 한국사람 중 누가 패리스라고 읽을까? 그런데 대한화학회에서는 기존에 사용하던 게르마늄이라는 원소를 저마늄이라고 바꿔 부르라는 식으로 많은 원소이름들을 바꿔버렸다. 라틴어 학명을 굳이 영어발음으로 고치려는 대한화학회의 결정은 큰 착오가 아닐까 싶다.

여하튼 이 책의 주된 내용들인 원소들의 이야기이자 주기율표의 이야기는 때로는 우주적이었고 때로는 인간적이었다. 때로는 실수가 있었고 때로는 경쟁이 있었고 때로는 파괴적이기도 했지만 거시적으로도 미시적으로도 어쨌든 화학은 물리나 지구과학, 생명과학과 연결되면서 과학은 서로 유기적 관계라는 것을 다시금 깨우치게 해주었다. 더구나 '범우주적으로 보편적인 것(즉, 외계인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몇 안 되는데, 주기율표도 그중 하나이다. (p. 247)' 라고 하니 주기율표의 중요성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과학을 학문적이라기 보다는 편한 이야기로 읽고 싶은 이들에게, 특히 화학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쉽고 유용하게 읽을만한 책이 될 것 같다.

ps. 그런데 왜 책 제목이 주기율표 어쩌구가 아니고 '사라진 스푼' 이냐고?

그건 갈륨에서 힌트를 얻은 제목 같다.

지구상에서 돌고도는 공기를 굳이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이라고 불러서 독자의 관심을 확 끌어당겼던 것처럼. ㅎㅎㅎ

갈륨은 실온에서는 고체이지만, 29.8℃에서 녹기 때문에,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녹아서 액체로 변한다. (체온은 약 36.7℃이므로) 갈륨은 액체 상태로 만져도 살이 타지 않는 극소수 금속 물질 중 하나이다. 그래서 갈륨은 종종 마술을 보여주는 도구로 쓰인다. 갈륨은 원하는 모양으로 쉽게 만들 수 있고 알루미늄처럼 보이기 때문에, 많이 쓰이는 트릭 중 하나는 갈륨으로 스푼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뜨거운 차와 함께 갈륨 스푼을 손님에게 내놓는다. 그러면 잠시 후 손님은 찻잔에 넣은 스푼이 사라지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p. 40)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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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칵 뒤집힌 현대 미술 - 세상을 뒤흔든 가장 혁신적인 예술 작품들
수지 호지 지음, 이지원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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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흔든 가장 혁신적인 예술 작품들

영국왕립미술협회 회원이면서 미술사학자라는 수지 호지의 책들 중 <디테일로 보는 서양미술> 과 <디테일로 보는 현대미술> 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마로니에 북스에서 나온 미술책의 특장점인 크고 선명한 도판에 저자의 깔끔하고 명료한 서술까지, 미술에 대해 비전문가인 나같은 독자가 읽기에 참 좋은 책들이었다. 그러니 미술 중에서도 내가 가장 난감하게 느끼는 현대 미술에 대해 시대순으로 정리해주는 저자의 이 책이 반갑게 다가왔다.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사물을 보여주는 미술 작품은 어딘지 모르게 편안하다. 묘사된 대상이 사실적으로 보일 때, 우리는 작가가 기술적으로 숙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미술은 변했고, 현재 생산되는 많은 작품은 우리가 알아볼 만한 것들과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다. (중략) 미술은 언제 그리고 왜 변했을까? (중략) 이런 모든 문제를 탐구하고자 이 책은 미술계를 강타하고 미술사의 경로를 바꾼 1850년대 이후 생산된 혁신적인 작품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p. 6)-서론 中-

저자는 1850년대 이후 미술계에 혁신적인 변화들이 시작되었다고 명확한 시점을 제시한다. 마음에 든다.

두루뭉술해보일 수 있는 예술작품들에 대하여 이렇게 깔끔하게 연대정리며 사건들을 정리해주는 책은 나처럼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읽기에 참 좋다. 저자는 '미술은 언제나 그것이 속한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 왜냐하면 흔히 작가는 의도적으로든 아니든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작품에 반영하고, 대개는 사소한 방식으로라도 독창적이기를 추구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p. 7)' 라고 말한다. 따라서 예술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역사적 변화들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저자가 연대순으로 시대적 주요 사건들의 연표와 함께 미술사조까지 정리해주는 이 책은 그야말로 깔끔 그 자체다.

저자는 1850년대 이후의 시기를 5챕터로 구분한다.

전통의 타파 : 1850~1909 → 전쟁의 참상 : 1910 ~ 1926 → 갈등과 퇴조 : 1927 ~ 1955 → 상업주의의 저항 : 1956 ~ 1989 → 프레임 너머로 : 1990 ~ 현재

시대적 구분만 봐도 단순히 10년이나 50년단위로 그냥 뭉퉁그리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특징을 잡아서 구분했기 때문에 이 5시대 구분만 알아도 현대미술의 개력적 흐름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각 챕터의 시작에는 늘 그 시대 예술에 대한 개요 설명이 있다. 그리고 시대적 사건들에 대한 간단한 연표가 있고 미술사에 획을 그은 작품들 하나하나 그림과 함께 설명하는 사이사이 미술사조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진다. 그렇게 200여 페이지의 짧다면 짧을 수 있는 이 책을 읽고 나면 현대 미술의 혁신적 작품들은 어느정도는 훑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술책이 이렇게 명료할 수도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전통의 타파에는 튜브형 물감의 발명이 핵심 사건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휴대용 이젤의 발명까지 함께 묶어 이 두가지 발명품이 동시대에 등장했기 때문에 전통을 잇는 것이 아닌 혁신이 시작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튜브형 물감에 대해서는 미술책 좀 몇 권 읽다보면 상식처럼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뿐만 아니라 간단하고 짧은 서술 속에 휴대용 이젤의 중요성까지 부각시키는 것을 보면서 역시 전문가의 책이구나 싶었다.

미술용품의 발달도 미술에 혁신을 가져왔겠지만 세계대전만큼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은 없었다. 전쟁은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예술작품들이 본격적으로 전시장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21세기가 도래했을 때, 미술가들은 전보다 더 개별적으로 작업했고 미술운동은 더 명확히 정의하기 어려워졌다. 따라서 앞으로의 미술은 어쩌면 계속 '현대 미술'이라고밖에는 부를 수 없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개략적으로 현대미술을 훑어나가게 해주는 것도 좋지만 미술책의 좋은 점은 뭐니뭐니해도 그림에 대한 설명일 것이다. 현대미술에 대한 책은 다양하다. 저자의 책만해도 현대미술을 다룬 책이 이 한권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대미술을 다룬 책이라 해도 책마다 포인트가 다르다. 예를 들어, 저자의 <디테일로 보는 현대미술> 이라는 책은 제목처럼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디테일'한 분석이 돋보였다면 이 현대미술 책은 미술사적 분석이 돋보이는 책이다. 현대미술로 오기까지 혁신의 선구자였던 작품들에 대해 왜 그 작품이 '혁신적'인지 설명함으로써 현대미술의 흐름을 깨닫게 해준다.

도판을 크게 배치한 미술책들은 코팅된 종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림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선 좋지만 사실 빛이 반사되어서 눈이 아플 때도 종종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독특하게 두툼한 종이질감의 책이었다. 처음엔 좀 낯설고 아쉽기도 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빛이 반사되지 않는 종이이면서도 큰 도판을 효과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느껴져서 이또한 좋았다.

현대미술이 어렵고 왜 봐도 알수 없는 작품들을 만드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궁금하고 관심있던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왜 현대 미술이 발칵 뒤집힐 수 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면서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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