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새소설 11
류현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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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게 가족이에요"

가족, 그 징글징글한 시작과 끝에 대한 처절한 애증의 이야기

제목 참 맘에 든다. 제목만 읽어도 고개 끄덕이며 시원함의 위로를 받게 되는 기분인건 나만 그런 걸까...? 뭐...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심리에세이의 제목으로, 그것도 가족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이 읽으면 좋을 그런 심리서의 제목으로 적당할 것 같은 이 책은 소설이다.

그리고 제목만큼 섬뜩한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찹쌀떡이 목에 걸린 채 죽어가는 어머니와 칼에 찔린 채 피 흘리는 아버지, 누가 그들을 죽였나.

갓 빚어놓은 찹쌀떡처럼 뽀얗고 탐스러운 자식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고, 남들이 부러움의 눈길이라도 던질 때면 세상을 다 가진 듯 뿌듯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자식들한테 나 역시 존경받는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어 최선을 다했다. (중략) 그런데 자식들이 뒤늦게 뒤통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찰지고 탱글탱글하던 내 자식들이 어느 순간 돌아보니 발길질에 짓이겨진 찹쌀떡처럼 형편없이 지저분해져 있었다. 충격이고 치욕이었다. 어떻게 내 자식들이... (p. 9)

충격적인 살해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죽어가는 노 부부의 네 자식들의 입장이 한 챕터에 한 명씩 소개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모의 심정이.

사연 없는 사람 없다고 하지 않는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장을 따로따로 들여다보면 그때그때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사연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 모두에게는 노부부를 죽일 만한 이유가 있었다. 노부부 본인들 스스로에게도.

다른 부모들보다 신식이고 개방적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부모는 어디로 가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남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는 앞뒤 꽉 막힌 추한 늙은이들만 자기 앞에 있었다. (p. 29) 육체적인 쇠락이 찾아와 이제는 자식이 그들의 보호자가 됐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존심을 내세우는 부모가 어처구니 없었다. 혼자 화장실도 못 가는 엄마의 상태와 자신이 없으면 밥도 못 찾아 먹는 아버지의 처지를 생각하면 더 기가 찼다. 그런데도 그들의 정신은 자식들을 호령하던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p. 32) 김은희는 정말 진절머리가 나고 신물이 넘어왔다. 늘어질 대로 늘어진 인내의 고무줄은 이제 실처럼 가늘어져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p. 33)

김은희

셋째이자 둘째딸인 김은희는 4년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고 있다. 어머니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반신마비가 왔을때 다른 형제들은 요양원으로 모시자 했지만 극구 거부하는 부모님을 보며 자신이 모시겠다고 말했었다. 이혼 후 혼자 아들을 키우며 빡빡하게 살던 삶이 부모집으로 들어가면 조금은 안온해지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갈수록 악화되는 어머니의 상태와 그런 병수발을 인정해주기는 커녕 매사에 불평불만인 아버지의 힐난에 상처는 아물사이도 없이 점점 더 벌어지고 커지기만 했다. 게다가 이젠 응급실에 실려간 어머니의 상태를 전화해도 형제 들 중 누구도 달려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생일날 아무도 오지 않던 그날 늦게 4개의 찹쌀떡이 들어있는 팩 하나를 사들고 온 언니의 훈계에 은희의 인내의 고무줄이 끊어져버렸다.

"살아 계실 때 효도해라,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은 죄다 효도라고는 눈곱만큼도 안 해본 사람들이야. 해봤으면 그게 얼마나 징글징글한 건지 기약없는 지옥인지 아니까 그런 말 못 하지. 그래서 세상에는 효도하는 사람들보다 후회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거야. 그게 효도보다 훨씬 더 쉽고 짧으니까. 나도 빨리 좀 그래봤으면 좋겠다." (p. 50)

시댁 문제로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자기 가족과 아내 사이에 자신이 벽을 만들어줬다고 믿었는데 아내는 그보다 더 멀리, 자기 앞에까지 벽을 세운 것 같았다. 자신이 그린 '우리 가족' '내 가족'의 벤다이어그램 안에는 아내가 한가운데 있는데, 아내의 벤다이어그램에는 자신이 '우리 가족'이 아닌 '네 가족'에 속한 것 같아 배신감이 밀려왔다. (p. 79)

김현창

둘째이자 장남인 김현창은 부모의 자랑이었다. 일류대학을 나와 의사를 하고 있는 아들이었기에 부모의 기대도 높았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며느리에 대한 노골적인 태도를 보며 현창은 아내를 자신의 가족에게서 떨어뜨려 놓았다. 장남이지만 몸이 불편하신 부모님을 모시지 않는 자책감은 위암 말기의 장모 소식에 자신의 집에서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하겠다는 아내의 말에 폭발했다. 하지만 그 폭발처는 아내가 아니라 아버지를 향해버렸다. 생신이었는데 늦은 밤에서야 혼자 찾은 그 집, 폭언을 퍼붓던 자신의 아버지에게.

그때의 자기를 생각하면 지금 은희는 무척 좋은 조건에서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었다. 자신은 시부모님의 집이 아니라 자신의 아파트에서 두 분을 모셨고, 간병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도 남편과 자신이 충당다. 현창이처럼 다달이 돈을 보내주는 사람도 없었다. (p. 89) 명예훼손범을 찾겠다고 온 하굑를 들쑤셔놨는데, '살인자 가족'이란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자신보다 더 먼저 알고 있다는 공포심이 목까지 차오른 절망의 수위를 더 높였다. 김인경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친정에 온 거였다. (p. 108)

김인경

첫째이자 맏딸인 김인경은 교사다. 어려서부터 동생들을 가르치며 집에서 선생님이라고 불렸던 것처럼 직업이 선생님이 됐다. 하지만 고작 초등학교 3학년의 할망구 소리에 폭력교사로 전락했다. 삼수를 하던 아들은 음주사고를 쳤고 조기퇴직해있던 남편은 인경 몰래 집안의 모든 돈을 선배 회사에 투자해놓고 담배만 뻑뻑 피워댈 뿐이었다. 변호사는 합의금이 당장 필요하다 했고 그렇게 찾아간 친정에선 동생과 싸움만 한채 입도 뻥긋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아들은 동분서주하고 있는 자신에게 세상에서 제일 나쁜 엄마라며 가출해 버렸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던 것도 생각났다. 자식은 선불이고 부모는 후불이라고. 자식은 태어날 때 이미 기쁨과 행복을 다 줘서 자식한테는 베풀기만 해도 억울하지 않는데, 부모한테는 이미 받아먹은 건 기억나지 않고, 내가 내야 할 비용만 남은 것 같아 늘 부담스러운 거라고. 김인경의 지금 심정에 꼭 맞는 말이었다. (p. 119)'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핸드폰을 받을 수 없는데, 하루에도 몇 통씩 전화하는 아버지 때문에 김현기는 괴로웠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불효자식을 저주하는 문자를 보냈는데 처음엔 기분이 나빴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문자를 볼 때마다 재밌는 유머라도 읽는 듯 웃음이 났다. 불효자라는 말에 그런 마법이 있는 것 같았다. 처음 들을 때는 욕 같은데 자주 듣다 보면 '그래, 나 불효잔데 어쩌라고, 배 째!' 하는 심정이 되면서 더 엇나가게 됐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 함부로 대했다. (p. 128)

김현기

막내이자 둘째 아들인 현기는 공무원 시험에 십년 째 떨어지고 간병하느라 힘들어하는 작은 누나의 불평을 견디다못해 집을 나왔다. 은희 누나가 자신의 동창인 광수와 사귄다는 얘길 들었을 때 화가 솟구쳤다. 하지도 못하는 주먹다짐을 주고받던 사고뭉치 동창은 오히려 자신을 비난했다. 은희누나는, 가족들 다 나쁜 인간들이라고 소리치는 광수의 편을 들었다. 자신의 불평을 들어주고 함께 술을 마셔주던 광수가 낫다고. 그런데 아버지는 그런 누나를 찾아 나서며 광수를 혼내주겠다고 자꾸 자신에게 전화를 해대는 것이었다. 현기는 자수했다.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김현기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최 형사는 더 이상 김현기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김현기를 조사하면 할수록 사건이 이상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고령의 부모를 죽이는 자식들은 대부분 직접 병간호를 하다가 지쳤건, 재산 문제로 부모와 갈등을 빚었던 사람들이다. 홧김에 저지른 우발적 살인이어도 그런 모종의 이유가 있을 거라 짐작했다. 그런데 김현기는 둘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최 형사는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p. 159)

노인이 노인을 모시는 시대가 됐다. 나는 대체 왜 장수 사회, 백세 시대를 환영하는 지 이해가 안 간다. 젊고 어린 나이의 병을 치료하고 원인을 찾아내는 의학 연구보다 수명을 연장하고 노화를 방지하는 데 더 돈을 들이는 의료계도 더더욱 이해가 안 된다. 왜 그렇게들 오래 살려고 하나? 오래 사는 게 힘들지도 않나? 노인이 노인을 모신다는 건 정말이지 너무나 힘든 일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기에 나는 그 어려움을 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이 곧 내 앞에 닥쳐올 것이라는게 너무나 두렵다. 나는 정말이지 오래 살고 싶지 않다. 오래 사는 건 너무 큰 불행이다.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 누구나 알고 있는 징글징글한 가족 이야기를 왜 쓰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내 대답은 '대신 말해주고 싶어서'다. 부모가 늙고 병들게 되면 어느 가족이나 거쳐야 하는 고민과 선택의 순간들, 길고 긴 간병의 세월 동안 겪게 되는 고립감과 외로움, 다른 형제,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 죄책감, 분노, 가족이란 말만 들어도 치밀어 오르는 피곤과 싫증에 대하여.

당신만 이기적이어서 그런게 아니라고, 당신에 가족만 이상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p. 215~216) -작가의 말 中-

작가는 위로의 말을 전해주고 싶다고 한 만큼 이 작품은 새드엔딩은 아니다. 하지만 여느 소설들처럼 내가 깊이 인상적으로 기억하게 될 장면은 이런 엔딩장면이 아니었다. '나한텐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게 가족이에요.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이 가족이라고요! (p. 194)' 라는 은희의 외침이었다. 이런 공감어린 가족소설을 써준 작가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런 가족 소설이 읽혀져야 할 시대다, 지금 시대는.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소설은 답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답은 독자의 몫이다. 그러니 이 소설을 읽은 후 피하지 말고 생각해보길, 지금 내 가족에 대하여, 나와 내 가족의 노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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