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모두 살인자다
벤저민 스티븐슨 지음, 이수이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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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자극적이었고...

'고전 추리 소설의 재치 있는 반전(워싱턴 포스트)'

'기발하고 재미있는 메타 살인 미스터리(선데이 타임스)'

라는 호평을 받은 것도 그렇고...

입소문에 힘입어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순위에 등극하였다는 등...

이 소설에 대한 수식어가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얼마나 재미있길래...

그 흐름에 저도 합류하고자 합니다.

모두가 살인자인 이 가족.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이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이가 좋지 않은 우리 가족에게도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가족 모두 누군가를 죽인 적이 있다는 것!

우리 가족은 모두 살인자다



책을 펼치면 이 페이지를 마주하게 됩니다.

살짝 접으라는데...



이는 실제 추리 소설가이자 가톨릭 신부였던 로널드 녹스가 발표한 법칙으로 어느시트는 앞으로 이 규칙을 지키면서 이야기를 하겠다고 약속하고, 사람이 죽는 장면이 몇 쪽에 나오는지도 미리 알려줍니다.

또한 소설 속에서 『미스터리 소설 쓰는 법』을 출간한 작가인 어니스트는 가족의 살인 이야기를 범죄소설 작법서 형식으로 전개함으로써 고전적인 추리 미스터리를 현대적인 스타일로 재치 있게 풀어내고, 매력을 더하는 유머러스한 문장으로 복잡한 가족 서사와 끔찍한 범죄 상황 사이에서 영리하게 줄타기를 하며 출구 없는 매력을 선보입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취향엔 좀 맞지 않았다는...

정말 <프롤로그>에서 누가 죽거나 죽었다고 전해 듣는 장면의 페이지가 나오니 살짝 긴장감이 떨어졌고 중간중간에 유머러스한 문장이겠지만 제 코드와는 맞지 않았고 화자가 너무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다고 느껴졌던...

그래서 '미스터리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이라든지 통쾌함보다는 가족의 서사를 읽어 내려간 느낌이었습니다.

지극히 제 개인적인 주관입니다만... 저 역시도 말이 많았네요...

아무튼!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앞서 어니스트 커닝햄, 다들 언 혹은 어니라고 부르는 그가 이렇게 외치고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분명 가족 모두가 살인자라고 했다. 그리고 속임수는 없다고 약속했다.

나는 사람을 죽였을까? 그래. 그런 적이 있다.

누구였을까?

이야기를 시작하자. - page 14

커튼에 어른거리는 한 줄기 불빛.

마이클 형이 방금 우리 집 진입로에 차를 댔습니다.

"사람을 쳤어."

"그랬구나." 나는 잠이 덜 깬 상태였던지라 사물이 아니라 사람을 쳤다는 형의 말을 겨우 알아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떤 말을 건네는지 아는 바가 없어 일단 형이 하는 말에 장단을 맞추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야. 내가 쳤어. 지금 뒤에 있어." - page 18

누군가의 생명을 두고 논쟁을 벌이기보단 가족 사이에 서로를 끌어당기는 중력이 작용해서일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형의 차에 올라타게 되었고 그날 밤에 본 형은 세상 그 누구보다 낯설었습니다.

결국 경찰에 신고한 그는 3년 후 출소하게 된 형을 만날 때에도 오직 한 가지, 형이 전혀 바뀌지 않았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3년 반이 지나 형의 석방을 환영하기 위해 눈 덮인 스카이 로지 휴양원에 하나둘 모이게 됩니다.

사실 이런 모임을 꺼려 했었는데 그 이유는 사실 커닝햄 가족에게는 과거에 입 밖에 내기 어려울 정도로 비극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어니스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죽인 경찰관의 장례식에 참석했었는데 그곳에서 수치스러운 모욕을 당했던 어머니.

이는 커닝햄 가족의 삶에 끔찍하게 파고들었는데 그 정점을 찍은 것이 바로 어니스트가 형을 경찰에 넘기면서였습니다.

형의 편이 아닌 경찰의 편에 섰던 어니스트.

다음 날 잠에서 깨었을 때, 두툼한 점퍼의 행렬이 그의 창문 앞을 지나 쭉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무리 지어 있는 곳.

거기엔 동상으로 뺨이 검어진 채 숨을 거둔 한 남자가 눈 위에 반듯이 누워 있었습니다.

애통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이 다들 순전히 호기심으로 시체를 쳐다보고 있는데...

아무도 저 사람을 모르나?

그리고 동상 때문에 까만 줄 알았는데 불에 타 죽은 거라니...

화상 자국 하나 없고 녹은 흔적이 없는 설원에서 그가 누군지 아는 사람도 없고 누구에게도 죽은 남자와 관련된 동기가 없는데...

어떻게?

왜?

그런데 연달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계속되고 과연 이들의 가족 모임은 어떻게 끝날 것인가...

가족 사이에는 중력이 작용한다. 나는 그제야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던 때 소피아가 내게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같은 핏줄이라고 해서 가족인 건 아니다. 당신이 누구를 위해 피를 흘릴 것인가가 가족을 결정한다. - page 477

이 소설을 통해 깨달았던 이 말의 의미.

사람들은 끔찍한 말을 내뱉었을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뿐이야"라고 말하곤 한다. - page 323

별 뜻 없이 외쳤던 이 말이 이보다 더 이기적이고도 무섭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진실을 은폐하다 보니 어느새 얽히고설켰던 이 가족.

결국 서로의 민낯을 바라보았을 때 우리에게 건넨 질문.

진짜 가족이란 무엇인지...

저도 그 답을 제 가족과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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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시 - 지금이야,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질 시간!
에린 팰리갠트 지음, 김지연 옮김 / 너와숲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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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회 골드 글로브 장편 애니메이션상 노미네이트 <겨울왕국> 시리즈, <모아나>를 잇는 디즈니 100주년 기념작.

정말 극장에서 보고 싶었는데...

그 아쉬움을 달래줄 '책'이 나왔습니다.

소중한 소원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

저도 만나러 가봅니다.

"네가 별에게 소원을 말하면, 그 소원은 이루어진단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동화같은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위시



"옛날옛적에 머나먼 곳에 있는 섬에 소원을 들어주는 왕이 사는 마법 같은 왕국이 있었어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그곳으로 갔지요."

소원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마법의 왕국 '로사스'.

세계 각지 사람들이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로사스에 몰려옵니다.

열여덟 살이 되면 강력한 힘을 가진 왕에게 자신의 소원을 빌 수 있습니다.

왕은 비밀의 장소에 그 소원들을 모아두고 한 달에 한 번 행운의 주인공으로 선택된 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소원 성취식을 엽니다.

로사스에 살고 있는 총명하고 꿈 많은 소녀 '아샤'.

아샤와 염소 발렌티노는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사바 사비노 할아버지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그 무엇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샤에게 매그니피코 왕을 만날 기회를 얻게 되고 왕은 아샤에게 누구든 간절히 원하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존중해 줍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비밀의 방으로 아샤를 데려가는데...

그가 팔을 흔들자, 동그란 소원 방울이 내려와 그의 주위를 둘러싸며 빙빙 돌았다. 자몽만 한 크기의 소원 방울이 반짝였다. 매그니피코 왕이 손짓을 하자 구름이 걷히듯 소원 방울의 흐릿함이 사라지면서 하나하나 생생하게 들여다보였다. 그 속에선 누군가의 즐겁고 행복한 소원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 page 45

바로 소원들을 모아두는 장소였습니다.

"사람들은 소원이 그저 목표나 계획같은 거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소원은 마음의 한 조각이야.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하고 소중한 것이지."

그런데 공중에서 하염없이 떠다니고 있는 소원 방울들을 보던 아샤는 마음이 아파졌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는 거예요?"

"그렇긴 하지만 내가 그들을 지키잖아? 로사스를 지키듯, 열심히 지키고 있지." 매그니피코 왕은 거품 같은 액체가 담긴 튜브와 비커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러는 대신 다시 돌려주면 안 되나요?"

"뭐라고?"

"소원들 말이에요." 아샤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결국엔 들어주지 않을 소원들. 그 소원들을 다시 주인들에게 돌려줄 수 없나요? 그 소원들이 위험하다면 막아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말이죠." - page 50 ~ 51

알고보니 매그니피코 왕의 추악한 진실이 숨겨져 있었고 이를 알게 된 아샤는 매그니피코 왕에게 맞서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로사스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뛰어올라 소원 나무를 향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언지, 그리고 자신의 소원을 빌게 됩니다.

'로사스 사람들이 왕이 선택한 것 이상의 소원을 가질 수 있기를.'

그 순간 번쩍이는 빛을 내며 응답하는 '별'이 아샤의 곁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아빠는 우리가 별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씀하셨어. 그래서 나는 별에게 소원을 빌었고, 이렇게 네가 온 거야...... 나를 위해서?"

이 특별한 별과 함께 절대적 힘을 가진 매그니피코 왕에 맞서게 되는데...

하지만 왕은 자신의 힘을 이용해 아샤와 친구들을 위협하게 되고 이들은 큰 난관에 부딪히게 되고...

과연 이들은 어떻게 될지...

이들의 마법 같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보는 건 어떨지요.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소원'.

소원을 이루는 여정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모두가 가질 자격이 있는 '소원'.

헛된 희망이라도 가질 자격이 있는 소원이 가진 힘으로부터 우리가 살아가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아샤가 우리에게 전한 이 말.

"우린 모두...... 별이야."

이 말이 이토록 감동스러웠습니다.

소중한 소원을 떠올리게 만들었던 이 이야기.

덕분에 저도 잊고 있었던 소원을 떠올려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반짝반짝 빛을 내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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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 없음 - 삶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위해 쓴 것들
아비 모건 지음, 이유림 옮김 / 현암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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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건 이 책에 쏟아진 찬사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상황이 가장 어두울 때에도 웃음 짓게 하는 포인트가 있다. 매 순간 극적으로 전개되며 스릴러처럼 밀도 있다. _《더 가디언》

아비 모건의 사랑은 모든 것을 괜찮다고 말해주는 따듯한 입김처럼 절망과 행복이 교차하는 문장들 사이에 촘촘히 놓여 있다. _유진목

우리 삶에 비극이 일어나면, 알게 된다. 불완전한 행복이야말로 현재형의 삶이라는 사실을. _이다혜

그녀가 처한 상황.

하지만 마냥 고통스럽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그녀.

그녀로부터 사랑과 상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상실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나를 돌보며

써내려 간 3년간의 기록들

"우리는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다. 전부는 아니다."

각본 없음



집안은 아직 어둡고 늘 하던 일을 합니다.

제이콥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일...

"머리가 또 아픈 거야? 진통제는 먹었어?"

제이콥은 이마에 손을 짚으며 두피부터 목덜미까지 마치 칼로 긋는 것처럼 아프다 말합니다.

그를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제이콥의 담당의와 상담해 스테로이드를 받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 제이콥?"

잠시 침묵이 흐른다.

"당신은 형편없는 간병인이야."

'당신 말이 맞아. 나는 형편없는 간병인이야. 이런 일에 재능이 없어. 10년 동안 이리저리 뛰어나디며 진통제와 아이스 팩을 가져오고, 밤마다 손님방에서 자는 일 말이야.'

내가 몸을 기울여 입을 맞출 때면 제이콥은 말한다.

"모든 걸 가진 기분은 어때?"

"나는 모든 것을 가지지 않았어. 당신이 아프니까." - page 14

수 년 동안 스테로이드를 받으러 다니던 나날들, 간병인 침대에서 지내던 나날들에, 이 병과 싸우는 동안 나눴던 대화 속 서로를 향한 보이지 않는 미움과 분노에도.

모든 것이 괜찮은 척하는 것도 이젠 너무도 지쳐버린 그녀.

괜찮지 않다. 이 모든 건 전혀 괜찮지 않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침대는 비어 있고, 욕실에서 새어 나온 빛...

제이콥이 욕실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이콥, 당신 괜찮아?"

"왜? 왜? 왜? 왜? 왜?"

제이콥이 멈췄다. 제이콥의 시곗바늘이 멈춰버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제이콥?"

"왜?"

"제이콥, 당신이 누군지 알아?"

"왜?" - page 19

그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긴 투병 생활이 시작되게 됩니다.

그렇게 제이콥과 그녀의 이야기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알고, 사랑해 주던 남자.

이젠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그녀를 못 알아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녀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도 암에 걸리게 되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늘, 항상, 나는 불안해하며 살았다. 제이콥은 그런 나를 늘 안심시키고, 웃게 하고, 용기를 불어넣었다. 나는 매번 그런 제이콥에게 고마웠다. 절벽에서, 집라인에서, 다이빙대 밑 깊은 물속으로 밀어 넣어준 것에 대하여.

내가 그토록 불안해하고 우려하던 진짜 위험은 사실 안에 있었다. 그 위험은 내 가슴 안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나는 평범한 삶의 끝이 얼마나 가까운지 모른 채로는 그 절벽을 두 번 다시 걷지 않을 것이다. 그 끝으로 걸어온 내게 보이는 것은, 절벽 너머에 있는 것은, 죽음이다. 어둡고, 끝이 없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리고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다. 아직은. 하지만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언젠가 저 절벽 너머로 가야 할 때가 온다면, 나는 두 팔을 벌리고 멋지게 뛰어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제이콥이 가르쳐준 것처럼. - page 212 ~ 213

그렇게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서로를 두고

"우리는 행운아야"

라고 말하던 그들.

사랑했기에 필연적으로 겪어야만 했던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

저라면 아마도 파도에 휩쓸려갔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땅을 박차고 날아가려는, 바람의 흐름에 몸을 맡기려는 연처럼, 서로의 손을 잡은 채 앞뒤로 흔들리며 불안정하게 걷더라도 똑바로 서려고 노력하면서 견디는 모습으로부터 '잠재력'을 '희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난 뒤 내 옆을 지켜준 사람, 그리고 사랑의 본질과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서로에게 한 맹세, 서로를 향한 헌신, 사랑...

그 변함없고도 단단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함을...

새삼 옛 추억도 소환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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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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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일 년 중 짧은 달...

그런데 이번 달엔 묵직한 주제들의 책 읽기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가난'이었고 이번엔...

'인간'

책 제목을 들었을 때 많이 익숙했었습니다.

읽지는 않았는데...

아마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었나 봅니다.

무엇보다 선물을 받아 저에겐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진 이 책.

어떤 내용이 그려져 있을지 기대되었습니다.

노동의 고독을 승화하여 써내려간 뜨거운 소설!

우리의 상식을 두드리는 묵직한 거짓말

회색 인간



'김동식' 작가.

그는 10년 동안 공장에서 노동하면서 머릿속으로 수없이 떠올렸던 이야기들을 거의 매일 [오늘의 유머] 공포게시판에 올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써내려간 300편의 짧은 소설 가운데 66편을 추려 묶은 것이 '김동식의 소설집(전3권)'.

그중에 1권이 바로 『회색 인간』이었습니다.

책을 펼치면 바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회색 인간>을.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그들에게 있어 문화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 page 7

첫 문장부터 강렬했습니다.

어느 날, 한 대도시에서 만 명의 사람들이 하룻밤 새 증발하듯 사라지게 됩니다.

땅속 세상, 지저 세계 인간들의 소행.

만 명의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땅을 파야 했습니다.

왜...?!

[지금 너희들이 겪었듯이,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지상의 인류를 간단히 멸망시킬 수도 있다. 그러니 너희들은 인류를 위해 땅을 파라. 도시 하나만큼의 땅을 파내면, 너희들을 무사히 지상으로 돌려보내 주겠다.] - page 8 ~ 9

진짜이길 바랬지만...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헛된 기대를 버리고 분노를, 더 흐르자 체념의 단계로 강제 노동을 받아들였고, 인간 같지 않은 삶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인간 같지 않은 삶.

회 색 인 간...

사람들은 모두 마치, 회색이 된 듯했다.

그것이 흩날리는 돌가루 때문인지, 암울한 현실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무표정한 회색 얼굴로 하루하루를 억지로 살아가고 있었다. - page 10

이런 그들에게 한 여인의 '노래'로부터 신기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누군가 여인에게 빵을 가져다준 것이다. - page 16

목숨과도 같은 '빵'을 땅을 파지 않는 이에게 건넨다는 거.

그렇게 하등 쓸모없는 것이라 여겼던 '예술'은...

여전히 사람들은 죽어나갔고, 여전히 사람들은 배가 고팠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회색이 아니었다.

아무리 돌가루가 날리고 묻어도, 사람들은 회색이 아니었다. - page 21

짧지만 묵직한 한 방.

그렇게 <회색 인간>을 필두로 가상현실, 인조인간, 영생 등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디스토피아적 세계로부터 우리에게 건넨 메시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들을 바라보며 참으로 숙연해졌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덮는 순간 현실로 돌아온 저에게 던져진, 인상적인 문구가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애초에 원래 우리는 이런 인간이지 않았습니까?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갔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맞아. 원래대로 돌아갔을 뿐이지..."

"그래... 맞아..." - page 274

어쩌면 지금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를 이야기들.

그렇기에 꼭 한 번은 읽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들.

저자의 두 권의 소설집이 궁금하였습니다.

그만이 그려낼 수 있었던, 전에 없던 '진짜 이야기'.

어떤 이야기로 우리에게 물음표를 건넬지 기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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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 With Frida Kahlo 활자에 잠긴 시
박연준 지음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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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운명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었던 '프리다 칼로'.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고통과 아픔을 감히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열정을, 희망을 엿볼 수 있기에 자꾸만 보게 되는...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가 있다면 항상 읽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읽게 된 이 책.

고통과 상처로 '하염없이 추락하는' 삶을 살았던, 그리고 그것을 질료로 '피보다 더 붉은' 작품을 남긴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예술과 사랑의 궤적을 좇은 박연준 시인의 시적 사유의 기록이라 하였습니다.

시와 그림으로 써 내려간 에세이...

이보다 더한 조합은 없었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살아남은' 그림과 시인의 변주곡

두 예술가의 아름다운 대화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그림은 말하지 않는 시, 시는 말하는 그림"

이라고 말한 그리스 시인 시모니데스의 말을 곱씹어 보며 그림을 시로 '번역'한 '그림 번역'.

박연준 시인은 '시적인 것'과 맞닿은 프리다 칼로의 그림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그림으로 변용되기 전 화가 마음 상태를 미리 읽어"보고, 일기나 편지에 남긴 프리다 칼로의 언어들을 되새기며 '디에고 리베라와의 사랑'의 실체에 대해 탐색하였습니다.

수천 번 부서졌지만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필요했던 '사랑'에 대하여

그리고 결국 부서지지 않고 살아남게 된 '작품'에 대하여

프리다 칼로의 그림과 시인이 속한 현실 공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소하지만 솔직하고 부조리하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개인적 독백을 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들은 불치병을 앓는 자가 올리는 기도이자 제사다. 절박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지금도 움직인다. 꿈틀대고 말하고 비명을 지르고 죽고 살아난다. 기도하는 자의 힘이다.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는 옛말처럼, 무엇에 미친 사람의 손끝에서 나오는 작품은 언제나 도를 넘는다. 도를 넘어 아름답고, 도를 넘어 끔찍하다. 도를 넘어 흥미롭고, 도를 넘어 경이롭다.

도를 넘는 일. 사랑이 종종 즐겨 하는 일이다. - page 203



그녀의 고통을, 그녀의 심정을, 디에고를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 가늠할 수 있을까...

죽음을 앞두고

"나의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결코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던 여인.

그런 그녀를 따스하고 위트 넘치며 한없이 감각적인 언어로 우리에게 안녕을 묻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이야기.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를 떠나서, 사랑과 아픔, 배신과 고통을 떠나서 아니타 브레너의 편지에서 건넨 이야기.

어떤 순간에도 "이게 나다. 나는 가치 있는 인간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뭔가가 내면에 자리 잡고 있을 때 우리는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 세상이 주는 모욕과 멸시를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것, "궁극적으로 의지할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것! 제아무리 위대한 사랑이라 해도, 사랑보다 위에 있는 것은 예술이요, 예술보다 위에 있는 것은 나의 가치를 긍정하는 자세다. - page 190

내가 없으면, 모든 것은 사라진다...

사라지지 않을지라도, 사라진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

'사랑'에 대해, '사랑보다 위에 있는 것'에 대해 깊이 있는 사유를 펼쳐나갔던 이 책.

묵직이 다가왔었습니다.

프리다 칼로가 '특별히' 불행했다면, 그 불행의 특별함은 '사랑'에서 기인한다. 그녀는 사랑의 실패에 괴로워하다 죽은 사람의 편에 서지 않았다. 사랑의 실패를 견디고 견디어서, 그녀는 드디어 '실연의 실패'에 도달했다. 물론 나는 실연의 실패가 사랑의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견디는 자는 실패할 기회를 잃은 자, 견딤으로써 열반에 든 '약한 강자'라고 생각할 뿐이다. 마음껏 실패하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울고 불며 끝내지도 못하고, 무지몽매하게 견디는 자. 사랑을 꽉 쥔 주먹을 펴지 않는 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사랑을! - page 200

가장 앞서 사랑해야 할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나라는 것을, 그게 끓어넘칠 위험이 없다는 것을 그녀는 몰랐을까? 나를 나만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또한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자를 바라보기는 얼마나 버거운 일인가? - page 201

참...

밤은 길고 괴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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