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작가.
그는 10년 동안 공장에서 노동하면서 머릿속으로 수없이 떠올렸던 이야기들을 거의 매일 [오늘의 유머] 공포게시판에 올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써내려간 300편의 짧은 소설 가운데 66편을 추려 묶은 것이 '김동식의 소설집(전3권)'.
그중에 1권이 바로 『회색 인간』이었습니다.
책을 펼치면 바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회색 인간>을.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그들에게 있어 문화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 page 7
첫 문장부터 강렬했습니다.
어느 날, 한 대도시에서 만 명의 사람들이 하룻밤 새 증발하듯 사라지게 됩니다.
땅속 세상, 지저 세계 인간들의 소행.
만 명의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땅을 파야 했습니다.
왜...?!
[지금 너희들이 겪었듯이,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지상의 인류를 간단히 멸망시킬 수도 있다. 그러니 너희들은 인류를 위해 땅을 파라. 도시 하나만큼의 땅을 파내면, 너희들을 무사히 지상으로 돌려보내 주겠다.] - page 8 ~ 9
진짜이길 바랬지만...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헛된 기대를 버리고 분노를, 더 흐르자 체념의 단계로 강제 노동을 받아들였고, 인간 같지 않은 삶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인간 같지 않은 삶.
회 색 인 간...
사람들은 모두 마치, 회색이 된 듯했다.
그것이 흩날리는 돌가루 때문인지, 암울한 현실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무표정한 회색 얼굴로 하루하루를 억지로 살아가고 있었다. - page 10
이런 그들에게 한 여인의 '노래'로부터 신기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누군가 여인에게 빵을 가져다준 것이다. - page 16
목숨과도 같은 '빵'을 땅을 파지 않는 이에게 건넨다는 거.
그렇게 하등 쓸모없는 것이라 여겼던 '예술'은...
여전히 사람들은 죽어나갔고, 여전히 사람들은 배가 고팠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회색이 아니었다.
아무리 돌가루가 날리고 묻어도, 사람들은 회색이 아니었다. - page 21
짧지만 묵직한 한 방.
그렇게 <회색 인간>을 필두로 가상현실, 인조인간, 영생 등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디스토피아적 세계로부터 우리에게 건넨 메시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들을 바라보며 참으로 숙연해졌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덮는 순간 현실로 돌아온 저에게 던져진, 인상적인 문구가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애초에 원래 우리는 이런 인간이지 않았습니까?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갔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맞아. 원래대로 돌아갔을 뿐이지..."
"그래... 맞아..." - page 274
어쩌면 지금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를 이야기들.
그렇기에 꼭 한 번은 읽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들.
저자의 두 권의 소설집이 궁금하였습니다.
그만이 그려낼 수 있었던, 전에 없던 '진짜 이야기'.
어떤 이야기로 우리에게 물음표를 건넬지 기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