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 With Frida Kahlo 활자에 잠긴 시
박연준 지음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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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운명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었던 '프리다 칼로'.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고통과 아픔을 감히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열정을, 희망을 엿볼 수 있기에 자꾸만 보게 되는...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가 있다면 항상 읽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읽게 된 이 책.

고통과 상처로 '하염없이 추락하는' 삶을 살았던, 그리고 그것을 질료로 '피보다 더 붉은' 작품을 남긴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예술과 사랑의 궤적을 좇은 박연준 시인의 시적 사유의 기록이라 하였습니다.

시와 그림으로 써 내려간 에세이...

이보다 더한 조합은 없었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살아남은' 그림과 시인의 변주곡

두 예술가의 아름다운 대화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그림은 말하지 않는 시, 시는 말하는 그림"

이라고 말한 그리스 시인 시모니데스의 말을 곱씹어 보며 그림을 시로 '번역'한 '그림 번역'.

박연준 시인은 '시적인 것'과 맞닿은 프리다 칼로의 그림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그림으로 변용되기 전 화가 마음 상태를 미리 읽어"보고, 일기나 편지에 남긴 프리다 칼로의 언어들을 되새기며 '디에고 리베라와의 사랑'의 실체에 대해 탐색하였습니다.

수천 번 부서졌지만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필요했던 '사랑'에 대하여

그리고 결국 부서지지 않고 살아남게 된 '작품'에 대하여

프리다 칼로의 그림과 시인이 속한 현실 공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소하지만 솔직하고 부조리하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개인적 독백을 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들은 불치병을 앓는 자가 올리는 기도이자 제사다. 절박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지금도 움직인다. 꿈틀대고 말하고 비명을 지르고 죽고 살아난다. 기도하는 자의 힘이다.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는 옛말처럼, 무엇에 미친 사람의 손끝에서 나오는 작품은 언제나 도를 넘는다. 도를 넘어 아름답고, 도를 넘어 끔찍하다. 도를 넘어 흥미롭고, 도를 넘어 경이롭다.

도를 넘는 일. 사랑이 종종 즐겨 하는 일이다. - page 203



그녀의 고통을, 그녀의 심정을, 디에고를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 가늠할 수 있을까...

죽음을 앞두고

"나의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결코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던 여인.

그런 그녀를 따스하고 위트 넘치며 한없이 감각적인 언어로 우리에게 안녕을 묻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이야기.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를 떠나서, 사랑과 아픔, 배신과 고통을 떠나서 아니타 브레너의 편지에서 건넨 이야기.

어떤 순간에도 "이게 나다. 나는 가치 있는 인간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뭔가가 내면에 자리 잡고 있을 때 우리는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 세상이 주는 모욕과 멸시를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것, "궁극적으로 의지할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것! 제아무리 위대한 사랑이라 해도, 사랑보다 위에 있는 것은 예술이요, 예술보다 위에 있는 것은 나의 가치를 긍정하는 자세다. - page 190

내가 없으면, 모든 것은 사라진다...

사라지지 않을지라도, 사라진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

'사랑'에 대해, '사랑보다 위에 있는 것'에 대해 깊이 있는 사유를 펼쳐나갔던 이 책.

묵직이 다가왔었습니다.

프리다 칼로가 '특별히' 불행했다면, 그 불행의 특별함은 '사랑'에서 기인한다. 그녀는 사랑의 실패에 괴로워하다 죽은 사람의 편에 서지 않았다. 사랑의 실패를 견디고 견디어서, 그녀는 드디어 '실연의 실패'에 도달했다. 물론 나는 실연의 실패가 사랑의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견디는 자는 실패할 기회를 잃은 자, 견딤으로써 열반에 든 '약한 강자'라고 생각할 뿐이다. 마음껏 실패하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울고 불며 끝내지도 못하고, 무지몽매하게 견디는 자. 사랑을 꽉 쥔 주먹을 펴지 않는 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사랑을! - page 200

가장 앞서 사랑해야 할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나라는 것을, 그게 끓어넘칠 위험이 없다는 것을 그녀는 몰랐을까? 나를 나만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또한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자를 바라보기는 얼마나 버거운 일인가? - page 201

참...

밤은 길고 괴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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