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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평점 :
이 책의 화자인 홀든의 나이에 처음 읽고 그 뒤로 종종 발췌독 형식으로 읽은 후 홀든 또래의 아이를 두고 다시 이 책을 들었다. 몇 십년 동안에 이러저런 이유로 이 책을 접하기는 했지만 완독을 한건 2번 정도이다. 그것도 30년 이상의 차이가 있으니 그 느낌은 정말 다를 것이다. 내가 학창시절에 읽은 책들은 그냥 손에 잡히는대로 읽은 것들이다. 물론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책들도 있지만 학교에서 필독서라며 읽으라는 것들은 거의 없었다. 주변 친구들, 책을 좋아하는 지인들이 추천해주거나 내가 좋아하는 작가나 장르의 책을 읽은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초등학교때부터 학교에서 필독서를 정해준다. 그건 여러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많은 책들이 있지만 그 책들이 기본이 된다는 것일수도 있고 워낙 읽지 않으니 이 책만큼은 꼭 읽으라는 책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의미인지를 떠나 그 책들만큼은 꼭 읽게된다. 아니 엄마들이 읽히고 있다. 그 중에 한권이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을 종종 만나고 있는데 한 아이가 이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 반갑기도 하고 내가 그 나이에 읽었기에 이 책을 읽는 아이의 반응이 궁금했다. 학교 숙제라 억지로 읽는다는 아이의 대답이 조금은 슬프기도 하다. 이 책의 주인공 홀든처럼 살지 말라고 우리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아이의 눈에는 호기있게 가출(?)한 한 아이가 보지말고 듣지 말아야 할 일들을 경험하고 고생만하다 병을 얻어 결국은 집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홀든과 같은 또래의 아이가 읽으면서 그의 생각과 삶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대부분 숙제로 내준 책들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줄거리를 파악하고 의미들도 자세히 나와있으니 그것에 맞춰읽으려 한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자신의 생각을 맞추어 간다. 내가 만난 그 아이는 서툴지만 자신의 힘으로 읽어가며 홀든과 주변 상황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 생각으로 얻어낸 답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책의 세계에, 홀든이라는 인물에 빠져드는 것이 아닐까. 홀든이라는 인물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그 아이로 인해 나또한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다.
지금 나는 따분한 자서전을 늘여 쓰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난해 크리스마스 무렵, 갑자기 건강에 이상이 생겨 이곳에서 요양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 직전에 일어난 미치광이 같은 내 신변 이야기를 하려는 참이다. - 본문 7쪽
홀든다운 표현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홀든은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크리스마스 사흘 전 학교 기숙사를 나온다. 추운 겨울만큼 냉혹한 자신의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던 그는 폐렴에 걸려 요양소 입원을 한다. 요양원에서 퇴원하기 전의 홀든이 회상하는 내용을 이야기로 담고 있는 것이다.
부유한 집안의 홀든은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홀든의 문제들은 그 안에서부터 출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교육에는 관심이 없는 아버지, 할리우드에서 영화시나오리를 쓰는 형 D.B 와는 친하지 않다. 두 살 어린 남동생은 밸혈병으로 죽고 여동생 피비가 있다. 우리들은 힘들고 지칠때 생각나고 돌아가고 싶은 곳은 집이다. 그 집에 온기가 없다면 갈 곳을 잃는 것이다. 홀든이 학교를 떠나 방황을 하면서도 집에 선뜻 돌아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야. 바보 같은 것인 줄은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것밖에 없어.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지만 말야. - 본문 256쪽~257쪽
피비는 세상의 일어나는 모든 일이 싫은거냐 물으며 좋은 것 한가지만 말하라고 한다. 그때 홀든이 말한것이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를 만나면>은 '로버트 번스'의 시이며 전통동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세상이 싫은 이유는 수백가지가 되지만 좋은 것은 이것 하나인 홀든. 그는 어른 하나 없는 넒은 호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고 싶다. 다른 것도 아닌 낭떠러지 옆에 서 있다가 떨어질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주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홀든은 누군가 자신을 그렇게 해주길 바라던 것은 아닐까.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은 홀든에게도 파수꾼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제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어야하는 어른이 되어 다시 이 책을 만났다. 홀든과 같은 또래에 만난 나는 이제 어른이 되었는데 홀든은 아직도 파수꾼이 되고 싶은 아이로 남았다. 함께 아파하며 위선으로 가득찬 세상과 어른들을 미워했는데 이제는 내가 그런 어른이 되어 있다. 우리들이 함께 미워했던 어른의 모습이 내게도 보여 조금은 혼란스럽다. 나처럼 비겁한 어른이 아니라 호된 성장통을 겪어야만 했던 홀든의 바람처럼 호밀밭 아니 세상의 파수꾼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