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 - 강지혜 에세이 매일과 영원 2
강지혜 지음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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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없어서 여름휴가 이야기를 꺼냈다. 짧은 휴가를 앞두고 있었을 때였다. 다들 어디 놀러 가시나, 궁금한 것도 있고. 사회성 있는 인간으로 보이고 싶어서. 제주도 이야기가 나왔다. 그 순간 제주도에 꼭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신청해 제주도 관광 지도도 받아 보았다. 게으름뱅이가 그 정도 했으면 큰일 한 거다. 지도를 받아 든 것만으로도 제주도에 가 있는 기분.


딱 거기까지였다. 항공편을 알아보고 숙박 시설을 검색하는데 지쳤다. 하필이면 그때가 성수기였던 것도 있고. 핑계인 거 다 안다. 가고 싶은 마음이었으면 어떻게든 갔을 텐데. 온갖 가기 싫은 이유를 끌어대면서 결국에는 가지 않았다. 아, 제주도. 내게는 너무 먼 곳. 책으로만 만날래. 그래서 강지혜의 에세이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를 집어 들었다.


요즘 시인의 시집은 안 읽고 시인이 쓴 에세이만 읽고 있다. 아무래도 마음이 복잡해서인지 시보다는 생활의 감각이 묻어나는 에세이가 더 와닿는다. 버거운 출퇴근을 하던 시인 강지혜는 어느 날 이렇게는 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한다.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대출을 받아 집을 샀지만 그래서 영혼이 바닥난 기분이 든다. 이렇게는 살기 힘들겠다는 남편은 여행을 떠나고 기브 앤 테이크로 시인도 전국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가을의 제주를 만난다.


별명이 강추진만. 한 번 추진하려는 일에는 저돌적으로 밀고 나가는 시인의 별명. 강추진만은 남편을 설득하기 위해 계획을 짠다. 함께 여행을 떠났고 제주도 촌집을 사서 꾸민다. 남편과 동생이 함께 이주를 했다. 시작은 만만치 않았다. 촌집은 촌집이었다. 촌집은 리모델링보다는 허물고 새로 건축을 하는 게 이득이란다.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은 나도 한 번 제주도에 살아볼까 하는 이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당신들이 생각한 것만큼 낭만적인 제주도 살이가 아니라는 것을 웃프게 들려준다. 가족과 함께였지만 가족이어서 서운하고 힘들었던 점 또한 솔직하게 말한다. 어렵게 리모델링을 하고 가게를 열었다. 만만치 않은 자영업자의 삶. 그럼에도 행복이 찾아온다. 강아지 신지와 귀여운 아이 다하. 시인과 엄마, 숙박 업체의 사장으로서 강지혜의 삶이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에세이 끝에는 시가 한 편씩 실려 있다. 시인으로서의 자아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여 뭉클했다. 시 밑에 쓰인 이야기 역시 읽고 나면 마음이 짠해진다. 어떤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눌러썼을지가 상상이 되어서. 사람 일은 모른다지만 내가 제주도에 갈 일이 있을까. 이런 식으로 가다간 제주도를 책으로 배웠어요가 될 것 같다. 누군가의 제주도 살이를 보며 그이가 들려주는 일상의 슬픔과 기쁨을 상상하며 가보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를 다독인다. 책은 그러라고 읽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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