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농담
이슬아 지음 / 헤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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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었는데 남이 쓴 글만 읽고 있는 삶. 괜찮은 건가를 묻는 건 괜찮지 않다는 뜻이겠지. 에너지와 활기와 생기 없음으로 지내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숨만 겨우 쉬고 있다. 어떨 때는 비염이 도져서 숨조차 쉬는 게 힘들다. 운동 같은 건 취미가 없고 사람 많은 데는 안 가는 게 아니고 못 가고. 주말 내내 걱정하다가(하필이면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깨서 실수 한 걸 찾아냈다. 무슨 일이래. 잠이 확 깨고 나 정말 미쳤구나. 중요한 걸 놓쳤구나 해서 식겁. 아침이 밝자마자 실수했다는 걸 밝히는 카톡을 보내고. 그것 또한 실례인데. 월요일에 한 번 더 도장을 찍어 주러 오십사 간곡하게 부탁했다.) 청소하다가 낮잠 자다가. 주말 인데.


으쌰 으쌰 해서 48시간을 알차게 써보자 매번 다짐하지만 피곤하고 피곤하다. 밥을 먹으면 등이 아파지고 잠깐 기대 있어야지 하다가 눕고 잠이 들고 오후도 아니고 저녁만 남은 일요일을 갖게 된다. 박막례 할머니 왈. 실패는 했다는 것의 증거.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이에게 건네는 다정한 조언을 반복해서 듣는다. 요즘엔 유튜브가 마음 치료사다. 정확히 내 마음의 상태를 알고 영상을 추천해 준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밤에 옆으로 누워 그걸 보느라 또 시간이 날아간다.


이슬아의 창작 동료 인터뷰집 『창작과 농담』을 들춰보다가 단박에 마음에 드는 부분을 발견했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주인공 배우 강말금과 감독 김초희를 인터뷰한 부분에서였다. 이슬아는 두 사람에게 질문한다. 두 분이 생각하는 부귀영화란 무엇인지. 강말금은 이렇게 대답한다. '저한테 부귀영화는 일단 출퇴근하지 않는 것.' 이어서 김초희도 '맞아. 나도. 그거 안 하고 싶어서 이 직업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라고 주고받는다.


가수, 작가, 감독, 배우를 인터뷰한 『창작과 농담』은 그들이 창작을 하기까지의 역사와 마음을 다룬다. 어떻게 창작하는 사람이 되어 살아가고 있나 아니 어쩌다 창작하는 사람으로 지내고 있나를 질문한다. 어떻게 와 어쩌다 사이를 이슬아는 능숙하게 넘나든다. 창작의 비기 같은 건 없고 그냥 그 사람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 대화한다. 책을 읽지 않았으면 몰랐을 사람이 있고 책을 읽기 전부터 알던 사람이 있다. 차이점은 없다. 모르던 사람에게서는 좀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알던 사람에게서는 색다른 부분이 있구나 하는 놀라움을 느낄 수 있다.


말로만 문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예전에는. 이제는 그런 말조차 안 한다. 부끄럽고 한심해서. 내가 쓰지 않아도 남들이 부지런히 그것도 기깔나게 쓰고 있잖아, 정신 승리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독서가 최고라고 하는데. 책을 읽다 보면 깨달음이 온다. 나는 이렇게 잘 쓸 자신이 없다. 하루하루를 지내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황과 감정에 대해 잘 정제된 언어로 표현해 놓은 걸 보고는 감탄한다. 그 정도면 된다는 자기 위안.


화내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버거운데 참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왔는데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직장 다니면서 새벽까지 글을 써서 등단했다는 도시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혼란에 빠진다. 사람이, 그럴 수 있나. 아무래도 나는 틀렸어. 먼저 가. 이러고 있다. 스트레스 받을 일도 아닌데 괜히 자학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돌아와 책을 산다. 그 일로 퉁 친다. 쓰지 않는 것에 대해. 『창작과 농담』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삶의 태도는 이런 식이다.


그들은 인내한다. 창작하기 전까지의 고통스러움과 결과물을 완성하고 나서의 부끄러움을. 대중의 찬사와 혹평을 들으면서도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창작이 있기 전에 삶이 있다고 진지하게 믿는다. 삶을 살아낸다. 가장 중요한 건 삶과 농담이라고 말한다. 삶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농담이 꼭 있어야 된다는 걸 아는 이들이 창작을 한다. 싸우고 절망하고 슬퍼지는 건 우리의 시간에 농담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말과 말 사이에 조미료처럼 작용하는 농담을 적절하게 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살아가는 것에 잠식 당하지 않고 다만 한 줄이라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미워하는 마음은 왜 생길까. 실망은 왜 찾아올까. 아무리 책을 읽어도 현명해지지 않는다. 『창작과 농담』의 표지는 이슬아와 오혁이 실뜨기를 하는 두 손을 찍은 사진이다. 실뜨기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놀이이다. 두 사람이 필요하다. 네 개의 손이 모여야 실을 펼치고 모을 수 있다. 겨우 손가락 몇 개를 움직였을 뿐인데 실이 만들어 내는 세계는 찬란하다.


표지 사진은 창작은 혼자였다가 둘이 되어야만 완성되는 일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일단 혼자 만든다. 혼자의 시간이 끝나면 다른 이가 필요하다. 당신의 고독과 슬픔과 비애를 알아봐 주는 이가 당신을 찾아와야 비로소 완성되는 창작.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이 펼쳐지는 실뜨기처럼 당신이 만들어낸 세계는 어떻게 변이 될지 알 수 없다. 실이 꼬이면 꼬이는 대로. 성공한 이의 후일담이 아닌 보통의 존재들이 피곤해하면서도 무언갈 만들어가는 모습을 『창작과 농담』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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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마음으로 -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
이슬아 지음 / 헤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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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리뷰를 빙자한 힘들다고 징징대는 글을 쓴다. 나도 안다. 맨날 허구한 날 힘들어서 못해 먹겠다고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면 듣기도 보기도 싫다는걸. 듣기 좋은 소리도 계속 들으면 질리는데. 싫고 부정적이고 짜증 섞인 소리는 오죽할까. 그러니 쓴다. 대나무숲에 서 있는 심정으로. 내가 하는 말은 바람이 대나무가 듣고 다시 나에게 들려줄 테니.


여기서 그만두면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걸 아는데도 겁나, 졸라 힘들다. 매일 아침에 눈 뜨는 게 겁이 날 지경이다. 어떤 생각까지 했냐면 일하러 가다가 뭐가 됐든 나를 덮쳐서 정신을 잃고 당분간 병원에 누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죽지는 말고 깊은 잠에 드는 거. 내가 의식이 없는 동안 일은 알아서 처리될 것이고.(그런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나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갈 거라는 믿음. 잘만 돌아간다. 나 말고도 일할 사람은 천지.) 정리가 되면 눈을 뜬다.


이거 심각한 건가. 내 마음까지 사찰하고 있는 듯한 유튜브는 번아웃, 직장 스트레스, 우울감, 무기력에 관한 정신과 전문의의 강의를 보여준다.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서 힘들어 못하겠다고 그러느냐 비아냥 거릴 수도 있겠는데. 나 지금 진지하다. (궁서체로 쓴다.) 버티면, 이겨내면, 참아내면 이라는 말로 나를 설득하려고 하는데. 꺼지삼. 점심시간에 매점에 가 있는 거보다 어두운 도서관에서 한국 문학 전집을 훑어보던 문학소녀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이슬아의 인터뷰집 『새 마음으로』를 읽으면서 어둡고 불안한 지금의 나를 토닥인다. 이슬아니까 가능해. 그렇게 생각했다. 『새 마음으로』는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책을 잃어보면 알겠지만 인터뷰이는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다. 오직 이슬만이 안다. 이슬아가 자주 다니는 단골 옷 수선 사장님, 이슬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슬아의 친구 엄마, 이슬아의 책을 만드는 인쇄소 기장과 경리 등 이슬아의 지인들의 이야기로 꾸려져 있다.


현재까지 알바를 빼면 딱 두 개의 직업을 가져 보았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세상을 너무 모르는 채로 사는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하다. 글을 쓰고 싶다는 사람이 활동 범위가 좁은 거 아닌가. 망신스럽기도 하고. 글을 못 쓰는 이유가 다양한 직업 활동을 하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닌가. 핑계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그래서 읽는다. 이슬아의 인터뷰집이 나왔다길래, 바로 주문했다. 나는 알지 못하는 세계를 이슬아는 듣고 보고 기록해서 보여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새 마음으로』의 표지가 예쁘다. 제목 역시 산뜻하다. 군더더기 없다. 반들반들한 표지에 마치 시간 여행을 한 듯한 사진 배경까지. 안 살 이유가 없다. 직장인이 두려움을 느낀다는 일요일 저녁에 읽기에 매우 대단히 최적화된 책이다. 없던 용기까지 불러온다. 나의 어려움은 괜찮은 수준이구나. 응급실 청소 노동자 순덕 씨의 사연을 시작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매일을 새 마음으로 일하는 이들의 오늘을 만날 수 있다. 그에 반해 나의 오늘은 어떤가. 새 마음은커녕 구겨지고 찢어져서 너덜거리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호강에 겨워서 요강 차는 소리라고 하면 잠자코 듣겠다.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세상 일 혼자 다하는 것처럼 하기 싫다고 때려치우고 싶다고 왜 계속 그러냐 하면 할 말 없다. 백수 시절에는 빨리 직장 구해서 일하고 싶었는데. 일하고 있으니까 그만두고 싶네. 내가 책을 많이 읽고 글도 조금 써서 그걸로 작년까지는 벌어먹고 살았는데. 그래서 일 못한다고 서툴다고 이것도 못하냐는 소리는 일 처음 시작할 때 빼고는 안 들었는데.


지금은.


나 이해 가.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누군가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헌 마음도 빈 마음도 아닌 새 마음으로 오랫동안 일했나.' 『새 마음으로』 책 뒤표지에 쓰인 문장이다. 배우고 싶어서. 지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이상한 마음먹지 않고 새 마음으로 오랫동안 일한 당신들의 신념을 알고 싶어서. 읽었다. 솔직히 말하면 살고 싶어서. 책이 나를 구원할 수 있냐고 질문하면 그렇다고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하기에 앞서 책을 읽으면 어떤 선택을 미룰 수 있다.


『새 마음으로』는 선택 대신 선택하지 않음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판단 대신 유보하라고 권한다. 네가 걸어가는 길에 강아지가 따라오고 고양이가 지나가고 강물에 햇살이 비치는 걸 고마워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질문한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수선 가게를 운영하는 영애 씨의 서사는 나를 '미래로' 이끌어준다. 네가 눈을 뜨고 일어나서 이불을 정리하고 옷을 챙겨 입고 문을 나서는 일. 너의 오늘로 향해 가는 일이야말로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일이 된다.


그거면 된다. 나를 달랜다.


새 마음을 챙겨가지는 못 할 것 같아. 나의 마음은 길에 놔두고 갈래. 마음이 없는 상태면 괜찮을 것 같아. 당분간만 마음 없이. 누군가의 새 마음을 엿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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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되는 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3
최진영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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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다. 다른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무슨 일이든 해 보려고 발버둥 치는 삶보다, 정말 어딜 가나 비슷하구나 깨닫고 체념하는 삶보다, 지금처럼 고인 채로 매일 짜증 내며 조용히 썩어가는 삶이 최악이다. 박수원은 내가 어디에서도 지금만큼 인정받지는 못하리라고 단단히 믿고 있었다. 나는 박수원의 믿음이 역겨웠다. 그가 나를 얼마나 경멸하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후회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후회하는 삶을 살 것이다.


(최진영, 『내가 되는 꿈』中에서)


'그렇다면 나는 후회하는 삶을 살 것이다.' 최진영의 소설 『내가 되는 꿈』을 읽으며 밑줄 그은 문장은 저런 식이었다. 또 있다. '젊은 시절의 엄마 아빠처럼 자신을 견딜 수 없어 상대를 증오하는 방법으로 정신없이 화를 내며 살고 있는 나를 찾아왔다.' 대체 어쩌자는 건데 하는 식의 문장들. 불안, 분노, 짜증, 냉소 같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안고 살아가는 내가 감흥을 받은 문장. 애쓰지 않아도 좋아. 포기할 수 있다면 할 것. 간단명료한 말을 찾아가며 읽었다.


사직서에 일신상의 이유라는 두루뭉술한 말이 아닌 그동안에 쌓여 왔던 회사에 대한 울분을 써내는 장면에 책갈피를 했다. 『내가 되는 꿈』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장면으로 시작한다. 손주들에게 공평하게 200만 원씩 남겨 줬다는 엄마의 연락을 받으면서도 태희는 별다른 감정의 동요를 느끼지 못한다. 회사에서 야근을 하는 중이었다. 직장 상사라는 박수원 부장은 매번 태희의 실수를 지적해 내고 망신을 줬다. 할머니가 남긴 편지도 있으니 한 번 내려오라는 엄마의 말에 짜증을 낸다.


하필이면 전화를 받은 곳이 회사여서. 사직서든 편지든 무언갈 써야 정리가 되는 상황인데 태희는 기획서나 쓰고 있다. 번번이 까이고 퇴짜를 맡고 반려를 당하는 기획서를 쓰느라 할머니의 죽음 이후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다. 200만 원은 그냥 엄마 쓰라고 했다. 엄마는 일단 고마워해야 하는 마음이 먼저 아니냐고 했다. 태희는 실수와 잘못을 연달아 하는 자신의 삶이 실망스럽다. 다음 장에서는 태희의 과거가 나온다. 부모의 별거로 외갓집에서 이모와 한 방을 나눠 쓰며 살아가는 중학교 이후의 삶.


어른이 된 태희와 아이였을 때의 태희는 편지로 연결된다. 과거의 태희가 없었다면 현재의 태희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과거와 현재는 긴밀한 듯 때론 단절된 듯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있는데 그걸 어른이 된 나들은 잊고 산다. 애초에 과거 따위는 없다는 듯 현재의 구질구질함은 전부 지금의 내가 잘못 살아서 만든 것이라는 자책을 하면서 말이다. 아이였을 때. 내가 아이였을 때를 떠올려 보면 싫고 비참하고 슬프다. 어른의 보호는 없었고 어떻게든 성인으로서의 삶만이 구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이는 자랄 수 있나. 어른으로 클 수 있나. 그게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어른. 안타깝게도 어른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는 어른.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됐다는 식으로 함부로 말하지 않는 어른. 책임감과 의무감이 소량으로라도 몸 안에 있는 어른이 아이의 곁에 있어야 한다. 태희의 곁에는 그런 어른이 없었다. 불완전한 존재로서 태희는 그 시간들을 감당해야 했다. 엄마는 매주 찾아오다가 뜸해지고 아빠는 취조식으로 질문을 하고 이모는 혼란한 연애를 한다.


직업으로서의 꿈만을 꿈이라고 여겼다. 꿈이 있는 아이는 구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 나만 빼고 훌륭해 보였다. 그림을 잘 그리고 공부를 잘하고 날씬하고 예쁘고 글짓기를 잘하는. 내게 없는 아이들의 장점을 동경하면서 살았다. 어중간했다. 겁이 많아서 비행을 저지르지도 재능과 노력이 없어서 공부도 못 했다. 그저 내가 가질 수 없는 누군가의 눈부신 모습을 보면서 나 스스로를 학대했다.


『내가 되는 꿈』의 아이 태희와 어른 태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커서 어른이 되었다. 크게 달라지지 않은 삶이었다. 뭣 같은 직장에서 과장 직함을 달고 있지만 부장 박수원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동료라고 부를만한 이도 없이 야근과 야근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고 있다. 책상을 치우고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축하한다는 전화를 하고 바람피운 애인에게 이별을 선언하는 그 모든 일들을 어른 태희는 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어른 태희에게 편지 온다. 아이 태희가 보내온 과거에서 도착한 편지.


어떤 날에는 꿈이 현실이 되지 못한 것에 괴로워하고 최진영의 『내가 되는 꿈』 같은 소설을 읽고 나면 꿈을 이루지 못한 게 아니라 꿈을 옆에 놔두고 있다는 소설의 이야기에 안심이 되기도 하는 날. 나를 미워하다가 나를 위로하다가. 내가 싫다가 내가 괜찮다가. 확실한 주관 없이 살아가면서 남의 말에 쉽게 내 존재를 밑바닥으로 분류하다가도 '이제 정말 오지 않을 거라고 미지는 말했다. 같은 다짐을 계속하며 우리는 어른이 되겠지. 남들은 절대 알지 못할 하루와 마음을 끌어안으며. 중요한 말일수록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이런 문장을 발견하면서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게 등신 같은 게 아니라는 위안을 받는다.


후회하지 않겠다고 생각할수록 꼭 해내야 한다는 다짐을 할수록 포기하면 지는 거야 선언할수록 나는 내가 되지 못했다. 내가 아닌 남이 되어 갔다. 규율과 관습과 평범으로 만들어진 삶으로. 어른 태희는 하지 않겠다고 말한 이후로 방을 치우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애인과 이별했다. 바틀비의 선언은 꼭 필요하다. 책임져주지도 않을 거면서 도전을 말하고 패기와 용기 없음을 비난하는 어른의 말은 들을 가치가 없다.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네가 하기 싫은 건 제발하지 마. 그래도 세상은 망하지 않아. 네가 그만둔다고 해서 네 인생이 끝장나지도 않지. 일단 살고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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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상처받았나요? - 상처 입은 사람에게만 보이는 술 빼고 다 있는 스낵바가 문을 연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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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늘도 상처받았어요. 오늘만이 아니고, 오늘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당분간 내내 그럴 것 같아요는 아니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상처만 받는 상처 인간같이 돼버린 것 같아요. 그런 기분이 들어요. 요즘의 시간들은. 별거 아니라고 그냥 흘러듣고 잊어버리라고 하는데. 잘 안돼요. 성격 탓을 해봐도 위안이 되질 않아요. 타고나기를 소심하고 불안을 많이 느끼는 성향이라고 원인을 나름대로 찾아보았는데도. 그게 아닌 것 같아요. 나란 인간이 문제인 건 아닌가. 존재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닌가.


그 와중에도 마스다 미리의 신간이 나와서 당장 샀지요. 제목 좀 보세요. 『오늘도 상처받았나요?』라니요. 마스다 미리라는 것도 충분한데. 제목마저도 근사하네요. 나의 하루를 사찰하고 있는 듯한 제목. 책 택배가 왔다는 문자가 왔지만 확인만 하고 잊어버린 하루였어요. 집으로 걸어가다가. 오늘 하루도 잘 참았네. 그 순간에 화장실로 도망간 건 잘했어. 나를 다독이면서. 맞다, 문 앞에 책 택배가 와 있지. 갑자기 솟구친 힘으로 마저 길을 걸어갔어요.


성취감을 얻고자 하루에 만보 걷기를 하고 있답니다. 만보를 걸었다는 알림이 오면 약간 뿌듯해지네요. 택배 언박싱은 즐겁네요. 짜증과 분노로 가득한 하루를 잊게 만들어 줍니다. 그전에는 몰랐어요. 왜 직장인들이 집에 와서 미친 듯이 쇼핑을 하는지. 신용 카드를 긁는지. 카드빚을 갚느라 다시 출근을 하는지. 비싼 걸 사지도 못하지만 소소한 금액으로 물건을 사는 일로 정신이 건강해지면 자신이 무너지지 않으면 괜찮은 소비라는 걸 이제는 깨달아요.


청소까지 마치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어요. 고요한 저녁은 못 견딜 것 같아서. 『오늘도 상처받았나요?』를 펼쳐 들고. 야구가 진행 중이고. '우리는 어쩌면 서로 작은 상처들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네요. 상처받은 사람들 눈에만 보인다는 '스낵바 딱따구리'가 주요 배경이에요. 먼저 콜센터 일하는 나카타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원하는 대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이름을 묻고 상급자를 찾는 고객. 나카타의 하루는 그렇습니다.


연인이 있어도 자기 말만 하고요. 배가 고픈데 요깃거리도 안되는 음식을 주문하는 연인. 나카타는 그와 헤어지고 '스낵바 딱따구리'를 발견합니다. 술은 팔지 않는다고 해요. 딱 봐도 인상이 좋아 보이는 주인이 있어요. 두유 라테를 주문하는데 오늘도 수고 많았어요라고 말해주네요. 간단한 말 있잖아요. 길게 주절거리는 말인지 방구인지 모를 말이 아닌. 그저 고생했어, 수고했어, 모르는 건 죄가 아니야, 천천히 해. 같은 주어와 서술어만 있는 말이 어떤 오후에는 필요해요.


『오늘도 상처받았나요?』를 등에 기대어 읽는데 자꾸 잠이 쏟아졌어요. 저녁 10시만 넘어가면 졸음이 쏟아지네요. 나카타의 이야기 뒤에는 나카타에게 약간의 진상을 부린 아다치의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식품 매장에서 일을 하는 아다치. 손님도 같이 일하는 동료도 아다치에게 함부로 대합니다. 매일 작은 손해를 보며 살아가고 있구나를 느끼는 아다치. 스낵바를 발견하고 들어갑니다. 두 대의 피아노를 주인과 치면서 하루의 상처를 털어냅니다.


우리는 서로를 몰라요.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데. 어쩌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된 걸까요? 책의 말대로 상처로 연결되어 있다면 이해가 되네요. 저는요, 그래요. 웬만하면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민감하고 예민하고 걱정이 많은 성격 탓에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서 상처를 많이 받거든요. 의미 없는 말일 텐데 자학처럼 의도를 찾아내서 스스로 상처를 받아요. 사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지요.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어떤 말들은 대게 의미가 없는 헛소리로 판명됩니다. 생각 없이 지껄이는 말들이 많지요.


어른이라고 분류되는 나이로 살아가는데. 어른 흉내를 내며 살아가는 아이의 심정이에요. 『오늘도 상처받았나요?』의 등장인물인 열일곱 살의 메이의 말처럼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상처를 입어야 하는 어른의 얼굴을 한 아이가 저예요. 열일곱에는 꿈을 꿨어요. 무엇이 되겠다. 그 꿈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꿈을 꾸었던 열일곱은 기억합니다. 그거면 된다고, 『오늘도 상처받았나요?』는 말해주었어요. 미래보다는 오늘을 가치 있게 여기며 살아가야 한다고도.


불합리한 상황에서 조목조목 따져가며 말을 하진 못해요. 그냥 당하고 있어요. 얼굴도 모르는 타인 때문에 내 하루가 내 기분이 엉망이 되는 걸 보고만 있어요. 또는 한 공간에 있는 사람 때문에 내 세계가 허물어지는 걸 방기하고만 있어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지금 나는 감정이 없다. 인간이 아니다. 일하는 로봇이다. 일하는데 감정은 필요하지 않다. 속으로 되뇝니다.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고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습니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눈에만 보이는 '스낵바 딱따구리'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곳이 없다는 건 상처받은 사람들이 없다는 뜻이니까요.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요. 정작 상처 준 사람은 그걸 기억도 못 하는데 나만 힘들고 아프고. 상처로 연결된 우리. 각자 처한 상황이 달라서 그런 거라고. 어느 날 우리 함께 모여서 두유 라테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탭댄스를 추고 이야기를 나눠요. 규칙은 하나예요. 혼자서 오래 떠들지 말 것.


나의 오늘은요.


커피를 타고 사과 깎아 놓으라는 말과 반말을 듣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데 왜 말을 안 하냐고 사람이 말을 하면 대답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일을 어떻게 처리하냐고 지켜보고 있겠다고. 되는대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상처 세포가 유독 발달해서 그런지 더러운 기분이 쉽게 떨쳐지지 않았어요. 화장실에 앉아 있는 게 편하고 좋아요. 표정 관리가 힘들 땐 화장실로 가라던 누군가의 말을 듣고부터는 화장실로 가요. 심호흡을 하고 다시 웃으려고 해요.


편의점에서 알바하며 구직 활동을 하는 서른다섯의 도미타는 말 하네요. "더없이 평범해도 좋으니까. 확실한 내일을 원하지." 평범과 확실한 내일은 가질 수 없는 게 되어 버린 지 오래이지 않나요? 그래도 도미타는 원해요. 부디 도미타가 정규직으로 입사했으면 좋겠어요. 1년 계약직인 제가 주제넘는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스낵바 딱따구리'는 없으니까, 글을 써요. 그때 하지 못한 말을 써 나가요. 마음대로 쓰고 싶을 땐 항상 가지고 다니는 라이언 초록색 노트에. 근사한 나로 보이고 싶을 땐 블로그에.


희박한 확률이지만 현실의 나를 아는 누군가 내가 쓰는 글을 읽고 따지지 말아요. 나는 당신들이 아닌 내 이야기를 쓰는 거니까요. 나의 기분, 나의 감정, 나의 상처, 나의 어제, 나의 오늘, 나의 기억. 나는 당신들이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에요. 확실하게 해요. 반말을 할 건지. 존댓말을 할 건지. 타인을 하찮게 대하면 당신을 하찮게 대해도 된다는 걸로 알게요. 『오늘도 상처받았나요?』를 사서 건네주고 싶지만 그런 정도의 친분을 쌓고 싶지 않으니. 스스로 사서 읽도록 하세요. 얼굴과 마음이 뜨거워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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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심장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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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는 김숨의 『제비심장』은 시일까 소설일까, 노래일까. 마구 헷갈리는 그런 밤이었다. 걸어서 집에 오고 씻고 정리하고 어제 한 드라마를 뒤늦게야 보고 방에 들어가 책을 펼쳤다. 마음 같아서는 책을 다 읽고 싶었다. 하루하루의 성취는 거의 없다시피 한 시간 앞에서 완독이라도 하면 괜찮을 것 같아서였다. 내가 하는 일은 어설프고 하찮아서. 그건 그것대로 저녁 여섯시에 놔두고 온다.


그러고서 하는 일. 책을 읽는데. 그것도 어렵다. 많이 있는데 내게 없는 것 중에 체력도 없다. 어쩌다 태어나서 좋고 감사하고 슬프다. 어쩌다 태어났는데 자존감, 체력, 강한 정신력이 있었으면 좋았을걸. 조선소 노동자 그것도 여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쓴 소설 『제비심장』은 다양한 문학적 장르가 혼재되어 있다. 장편소설이라고 하니까 처음엔 소설을 읽는 자세로 읽었다.


소설이라고 하니까. 그러다 어, 어. 서사는 이어지지 않았다. 조선소의 이야기를 기본으로 깔아 놓고 문장은 뒤섞인다. 인물의 대화는 일방적이다. 서로 대화를 하고 있지만 자신의 말만 한다. 그래도 소설은 흘러간다. 어느 시점부터(김숨이 사회 참여적인 소설을 쓸 때부터) 김숨의 소설은 소설이 아니게 된다. 소설로 읽으려고 했던 밤은 실패했다.


낮의 패배와 무력감이 밤으로까지 달려왔다. 배를 만드는 사람들. 사상공, 포일공, 도장공, 발판공, 용접공, 불 감시자. 그들이 철상자 안에서 고군분투한다. 거대한 철상자 안에서 길을 잃는다. 안전은 무시되기 일쑤다. 쇳가루가 날리고 독한 페인트 냄새가 공기처럼 떠도는 곳. 하루살이 노동자들은 일당을 받기 위해 하루를 온전히 바친다. 어제와 내일은 없고 오늘만 있다. 하루를 벌어야 하루를 산다. 내일은 살 수 없다.


소설로 읽기를 포기하고 책을 덮었다. 조선소 노동자와 달리 나는 내일이 있고 싶었다. 존재하는지 의문이 드는 미약한 내일을 위해. 내일은 오늘이 되었다. 오늘은 시로 읽었다. 『제비심장』은 시로 읽힌다. 시의 호흡으로 읽어간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있었던가. 세상 물정을 책으로만 배우고 알았기에 나는 그걸 몰랐다. 겨우 김진숙을 알뿐이었다.


하루 일당이 얼만데. 아침에 일어나 밥하고 세탁기 돌리고 빨래 널고 남편과 아이들을 깨워 밥을 먹인다. 다시 눕고 싶지만 그들은 생각하고 말한다. 하루 일당이 얼만데. 일 년에 한 번 지급되는 작업복과 작업화. 그마저도 하루살이 노동자에게는 남이 입던 걸 준다. 제대로 된 휴식 시간도 없다. 한 시간의 점심시간이 있지만 구내식당까지 왕복 30분이 걸린다. 40도가 넘어가는 철상자 안에서 철판을 자르고 조립한다. 높은 곳에서는 불꽃이 떨어진다. 잘못 맞으면 눈이 실명된다.


『제비심장』은 노래로 읽힌다. 그 다음날에는. 내일을 생각하기보다 눈을 뜰 수 있는 날이라고 친다. 내일이라는 시간은. 눈을 뜨고 일을 하러 간다. 하루 일당이 얼만데 하는 생각은 들지 않고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 그게 아닌데. 꾸역꾸역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는 걸 직시하고 포기해도 나는 나인데. 『제비심장』을 노래로 읽는 밤에는 내가 내가 되고 싶었다. 먼지와 쇳가루와 불씨가 있는 작업 환경에서 일을 하면서도 집에 돌아와 일을 하는 노동자들.


나는 그렇게 살 수 없다. 일을 하고 돌아와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다. 시와 소설, 노래가 섞인 책을. 문장을 따라가다가 한숨을 쉰다. 숨을 쉬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못된 마음이 든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 내가 내 인생을 방기하는 태도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어쩌면 선택이라는 건 강요가 아니었을까. 너는 이렇게 해야 하는 식으로 말이다. 주체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믿고 나를 고통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것 같아 참담하다.


시가 있을까.


오늘은 있고 내일은 없다.


시가 없는 내일 대신 시가 있는 오늘만.


한 편의 소설에는 시와 노래가 있었다. 소설로 시로 노래로 읽는 밤이었다. 아침이 오기 전까지 노래는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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