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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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배운 국사책은 일제시대가 끝이었다. 역사라는 게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현재를 조직하는 거라면, 지금 우리들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던 현대사를 수박 겉핥기로 넘어간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내가 살아왔고, 살아가야 할 이 땅이 슬픈 역사를 잉태하고 있다는 건 분명 마음 아프지만, 가슴아픈 역사도 엄연히 역사이며, 역사의 진실과 대면할 때만이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건설할 토대가 마련되는 게 아닐까.

혹자는 이런다. 현대사의 사건들은 아직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았다고, 그래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선 안된다고. 그런데 그 역사적 평가라는 건 과연 언제 끝나는가? 누구에게든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가 과연 있는 걸까. 우리가 배운 조선시대의 역사 역시 당시 지배층의 시각으로 본, 승자의 기록이 아니던가. <대한민국사>에 실린 역사 이야기들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격동의 현대사를 아주 흥미롭게 서술해 놓고 있다. 알라딘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니 50위 안에도 이 책의 제목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좋은 책을 놔두고 다들 무슨 책을 읽는 걸까? 책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몇개만 소개해 본다.

[정부는 성조기를 불태운 학생들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태극기를 태운 것도 아니고, 정작 미국에서는성조기를 불태우는 행위가 표현의 자유로 인정받는데 말이다(1권, 60쪽)]

[노근리 학살을 거론하고, 맥아더의 동상에 시비를 거는 게 배은망덕이라고? 입장을 바꾸어 북한이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의 동상을 세웠다면 얼마나 꼴불견일까?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라지만,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노병의 동상을 보며 나는 자꾸 숨이 막힌다(1권 211쪽)]

[국방의 의무를 지러 간 젊은이들을 전경으로 차출하여 치안유지에 돌리는 위헌을 일삼은 자들은 그것도 모자라 전경들을 미군기지 앞에 배치한다. 이 세상 어느 천지에 경찰이 군대를 지켜주는 꼴은 있어 본 적이 없다. 더구나 미군은 언필칭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있다는 존재가 아닌가?(1권, 246쪽)]

[할일없는 예비군에 어떤 일을 시킬까 궁리하던 정부는...예비군을 방범활동에 동원하기도 했다... 87만명의 예비군이 동원되어 37명의 범인을 검거하는 혁혁한 전과를 거두기도..(2권 203쪽)]

이 책을 덮으면서 느낀 것 하나. 한국전쟁 때 자행된 민간인 학살, 녹화사업 등 독재정권 시절에 있었던 수많은 의문사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는 보수언론들이 대북송금 의혹에 대해서는 '국민의 알 권리'라면서 길길이 뛰는 이유가 뭘까? 돈이 생명보다 더 중요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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