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1 | 52 | 53 | 5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엄마의 시간 - 아기가 행복한 엄마 마음 색칠태교
이상미 글, 이보라.김연주 그림 / 책앤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며칠전 휴일, 더는 미룰 수 없이 가까운 근교로 꽃놀이라도 가줬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마침 첫번째 두번째 애인이 세트로 장염에 걸려주시는 바람에,

집에서 이리저리 떼구르르 구르며 아주 맘 편하게 죽과 보리차, 이온음료만 준비, 항시대기하는 걸로 '상황 종료', ㅋ~.

덕분에 첫번째, 두번째 애인과 쪼르르 거실에 누워 종.편.에서 해주는 '또오해영'이라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몰아서 보게 되었다.

남편과 아들은 시간 죽이기 용으로 졸다 보다가 하고 있었고, 때문에 요즘 대세라는 인기없는 오해영(=서현진)에 주목하며 히히덕 거리고 있었는데,

반해 난 전혜빈 분으로 나오는 인기있는 오해영에게 완전 몰입하여 오열을 했다.

인기있는 오해영의 성장과정이, 미움받지 않고 다 잘하려고 애를 쓰는 그 모습이 그동안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애잔했다고 해야할까?

 

에릭(박도경)의 어머니가 그런 인기있는 오해영의 뒷조사를 한 후 에릭에게 버리라고 하자,

 "나 걔 불쌍해서 못 버린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나한테도 버림받아야 하냐. 걔 사람들에게 엄청 상냥하다. 미움 받지 않으려고 강아지처럼 살랑살랑. 웃으면서도 눈동자는 떨린다. 그런 애를 어떻게 버리냐"고 말한다.

박도경의 어머니가

"그게 사랑이냐. 측은지심이지."

라고 하자

"측은지심이어도 된다."고 한다.

박도경의 어머니가 그 대활 녹음하여 인기있는 오해영에게 꼭 들어보라고 전해준다.

인기있는 오해영은,
"그날 처음 과호흡이 왔다. 가장 들키기 싫은 사람에게 치부를 들킨 느낌이었다. 저질스러운 부모가 아닌 자유로운 부모를 둔 것처럼, 상처 없는 것처럼 악착같이 생글거리며 살아왔는데 그걸 다 꿰뚫어보고 있었다니. 밤에는 치욕에 이가 갈리다가도 아침에는 보고 싶어 울었다. 끔찍하게 사랑했던 사람을 치욕으로 떠올리며 살았다."

라고 되새긴다.

 

어린 시절의 내가 인기있는 오해영 같았다.

왜 그랬는지는 여러 번 언뜻언뜻 얘기했었으니, 미루어 짐작을 하시든 찾아 읽으시든 재량에 맡기겠다.

그래서 인기있는 오해영처럼 악착같이 했고, 힘들어도 힘들다 소리 한번 안 하고 생글거리고 살아왔는데,

내가 사랑했고 사랑받고 이해받고 싶었던 단 한명의 사람으로부터 저런 얘기를 전해들었다면,

난 어땠을까 생각하니 폭풍눈물이 났다.

 

암튼 서론이 길었다.

내가 잡기에 능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느라 이리 되었는데,

나도 인기있는 오해영처럼 학창시절 잡기에 능하다는 이유로 이쁨 받기보단 질투와 시샘의 대상이 되었다.

때문에 오해영 앞에 붙인 '인기있는'이란 수식어는 '구별을 위해서'붙인 수식어일뿐 실제에선 잡기에 능하면서 인기도 있긴 힘들다.

뭐, 하지만 이젠 나이도 좀 되어 주시고, 그런 것들이 거추장스러운 옵션일지라도, 그런 재능을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저자 '이상미' 님도 잡기에 능한 팔방미인이다.

언젠가 린넨 주머니에 이쁘게 그림을 그려 보내준 적이 있는데,

난 토스터기 커버로 쓸 린넨 천이 부족하여 뜯어 조각잇기를 했을 뿐이고~--;

 

요번엔 '엄마의 시간'이란 색칠태교 그림책에 글을 썼다는데,

난 색칠 태교가 필요한 엄마의 마음은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컬러링을 '쫌' 하며 마음을 갈고 닦아온 터라,

도구도 빵빵하게 갖춰져 있다, ㅋ~.

수채색연필과 유성색연필 번갈아 사용하는데, 난 개인적으로 수채색연필을 사용하는게 더 좋다.

요즘은 붓펜을 사용하면 투명대롱안에 물을 담아 덧칠을 할 수 있어서,

편안하게 물감 없이 색연필만으로도 원하는 수채화의 질감을 낼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는 알록달록하고 연한 듯하면서도 화사한 색감이다.

수채화가 좋은 건, 자기를 고집하지 않고 투명하게 드러내면서도 번지고스며들고 물들어 색을 내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재지도 않는 것이, 그러고보면 수묵담채화와도 닮았다.

 

이 책이 좋은 것은,'아기가 행복한 엄마 마음 색칠 태교'라고 하여,

그림과 함께 임신주수에 따른 몸과 마음의 변화 상태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를 실어,

색칠을 하면서 태교가 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으로 가늠하며 준비를 할 수 있어서이다.

 

다른 컬러링 책과의 차이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행복한 색칠태교를 위한 컬러링 가이드'라고 하여 '태교'에 방점을 찍는다.

때문에 다른 컬러링 책들은 그냥 자기가 색칠하고 싶은 대로 칠해도 되겠지만,

이 책은 우리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과 사물을 다루어서 친근한 느낌을 주지만,

그것들을 대충 칠하는게 아니라,

어떻게 칠할때 가장 어울리는 조합인지 찾아 보는 방법도 안내해 주고 있다.

 

하긴 마음대로 칠해야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도 하지만,

미술치료라고 하여 하나의 치료법이 따로 존재하는 추세이기도 하니,

색깔과 감성과의 관계를 대충 알아두면

스트레스를 받았을때나, 기분이 울적할때에, 화가 날때 등,

컬러링을 기분전환에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지않을까 싶다.

 

컬러링 책이라고 하여 그림만 가득이지 않다.

이렇게 이쁜 글들도 넘쳐난다.

그림도 단순한 그림만이 아니고,

메인 그림이 있고, 그 그림 주변에 일정한 패턴이 반복된다.

그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연도, 사람도, 부분은 전체를 대표하고...자기유사성과 순환성을 가지고 일정한 패턴을 반복한다. 

얼핏보면 컬러링 그림책 한권이지만, 참 많은 것들을 야무지게 제대로 담고 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16-06-13 10:03   좋아요 1 | URL
언니의 재주는 어쩌시구요 넘 멋져요
 
표현의 기술
유시민 지음, 정훈이 그림 / 생각의길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현의 기술'이라는 이 책의 제목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이 책은 아무래도 좀 아쉬운 배열을 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러니까 글을 쓰는 유시민과 만화를 그리는 정훈이가 똑같은 비중으로 '표현의 기술'에 대해서 쓰거나 그리고 있기 때문에,

제목도 제목이지만, 지명도 문제로 유시민을 앞에 놓고 싶었다면,

정훈이를 똑같은 비중으로 뒤에  놓아야 했을텐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

여느 작업들처럼 유시민이 글쓰기 작업을 하는데 정훈이가 삽화를 그린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중간 중간 유시민의 글 다음에 정훈이의 만화가 서너쪽 분량으로 나오고,

책의 끝부분에 정훈이의 만화가 본격적으로 나와서,

정훈이라는 만화가의 표현의 기술도 있는, 그런 책이란걸 실감하게 되었지만,

이런 식의 배열인줄 알았더라면 난 이 책을 사지 않았을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난 유시민으로부터 글쓰기 비법을 배울게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으며,

그러니 표현의 기술은 더더욱 그리 생각하게 되었다.

이 것은 내가 글쓰기 능력이나 표현의 기술이 어느정도 되어줘서 그로부터 배울게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랑 나랑 사고하는 바가 많이 다르다보니 중간에서 비껴가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삐그덕거리기만 하는게,

오히려 스트레스의 연속이어서 였다.

지난번 책을 통하여 절실하게 깨닫았으면서도,

그러고도 요번 책을, 나오자마자 또 사들인걸 보면 나의 책 욕심은 중증인가 보다~ㅠ.ㅠ

 

처음 '책을 내면서'를 보게 되면, '표현의 기술은 마음에서 나옵니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하고 있다.

글쓰는 일 뿐만 아니라, 집을 설계하고 노래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 등은 사람의 내면을 표현하는 일이다.

따라서, 어떤 형식으로든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려면 그에 필요한 기술을 익혀야 한다면서,

이 책에서는 그동안 강연과 온라인 상담실에서 주고 받았던 말을 정리하고 내용을 보탰다고 하는데,

그 표현의 기술이라는 것이, 마음, 즉 사람의 내면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치중한다기 보다는,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얘기들을 하소연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면서, 제 1장 '왜 쓰는가'에선, 김훈을 예로 들고 있는데,

전후좌후 사정을 다 생략하고,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하고 한부분만 떼어내서 인용하고 있다.

글의 시작 부분에서 강렬하고 자극적인 문장을 인용해서, 주위를 환기시키고 몰입하게 해주었지만,

그 다음 김훈의 말인 "많은 사람들이 이해해 주면 좋기는 하죠."를 의도적으로 뒤에 배치한 듯한 인상을 받았고,

때문에 섣부르다는 느낌이 든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글쓰기의 목적은 언제나 여론 형성이었다고 하면서, 김훈과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데,

우리는 같은 글쟁이지만 글을 쓰는 이유가 다른 겁니다. 다르다고 해서 반드시 어느 한쪽이 틀린 건 아니죠.(14쪽)

다르다고 해서 반드시 어느 한쪽이 틀린 건 아닐지 모르지만, 김훈과의 경계는 분명하고...

때문에 차이가 두드러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여기서 조지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예로 들면서, 글을 쓰는 네가지 이유를 드는데,

첫째,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 둘째 의미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학적 열정', 셋째, 역사에 무엇을 남기려는 충동, 넷째, 정치적인 목적인데, 넷 중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지는 사람마다 다르단다.

이 네가지가 비중을 달리하며 조금씩 섞여 있는 경우도 있고,

이 네가지 외에 돈을 벌려고 쓰는 경우를 예로 들면서,

'정치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돈을 벌 목적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고 힘을 주어 얘기하는데,

이게 자신에게 비추어 얼마나 타당한 얘기인지는 모르겠다.

혹 자신의 글쓰기가 '정치적 글쓰기'를 지향한다고 하여 돈을 벌 목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고 자위하고 싶었나 본데,

이런 '표현의 기술'같은 책이나 글쓰기 관련 서적의 경우 '정치적 글쓰기'라고 하기엔 민망한 수준이 아닌가 모르겠다.

혹 어떤 사람은 나에게 요번 그의 책을 제대로 읽기나 한거냐고 딴지를 걸 수도 있을텐데,

그런 이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설혹 그가 내가 읽고 해석한 목적으로 이 책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중의적으로 읽도록 한데에 대해서,

그가 완전히 책임을 비껴가긴 힘들지 않을까 싶다.

물론 콩떡 같이 써놨는데, 개떡 같이 읽어낸 나의 독해력에 대단한 문제가 있음을 전제로 하고 말이다~--;

 

표현의 기술과 직접 관련되었다 싶은건, 2장 '제가 진보냐고요?'한 장인것 같은데,

글쓰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을 한다.

말은 그럴듯하게 정치적 글쓰기도 예술성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내용은 사스 파동과 메르스 사태를 비교하며 자기자랑 일색이다.

이걸 자아정체성이란 말로 정당화하진 않겠지?

 

3장 '악플은 어찌할꼬'에선 악플엔 무플로 대응하라고 하면서,

글쓰기 고민상담소에 올라온 '떡시루'라는 사람의 글을 인용한다.

ㆍㆍㆍㆍㆍㆍ우리는 남들이 주는 것을 안 받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물건은 주고받을때 요리조리 살펴서 받는데 마음은 그냥 덥석 받고 맙니다. 마음도 살펴서 받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83쪽)

마음이라는 말 안에는 이미 '헤아린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다소 당혹스런 인용이었지만,

본인의 글이 아닌걸로 위안을 삼아본다.

하지만, 정치적 글쓰기를 지향한다는 사람인데, 모든 정치적인 것의 근본은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근본이라고 생각했던 내겐 인용이라지만 참으로 씁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대신 악플과 정상적인 비판 글을  구별해야 한다(88쪽)고 하는데,

악플엔 무플로 대응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는 이의 의견이어서인지,

난 이 의견도 동의하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누구나 논리를 갖추어 근거를 제시해가면서 정상적인 형식의 비판 글을 쓰도록 교육 받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의사는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는 것이고,

표현이 거칠고 어조가 결렬하다면 일정한 근거를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헤아리고 다가가는데는 실패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꼭 어떤 형식을 갖추고, 논리적 전개방식을 따르는 글 만을 정상적인 비판 형식의 글이라고 한다는 건 유시민 만의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지 싶다.

 

책값이 아까워 대충 훑어라도 봐야지 하던 나의 생각은 책 중반 '마음이 먼저입니다'(232쪽)하는 선생님의 글을 인용하는 부분에서 완전 비껴 나가고 말았고,

암튼, 그리하여...난 그가 가르쳐주는 '표현의 기술'을 하나도 제대로 습득하지 못했고,

정훈이가 보여주는 그림만을 만화책 보듯 낄낄거리며 봤음을 이 리뷰를 빌어 고백하는 바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깜박깜박하는 기억을 붙들어두려는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일뿐,

다른 사람들은 나와 같지 않을 수도 있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6-07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6-08 10:18   좋아요 0 | URL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기분 좋지만,
전 문과생도 아니었고, 책읽기, 글쓰기, 등은 계속 관심을 갖고 노력을 해야할 분야라고 생각합니다만~,

이제 나이가 제법 되어 그런 건지,
에고가 강해져서 그런건지,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책읽고 싶은 생각은 없더라구요.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또 한가지 책을 읽다보면 책의 내용만 읽게 되는게 아니라,
여백까지도 읽게 되는데,
그 여백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
참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도 하더라구요.

에고가 강해지되,
에고를 고집하는 꼰대는 되지말아야 하는데 말이죠~, ㅋ~.

2016-06-07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08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07 2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6-08 10:3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제 의견에 이렇게 힘을 실어주시는 님 같은 분이 계셔서 위안이 됩니다.
근데 그렇게 생각하고 접어버리기엔 정훈이 님의 `표현의 기술`이 넘 멋져서 말이지요~^^
정훈이라는 만화가가 이미 있어서, 그분이 정해주신 필명이 `정훈2`였답니다, ㅋ~.
전 오히려 정훈이 님의 `표현의 기술`이 신선한게 많았달까요, 좋았어요.

북다이제스터 2016-06-07 20:41   좋아요 0 | URL
요즘 넘 다작한다는 느낌 지울 수 없습니다.
저도 참 좋아하는 작가인데. ㅠㅠ

양철나무꾼 2016-06-08 10:45   좋아요 0 | URL
전 작가로서의 유시민은 좋아하기 힘들고요~(죄송~땀나라~``)
가끔 썰전을 보게 되면 김구라, 전원책, 유시민...이렇게 나와 되도 않는 말씨름을 하는 걸 보면...
귀엽(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던걸요~^^
언행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지를 차치하고 본다면,
논객으로서의 유시민은 좀 매력적이죠~^^

잘잘라 2016-06-07 21:40   좋아요 1 | URL
와아아~! 저도 지금 이 책 리뷰 쓰려도 들어왔거든요!
거의 동시에 이 책을 읽었나봐요. 신기방기^^ ㅎㅎ

이번에 유시민씨 책을 처음 사서 읽었는데요, 그 이유 중 반은 `표현의 기술`이라는 제목때문이고, 나머지 반은 5만원 맞춰서 사은품 받으려고 한 것이예요. 저도 읽으면서 내내 `제목에 낚였군` 하는 생각을 했고, `이건 뭐 틈만 나면 자기 합리화 아니면 자기자랑이로구만. 쩝..`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읽었어요. 왜냐? 흐흣, 딱 저에게 맞는 수준으로 쓴 책이라서지요. 흐흐흣. 아무튼 기분 좋아요. 님이랑 같은 책을 읽어서요. ^^

이러면서 룰루랄라 저는 이만 퇴근할랍니다요. 리뷰는 뭐..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6-06-08 10:48   좋아요 1 | URL
메리포핀스님~!
부비, 부비~^^))((^^
정말 정말 반가워요.
게다가 제 리뷰에 이렇게 힘을 실어 주셔서 더 감사하구요.
근데 근데, 전 님의 리뷰도 기대되는 거 있죠?ㅎㅎ

잘 지내시나요?
잘 지내셔야 합니다~ㅅ!

이주은 2016-06-08 18:01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의 의견 저도 무척 공감합니다.
저자분께서 이 리뷰를 보실것 같네요. 많은 독자들의 쓴소리입니다. 달갑게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공부할 권리 -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며칠전이었다.

허리가 아프다는 30대 남자에게 치료 후 스트레칭을 가르쳐주는데,

허리를 젖히는 동작은 잘 따라하다가 구부리는 동작에서 머뭇거리는 것이었다.

텔레비전에서 유명한 의사가 나와서 젖히는 동작은 하되, 구부리는 동작은 안 좋으니 하지말라고 했다는 거다.

그것은 물건을 들다가 과격한 운동을 하다가 허리를 삐끗했을 경우, 급성기 때의 얘기라고, 기전을 알아듣게 설명해줬는데도 불구하고 망설이길래, 그럼 그 의사한테 가지 왜 나한테 왔냐고 째려봐 줬다.

 

또 한명, 중부지방이 유독 발달하여 선채론 자기 발목을 내려다보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이는 30대 여자가 발목을 겹질려서 왔다.
치료 후 많이 움직이지 말고 집에 가서 쉬라며 보냈더니, 다음날 발목이 퉁퉁 부어서 왔다.

어찌된 일이냐고 물으니, 사람들이 운동부족이라고 해서, 그 다리를 질질 끌고 개천길을 두어시간 걸었단다.

 

보통 '권리'라고 하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힘'을 얘기하지만, 그 권리에는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가 전제되어 있다.

권리나 의무라고 하니까 법적인 구속력을 가질 것 같지만,

'마땅히 해야 하는'과 '마땅히 누릴 수 있는'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도덕적 당위성'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 '공부할 권리'도 마찬가지이다.

책의 마지막 장인 '에필로그'를 보면, 

언젠가 어릴 때 살던 동네를 걷다가 20년 만에 이웃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아주머니는 내 손을 덥석 잡으시더니 "너는 우리 동네의 희망이야. 우리 아들은 그렇게 공부를 계속 하고 싶었는데 내가 형편이 안 돼서 못 시켰거든. 너는 축복받은 사람이니까 그걸 잊지 말고 더 열심히 공부해."하셨습니다. 덕담이기도 하고 넋두리기도 한 그 말씀을 들으며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계속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 계속 배움의 길 가르침의 길 위에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그 아픈 깨달음으로 먹먹해지던 순간이었지요.

  이 책에는 제가 지난 10여 년 동안 시간표도 선생님도 없는 나만의 작은 마음의 학교에서 스스로 배우고 익힌 배움의 기술이 담겨 있습니다.ㆍㆍㆍㆍㆍㆍ (348쪽)

라는 구절이 나온다.

20년 만에 만난 이웃 아주머니가 말씀하신 그 '공부'라는 것을,

이 책에서 저자 정여울은 자기 편할대로 해석하고 적용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차치하고, 

권리라는건 법적 구속력이나 도덕적 당위성보다는,

의무를 전제로 해야 하는 상대적인 개념이 아닌가 심사숙고하게 된 부분이 있는데,

"우리 아들은 그렇게 공부를 계속 하고 싶었는데 내가 형편이 안 돼서 못 시켰거든."이라는 아주머니의 말씀 때문이었다.

공부를 계속 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 하고 또 본인이 계속 하고 싶어하는 개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공부를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전제되어야 하는게 당연지사이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품위있는 삶'을 위해 '인문학'적인 그것이 필요한 것도 맞고,

자신의 전공과 직업을 연결시켜, 책읽기와 글쓰기, 가르침을 전제로 한 배움을 '공부'라고 하는 저자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책의 제목이 '공부할 권리'로 정해진 그 순간,

저자가 말하는 '공부'라는 것은 품위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을 지향하기보다는,

그동안의 주입식 교육관에 순응하는 '문제풀이의 기술'인 공부인듯 여겨지는 것을 피하기 힘들다.

'품위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이라는 소제목은 차치하고라도, 

공부의 내용에 해당하는 부분을 자세히 풀어서 '많이 읽고, 많이 쓰고, 곰곰이 생각하고, 삶에 적용 또는 실천하기'...정도로 바꾸는게 낫겠다.

 

'공부'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숨쉴 권리만큼이나 소중한 자존감의 근거...라지만,

말만 들어도 머리에 쥐가 나고 경기를 일으키는 나같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공부나 인문학 따위 거창한 이름으로 명명하지 않더라도,

목구멍이 포도청이어서 따로 공부하거나 책 읽을 시간을 낼 순 없지만, 몸으로 부딪치며 경험하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때문에 그게 공부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인문학이 아닌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제한하거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것은 아니고, 그래서도 안되니까,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자유롭게 사고하기 위한 과정쯤으로 생각하는게 좋겠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어서 어울려 사는 존재이다.

인간이 홀로 외롭게 늙어갈 수 있는 존재라면 인문학 따위는 필요치 않았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은 개별적인 인간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더불어, 어울려, 함께' 살아가기 위한 학문으로 보고 접근하는게 맞겠다.

 

며칠전 슈테판 츠바이크의 '우정, 나의 종교'를 읽고, 이런 느낌을 올렸었다.

 

친구와 다퉜다.

다퉜다고 하여, 애들처럼 티격태격한건 아니고,

'우정, 나의 종교'를 읽으며,

나의 우정이란 것의 무게가 너무나 하찮고 가벼움에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이런 허허로움을 아는지,

사실은 자신도 가짜라고 하며, 자신도 부질없다고 하는데... 서러움이 복받쳤다.

 

내 글을 읽은 친구는 아직 애기라며 웃었다.

서러움이 복받칠 정도로 사랑받고 싶은 맘이 큰 거라며,

어린 시절 사랑 많이 받고 자란 거라고 하는데, 수긍할 수 없어 또 툴툴거렸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누구나 한번쯤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오히려 늘 환영받는 아이로 자란 사람들이 인생의 장애물 앞에서 어쩔 줄 모릅니다. 고통에 대한 예방주사가 접종되어 있지 않은 것이죠. 저는 인생의 멧집을 키우고 고통의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 동화의 힘이라고 믿습니다.(26쪽)

라고 한다.

이 책을 읽은 다음이었다면 '동화의 힘'을 들먹이으면서 막강 대응을 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ㅋ~.

그러고 보면 이 책 전반에 걸쳐서 얘기하고 있는 '공부할 권리'라는 것은,

저자가 문학평론가이면서 작가라는것 때문에 '공부'에 방점을 찍으려고 해서 그렇지,

'인간답게 살 권리'정도로 바꾸면 무난할 것 같고,

이 책의 에필로그에 가면 그마저도,

자격증이나 점수를 따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문학과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미치게 좋았다며, 공부가 가장 소중한 마음챙김의 기술이었다(345쪽)

며 마음챙김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비슷한 감정처럼 보이는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를,

외로움은 혼자 있을때 느끼는 슬픔이지만, 고독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느낄 수 있는 '혼자 있음'의 자각입니다.(104쪽)

라고 설명하는 방식도 명쾌하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 만의 고독과 마주하는 법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데,

심리학자 융을 빌리지 않더라도,

고독과 마주하는 시간이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그림자와 대면하는 시간, 무의식의 상처를 대변하는 시간, 이어서이다.

차마 인정하기 싫은 습관과 아픈 상처, 숨기고 싶은 과거들이 나자신의 일부임을 긍정하는 데서 자기치유는 시작된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는 고독할 수 있는 자유라고 표현되고 있으며,

우리의 잠재된 창조성이 만개하는 시간이며 잃어버린 가능성이 아름다운 날개를 펴는 시간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이런 류의 책과 영화들이 많이 언급되고 있는데,

나이들면 누구에게나 이런 외로움이나 고독이 찾아오기 마련이니,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난감해하지 말고 잘 구별하고 기꺼이 대비하라고 일러주는듯 하다.

 

약한 것들은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힘을 제멋대로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힘을 비축할 줄 압니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비축해 둔 힘이 진정으로 필요할 때 자신의 힘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나눠 줍니다. 그 마음 또한 '나는 약하다. 그러므로 힘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겸허함에서 비롯되지요. 계속 강하고 대단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현대인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요.

  물론 나약함이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되지요. 약한 척하여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것 또한 약한 자들이 '약함의 권력'을 행사하는 편법입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진정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은 섣불리 만용을 부리지 않지요. 스스로의 소중한 힘을 아끼고 다듬어 결정적인 순간에 발휘합니다. 타인의 아픔에 위로가 필요할 때, 벼랑 끝에 몰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구원할 때 쓸 줄 아는 것이지요. 때로 우리의 진정한 무기는 타인을 통제하는 '강인함'이 아니라 타인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는 '나약함'입니다.(148~149쪽)

 

하지만, 뭐니 뭐니해도 이 책이 멋진 것은 위 구절 때문이다.

약자와 강자, 부족한 인간과 완벽한 신과의 대비를 통하여 내가 보고 느낀 것은,

힘의 세기에 따라 어느 쪽이 좋고 나쁘거나, 낫고 부족하거나, 잘하고 못하거나, 가 판가름 나는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전지전능해서 모든 걸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신들과는 달리,

인간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며,

더불어 살아가야 하지만, 때론 혼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비워낼 줄 알아야 하는 가변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비어 있다는 것은 채워가질 수 있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완전한 신보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

 

이 책을 막 읽기 시작하였을땐, 좁은 의미의 '공부'만을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읽기의 확장에서의 쓰기, 그 확장에서의 곰곰이 생각하기, 타인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포함하는 삶에 적용 또는 실천'까지를 아우르는 인문학적 접근법을 '공부'라고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그동안의 편견이 너무 강렬해서 그런지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되지는 않았었다.

낯선 이들 앞에서 강의를 할때마다 아직도 저는 엄청난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읽은 대해 수줍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 낯선 이들의 눈빛에 조금씩 온기가 스며드는 것을 느낍니다. 각자 다른 공간에서 똑같은 책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멋진 친구가 됩니다. 가끔 책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고 몸서리를 치곤 합니다. 책없는 세상은 곧 낯선 사람의 운명을 내 삶 속으로 초대할 기회를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리는 세월이 아닐까요. 독서는 단지 지식을 흡수하는 두뇌운동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몸의 실천이고, 새로운 인연의 네트워크를 창조하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제 책을 '사는(buy)' 것을 넘어 책의 내용을 '살아 내는(live)'실천이 필요합니다.(322쪽)

그러다가 '각자 다른 공간에서 똑같은 책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멋진 친구'가 되는 걸,

알라딘 서재 , 이곳에서 문득문득 경험하게 됐었고,

책에 관해서 까다롭고 독특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와 비슷한 취향들을 만나는 순간,

멀리 있던 우주가, 우주의 별들과 햇살이 내게로 달려오는 느낌이랄까?

---일종의 경이로움을 느꼈다.

 

더불어, 대교약졸이라는 말 따위랑은 어울리지도 않게,

그동안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들을 읽다보면 너무 수사가 화려해서 무슨 내용인지 몰랐다.

어디까지가 문장의 주요성분이고 어디까지가 수식어들인지 모르겠었다.

이제 그런 수식어들을 하나 하나 차근차근 지워내고 나니까,

문장의 주성분이라고 할 수 있는 기본 골자가 보이고,

그러고 나니, 고전이 얘기하려는 바가 뭔지를 알겠고,

그러니 본질이 보인다.

고전이 살아 움직이는 순간이다.

 

수식어로 꾸며 화려하게 치장하고 살지,

수식어를 제외하고 주성분만으로 간결하게 살지,

정답은 없다, 선택은 각자의몫이다.

 

 

알듯 모를 듯, 나도 잘 모르겠는 내 마음 대변하듯, 이성복 님은 시 '금기'에서 이렇게 읊조린다.

 

아직 저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제 마음속에는 많은 금기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될 일도 우선 안 된다고 합니다

혹시 당신은 저의 금기가 아니신지요

당신은 저에게 금기를 주시고

홀로 자유로우신가요

휘어진 느티나무 가지가

저의 집 지붕 위에 드리우듯이

저로부터 당신은 떠나지 않습니다.

<詩. 이성복 '금기' 전문>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6-04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6-07 14:04   좋아요 1 | URL
암튼 신안군의 그 사건을 보면 말이죠, 우리나라가 아닌 딴 세상의 일 같아요.
거기다가 남자선생님이 한 분 실종된지 며칠째라는데,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그렇고 말이죠.
전 그런 사건이 일어난 것도 그렇지만,
그런 사건이 일어났을때 사건을 수사할 생각도 않고,
무조건 덮으려고만 했다는게 더 미스테리였습니다.

옛날엔 나이들어서 그런 낙도나 오지에서의 봉사도 긍정적으로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낙도나 오지는 고사하고,
제가 사는 이곳도 물론이거니와, 타지방 마저도 만만하게 볼 곳은 아니라는 생각에 씁쓸합니다~ㅠ.ㅠ

루쉰P 2016-06-04 22:40   좋아요 1 | URL
`공부`라는 의미가 지금은 저에게 어떤 문을 통과하기 위한 하나의 자격증처럼 여겨지네요 ㅋㅋㅋ 시험 공부를 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 봅니다. 그치만 책을 좋아하고 읽는 것이 `공부`라고 한다면 거기에 맞게 그래도 나름데로 꾸역꾸역 잘 밀고 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정말이지 고시촌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무언가 재미를 충족시키고, 확 무언가 오는 그런 것은 없습니다. 맨날 짜장면만 먹으면 지겹잖아요. 그러나 먹을 수 있는 건 짜장면 밖에 없기에 계속해서 이를 악물고 먹어야 하는 그런 처지와 비슷합니다. ㅋ 맛잇게 잘 먹으면 합격이구요. ㅎ

이런 `기계적 공부` 속에 있다보니 책을 읽는 것 역시 활자를 눈으로 읽어야 한다는 불안감과 뭐랄까? 짜장 아니면 짬뽕 같은 느낌이 들어서 취미로서의 책을 멀리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독서가 저에게 하나의 중화 작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느꼈어요 ㅋ

공부라는 것이 기계적 공부만 한다면 정말 토가 나올 것 같지만, 삶에 있어서 올바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ㅎ

양철나무꾼 2016-06-07 14:16   좋아요 1 | URL
전 인생의 황금기를 공부만 하면서 보낸걸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는 1인입니다.
공부를 정말 미친 듯 열심히 했지만,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제가 좋아하는 다른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하지도 못했고 말이죠.
전 공부가 뭔지 모르고 했기 때문에 그리 할 수 있었겠지만,
바나나 한송이를 가지고 도서관에 들어가면 그 바나나를 다 먹을때까지 자리에서일어나지 않고 공부만 했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엔 체력이 딸려 청바지를 입고 수업듣고 공부하고 과제하고 하다가, 그 청바지를 입은 채로 잠이 드는 나날들을 보냈었구요.

저도 한때는 책을 읽으면서도 읽을 책을 쟁여놓지 않으면 불안해서 어쩌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책읽기나 글쓰기 말고도...다른 형태의 공부도 있다고 생각하고 말이죠.
시험에 꼭 합격해야만 공부의 완성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게 되었지만,
이 모두는 나이 먹어 느끼는 깨달음인듯 하고 말이죠~--;

그러고보면, 나이 먹는게 벼슬은 아니어도, 큰 공부이긴 한가 봅니다여~ㅅ!ㅋㅋㅋ

루쉰P 2016-06-08 01:19   좋아요 1 | URL
ㅋㅋㅋ 대단하세요 나무꾼님 ㅋㅋㅋ 아 바나나와 함께한 추억 너무 강렬해요 ㅋ 아무리 그 때 그렇게 해서 뭘 이뤄내지 못 하셨다고 하지만 지금의 글빨은 그 때 고생한 것의 결과 아닌가요? 너무 겸손하심 ㅋ 저도 옷 입은 채 잠들 정도로 공부를 하고 싶네요 ㅋ
정말 부러워요 ㅠ.ㅠ 전 너무 잘자요 ㅋ

양철나무꾼 2016-06-08 10:07   좋아요 1 | URL
글빨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지만,
전 문과가 아니고 이과생이었고,
글빨이라고 할만한 무언가를 갖추지 못해서...정말 글빨을 갖춘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민망할 지경입니다.

암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공부 중에 으뜸은 인생공부라는 것을 나이를 이렇게 먹어 깨닫게 되었는데,
나이를 되돌릴 수도 없고,
인생을 한번 더 살아낼 재간도 없으니,
동네방네 광고하여,
젊었을때 대비하길 바랄밖에요~^^

루쉰P 2016-06-08 14:35   좋아요 1 | URL
ㅋㅋ 더 충격 이과생이시래, 암튼 근데도 이렇게 쓰시는 거면 글빨이 있는거에요 ㅋ

인생공부라, 흠...저도 항상 그 생각을 해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으로 가고 싶다는 욕망 ㅎ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한 것인데 왜이리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하고 나태함과 권태감에 쩔어 사는 것일까요? 그리고 절망과 자기 비하를 하며 사는 것일까요? 그럴 시간도 부족하다는 것을 머리는 알면서 지금 눈 앞에 당장 보이는 현실에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고 있는 건 참 바보 같아요.

미래는 오지 않았고, 과거는 지나갔고, 오로지 저에게는 지금 이 순간 밖에 없는 것인데. 인생 공부란 말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저는 공부 얼른 마치고 인생을 공부를 하러 저 사회 속으로 뛰어들고 싶어요 ㅋ

덥고 습도가 높습니다. 시비거는 사람 있어도 웃으며 쌩 까시고, 밤에는 빠르고 안전하게 귀가하세요. 사회가 너무 험합니다. 오늘도 무사평탄 즐거운 하루가 되시길 ㅎ

2016-06-07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6-08 10:08   좋아요 2 | URL
이 신안도가 그 소금염전 노예...그곳이랍니다~ㅠ.ㅠ
 
우정, 나의 종교 - 세기말, 츠바이크가 사랑한 벗들의 기록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오지원 옮김 / 유유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탁환의 '아비 그리울때 보아라'를 보게 되면,

책의 말미에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를 인용하고 있는데,

아주 짧은 인용문인데도 불구하고, 내내 읽은 김탁환 만큼이나 강렬하였었다.

 

요번, '세기말, 츠바이크가 사랑한 벗들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이 책 '우정, 나의 종교'는 그때의 기억이 강렬해서 읽게 되었지만 결론부터 얘기하면 나의 취향은 아니었다.

 

내 취향이 아니었던 가장 큰 이유를 들라고 한다면, 

이 책의 겉날개 안쪽 프로필을 언급해야 할 것 같은데,

난 전기작가라면 있는 그대로의 전달에 집중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탁월한 이야기꾼의 자질은 차후의 문제라고 여겼었나 보다.

 

아니, 어쩌면 인물의 전기를 쓰는데 있어서 탁월한 글솜씨는 인물을 두드러지게 하는데, 인물의 본성을 가리우는 마이너스적인 요소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또 한가지, 난 글이 담백하고 무미건조한 걸 좋아하는 편이다.

일상이 주는 감동이라고 해야할까?

산다는 건, 그것이 아무리 위인전에 등장할 정도의 훌륭한 인물이라도,

실상은 그렇게 화려한 삶을 살지 않기 때문이란걸,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몸으로 느꼈다고나 할까?

때문에 다양한 수사법과 문장 기교를 쓰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냈을 때,

더 큰 울림을 주기도 하더라는 걸 깨달았다.

 

게다가 나치의 박해를 피해서 떠돌며 지내다가 우울증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부인과의 동반 자살은,

(내가 그가 아니기 때문에 그를 알 수 없는 고로, 섣부르게 판단할 사안은 아니지만,)

좀 비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내가 그가 좋았던 것은, '어제의 세계'가 자전적 삶의 기록이었기 때문인가 보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우정, 나의 종교'는,

로맹 롤랑이 츠바이크에 대해 언젠가 언급한 내용을 취한 것이라고 하는데,

츠바이크는 말만 하는게 아니라 실천하는 사람이었고,

이것이 그가 많은 사람과 교류할 수 있었던 근원이었다.

 

츠바이크의 글쓰기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인물의 성격묘사가 정밀한 것을 들 수 있단다.

이게 자신이 연구하던 학문에 조예가 깊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예를 들면 그와 나이 차이가 스물다섯이나 났음에도 '망년지교'를 나누었던 프로이트와 그의 심층 심리학에 대한 연구는,

츠바이크가 인물의 마음과 사건의 핵심으로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글쓰기를 하는데, 훌륭한 도구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내향적인 성격인데다가, 소심해서 타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았지만,

그가 교류했던 몇몇 작가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그들과는 마음을 열고 진정으로 소통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 나온 글들은 그런 그의 폭넓은 교류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데,

장례식에서 한 연설, 만남을 회고하는 회고록의 형태 등, 다양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한결 같이 그와 우정을 나누었던 인물들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느낄 수 있는 헌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분위기를 바꾸어, 친구와 다퉜다.

다퉜다고 하여, 애들처럼 티격태격한건 아니고,

'우정, 나의 종교'를 읽으며,

나의 우정이란 것의 무게가 너무나 하찮고 가벼움에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이런 허허로움을 아는지,

사실은 자신도 가짜라고 하며, 자신도 부질없다고 하는데... 서러움이 복받쳤다.

 

그래,

어쩜 관계는 다 별거 아닐지도 모르고,

가볍게 흐르는것일지도 모르고,

그러다보면 남는건 나 하나일지도 모른다.

 

어쩜 그 말이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진짜, 가짜나 참과 거짓 같은 가치판단이 과연 필요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진짜,가짜나 참과 거짓 같은 가치판단이 요구된다면,

타인의 삶을 이해한다는 구실의,

아니 누구의 삶이든...삶이란 것 자체를 화려하게 포장하고 수식하는 그런 문장이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상대방의 마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나도 내 자신을 잘 몰라서 맨날 시행착오를 겪는데,

어떻게 상대방을, 친구를, 우정을... 종교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

 

이것 저것 다 차치하고라도,

자살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고,

부인과의 동반 자살은 백번 양보한다고 해도 비겁한 일이다.

 

우정, 친구가 종교 마냥 신성한 것이 아닌 이유는,

내 삶이 남루하고 초라할지라도,

이렇게 보대끼며 숨쉬며,

이땅에 발 붙이고 머리로 하늘을 이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5-30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5-31 09:16   좋아요 2 | URL
츠바이크의 자살은 나치의 박해가 내면에 깔린 것으로 봐야하기는 하겠지만,
전 자살을 좀 비겁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말예요.
아무리 좋고 멋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도, 막 구실부터찾고싶어지는 거 있죠.
깊이 들어가면 속상하니까, 문체가 내 스타일이 아니라며, 자위하는거죠, 뭐~--;

참고로 전 남자가 술도 못 먹고 담배도 못 피우고, 둘다 못해도 재미없을 것 같지만,
줄담배를 피우고, 술독에 빠져 사는 사람도...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요즘 세상을 살면서...나름대로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어야 `자살`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
도대체 세상이 요지경이라서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2016-05-31 0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5-31 09:27   좋아요 1 | URL
츠바이크 문체의 특징이 정밀함과 지루함이라?
난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데...
다만 츠바이크가 좋고, 그를 멋지다고 우러르기엔...
언행일치처럼 느껴지지 않기에 일관성이 없는 듯 여겨져 아쉽게 느껴졌을 뿐이고,
그러다보니 문체에서 느껴지는 화려한 수사가 속빈강정처럼 여겨졌다는 것임.

하지만 그의 대인관계와 연관된 글쓰는 자세는 본받을 것이 많다고 생각됨.
멋진 츠바이크~!

2016-05-31 0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5-31 09:47   좋아요 1 | URL
그렇더군, 슈테판 츠바이크에 따르면...마리 앙뜨와네트의 `밥이 없으면 빵을~`이란 말은 결단코 한적이 없더군.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츠바이크의 입장이고, 또 다른 입장에선 다르게 회자되는 상황이니까...

난 츠바이크의 그것이 전적으로 틀렸다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일반적으로 그렇게 얘기하는 일반론을 얘기한 거였음.

내 아직 `두도시이야기`는 읽지 못했지만, 츠바이크도 만만치 않은 고전이라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더러도...
책이 눈에 안 들어오고 비껴가는 요즘인데,
손놓고 앉아있는거보다는,
이렇게라도 읽고 기록으로 남기는게 나은거 아니겠음?
깜박깜박하는 기억을 붙들어두기 위해서라도...
그러는 댁이나 읽고 쓰고...분발하시게...
내 걱정 붙들어매시고~!!!

2016-05-31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31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뿔을 가지고 살 권리 - 열 편의 마음 수업
이즈미야 간지 지음, 박재현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나를 뜨문뜨문 아는 사람들이야 으레 그려려니 하지만, 나를 잘 아는 사람들조차도 겉보기와는 많이 다르다고들 한다.
소싯적에는 그말을 내 속에는 정상적이지 않은 이상한 구석이 있으며, 보통이 아닌 독특한 구석이 있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이고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했었다.

이젠 나이를 먹은건지,
아니면 몸이 지표면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지면서 마음도 같이 넉넉해져서 그런건지,
그런 말을 들으면 '그래, 그런가 보다'라고 하고 말면 될 일이지,
예민하거나 또는 둔하게 반응할 사안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겉보기와 다르다는 말도 그렇지만,
정상과 이상, 보통과 특별 따위의 단어들조차도 옳고 그름 또는 잘ㆍ잘못 따위의 가치판단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설혹 그게  옳고 그름 또는 잘ㆍ잘못 따위의 가치판단을 전제로 하는 말이라고 할지라도,
'기준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지, 영원불변의 본질이나 진리는 아니었다.

이런 변화와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획일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사고방식이 일본보다는 우리나라의 경우 더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것인지, 아니면 저자 이즈미야 간지가 나의 취향이어서 였는지, 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이런 류의 책들과 크게 다른 내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뿔을 가지고 살 권리'라는 우리나라에서의 제목만 놓고 봤을 때는,
모든 '권리'에는 의무가 따르기 마련이라며 제약을 가하는 것처럼 여겨져 다소 호전적인 인상을 준다.
왠지 판에 박히고 틀에 짜여진대로여서,
'이 책을 바라 봐, 그럼 반드시 건강해질거야...'하고 호언장담 하는 분위기랄까.

하지만, 이 책의 원제 '보통이 좋아 라는 병'을 우리말 제목으로 썼었다면, 지금처럼 임팩트 있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일본어 제목을 보고,
보통이 좋은 것이라거나, 보통이 평범하지만 그래서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정상과 이상, 보통과 특별 따위 개념의 연장선 상에서,
이 아니라 건강이라고 이름 붙여야 하지 않았을까 하고 딴지를 걸고 싶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띠지의 '조르바처럼 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심리 특강'이라거나,
'읽다가 몇 번이나 울고 말았다. 내 삶의 빛이 된 책이다.'라는 돌출 광고 무색하지 않을 만큼 내용은 좋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나온 열편의 마음 수업의 내용은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하나 하나 다 마음에 와닿았고,
또 그렇게 쉽게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설명을 잘 해주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이즈미야 간지'는 이런 멋지구리한 말도 한다.

정상이라는 것은ㆍㆍㆍㆍㆍㆍ세상의 일반적인 상식 같은 것이다. 거기서 일탈한 자는 병자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그런 사람만이 날카롭게 사물을 꿰뚫어보지 않느냐'고 나카하라 추야는 고발한다.ㆍㆍㆍㆍㆍㆍ'정상'과 '이상'에 양다리를 걸치고 오가면서 '이상'세계의 말을 '정상'쪽으로 가져와 전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시 아닐까.ㆍㆍㆍㆍㆍㆍ나는 이처럼 경계에 서서 살아가는 사람을 '시인'이라 부른다. 이 의미에서의 시인이란 반드시 시를 짓는 사람을 뜻하지는 않는다.ㆍㆍㆍㆍㆍㆍ여하튼 '정상' '이상'의 경계에 있듯, 사물을 신선하게 보는 시점을 가지고 살아가는사람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고, 강인하고 생동감 있는 삶을 산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시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18~19쪽) 

흔히들 병이 '낫는다'는 것을 '개운해져 고민도 없고 틀림없이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고민한다는 행위는 살아가는데 빠뜨릴 수 없는 요소이므로, '맘껏 고민하는' 상태가 오히려 건강한 것일수도 있는데,
정신 요법이나 카운슬링을 할때 보면, 치료사는 무의식중에 의뢰인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알려주고 싶어한다.

다시말해 '건강한 불안정'을 차단하고 '병적인 안정'에 이르게 하는 것인데,
이같은 행동은 의뢰인 스스로가 갈등을 짊어지는 힘을 키우지 못하게 할뿐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는 능력을 퇴화시켜 치료사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것으로 경계하여야 한단다.
(나의 경우엔, 교묘한 '환자 유치 작전(?'으로 치환되기도 했었다~--;)

이 책의 장점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용어의 정의'를 명확하게 해주는게 좋았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단어들,
(예를 들면 머리, 가슴, 몸 따위의 단어를 뜻을 몰라서 사전을 찾아보진 않지만,)
너무 일반화되어 있다보니 경계가 모호해져 의미가 뭉뚱그려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기준과 경계를 도식화하여 명확히 밝히고 들어간다.

아래는, 머리와 마음과 몸의 상관 관계를 도식화한 그림인데,
그동안 읽어온 수많은 철학서나 사상서에서 어려운 용어를, 그걸 이해못할 어려운 말들로 풀어서 설명했던 것들을,
간단한 그림으로 아주 쉽게 설명해 놓았다.

머리와 이성의 관계뿐만 아니라 마음과 몸의 관계,
거기서 파생되어지는 머리에 의한 독재와 마음=몸의 지혜에 이르기까지,
머리로 대변되는 '작은 이성'과 마음=몸에 있는 '큰 이성'의 상관관계가 이 간단한 그림 한장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하나의 생물로서 인간의 독자적인 부분은 '마음=몸'인데, 그것을  인간 안에 내재된 자연이라고 보는 견해를 밝힌 두번째 그림은 정말 맘에 들었다.

'마음=몸'은 자신을 만들어주는 것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자신의 것은 아니다, '자연'에서 빌린 것이니까 말이다.
이런 것을 깨닫게 되니, 내 머리로 내 몸을 어떻게 컨트롤 해 보려는 집착 상태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그러고 나니 이 거대한 우주와 자연 속에 인간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어 숙연해졌다고나 할까?

또 하나, 용어나 케이스 스터디를 설명하기 위하여 '책을 인용'하고 있는게 좋았다.,
'적재적소에서 고전을 인용하고 있어서 이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을 뿐 아니라,
역으로 이 책의 내용이나 케이스 스터디로 예를 든 것들이 고전으로 스며들어,
그동안 읽고도 이해불가였던 고전에 상황극처럼 작용하여 쉽게 이해가 되었다.

도미노의 말 하나를 건드리면 쪼르륵 말이 연결되어 넘어가는것 마냥, 해결의 실마리를 살짝 건드리는 것 만으로 '쭈르륵~'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의 희열이 너무 좋았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같은 경우,
판과 쇄를 달리 하여, 또 번역자를 달리하여, 여러번 읽었지만 무슨 뜻인지 이해불가였는데,
몇가지 용어의 정의를 새롭게 그리고 명확히 하자, 그동안의 것들이 일순간에 환해졌다.
내겐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자기형성 이미지에 대해 설영하기 위해 부조와 소조를 예로 든 것도 좋았으며,
나츠메 소세키의 단편집'몽십야'를 인용하는 것도 좋았다.

감정의 우물 그림 같은 경우,
그림은 간단해 보이지만 논리정연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저자의 고뇌와 연구 업적의 일부분을 엿볼 수 있다.

그림에서, 윗부분이 '머리'='의식'이며, 아랫부분이 '마음=무의식'인데, 여기 '뚜껑'도 있어서 '머리=의식'에 의해 열리고 닫힌다.
아랫부분에 들어 있는 네 개의 공은 순서대로 들어가 있다.
가장 위에 있는 공이 나오지 않으면 그 아래 있는 공도 나오지 못한다.

그동안 우리는 분노는 드러내지 않는게 좋다든지,
계속 울기만 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부정적으로 바라봤었지만,
인간의 깊은 감정은 모두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감정임을 드러내기 쉽게 도식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무엇보다 이 책이 좋았던 것은,
보통이나 일반적으로 라는 미명하에, 나만의 색깔을 지우고, 모난 부분을 잘라 틀 안에 욱여넣으려 했던,
과거의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어서 이다.

이제 난 과거에서 서서히 걸어 나오고 있다.
대중이라고 불리우는 다수들도, 개별적으로는 혼자인 존재이다.
너나 할것없이, 너무나도 가볍고 외로운 존재들이니까 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5-28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08 1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1 | 52 | 53 | 5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