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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을 가지고 살 권리 - 열 편의 마음 수업
이즈미야 간지 지음, 박재현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를 뜨문뜨문 아는 사람들이야 으레 그려려니 하지만, 나를 잘 아는 사람들조차도 겉보기와는 많이 다르다고들 한다.
소싯적에는 그말을 내 속에는 정상적이지 않은 이상한 구석이 있으며, 보통이 아닌 독특한 구석이 있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이고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했었다.
이젠 나이를 먹은건지,
아니면 몸이 지표면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지면서 마음도 같이 넉넉해져서 그런건지,
그런 말을 들으면 '그래, 그런가 보다'라고 하고 말면 될 일이지,
예민하거나 또는 둔하게 반응할 사안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겉보기와 다르다는 말도 그렇지만,
정상과 이상, 보통과 특별 따위의 단어들조차도 옳고 그름 또는 잘ㆍ잘못 따위의 가치판단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설혹 그게 옳고 그름 또는 잘ㆍ잘못 따위의 가치판단을 전제로 하는 말이라고 할지라도,
'기준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지, 영원불변의 본질이나 진리는 아니었다.
이런 변화와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획일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사고방식이 일본보다는 우리나라의 경우 더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것인지, 아니면 저자 이즈미야 간지가 나의 취향이어서 였는지, 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이런 류의 책들과 크게 다른 내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뿔을 가지고 살 권리'라는 우리나라에서의 제목만 놓고 봤을 때는,
모든 '권리'에는 의무가 따르기 마련이라며 제약을 가하는 것처럼 여겨져 다소 호전적인 인상을 준다.
왠지 판에 박히고 틀에 짜여진대로여서,
'이 책을 바라 봐, 그럼 반드시 건강해질거야...'하고 호언장담 하는 분위기랄까.
하지만, 이 책의 원제 '보통이 좋아 라는 병'을 우리말 제목으로 썼었다면, 지금처럼 임팩트 있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일본어 제목을 보고,
보통이 좋은 것이라거나, 보통이 평범하지만 그래서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정상과 이상, 보통과 특별 따위 개념의 연장선 상에서,
병이 아니라 건강이라고 이름 붙여야 하지 않았을까 하고 딴지를 걸고 싶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띠지의 '조르바처럼 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심리 특강'이라거나,
'읽다가 몇 번이나 울고 말았다. 내 삶의 빛이 된 책이다.'라는 돌출 광고 무색하지 않을 만큼 내용은 좋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나온 열편의 마음 수업의 내용은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하나 하나 다 마음에 와닿았고,
또 그렇게 쉽게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설명을 잘 해주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이즈미야 간지'는 이런 멋지구리한 말도 한다.
정상이라는 것은ㆍㆍㆍㆍㆍㆍ세상의 일반적인 상식 같은 것이다. 거기서 일탈한 자는 병자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그런 사람만이 날카롭게 사물을 꿰뚫어보지 않느냐'고 나카하라 추야는 고발한다.ㆍㆍㆍㆍㆍㆍ'정상'과 '이상'에 양다리를 걸치고 오가면서 '이상'세계의 말을 '정상'쪽으로 가져와 전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시 아닐까.ㆍㆍㆍㆍㆍㆍ나는 이처럼 경계에 서서 살아가는 사람을 '시인'이라 부른다. 이 의미에서의 시인이란 반드시 시를 짓는 사람을 뜻하지는 않는다.ㆍㆍㆍㆍㆍㆍ여하튼 '정상' '이상'의 경계에 있듯, 사물을 신선하게 보는 시점을 가지고 살아가는사람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고, 강인하고 생동감 있는 삶을 산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시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18~19쪽)
흔히들 병이 '낫는다'는 것을 '개운해져 고민도 없고 틀림없이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고민한다는 행위는 살아가는데 빠뜨릴 수 없는 요소이므로, '맘껏 고민하는' 상태가 오히려 건강한 것일수도 있는데,
정신 요법이나 카운슬링을 할때 보면, 치료사는 무의식중에 의뢰인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알려주고 싶어한다.
다시말해 '건강한 불안정'을 차단하고 '병적인 안정'에 이르게 하는 것인데,
이같은 행동은 의뢰인 스스로가 갈등을 짊어지는 힘을 키우지 못하게 할뿐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는 능력을 퇴화시켜 치료사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것으로 경계하여야 한단다.
(나의 경우엔, 교묘한 '환자 유치 작전(?'으로 치환되기도 했었다~--;)
이 책의 장점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용어의 정의'를 명확하게 해주는게 좋았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단어들,
(예를 들면 머리, 가슴, 몸 따위의 단어를 뜻을 몰라서 사전을 찾아보진 않지만,)
너무 일반화되어 있다보니 경계가 모호해져 의미가 뭉뚱그려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기준과 경계를 도식화하여 명확히 밝히고 들어간다.
아래는, 머리와 마음과 몸의 상관 관계를 도식화한 그림인데,
그동안 읽어온 수많은 철학서나 사상서에서 어려운 용어를, 그걸 이해못할 어려운 말들로 풀어서 설명했던 것들을,
간단한 그림으로 아주 쉽게 설명해 놓았다.
머리와 이성의 관계뿐만 아니라 마음과 몸의 관계,
거기서 파생되어지는 머리에 의한 독재와 마음=몸의 지혜에 이르기까지,
머리로 대변되는 '작은 이성'과 마음=몸에 있는 '큰 이성'의 상관관계가 이 간단한 그림 한장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하나의 생물로서 인간의 독자적인 부분은 '마음=몸'인데, 그것을 인간 안에 내재된 자연이라고 보는 견해를 밝힌 두번째 그림은 정말 맘에 들었다.
'마음=몸'은 자신을 만들어주는 것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자신의 것은 아니다, '자연'에서 빌린 것이니까 말이다.
이런 것을 깨닫게 되니, 내 머리로 내 몸을 어떻게 컨트롤 해 보려는 집착 상태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그러고 나니 이 거대한 우주와 자연 속에 인간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어 숙연해졌다고나 할까?
또 하나, 용어나 케이스 스터디를 설명하기 위하여 '책을 인용'하고 있는게 좋았다.,
'적재적소에서 고전을 인용하고 있어서 이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을 뿐 아니라,
역으로 이 책의 내용이나 케이스 스터디로 예를 든 것들이 고전으로 스며들어,
그동안 읽고도 이해불가였던 고전에 상황극처럼 작용하여 쉽게 이해가 되었다.
도미노의 말 하나를 건드리면 쪼르륵 말이 연결되어 넘어가는것 마냥, 해결의 실마리를 살짝 건드리는 것 만으로 '쭈르륵~'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의 희열이 너무 좋았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같은 경우,
판과 쇄를 달리 하여, 또 번역자를 달리하여, 여러번 읽었지만 무슨 뜻인지 이해불가였는데,
몇가지 용어의 정의를 새롭게 그리고 명확히 하자, 그동안의 것들이 일순간에 환해졌다.
내겐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자기형성 이미지에 대해 설영하기 위해 부조와 소조를 예로 든 것도 좋았으며,
나츠메 소세키의 단편집'몽십야'를 인용하는 것도 좋았다.
감정의 우물 그림 같은 경우,
그림은 간단해 보이지만 논리정연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저자의 고뇌와 연구 업적의 일부분을 엿볼 수 있다.
그림에서, 윗부분이 '머리'='의식'이며, 아랫부분이 '마음=무의식'인데, 여기 '뚜껑'도 있어서 '머리=의식'에 의해 열리고 닫힌다.
아랫부분에 들어 있는 네 개의 공은 순서대로 들어가 있다.
가장 위에 있는 공이 나오지 않으면 그 아래 있는 공도 나오지 못한다.
그동안 우리는 분노는 드러내지 않는게 좋다든지,
계속 울기만 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부정적으로 바라봤었지만,
인간의 깊은 감정은 모두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감정임을 드러내기 쉽게 도식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무엇보다 이 책이 좋았던 것은,
보통이나 일반적으로 라는 미명하에, 나만의 색깔을 지우고, 모난 부분을 잘라 틀 안에 욱여넣으려 했던,
과거의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어서 이다.
이제 난 과거에서 서서히 걸어 나오고 있다.
대중이라고 불리우는 다수들도, 개별적으로는 혼자인 존재이다.
너나 할것없이, 너무나도 가볍고 외로운 존재들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