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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과자를 먹었다. 누가 사주었다. 호두과자를 살면서 10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호두과자는 보통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한 번 사 먹는 것으로만 먹었지 새우깡처럼 편의점에서 호두과자를 먹기 위해서 선택을 하는 경우는 잘 없다.


어릴 때는 호두 맛 나는 아이스크림에 빠져있었던 적이 있었다. 아마 그때 제일 살이 많이 찐 것 같다. 그리고 가장 행복했었다고 내 기억은 말하고 있다. 아버지와 목욕탕을 갔다가 와서 아버지가 호두 맛 아이스크림을 사 주면 우리는 방 안에서 냠냠 맛있게도 먹었다.


장면은 다르지만 응답하라 1988에서 아버지 마중을 나갔던 노을이는 다 계획이 있었던 거였다. 덕선이가 그 모습을 보고 나도!라고 하니 아버지가 덕선이 손에 쥐어준 호두 맛 아이스크림.


아버지는 아이스크림은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라며 목욕탕에 갔다 온 후 그렇게 먹었다. 생각해보면 아버지와 여름에도 목욕탕에 갔을 텐데 여름의 목욕탕은 전혀 기억이 없다. 아버지와 목욕탕 기억은 항상 겨울이다.


아주 차가운 겨울.

아주 차가운 토요일의 겨울.

아주 차가운 토요일 저녁의 겨울에 목욕탕에 갔다.

아버지와 목욕을 하고 나오면 뜨거운 얼굴에 닿는 차가운 겨울의 공기가 아주 좋았다. 입을 벌리고 후 하면 입김이 확 나가는 것도 아주 좋았다.


목욕탕에서 집까지 한 십분 정도 걸리는데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나오면 집까지 거리가 좀 더 멀었으면 하고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자주 하고 강해서 그런지 요즘도 꿈에 목욕을 하고 나오면 집까지 가는 그 거리가 나온다.


작은 도로와 옆의 담 너머 학교가 있고, 학교에서 가끔 철봉을 한 번 하고 집으로 가는 과정이 꿈에 왕왕 나타난다. 꿈속에서 꿈이라는 걸 알지만 꿈이기 때문에 이건 꿈이야 라고 말하고 싶지만 꿈 속이라 말은 나오지 않는다. 나는 꿈을 너무 자주 꾸고 그래서인지 낮동안 피곤하다. 보통 생활의 활력을 위해 운동을 하지만 나는 모든 생활의 활력을 끌어 모아 저녁에 조깅을 미친 듯이 한다. 그리고 밤에 누우면 바로 잠이 들지만 꿈을 꾸고 두세 번 깬다. 피곤의 연속인 것이다.


목욕을 하고 집으로 올 때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 호두 맛 아이스크림을 사 주었다. 우리는 그걸 소중한 밥그릇처럼 양반다리를 하고 다리 사이에 넣어서 숟가락으로 퍼 먹었다. 그때에도 식빵에 넣어서 접어 먹었는데 그렇게 먹으면 살이 찐다는 걸 일찍 알았다.


그러다가 진짜 호두과자를 먹었는데 그게 고속도로 휴게소였다. 맛있었다. 그러나 자주 사 먹는다거나 한 번에 한 봉지를 다 먹게 되지는 않는다. 일단 나의 문화권 안에, 내가 움직이는 활동반경 내에 호두과자를 파는 곳도 없고, 호두과자가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먹다 보면 텁텁하다.


그래서 많이 먹으면 세네 개 정도 먹고는 그만둔다. 오늘처럼 이렇게 누가 사주면 맛있게 먹지만 역시 한 번에 다 먹지는 못한다. 호두과자를 초콜릿에 찍어 먹으니 훨씬 맛있었다. 호두과자 하면 자연스럽게 호두까기 인형이 떠올라야 하지만 나는 낙서가 떠오른다.


그래, 벽에 칠한 낙서 말이다. 지금은 없어진 골목인데 자주 다녔던 골목에 누군가 ‘호두’라고 낙서를 했다. 어째서 하고많은 낙서 중에 호두였을까. 아마 자신의 별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호두는 뭔가 작고 귀엽고 힘없음을 나타내는 말일지도 모른다.


친구들이 그 별명으로 부르면 싫었지만 학교에서 또는 회사에서 왕따라 덤빌 수도 욕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런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그 전날 꿈을 꾸었다. 잠을 자는데 호두 병정들이 떼로 몰려와서 밧줄로 자신을 꽁꽁 묶은 다음 호두에게 심문을 받았다. 마구 때리고 꼬집고 할퀴었다. 그런데 그 호두를 보니 자신을 닮은 것이다. 아악 하며 발악을 하다가 꿈에서 깨어난 것이다. 그래서 라커를 들고 분출하고픈 욕망 ‘호두’를 휘갈겨 낙서를 한 것이다. 그랬던 것이다.

호두가 많아서 며칠 먹었다. 몇 개는 초콜릿에 찍어 먹고, 몇 개는 동그랑땡과 같이 먹고, 몇 개는 와인에 곁들이고. 몇 개는 라면에 넣어서 먹었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그렇게 며칠 동안 나눠 먹었다. 냠냠.

오늘은 호두과자와 잘 어울리는 라고 우겨보는 델로니어스 몽크의 라운드 미드나잇 https://youtu.be/6uEkUBMH0oE 출처: An die Mu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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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범죄 영화를 봤다. 범죄 영화라고 하지만 그간 너무 극악무도한 범죄 영화를 봐서인지 이 영화는 엉뚱하고 또 엉뚱한 주인공들 덕분에 그저 사랑스럽게만 보이는 영화다.


카조니어라는 말은 합성어인데 ‘셀 수 없는 많은’과 ‘사람’을 합친 단어라고 한다. 아주 돈이 많은 사람들. 억만장자 같은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 영화는 영화 시작 1분부터 풉 하고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웃음이라는 게 실실, 이 사이로 조금씩 흘러나올 정도다. 주인공 올드 돌리오는 26살의 여성이다. 그러나 26살이 되도록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시간이 되면 팬터마임 같은 행동으로 우편물 취급소에 잠입을 해서 다른 사람의 우편물을 몰래 빼오는 것뿐이다.


올드 돌리오는 사회성이라고는 1도 없고 그저 그 시간이 되면 그런 기묘한 행동으로 우편물 취급소에서 물품을 훔쳐 온다. 그리고 훔쳐 나온 물품을 가지고 아빠와 엄마와 함께 뜯어보고 돈이 되는지 눈대중으로 본 다음에 그걸 돈으로 바꾼다.


이 가족은 사기꾼 가족으로 도둑질을 하여 먹고사는데 그 규모가 알콩달콩 할 정도로 소규모다. 고작 우편물 취급소의 우편물을 훔치고, 홀로 사는 사람의 집에 친밀하게 들어가서 엄마와 돌리오가 대화를 하는 동안 아빠가 잡다한 것들을 훔치거나 지갑을 털어 나오고, 비행기에서 제일 마지막에 내리면서 사람들이 먹다 둔 기내식을 챙겨 나오거나 티슈 같은 것을 들고 나오는 정도의 수준이다. 어딘가에서 얻은 마사지 티켓을 돈으로 바꾸러 들어갔다가 마사지사가 돈으로는 못 바꿔 준다고 하니 돌리오는 한참 생각 끝에 자기가 마사지를 받는 등 사기꾼 가족인데 사기를 안 당하는 게 다행인 가족이다.


돌리오 가족이 사는 집은 공장에 딸린 큰 사무실인데 월세가 기가 막히게 싸다. 이유는 매일 특정한 시간에 공장에서 나오는 거품이 사무실 벽면에 새는데 그걸 닦는 대신 값싸게 지낼 수 있지만 이 가족은 그 월세도 내지 못해 쫓겨나게 생겼다. 그래서 집세 구하기 사기 행각을 본격적으로 펼치면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가족에게는 생활의 냄새랄 것이 거의 없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배제되어 있다. 훔친 돈은 똑같이 3등분을 한다. 하지만 돌리오는 돈이 없고 사기를 치고 아크로바틱 한 행동으로 우편물 취급소에 침투하는 건 늘 돌리오의 역할이다. 돌리오는 엄마나 아빠 대신 자기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엄빠는 자신에게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않고, 안아 주지도 않고, 살갑게 대하지도 않지만 원래 그런 거라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돌리오는 어떤 여성이 출석해야 하는 곳에 아르바이트비를 받고 대신 가서 아기가 엄마 배 위에서 본능적으로 엄마의 가슴을 찾아가는 영상을 보고 자신의 수많은 감정을 억눌러 온 것에 대해서 괴리를 느낀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 가족에게 끼어든 푸에르토리코 여성 멜라니에게는 엄마가 살갑게 대하고 ‘아가’라는 말을 하는 걸 듣고 돌리오는 자신에게 들어온 큰돈을 전부 엄마에게 주며 이 돈을 그냥 다 줄 테니 나에게도 ‘아가’라고 한 번 불러 달라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끝끝내 그러지 않는다.


이 영화는 에반 레이첼 우드의 영화 속 하나뿐인 표정의 연기와 영국 저 어디 시골구석의 악센트가 강한 억양으로 말하는 대사와 뻣뻣한 동작이 26살이 될 동안 어떤 식으로 엄빠에게 사기꾼으로 길러졌는지 알게 해 준다. 그런 돌리오가 자신에게도 감정이 많다는 것을 멜라니가 알게 해 준다. 세상에서 태어나 딱 한 번, 딱 한 장의 팬케이크를 먹어 본다. 그것도 엄마가 아닌 멜라니가 해주는 팬케이크를. 그 장면은 너무 별거 아닌데 이상하게 찡하다. 표정이 없이 자기감정을 눌러온 돌리오가 어둠 속에서 나오면서 웃게 되는데 보는 사람도 너무 좋다.


이 영화는 OST가 정말 좋다. 웃음 가득 멜라니와 세상 시름 다 가진 듯한 무표정의 돌리오가 같은 방에 있게 되었을 때 흘러나오는 음악이 너무 좋은 것이다. U2의 Numb의 리듬이 떠오르는데 찾아보니 Rile Me Up이라는 제목이다. 예고편 초반부에 흐르는 음악이다. 모든 사운드트랙이 좋아서 찾아보니 이미 이 영화의 마니아들이 많았고 그들은 카조니아의 사운드트랙을 엄청(까지는 아니지만) 구매해서 듣고 있었다.영화를 보고 나면 올드 돌리오에게 이렇게 살아온 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앞으로는 꼭 행복해야 해. 네가 행복하면 모두가 행복하다고.라고 말해주고 싶은 영화다. 아마 이 영화에 스펀지처럼 흡수된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돌리오의 감정에 몰입이 되었고, 그 사람들 역시 돌리오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못할 시간, 장소,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감정이라는 건 기계가 아무리 발전을 해도 알 수가 없다.


익숙함이라는 것에 길들여지면 우리는 그것이 마치 나의 당위성이 되어 버린다.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에서 조금만 비켜가거나 벗어나면 불안하고 두려움을 느낀다. 대부분의 그루밍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대리 출석을 하는 자리에서 선생님으로 보이는 강사에게 어린이처럼 머리 쓰다듬음을 받으며 눈물을 흘린다. 그 한 장면에서 돌리오는 26년 동안 엄마에게 한 번도, 단 한 번도 그런 애틋한 손길을 받아보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새삼 영화라는 세계는 마음을 다 던져도 좋구나, 하고 느꼈다.


기타음이 꼭 말을 걸오는 듯한 Rile Me Up https://youtu.be/ojVW4NULi4k Emile Mosseri


여기부터는 읽지 않아도 되는 주절거림의 이야기.


에반 레이첼 우드는 '웨스트 월드'로 잘 알려져 있다. 돌로레스로 웨스트 월드 세계관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아름답고 예쁘다. 호스트라고 불리는 돌로레스가 인간이 만든 휴머노이드지만 기억을 재생하고 재생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추악함에 반기를 들고 웨스트 월드 세계에 속한 인간들을 점령해 나간다. 에반 레이첼 우드는 18세에 이미 마를린 맨슨과 약혼을 했었는데 작년에 인스타그램을 통해 "나를 학대한 사람의 이름은 브라이언 워너이며 마릴린 맨슨으로 알려져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가 10대였을 때 나를 그루밍(Grooming·성적 길들이기)하기 시작했고 수년간 끔찍하게 학대했다"라고 폭로하는 글을 게재했다.

마를린 맨슨은 어떤 면으로 매력보다 마력이 있는가? 우리나라에도 왔던 살아있는 마네킨이라 불리는 디타 본 티즈와도, 왕좌의 게임에서 조프리에게 가장 처참하게 살해당한 - 벽면에 화살로 맞아서 걸려 죽어있던 아름다운 시녀 역의 비앙코도, 그리고 에반 레이첼 우드도 마를린 맨슨에게 빠졌었다. 여성들이 폭로한 맨슨의 학대 수준은 가히 가학적 고어 공포 영화 수준이다. 마를린 맨슨은 조니 뎁의 절친으로 기타 연주를 잘하는 조니 뎁을 자신의 공연에도 같이 서게 했는데 이번 이혼 재판 과정에서 마를린 맨슨이 조니 뎁에게 18세 어린 여자를 소개하는 문자가 공개되기도 했다. 마를린 맨슨 노래는 예전부터 너무 좋아하는데 늘 사건 사고에 서 있다. 요즘의 마를린 맨슨의 외모는 뭐랄까 드럼통 같은 몸이 되었다.  


에반 레이첼 우드는 빌리 엘리엇의 제이미 벨과 결혼을 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아들도 있다. 제이미 벨을 너무 사랑해서 발목인가 제이라는 타투를 한 것으로 아는데 2년 후에 결별한다. 아무튼 재미있고 알 수 없고 이해하기 힘든 할리우드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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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혹시나 하면서 빙 둘러 그때 그 골목으로 가보았는데 아직 그 작은 골목이 있었다. 이 골목에 오니 기억이 확 밀물처럼 몰려왔다. 고딩 시절 친구와 이 골목에 앉아 집에 가기 전에 한 번 소주를 마셨다. 중간에 닭도 한 마리 튀겨 놓고 늦은 밤까지 뭐가 그리도 할 말이 많은지 이야기를 했다. 오로지 이야기를 하고 대화를 했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들이지만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했다.


소주를 나눠 마시며 치킨을 먹었다. 그러다가 골목의 양 끝에서 어른의 실루엣이 한 명씩 드러났다. 각자의 어머니가 우리를 찾으러 온 것이다. 골목의 양 끝에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저승사자 같은 모습이었다. 우리는 재빨리 일어나 각자의 어머니 곁으로 가서 집으로 들어갔다. 슬프게도 소주를 나눠 마신 건 그것으로 끝이 되었다.


친구와 나는 학교가 달랐다. 그래서 학교에서 매일 보는 친구들과 달리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면서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그렇게 집으로 오는 짧은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했던 것 같다. 동시에 이게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도 가지고 있었다. 어떤 날부터 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만나서 오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아니면 한 번 정도? 야자를 하지 않고 도망쳐 나와서 만나서 집으로 왔다.


그런 날에는 뭘 먹었다. 우리는 학교가 근처에 있어서 같이 버스를 타고 와서 같은 정류장에 내려서 좀 걸었다. 집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각자 집으로 걸어가는데 시간이 대략 20분 정도 걸렸다. 버스정류장에 내리면 그 앞에 닭집이 있었다. 옛날통닭집이었다. 그러나 주인아주머니가 교복을 입고 있는 우리에게 소주를 팔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닭을 포장해서 소주를 마신 것이 이 골목이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각자 헤어지기 좋을 장소였다. 나는 이쪽으로, 친구는 저쪽으로. 우리는 날이 추워지기 전까지 이 골목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갔다. 그러다가 소주를 한 번 마셨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야기를 여기 이 골목에서 했던 건 기억이 났다.


열심히 이야기에 서로 몰두했다. 그러다가 각자 어머니에게 끌려 집으로 간 후 우리는 다시는 그 골목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가 고등학교 때 술을 마시는 걸 부모님들은 그렇게 나무라지 않았다. 술을 마셔서 사고를 치거나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없었을 정도로 얌전했다. 부모님은 우리를 그냥 믿고 받아들였다.


단지 교복을 입고 골목에 앉아 술을 마셨고, 교복이 남학교 교복과 여학교 교복이라 들킨 이후로는 재미있는 하굣길이 되지는 못했다. 우리는 생각해보면 사귈 만도 했는데 용케도 그저 친구사이였다. 그 친구는 사강의 소설을 좋아했고 나는 주성치 영화를 좋아했다. 따지고 보면 서로 어울릴법한 구석이 없는데도 잘 어울려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알게 된 건 학교 축제 때문이었다. 우리 학교는 인문계인데도 불구하고 학교 축제를 3일 동안 내내 했으며 규모도 컸다. 그래서 지방 뉴스나 신문에도 축제 소식이 늘 나곤 했다. 대학교 밴드부와 각 학교의 밴드부들도 3일 내내 메인 무대에서 공연을 했다.


나는 사진부였고 교정에서 가장 좋은 자리 때문에 축제 때마다 미술부와 자리다툼이 있었다. 선배들이 힘이 있으면 그 자리를 축제 때 차지하거나 클럽을 맡은 담당 선생님이 열의가 있으면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어쨌거나 오래된 전통이 되어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면 축제 기간 내내 분위기가 좋지 않다. 사진부는 교무실 바로 옆에 있음에도 암실에서 술을 왕왕 마셨고 크게 사고 치지 않는 한 선생님들도 모른 척해주었다.


축제 때 사진 전시회에 각 학교에서 관람을 하러 오면 뒤에 대기하다가 질문하면 사진에 대해서 설명을 해준다. 나는 그때 유진 스미스의 '천국으로 가는 길'을 오마주한 사진을 전시했는데 그 사진에 대해서 집요하게 물었던 애가 그 친구였다. 그 친구는 유진 스미스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고 그의 사진 세계에 놀라움을 표출했다. 정신질환이 심했던 유진 스미스가 자신의 아이들이 숲을 빠져나갈 때 절묘하게 포착한 '천국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좋은 사진이었다. 나에게는 사진작가 사진집이 몇 권 있어서 그걸 빌려 주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그 애는 ‘마음의 파수꾼’에 깊게 빠져 있었다. 그리고 도로시를 향한 루이스의 사랑이 겉으로는 정말 나쁘고 못된 짓이지만 그 애틋한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러다가 루이스가 좀 더 멀쩡할까, 애니 윌킨스가 더 미쳤을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스티븐 킹이 자신의 영화에 단역으로 나오는 것도 이야기를 했다.


스티븐 킹의 소설과 영화가 가장 유명하지만 스티븐 킹에 얽힌 일화도 재미있는 일들이 많다. 그중에(이 이야기는 하루키의 에세이에 실려있다) 미저리 소설에 관한 이야기다. 미저리 소설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정말 자신이 쓴 것이라 믿고 있는)하는 중년 여성 앤이 스티븐 킹을 괴롭히고 미저리의 애니 윌킨스는 자신을 모델로 만든 캐릭터라고 하며 스티븐 킹이 자신의 원고를 훔쳐 갔다고 주장을 하는 등 협박장을 보내기도 했다.


며칠 뒤 에릭이라는 청년이 스티븐 킹의 집에 침입을 하면서 자신의 숙모 원고를 훔쳐 미저리를 썼다고 주장했다. 그럼 이 에릭이라는 청년과 중년 여성 앤이 서로 아는 사람이려니 하겠지만 두 사람은 전혀 모르는 남남이다. 게다가 앤은 스티븐 킹이 자신을 위해 하려고 일부러 청년을 시켜 저런 일을 꾸몄다고 했다. 모두가 경찰에게 인계되고 절차에 따랐다. 앤 이라는 여성은 스티븐 킹이 초기작을 낼 무렵부터 그렇게 협박을 하며 스토커 짓을 해왔다고 한다. 청년이 집에 침입했을 때에는 집에 스티븐 킹의 아내만 있었는데 굉장히 무서웠을 것이다.


미국은 아직도 지구가 네모네모 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고, 미국의 외곽 지역으로 갈수록 뭐랄까 좀 많이 무섭다. 그런 예를 잘 볼 수 있는 시리즈가 요즘 HBO에서 인기몰이 중인 ‘메어 오브 이스트 타운’이다. 펑퍼짐한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가 압도적이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는 골목에 앉아서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렁주렁했었던 것 같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고민 같은 것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았다. 애써 외면하거나 아니면 하긴 했어도 요즘의 아이들이 하는 것에 비해서 축소되어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와즈 사강의 '마음의 파수꾼‘은 딱 한 번 읽었는데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꽤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반면에 '호밀밭의 파수꾼‘은 욕밖에 기억이 없고 10번도 넘게 읽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대략적인 줄거리만 기억이 난다. 그런 걸 보면 나의 머리 구조는 도대체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일까. 이 기억에 관한 방대한 이야기는 미드 ‘웨스트 월드’에서 보여주었는데 블라블라.

하루키의 이윽고 슬픈 외국어에 스티븐 킹에 대한 일화가 실려 있다



그럼 오늘도 입큰 스티브 타일러의 에어로 스미스의 홀 인 마이 소울 https://youtu.be/HaC0s-FP-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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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11-20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왼쪽 보루꾸 담벼락이 세월을 말해주네요.

교관 2022-11-21 11:54   좋아요 0 | URL
보루꾸 ㅋㅋㅋ

이제 여기도 개발의 바람을 곧 탈 것 같습니다
 


컵라면이 맛있는지 끓여 먹는 라면이 더 맛있는지 물어보면 이거다,라고 대답하기 나는 애매하다. 짜장면과 짬뽕 중에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린이에게 엄빠 중에 누가 더 좋아?라고 물어보는 건 –라고 보니 대부분 어린이가 엄마가 더 좋다고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컵라면도 뜨거운 물이 있어야 하고 끓여 먹는 라면도 물을 끓여야 한다. 컵라면은 물을 붓고 3분이라지만 끓이는 시간도 있으니 그렇게 따지면 라면은 이거나 저거나 시간적으로 따지면 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 식기 전에 라면을 먹으니 먹는 시간 역시 비슷하다.


오로지 맛으로만 선택을 해야 한다면 그건 너무 어려운 문제다. 선택 장애라는 건 이럴 때 겪는다. 별건 아니다. 별거 없다. 그러나 우리는 늘 별거 아닌 거에 매달리고 집중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도 이런 걸 물어보지 않는다. 멍청한 어른이 엄빠 중에 누가 더 좋아?라고 물어본다.


컵라면은 간단하게 먹는 음식의 대명사인데 나는 컵라면을 편의점보다 집에서 더 많이 먹는다. 편의점은 좀 이상한 곳이라 분명 컵라면을 먹으러 들어갔지만 눈에 들어오는 오만가지 맛있는 것들이 유혹을 하는 바람에. 집에는 늘 컵라면이 몇 개 있고 집에서 컵라면을 먹을 때가 더 많다. 컵라면에 계란을 하나 탁 깨트려 넣으면 흰자가 다 익지 않고 이렇게 약간은 덜 익어서 계란의 비릿한 맛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맛이 나는데 그게 맛있다.


끓여 먹는 라면에 계란을 넣으면 노른자는 터트리지 않더라도 흰자는 어떻게든 다 익어 버리는데 컵라면에 넣은 계란의 흰자는 끝까지 그 덜 익은 맛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렇게 뜨겁지 않은 밥에도 날계란을 깨서 비벼 먹는 것도 좋아한다. 거기에 간장이나 와사비를 풀어서 휙휙 비벼먹는데 내 입에는 맛있다. 물론 옆에서 으 하는 표정이지만.


이렇게 컵라면에 날계란을 깨트려 먹는 맛은 늦가을 토요일 오후가 좋다. 늦가을의 햇살이 힘을 서서히 잃어 가면서 나무와 벤치에 내려앉을 오후의 시간에 고요와 적막이 가득한 집에서 차가워지는 베란다의 문틀을 잡고 있다. 온 집안이 적막으로 휩싸이고 밖은 서서히 온도가 떨어지며 푸석한 늦가을의 정취가 한가득 거리에 깔린다.


차가운 문틀을 한 번 만지고 돌아서서 물을 끓인다. 가스레인지가 켜지는 소리가 일순 적막을 깨트린다. 화악 불이 올라오는데 나는 가만히 서서 주전자에 불이 닿는 모습을 본다. 파란불은 날름날름 혀를 뾰족하게 만들어 주전자가 달아오를 때까지 핥아댄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게 좋다.


적막이 흐르는 늦가을의 집 거실도 좋지만 그 적막을 요란하게 깨우는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가 좋다. 주전자는 물이 끓어오를 때 마치 이 세상에 없는 존재가 우는 소리를 낸다. 평소에는 절대 들을 수 없는 소리로 모든 고요를 없애는 마법을 펼친다.


지금부터 적막이란 없다. 뜨거운 물을 컵라면에 붓는 순간 맛있는 냄새가 모든 공간을 채운다. 날계란을 하나 탁 깨트려 넣는다. 그리고 김치도 조금 넣는다. 날계란이 들어가서 면이 익는데 3분보다 좀 더 시간이 걸린다. 면이 익을 동안 나는 생각한다.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도 라면을 좋아했다. 아버지가 눈을 감은 그때 그 방에서 나는 일부러 잠이 들곤 했다. 사람이 죽은 곳에는 잘 가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얼마간은 아버지가 눈을 감은 그 방에서 똑같이 눈을 감고 잠이 들곤 했다. 이상하다던가 기분이 별로라든가 그런 건 없었다. 아버지는 컵라면은 안 드셨다. 오직 끓이는 라면이었다. 어찌나 라면을 좋아했던지 회사 가기 전에 라면을 늘 끓여 드시곤 했다.


그리고 나 먹으라고 밥그릇에 좀 담아 놓고 출근을 하셨다. 눈을 뜨면 온통 불어서 죽이 된 그 라면을 나는 숟가락으로 퍼 먹곤 했다. 맛있을 리 없지만 맛있었다. 아버지는 라면 끓이는 스타일이 확고했다. 그래서 그 라면 냄새에도 고집이 있었다. 아버지는, 까지 생각하다 보니 컵라면이 다 됐다. 이제 입천장에게 미안해하며 먹는 일만 남았다.




컵라면 먹으며 듣기 좋은 노래 본 조비의 베드 오브 로지즈 https://youtu.be/NvR60Wg9R7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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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한 병을 누가 던져주었다. 그래서 유자차를 밤에 타 마시고 있다. 유자차를 그러니까,,,, 십 년 동안은 거의 먹지 않은 것 같다. 그동안 유자차라는 것이 내가 손을 뻗을 수 있는 범위 안에 없었다. 세상에는 아예 모르는 것이 있고, 또 경험을 통해 알고 있으나 너무 접하지 않아서 모르는 것들이 있다.


유자차가 그렇다. 유자차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유자차를 마시는 사람을 잘 보지 못했다. 나 같은 경우 하루에 음료 한 잔 정도를 마시는데 그게 커피다. 오전에 샷을 하나 더 부은 커피 한 잔이 하루에 마시는 음료 분량이다. 유자차 같은 차를 한 잔을 마시고 나면 배가 부르다. 그래서 다른 걸 먹지 못한다. 나는 그렇다는 것이다.


유자차를 잊어버리고 사는 동안 유자차 하면 노래만 줄곧 생각난다. 이름도 브로콜리 너마저 같은 ‘브로콜리너마저’가 부르는 유자차만 알고 지냈다.

 

아니 당최 이름이 브로콜리 너마저가 뭐야?


스웨덴 세탁소보다 낫잖아?


에이, 이상의 날개도 있는데?


이능룡은?


그럼 언니네 이발관도 나와야 하잖아?


언니네 이발관이 뭐니 당최, 전기뱀장어라는 밴드 노래 들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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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가 필요했잖아, 이제는 지친 마음을 쉬어

이 차를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


유자차 하면 이 부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유자차를 다 마시고 나면 봄날이 올까, 여기서 말하는 봄날이란 체감하는 봄이 아니라 메타포의 봄날을 말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내 인생의 봄날이란 아직 오직 않았기에 앞으로,,,,도 오지 않을 수 있다.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또 해보면서.


고등학교 때 버스정류장 앞 지하에 카페가 있었는데 거기서 유자차를 주문해서 마시곤 했다. 날이 차가운 겨울이었고 따뜻한 유자차를 마셨다. 고등학생 때 커피의 맛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유자차를 마시는 고등학생보다 커피를 마시는 고등학생이 훨씬 멋있을 텐데. 커피 맛도 모르면서 우리는 카페에는 지치지 않고 들락거렸다.


할 이야기도 딱히 없으면서, 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카페를 찾아서 기어 들어갔다. 온기 같은 것을 느끼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요즘의 학생들도 모이면 예쁜 카페를 찾아서 간다. 역시 요즘에도 커피 같은 건 마시지 않는다.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사진에 예쁘게 나오는 음료를 주문해서 마신다. 거기에 맛도 좋으면 더 좋지만 맛보다는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음료, 그것이어야 한다.


요즘 유자차를 타 마시고 있으니 오래전 고딩시절 버스정류장 앞의 지하에서 유자차를 마시던 카페가 생각난다. 평소에는 전혀 기억이 없다가 특정한 음식을 먹으면 잊고 있었던 기억이 화악 떠오를 때가 있다. 이를 암묵적 기억이라고 한다.


과커 엑소의 말에 따르면 우리 뇌의 기억은 명시적 기억과 암묵적 기억으로 나뉜다. 전자는 열심히 외워서 기억하는 것이다. 일부러 암기하는 것들, 공부나 학습을 통해서 서술형으로 기억하는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 것들은 썩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암묵적 기억은 특정 상황, 어딘가 장소에서 맡았던 냄새, 어떤 음식의 맛은 오래전 놀았던 때의 그 집 분위기, 그 간판이나 주위의 풍경이 암묵적으로 되살아 나오게 한다.


그 지하의 카페는 안온했다. 좋은 향이 있었고 따뜻한 느낌이 나는 노란 페인트로 칠해 놓은 벽돌로 벽면이 장식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조관우의 겨울이야가 흘러나왔던 것이 기억이 난다. 특정 음악을 들으면 옛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우리가 뭔가를 듣는다는 건 청각피질을 자극한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청각피질의 자극을 소음과 음악이 다 자극하는데 음악이 유일하게 뇌의 다른 부분도 자극을 한다고 한다.


소음은 그러지 못하는데 음악만이 변형계 쪽에 있는 감정적 변이를 작용하는 부위까지 자극을 한다. 오로지 이 음악만이. 감정적 변이를 유발하는 것뿐만 아니라 음악을 들으면 이 반응을 더 자극하는 도파민, 옥시 토민, 세로토닌 같은 신경화학 물질이 더 나온다고 한다. 중요한 건, 신경과학자들이 말하는 건 감정적 반응을 이만큼 기억을 오래 끌게 하는 게 음악보다 나은 방법이 없다고 한다.


우리가 추억의 음악을 들었을 때 감정적인 반응까지 증폭되면서 더 오래 기억에 남게 된다. 수십 년 전의 노래가 떠오르는 이유는 인간은 10대부터 20대 초반 정도에 훨씬 신경세포들이 많이 성장하고 호르몬이 폭발하기 때문에 뇌에서 지금 이 순간이 너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야! 그러니 이 기억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아둬야 해! 라며 명령을 내린다. 그때 그 상활들이 암묵적으로 기억에 가장 오래 남게 된다. 블랙박스 속에 오랫동안 봉인된 채 들어앉아 있다가 어느 특정한 맛, 음악, 냄새에 그 봉인이 확 풀어진다.


유자차 한 잔 마시면서 거창하네 참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인간이 만든 거창한 모든 것들이 대수롭지 않은 것에서 출발했고 소중한 것이 되었다. 신해철이 '나에게 쓰는 편지'에서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오늘은 유자차 한 잔 마시기 정말 좋은 날이다. 그런데 유자차가 이렇게 달았나.



유자차 들어요 https://youtu.be/qjzh3CwaYKc 출처: 음반가게 알바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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