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범죄 영화를 봤다. 범죄 영화라고 하지만 그간 너무 극악무도한 범죄 영화를 봐서인지 이 영화는 엉뚱하고 또 엉뚱한 주인공들 덕분에 그저 사랑스럽게만 보이는 영화다.
카조니어라는 말은 합성어인데 ‘셀 수 없는 많은’과 ‘사람’을 합친 단어라고 한다. 아주 돈이 많은 사람들. 억만장자 같은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 영화는 영화 시작 1분부터 풉 하고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웃음이라는 게 실실, 이 사이로 조금씩 흘러나올 정도다. 주인공 올드 돌리오는 26살의 여성이다. 그러나 26살이 되도록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시간이 되면 팬터마임 같은 행동으로 우편물 취급소에 잠입을 해서 다른 사람의 우편물을 몰래 빼오는 것뿐이다.
올드 돌리오는 사회성이라고는 1도 없고 그저 그 시간이 되면 그런 기묘한 행동으로 우편물 취급소에서 물품을 훔쳐 온다. 그리고 훔쳐 나온 물품을 가지고 아빠와 엄마와 함께 뜯어보고 돈이 되는지 눈대중으로 본 다음에 그걸 돈으로 바꾼다.
이 가족은 사기꾼 가족으로 도둑질을 하여 먹고사는데 그 규모가 알콩달콩 할 정도로 소규모다. 고작 우편물 취급소의 우편물을 훔치고, 홀로 사는 사람의 집에 친밀하게 들어가서 엄마와 돌리오가 대화를 하는 동안 아빠가 잡다한 것들을 훔치거나 지갑을 털어 나오고, 비행기에서 제일 마지막에 내리면서 사람들이 먹다 둔 기내식을 챙겨 나오거나 티슈 같은 것을 들고 나오는 정도의 수준이다. 어딘가에서 얻은 마사지 티켓을 돈으로 바꾸러 들어갔다가 마사지사가 돈으로는 못 바꿔 준다고 하니 돌리오는 한참 생각 끝에 자기가 마사지를 받는 등 사기꾼 가족인데 사기를 안 당하는 게 다행인 가족이다.
돌리오 가족이 사는 집은 공장에 딸린 큰 사무실인데 월세가 기가 막히게 싸다. 이유는 매일 특정한 시간에 공장에서 나오는 거품이 사무실 벽면에 새는데 그걸 닦는 대신 값싸게 지낼 수 있지만 이 가족은 그 월세도 내지 못해 쫓겨나게 생겼다. 그래서 집세 구하기 사기 행각을 본격적으로 펼치면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가족에게는 생활의 냄새랄 것이 거의 없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배제되어 있다. 훔친 돈은 똑같이 3등분을 한다. 하지만 돌리오는 돈이 없고 사기를 치고 아크로바틱 한 행동으로 우편물 취급소에 침투하는 건 늘 돌리오의 역할이다. 돌리오는 엄마나 아빠 대신 자기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엄빠는 자신에게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않고, 안아 주지도 않고, 살갑게 대하지도 않지만 원래 그런 거라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돌리오는 어떤 여성이 출석해야 하는 곳에 아르바이트비를 받고 대신 가서 아기가 엄마 배 위에서 본능적으로 엄마의 가슴을 찾아가는 영상을 보고 자신의 수많은 감정을 억눌러 온 것에 대해서 괴리를 느낀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 가족에게 끼어든 푸에르토리코 여성 멜라니에게는 엄마가 살갑게 대하고 ‘아가’라는 말을 하는 걸 듣고 돌리오는 자신에게 들어온 큰돈을 전부 엄마에게 주며 이 돈을 그냥 다 줄 테니 나에게도 ‘아가’라고 한 번 불러 달라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끝끝내 그러지 않는다.
이 영화는 에반 레이첼 우드의 영화 속 하나뿐인 표정의 연기와 영국 저 어디 시골구석의 악센트가 강한 억양으로 말하는 대사와 뻣뻣한 동작이 26살이 될 동안 어떤 식으로 엄빠에게 사기꾼으로 길러졌는지 알게 해 준다. 그런 돌리오가 자신에게도 감정이 많다는 것을 멜라니가 알게 해 준다. 세상에서 태어나 딱 한 번, 딱 한 장의 팬케이크를 먹어 본다. 그것도 엄마가 아닌 멜라니가 해주는 팬케이크를. 그 장면은 너무 별거 아닌데 이상하게 찡하다. 표정이 없이 자기감정을 눌러온 돌리오가 어둠 속에서 나오면서 웃게 되는데 보는 사람도 너무 좋다.
이 영화는 OST가 정말 좋다. 웃음 가득 멜라니와 세상 시름 다 가진 듯한 무표정의 돌리오가 같은 방에 있게 되었을 때 흘러나오는 음악이 너무 좋은 것이다. U2의 Numb의 리듬이 떠오르는데 찾아보니 Rile Me Up이라는 제목이다. 예고편 초반부에 흐르는 음악이다. 모든 사운드트랙이 좋아서 찾아보니 이미 이 영화의 마니아들이 많았고 그들은 카조니아의 사운드트랙을 엄청(까지는 아니지만) 구매해서 듣고 있었다.영화를 보고 나면 올드 돌리오에게 이렇게 살아온 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앞으로는 꼭 행복해야 해. 네가 행복하면 모두가 행복하다고.라고 말해주고 싶은 영화다. 아마 이 영화에 스펀지처럼 흡수된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돌리오의 감정에 몰입이 되었고, 그 사람들 역시 돌리오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못할 시간, 장소,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감정이라는 건 기계가 아무리 발전을 해도 알 수가 없다.
익숙함이라는 것에 길들여지면 우리는 그것이 마치 나의 당위성이 되어 버린다.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에서 조금만 비켜가거나 벗어나면 불안하고 두려움을 느낀다. 대부분의 그루밍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대리 출석을 하는 자리에서 선생님으로 보이는 강사에게 어린이처럼 머리 쓰다듬음을 받으며 눈물을 흘린다. 그 한 장면에서 돌리오는 26년 동안 엄마에게 한 번도, 단 한 번도 그런 애틋한 손길을 받아보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새삼 영화라는 세계는 마음을 다 던져도 좋구나, 하고 느꼈다.
기타음이 꼭 말을 걸오는 듯한 Rile Me Up https://youtu.be/ojVW4NULi4k Emile Mosseri
여기부터는 읽지 않아도 되는 주절거림의 이야기.
에반 레이첼 우드는 '웨스트 월드'로 잘 알려져 있다. 돌로레스로 웨스트 월드 세계관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아름답고 예쁘다. 호스트라고 불리는 돌로레스가 인간이 만든 휴머노이드지만 기억을 재생하고 재생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추악함에 반기를 들고 웨스트 월드 세계에 속한 인간들을 점령해 나간다. 에반 레이첼 우드는 18세에 이미 마를린 맨슨과 약혼을 했었는데 작년에 인스타그램을 통해 "나를 학대한 사람의 이름은 브라이언 워너이며 마릴린 맨슨으로 알려져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가 10대였을 때 나를 그루밍(Grooming·성적 길들이기)하기 시작했고 수년간 끔찍하게 학대했다"라고 폭로하는 글을 게재했다.
마를린 맨슨은 어떤 면으로 매력보다 마력이 있는가? 우리나라에도 왔던 살아있는 마네킨이라 불리는 디타 본 티즈와도, 왕좌의 게임에서 조프리에게 가장 처참하게 살해당한 - 벽면에 화살로 맞아서 걸려 죽어있던 아름다운 시녀 역의 비앙코도, 그리고 에반 레이첼 우드도 마를린 맨슨에게 빠졌었다. 여성들이 폭로한 맨슨의 학대 수준은 가히 가학적 고어 공포 영화 수준이다. 마를린 맨슨은 조니 뎁의 절친으로 기타 연주를 잘하는 조니 뎁을 자신의 공연에도 같이 서게 했는데 이번 이혼 재판 과정에서 마를린 맨슨이 조니 뎁에게 18세 어린 여자를 소개하는 문자가 공개되기도 했다. 마를린 맨슨 노래는 예전부터 너무 좋아하는데 늘 사건 사고에 서 있다. 요즘의 마를린 맨슨의 외모는 뭐랄까 드럼통 같은 몸이 되었다.
에반 레이첼 우드는 빌리 엘리엇의 제이미 벨과 결혼을 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아들도 있다. 제이미 벨을 너무 사랑해서 발목인가 제이라는 타투를 한 것으로 아는데 2년 후에 결별한다. 아무튼 재미있고 알 수 없고 이해하기 힘든 할리우드 생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