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한 병을 누가 던져주었다. 그래서 유자차를 밤에 타 마시고 있다. 유자차를 그러니까,,,, 십 년 동안은 거의 먹지 않은 것 같다. 그동안 유자차라는 것이 내가 손을 뻗을 수 있는 범위 안에 없었다. 세상에는 아예 모르는 것이 있고, 또 경험을 통해 알고 있으나 너무 접하지 않아서 모르는 것들이 있다.


유자차가 그렇다. 유자차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유자차를 마시는 사람을 잘 보지 못했다. 나 같은 경우 하루에 음료 한 잔 정도를 마시는데 그게 커피다. 오전에 샷을 하나 더 부은 커피 한 잔이 하루에 마시는 음료 분량이다. 유자차 같은 차를 한 잔을 마시고 나면 배가 부르다. 그래서 다른 걸 먹지 못한다. 나는 그렇다는 것이다.


유자차를 잊어버리고 사는 동안 유자차 하면 노래만 줄곧 생각난다. 이름도 브로콜리 너마저 같은 ‘브로콜리너마저’가 부르는 유자차만 알고 지냈다.

 

아니 당최 이름이 브로콜리 너마저가 뭐야?


스웨덴 세탁소보다 낫잖아?


에이, 이상의 날개도 있는데?


이능룡은?


그럼 언니네 이발관도 나와야 하잖아?


언니네 이발관이 뭐니 당최, 전기뱀장어라는 밴드 노래 들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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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가 필요했잖아, 이제는 지친 마음을 쉬어

이 차를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


유자차 하면 이 부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유자차를 다 마시고 나면 봄날이 올까, 여기서 말하는 봄날이란 체감하는 봄이 아니라 메타포의 봄날을 말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내 인생의 봄날이란 아직 오직 않았기에 앞으로,,,,도 오지 않을 수 있다.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또 해보면서.


고등학교 때 버스정류장 앞 지하에 카페가 있었는데 거기서 유자차를 주문해서 마시곤 했다. 날이 차가운 겨울이었고 따뜻한 유자차를 마셨다. 고등학생 때 커피의 맛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유자차를 마시는 고등학생보다 커피를 마시는 고등학생이 훨씬 멋있을 텐데. 커피 맛도 모르면서 우리는 카페에는 지치지 않고 들락거렸다.


할 이야기도 딱히 없으면서, 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카페를 찾아서 기어 들어갔다. 온기 같은 것을 느끼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요즘의 학생들도 모이면 예쁜 카페를 찾아서 간다. 역시 요즘에도 커피 같은 건 마시지 않는다.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사진에 예쁘게 나오는 음료를 주문해서 마신다. 거기에 맛도 좋으면 더 좋지만 맛보다는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음료, 그것이어야 한다.


요즘 유자차를 타 마시고 있으니 오래전 고딩시절 버스정류장 앞의 지하에서 유자차를 마시던 카페가 생각난다. 평소에는 전혀 기억이 없다가 특정한 음식을 먹으면 잊고 있었던 기억이 화악 떠오를 때가 있다. 이를 암묵적 기억이라고 한다.


과커 엑소의 말에 따르면 우리 뇌의 기억은 명시적 기억과 암묵적 기억으로 나뉜다. 전자는 열심히 외워서 기억하는 것이다. 일부러 암기하는 것들, 공부나 학습을 통해서 서술형으로 기억하는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 것들은 썩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암묵적 기억은 특정 상황, 어딘가 장소에서 맡았던 냄새, 어떤 음식의 맛은 오래전 놀았던 때의 그 집 분위기, 그 간판이나 주위의 풍경이 암묵적으로 되살아 나오게 한다.


그 지하의 카페는 안온했다. 좋은 향이 있었고 따뜻한 느낌이 나는 노란 페인트로 칠해 놓은 벽돌로 벽면이 장식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조관우의 겨울이야가 흘러나왔던 것이 기억이 난다. 특정 음악을 들으면 옛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우리가 뭔가를 듣는다는 건 청각피질을 자극한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청각피질의 자극을 소음과 음악이 다 자극하는데 음악이 유일하게 뇌의 다른 부분도 자극을 한다고 한다.


소음은 그러지 못하는데 음악만이 변형계 쪽에 있는 감정적 변이를 작용하는 부위까지 자극을 한다. 오로지 이 음악만이. 감정적 변이를 유발하는 것뿐만 아니라 음악을 들으면 이 반응을 더 자극하는 도파민, 옥시 토민, 세로토닌 같은 신경화학 물질이 더 나온다고 한다. 중요한 건, 신경과학자들이 말하는 건 감정적 반응을 이만큼 기억을 오래 끌게 하는 게 음악보다 나은 방법이 없다고 한다.


우리가 추억의 음악을 들었을 때 감정적인 반응까지 증폭되면서 더 오래 기억에 남게 된다. 수십 년 전의 노래가 떠오르는 이유는 인간은 10대부터 20대 초반 정도에 훨씬 신경세포들이 많이 성장하고 호르몬이 폭발하기 때문에 뇌에서 지금 이 순간이 너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야! 그러니 이 기억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아둬야 해! 라며 명령을 내린다. 그때 그 상활들이 암묵적으로 기억에 가장 오래 남게 된다. 블랙박스 속에 오랫동안 봉인된 채 들어앉아 있다가 어느 특정한 맛, 음악, 냄새에 그 봉인이 확 풀어진다.


유자차 한 잔 마시면서 거창하네 참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인간이 만든 거창한 모든 것들이 대수롭지 않은 것에서 출발했고 소중한 것이 되었다. 신해철이 '나에게 쓰는 편지'에서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오늘은 유자차 한 잔 마시기 정말 좋은 날이다. 그런데 유자차가 이렇게 달았나.



유자차 들어요 https://youtu.be/qjzh3CwaYKc 출처: 음반가게 알바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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