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혹시나 하면서 빙 둘러 그때 그 골목으로 가보았는데 아직 그 작은 골목이 있었다. 이 골목에 오니 기억이 확 밀물처럼 몰려왔다. 고딩 시절 친구와 이 골목에 앉아 집에 가기 전에 한 번 소주를 마셨다. 중간에 닭도 한 마리 튀겨 놓고 늦은 밤까지 뭐가 그리도 할 말이 많은지 이야기를 했다. 오로지 이야기를 하고 대화를 했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들이지만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했다.
소주를 나눠 마시며 치킨을 먹었다. 그러다가 골목의 양 끝에서 어른의 실루엣이 한 명씩 드러났다. 각자의 어머니가 우리를 찾으러 온 것이다. 골목의 양 끝에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저승사자 같은 모습이었다. 우리는 재빨리 일어나 각자의 어머니 곁으로 가서 집으로 들어갔다. 슬프게도 소주를 나눠 마신 건 그것으로 끝이 되었다.
친구와 나는 학교가 달랐다. 그래서 학교에서 매일 보는 친구들과 달리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면서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그렇게 집으로 오는 짧은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했던 것 같다. 동시에 이게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도 가지고 있었다. 어떤 날부터 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만나서 오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아니면 한 번 정도? 야자를 하지 않고 도망쳐 나와서 만나서 집으로 왔다.
그런 날에는 뭘 먹었다. 우리는 학교가 근처에 있어서 같이 버스를 타고 와서 같은 정류장에 내려서 좀 걸었다. 집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각자 집으로 걸어가는데 시간이 대략 20분 정도 걸렸다. 버스정류장에 내리면 그 앞에 닭집이 있었다. 옛날통닭집이었다. 그러나 주인아주머니가 교복을 입고 있는 우리에게 소주를 팔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닭을 포장해서 소주를 마신 것이 이 골목이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각자 헤어지기 좋을 장소였다. 나는 이쪽으로, 친구는 저쪽으로. 우리는 날이 추워지기 전까지 이 골목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갔다. 그러다가 소주를 한 번 마셨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야기를 여기 이 골목에서 했던 건 기억이 났다.
열심히 이야기에 서로 몰두했다. 그러다가 각자 어머니에게 끌려 집으로 간 후 우리는 다시는 그 골목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가 고등학교 때 술을 마시는 걸 부모님들은 그렇게 나무라지 않았다. 술을 마셔서 사고를 치거나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없었을 정도로 얌전했다. 부모님은 우리를 그냥 믿고 받아들였다.
단지 교복을 입고 골목에 앉아 술을 마셨고, 교복이 남학교 교복과 여학교 교복이라 들킨 이후로는 재미있는 하굣길이 되지는 못했다. 우리는 생각해보면 사귈 만도 했는데 용케도 그저 친구사이였다. 그 친구는 사강의 소설을 좋아했고 나는 주성치 영화를 좋아했다. 따지고 보면 서로 어울릴법한 구석이 없는데도 잘 어울려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알게 된 건 학교 축제 때문이었다. 우리 학교는 인문계인데도 불구하고 학교 축제를 3일 동안 내내 했으며 규모도 컸다. 그래서 지방 뉴스나 신문에도 축제 소식이 늘 나곤 했다. 대학교 밴드부와 각 학교의 밴드부들도 3일 내내 메인 무대에서 공연을 했다.
나는 사진부였고 교정에서 가장 좋은 자리 때문에 축제 때마다 미술부와 자리다툼이 있었다. 선배들이 힘이 있으면 그 자리를 축제 때 차지하거나 클럽을 맡은 담당 선생님이 열의가 있으면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어쨌거나 오래된 전통이 되어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면 축제 기간 내내 분위기가 좋지 않다. 사진부는 교무실 바로 옆에 있음에도 암실에서 술을 왕왕 마셨고 크게 사고 치지 않는 한 선생님들도 모른 척해주었다.
축제 때 사진 전시회에 각 학교에서 관람을 하러 오면 뒤에 대기하다가 질문하면 사진에 대해서 설명을 해준다. 나는 그때 유진 스미스의 '천국으로 가는 길'을 오마주한 사진을 전시했는데 그 사진에 대해서 집요하게 물었던 애가 그 친구였다. 그 친구는 유진 스미스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고 그의 사진 세계에 놀라움을 표출했다. 정신질환이 심했던 유진 스미스가 자신의 아이들이 숲을 빠져나갈 때 절묘하게 포착한 '천국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좋은 사진이었다. 나에게는 사진작가 사진집이 몇 권 있어서 그걸 빌려 주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그 애는 ‘마음의 파수꾼’에 깊게 빠져 있었다. 그리고 도로시를 향한 루이스의 사랑이 겉으로는 정말 나쁘고 못된 짓이지만 그 애틋한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러다가 루이스가 좀 더 멀쩡할까, 애니 윌킨스가 더 미쳤을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스티븐 킹이 자신의 영화에 단역으로 나오는 것도 이야기를 했다.
스티븐 킹의 소설과 영화가 가장 유명하지만 스티븐 킹에 얽힌 일화도 재미있는 일들이 많다. 그중에(이 이야기는 하루키의 에세이에 실려있다) 미저리 소설에 관한 이야기다. 미저리 소설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정말 자신이 쓴 것이라 믿고 있는)하는 중년 여성 앤이 스티븐 킹을 괴롭히고 미저리의 애니 윌킨스는 자신을 모델로 만든 캐릭터라고 하며 스티븐 킹이 자신의 원고를 훔쳐 갔다고 주장을 하는 등 협박장을 보내기도 했다.
며칠 뒤 에릭이라는 청년이 스티븐 킹의 집에 침입을 하면서 자신의 숙모 원고를 훔쳐 미저리를 썼다고 주장했다. 그럼 이 에릭이라는 청년과 중년 여성 앤이 서로 아는 사람이려니 하겠지만 두 사람은 전혀 모르는 남남이다. 게다가 앤은 스티븐 킹이 자신을 위해 하려고 일부러 청년을 시켜 저런 일을 꾸몄다고 했다. 모두가 경찰에게 인계되고 절차에 따랐다. 앤 이라는 여성은 스티븐 킹이 초기작을 낼 무렵부터 그렇게 협박을 하며 스토커 짓을 해왔다고 한다. 청년이 집에 침입했을 때에는 집에 스티븐 킹의 아내만 있었는데 굉장히 무서웠을 것이다.
미국은 아직도 지구가 네모네모 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고, 미국의 외곽 지역으로 갈수록 뭐랄까 좀 많이 무섭다. 그런 예를 잘 볼 수 있는 시리즈가 요즘 HBO에서 인기몰이 중인 ‘메어 오브 이스트 타운’이다. 펑퍼짐한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가 압도적이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는 골목에 앉아서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렁주렁했었던 것 같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고민 같은 것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았다. 애써 외면하거나 아니면 하긴 했어도 요즘의 아이들이 하는 것에 비해서 축소되어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와즈 사강의 '마음의 파수꾼‘은 딱 한 번 읽었는데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꽤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반면에 '호밀밭의 파수꾼‘은 욕밖에 기억이 없고 10번도 넘게 읽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대략적인 줄거리만 기억이 난다. 그런 걸 보면 나의 머리 구조는 도대체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일까. 이 기억에 관한 방대한 이야기는 미드 ‘웨스트 월드’에서 보여주었는데 블라블라.
하루키의 이윽고 슬픈 외국어에 스티븐 킹에 대한 일화가 실려 있다
그럼 오늘도 입큰 스티브 타일러의 에어로 스미스의 홀 인 마이 소울 https://youtu.be/HaC0s-FP-r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