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없는 영화 이야기

 

아레사 프랭클린의 다큐 영화가 이제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게 누구야?라고 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미국 최고의 소울 디바로 칭송받았던 가수였다. 흑인여자가수들이 부르는 유명한 노래는 아레사 플랭클린이 부른 노래라고 생각해도 된다

 

개인적으로는 마이클 잭슨 다음으로 많이 들은 것 같다. 아레사 플랭클린은 가창력, 터질 듯한 고음으로 유명하지만 고요한 노래가 더 듣기 좋은 가수다. 영화 개봉 전에 유튜브로 예고 동영상이 먼저 나왔는데 영화 제목처럼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고 열광하는 젊은 믹 재거의 모습도 보인다

 

믹 재거는 이 영화를 두고 신의 얼굴을 보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했다

 

가장 최근까지 진행한 무라카미 인터뷰 ‘RUN 앤 송’에서, 무라카미는 아레사 플랭클린의 마이웨이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 인터뷰를 하는 동안 배경음악으로 세 곡이 흘렀는데 그 중 하나가 아레사 플랭클린이 부른 ‘마이 웨이’였다. 아레사 플랭클린이 부른 마이 웨이는 정말 좋다. 아마도 미국인들이라면 이 노래를 듣고 기쁨에 충만한 표정이 되었을 것이다. 마치 미쉘 존스를 여자 친구로 만든 피터 파커처럼

 

현존하는 디바들-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온들도 아네사 플랭클린과 함께하면 하늘을 뚫어버릴 듯한 고음에 압도당하고 혀를 내두를정도라고 했다. 아레사 플랭클린의 목소리로 재해석된 마이웨이에는 압도하는 고음보다는 평화와 고요의 소울감이 굉장하다

 

아레사 플랭클린을 미국에서는 소울의 여왕이라 불리는 가왕으로 꼽힌다. 14살에 첫 음반발매를 시작으로 18차례에 걸친 그래미상 수상,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오른 최초의 여성가수, 빌보드 알엔비차트 1위곡 최다 보유자. 이 이력만 봐도 그녀의 가창력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 수 있다.

 

하루키는 아레사 플랭클린의 마이웨이를 들으며 달린다고 했다. 하루키의 달릴 때 듣는 음악의 중요한 요소는 절대 어렵지 않고 리듬이 심플하며 용기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도 알고 있었을까. 하루키는 18년도까지 진행한 무라카미 라디오에서 아레사 플랭클린의 마이웨이에 대해서 음악을 선곡하고 이야기를 하고 난 후 10일 후 아레사 플랭클린은 76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인터뷰 ‘원 앤 송’ 방송을 위해 하루키는 사람들에게 받은 질문 중에 서른 개 정도를 추려왔는데 그 중에 가장 많은 질문이 하루키 씨는 본인의 장례식장에 어떤 음악을 틀고 싶으냐는 질문이었다. 70세의 하루키는 역시 하루키 답게 비지스의 세터데잇 나잇 비버라고 했다. 와우. 토요일 밤의 열기에 나왔던 아주 신나는 음악이다. 하지만 뒤이어 이렇게 덧 붙였다

 

살아있을 때 음악을 아주 많이 들었기에 죽은 뒤에는 음악 없이 조용한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라고 했다. 일본의 해석에 따라서는 음악 없이 조용히 가겠다,라고 하는 곳도 있고, 조용한 음악을 틀겠다,라고 해석을 하는 곳도 있다

 

아레사 플랭클린의 영화가 나와도 실시간으로 극장에서는 못 볼 것이다. 여기 어촌의 상영관에서는 절대 상영을 안 할 것이다. 멀티플렉스로 전부 바뀌기 전에는 그래도 마이클 잭슨의 다큐 영화 ‘디스 이즈 잇’ 같은 영화도 극장에서 상영을 해서 늦은 밤 일행과 함께 룰루랄라 하며 보러다녔지만 이제 자본이 굴러들어오지 않는 영화는 대형 극장에 상영을 할 수 없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골고루 공존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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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끝내고 “노래가 참 좋죠? 제 노랩니다“라고 웃음을 짓게 만드는 이문세가 운을 뗀다. 이문세는 이영훈에게 바치는 헌정 음악회 ‘광화문 연가‘에서 이영훈에 대해서 말을 한다.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 영훈 씨를 생각하며,라고 말이다

 

이문세는 이영훈을 소개하면서 지금은 말을 할 수 없는 둥글둥글한 이 사람이 이영훈이라고 한다. 난 아직 모르잖아요, 이 노래는 까딱했으면 음반에 못 들어갈 뻔 한 노래였다. 원래 음반작업이 모두 끝났다고 한다. 이 노래가 빠지고

 

이영훈의 스타일은 한 곡, 한 곡 굉장히 오래, 꼼꼼하게 작업을 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난 아직 모르잖아요. 이 노래는 이영훈 답지 않게 30분 만에 작곡을 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너무 상업적이지 않냐, 빼버릴까? 아니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넣자, 하다가 넣었는데 이 노래로 이문세를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문세는 이 노래로 가요톱10 연속 5주 1위를 차지했다

 

그러면서 이문세는 이영훈에 대해서 짤막하게 이야기를 한다. 박수를 많이 쳐달라고 한다. 그러면 저 멀리에서 이영훈이 보고 기뻐할 것이라고 한다

 

이문세가 난 아직 모르잖아요,로 첫 시작을 알리고 2번 타자로 서영은이 나와서 ‘가을이 오면’을 부른다. 그리고 성시경이 3번으로 등장하여 ‘소녀’를 성시경 답게 부른다. 내 곁에만~ 하는 부분에서 캡처했다. 머물러요~ 할 땐 어김없이 여성들의 감탄사가. 곁에 머물겠어요,의 시경의 모습

 

아빠 생신 축하 드려요. 하늘나라에서 맞는 첫 번째 생일인데... 하나님이 잘 챙겨주시고 있나요? 여기서는 49번 째 생일이지만 하늘나라에선 첫 번째 생일이네... 너무 너무 보고 싶고, 사랑해. 우리 아빠가 우주에서 최고! - 아빠아들

 

우주에서 아버지가 제일 좋다는 스무 살 다 큰 아들의 수줍은 고백을 듣지 못한 채 그가 먼 길을 떠난 것은 2008년 2월 14일 새벽.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 추억 어느 한 부분을 익숙한 멜로디로 채워준 사람 작곡가 이영훈. 어린 시절 나이차이 많이 나는 형과 누나는 놀아주지 않았고 어머니가 할부로 들여놓아 주신 피아노를 친구삼아 아주 우연히 이영훈의 음악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대학에서는 그림을 전공하고 아르바이트 삼아 연극과 공연 쪽 음악작업을 하던 중 그는 같은 또래의 무명 가수를 만나게 된다. 그날 이후 20년 넘는 세월을 함께 지내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콤비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무명가수 이문세에게 자기의 노래를 꺼내주었던 그때 이영훈의 나이는 스물다섯 살

 

이문세가 불러 유명해진 소녀라는 노래는 이영훈이 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초고를 잡아 놓았던 작품이었을 정도로 그는 일찍 부터 작곡가로서의 준비가 되어있었던 덕분에 그가 정성들여 만들어 입히는 노래마다 이문세의 목소리와 잘 어우러졌고 그 노래를 듣는 천 명의 사람에게 만 가지의 추억을 선물했다

 

시인을 꿈꾸던 작곡가 이영훈.

사랑을 이야기하라.

세월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라.

내가 살아가는 지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후 공연은 이적, 정훈희, 한영애가 주옥같은 곡들로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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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단편 중 '토니 타키타니'만큼 '코끼리의 소멸'도 좋아한다. 주인공은 코끼리가 있는 사육장에서 멀리 떨어진 산을 오르다가 비밀스러운 한 곳에서 코끼리 사육장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매일 거기서 코끼리를 본다

쳐다보지 않으려 해도 보지 않고서는 참을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코끼리 사육장을 보려면 산을 올라야 하니 운동도 되고, 무엇보다 강렬하게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산으로 올라 비밀스러운 곳에서 코끼리를 봐야만 정당한 곳에서 정당하게 이야기를 하고 정당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하지 않으면 마치 마음이 산산이 부서져 조각이 나 버릴 것 같다

토니 타키타니의 에이코 역시 새로 나온 예쁜 옷을 보면 참을 수 없다. 마치 옷을 입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 같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바람이 불어와 옷을 그녀에게 살짝 걸쳐 놓은 것 같다. 그녀는 옷을 사는 것 자체를 그만 둘 수 없다

사랑하는 토니 타키타니를 생각하면 중독처럼 명품을 사들이는 걸 관둬야 하지만 에이코는 옷을 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명품이 나올 때마다 옷을 구입해야만 '나'라는 인간의 형태가 유지되는 것 같다

하루키 소설 속에는 무엇을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사람들이 잔뜩 등장한다. 이 주인공들의 기저에 깔린 건 고독이다. 고독해서 고독으로 소멸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무엇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수많은 고독한 이유 중 하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할 마음 속 자리에 그 사람이 없어서 갈피를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서 하지메는 시마모토와 재회 후 그녀를 다시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마음이 격렬하게 말한다. 그 선택이 가져올 올바르지 않은 결과, 즉 사랑하는 아내와 예쁜 딸들과 궤도에 오른 카페와 자신을 뒤 받침 해주는 탄탄한 재력가인 장인도 전부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만큼, 지금까지 쌓아온 금자탑이 와르르 무너진다고 해도 시마모토를 만나야만 한다

매일 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밤은 왜 오는지, 시간이 앞으로 갈수록 인간은 어째서 늙어 가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논하기에는 생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벅차서 일상을 철학적으로 생각할 여유가 없다. 인간은 물질에 욕심을 부리며 인간이 인간을 만나 관계를 망가트리고 상대방을 잘 모를 때는 그 사람을 좋아하다가 그 사람을 알면 알수록 싫어하는 모순을 이고 살아간다. 그러면서 애달파하고 힘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삶을 반복한다

하루키 소설 속 주인공들도 크게 다르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데 참 다르다. 주인공들은 유전자처럼 날 때부터 고독을 안고 태어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고 태어난 고독이 마음의 공백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 공백을 누군가로 인해 채운다. 하지만 누군가가 공백에서 빠져나가고 나면 원래 공백보다 더 커져있다

토니 타키타니도 에이코와 함께 지내면서 처음으로 공백이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에이코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다는 건 전혀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상상이 현실이 되었으니 토니는 정말 행복했다

하사코는 에이코가 남겨 놓은 방대한 옷들을 입어보다가 터지는 울음을 참지 못한다. 세상에는 그런 울음이 존재한다. 하사코는 질은 다르지만 비슷한 깊이의 고독을 에이코의 옷을 입어보면서 느꼈을지도 모른다. 무채색과도 같은 투명하고 아름다운 적멸을 에이코의 옷에서 히사코는 보았는지도 모른다. 고독해서 고독에서 벗어나고파서 고독해질 수밖에 없는 고독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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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펀치의 스릴러 정점이라 불리는 영화 '세븐'은 정말 무서워서 욕 나오는 좋은 영화였다. 캐빈 스페이시의 살인 장면은 끝내주었다. 이 무시무시하고 빠져들 것 같은 스릴러 속을 벌리고 멋진 모습의 브레드 피트와 예쁜 기네스 펠트로는 온통 공포뿐인 이 영화에서 잠시나마 행복을 느끼게 해주었다. 불행한 삶을 벌리면 희망이 있다는 느낌을 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모건 프리먼이 두 사람의 집에 초대되었을 때 두 사람은 비록 가난하지만 행복하다. 기차가 지나가면 집에 흔들 거린다. 이 장면은 영락없이 하루키의 '치즈 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이라는 단편 소설이 떠오른다

 

하루키는 아내와 결혼을 하고 아주 싼 가격에 단독주택에 입주하게 되어서 기뻤다. 단독주택에 방도 몇 개나 있고 비록 작지만 마당도 있어서 고양이도 키울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단독주택의 집세가 이렇게 저렴한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였다. 치즈케이크처럼 생긴 주택 양옆으로 철길이 나 있고 하루에 수시로 지하철이 지나갔으며 시끄러워서 기차가 지날 때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양옆으로 동시에 기차가 지나갈 때면 식탁이며 집이 온통 덜덜거렸다. 그런데 기네스북에 나올 만큼 가난했던 치즈케이크를 닮은 그 집에 살 때가 행복했다고 한다

 

단편 소설이라고 하지만 하루키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곳이 어딘가 구글을 통해서 찾아보면 정말 그런 곳이 일본에 있다. 츄오센과 고쿠분지 사이의 삼각형 토지에 있는 집이었다. 소설 속에서 고풍스러운 집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러한 것 같다. 지금은 이렇게 현대식 건물로 바뀌었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 하루키는 이부자리와 옷가지 식기 전기스탠드, 몇 권의 책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가 전 재산의 전부였다. 그만큼 가난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인생은 지극히 간단해진다

 

겨울에 해가 지면 하루키는 아내와 고양이를 안고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갔고 아침에 나오면 부엌의 싱크대가 얼어붙어 있었다. 그렇지만 가난이라는 불행 속에서도 봄이 오면 근사해져서 세 명(고양이포함)이 나른한 봄볕에 작정하며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하루키는 그 당시를, 우리는 젊고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고, 햇볕은 공짜였다. 고 했다

 

그런 하루키의 소설이 우울하고 겁이 나는 긴 내용 속에 잠깐 등장하는 저 장면에서 영화 속 또 다른 영화처럼 떠오른다. 아주 짧지만 이 두 사람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것을. 비록 곧 이 행복이 깨질지라도 이 순간의 행복을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영화 세븐에서 마지막 장면에 지독하게 똑똑한 범인의 의도대로 되게 하는 것인가 아내인 기네스 펠트로가 죽어서 분노를 드러내야 하는 것인가 하며, 증오와 분노와 슬픔을 얼굴에 표현하는 브레드 피트의 연기는 가을의 전설을 뛰어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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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이 일단 소설을 적었다 하면 영락없이 영화나 시리즈물로 제작이 된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공포를 주제로 담는 이야기가 많으며 초자연적인 존재가 침범 내지는 침략을 하고 그에 대항하는 인간이 주를 이루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갈등을 겪는다. 미저리 같은 이야기는 초자연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떻든 공포를 가득 담고 있다

 

미국은 스티븐 킹을 좋아하며 초자연적인 이야기도 좋아한다. 올해 나온 우리나라 영화 '로드 킬'도 초자연적인 공포영화였고 내용도 괜찮았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지만 극장에서 순삭이었다. 극장 상영을 아예 하지 않은 것 같다. 어쨌든 우리나라는 초자연적인 이야기는 그렇게 썩 좋아하지 않는 걸로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면 더 재미있는 것 같다. 어쩐지 소설과 영화를 소비하기 위해 그런 분위기 내지는 기류가 미국 전반에 흐르고 있어서 스티븐 킹의 소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거의 소설과 같게 영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그쪽 문화와 산업의 종사들은 머리가 좋달까 그래서 대중에게 우리가 이끄는 대로 따라오면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단 말이야,라며 대중문화를 생산하는 것 같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다. 미국인들은 스티븐 킹을 좋아하고 그의 소설이 나오기를 늘 바라고 있다

 

스티븐 킹은 하루키도 좋아하고 전 세계의 작가들이 좋아한다. 그리고 첫 문장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늘 첫 문장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스티븐 킹 소설의 첫 문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스티븐 킹의 소설이 하루키만큼 인기를 누리지는 못한다. 나도 스티븐 킹의 소설을 몇 편 읽었지만 스티븐 킹의 소설이 이우혁의 소설처럼 순식간에 읽히지 않는다. 어떤 이는 번역의 문제이거나 우리 한국인들과는 다른 문화 때문이라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 ‘높은 풀 속에서’는 갈대 숲처럼 인간 키보다 높은 풀 숲이 생존을 위해 인간을 꼬드겨 인간의 에너지를 흡수한다는 내용이다. 풀밭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엉망이다. 저쪽에 있던 건물이 이쪽에 있고 태양이 서쪽으로 가야 하는데 동쪽으로 이동하고, 이틀 전에 떠난 사람과 이틀 후의 사람이 만나는 개판인 곳이다. 그런 곳에서 주인공들이 나오려고 하는데 어떻게 될까

 

이 영화의 특징은 방대한 풀밭이 등장하고 주인공들, 인물 6명과 개 한 마리가 등장할 뿐이다. 그럼에도 이 원작을 읽고 보면 굉장하게 빠져든다. 그건 전작(바로 전에 나온 영화) ‘그것’이나 ‘애완동물 공동묘지’도 그렇다. 영화는 반응이 시큰둥했지만 상하로 번역된 한국판 소설을 읽고 본다면 꽤 몰입하게 된다. 그러니까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 ‘높은 풀 속에서’도 스티븐 킹의 그간의 스타일을 따라가는데 긴장을 죽 끌고 간다

 

풀, 숲은 다른 생물체처럼 자의로 움직이지 못한다. 그럼에도 살아있고 지구에서 인간이 멸망하면 동물이 지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질소를 뿜어내는 녹색식물이 지구를 덮어 버린다. 요컨대 사람이 빠져나간 빈 건물이 몇 개월만 지나면 잡초와 풀로 덮여 버린다. 숲은 멀리서 보면 아름다우나 가까이서 보면 공포다

 

풀은 움직이지 못하니 인간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을 것 같은데 밤새 숲에서 두려움에 떨다가 나오거나 구출이 되면 어김없이 풀에 베이고 긁혀있거나 상처를 입는다. 인간 가까이서 인간의 손을 탄 녹색식물이나 안전하지 숲속에서 방대하게 자라는 풀은 더 이상 우호적이지 않다. 물론 인간에게만 그렇다. 그런 바탕을 깔고 본다면 꽤 볼 만한 영화 ‘높은 풀 속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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