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의 음악을 듣게 된 것은 순전히 친구 때문이었다. 그녀는 현재 한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는데 쾰른 음대에서 유학시절 걸핏하면 전화가 와서 힘들다고 징징거렸다. 그녀가 레슨을 마치고 접시를 닦고 이것저것 하고 전화를 하면 나는 대체로 쿨쿨 잠들어 있던 새벽이었다

 

으 하는 좀비 소리를 내며 전화를 받으면 슈만이 어쩌고 독일 사람들이 어쩌고 오늘 식사를 대접받은 독일 아줌마는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폴더폰을 귀에 걸쳐 놓고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오늘 연주하다 손톱이 빠졌어, 진지하게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녀였지만 이쪽에서는 몽롱한 새벽이니 어쩔 수 없었다. 전화비 많이 나오지 않아?라고 하면 또 다른 이야기를 주렁주렁 늘어놓는다

 

쾰른 음대는 학비가 없다. 대신에 졸업을 하려면 혹독하다. 생활비까지 자신이 책임져야 했던 그녀는 절박했고 필사적으로 건반을 두드렸다. 그런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가 백건우였다. 덩달아 클래식에 대한 문외한인 나 역시 백건우의 연주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백건우가 연주하는 걸 들어보면 나이가 많음에도 청년 같은 힘과 아이 같은 유약함과 느긋한 어른의 면모가 다 느껴진다 그래서 연주를 보고 있으면 참 못 생겼네,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고 정말 멋있구나, 하게 된다. 다행인지 아파트 바로 옆에, 1분 거리에 예술 회관이 있어서 백건우가 매년 연주회를 왔다. 게다가 가격도 엄청나지 않아서 야호 하며 왕왕 보러 갔다

 

그게 몇 년 전이었다. 어쩐 일인지 이후 매년(까지는 아니지만) 열리는 백건우의 연주회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얼핏 윤정희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게 오래된 일이었다

 

저 앞의 피드를 보면 윤정희가 나온 영화도 리뷰를 했을 정도로 윤정희의 영화는 예전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영화로 옮긴 김수용 감독의 '안개'를 시작으로 여러 편 봤다. 마지막으로 본 윤정희의 영화가 이창동 감독의 '시'였다. 거기서 윤정희는 치매가 걸린 역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백건우의 이 인터뷰에 애착이 간다. 인간의 삶이 필멸하게 되어있다. 살아봤자 몇 년이나 살지 모른다. 백건우의 말대로 언제까지나 자신을 몰아세우며 자신과 싸워가며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다. 내일 위해서?라는 말보다 오늘을 존버하는 거다. 하루키도 근간의 인터뷰에서 죽음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 언젠가는 죽기 때문에 사후에 자신의 원고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게 싫어서 와세다 대학에 기증을 한다고

 

그냥 오늘을 열심히 살자.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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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가장 최근 단편 소설 ‘CREAM’이 뉴요커에 실렸다. 단편소설이 실린 시기가 1월이라 거의 1년 정도가 지나서 인터넷에 하루키스트들이 번역을 해서 올려놓을 거라 생각했는데,,, 없다

 

이 단편이 한국어로 제대로 출판이 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단편 소설 ‘잠’보다 더 짧은 분량이라 한 편만 출간하려면 출판사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수월하게 나오지는 못할 것 같다

 

하루키 같은 대작가도 계간지나 문예지 또는 신문 지면에 단편소설을 발표한다. 아직 일본과 미국의 문학은 그렇게 새로운 문학을 문예지를 통해서 소개하고 있다. 잘 모르지만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문예지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것이라 그 속에는 소설, 시, 수필, 기행문 등 읽을거리가 가득하다. 뷔페다 뷔페. 뷔페는 자주 갈 수 없기 때문에 한 번 갈 때는 본전을 뽑아야 하며 어릴 때는 가기 전부터 두근거린다. 문예지가 바로 그런 거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문예지나 계간지나 신문을 통해서 작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다. 전쟁 중에도 책은 발간되었으며 티브이나 영화가 귀한 시절이었기에 사람들은 활자에 목을 맸다. 신문에 다음 회를 투고하던 황석영은 한 때 그 압박이 무서워 도망을 가버렸다. 신문사가 발칵 뒤집어졌다. 그 소설이 장길산이었는데 무려 74년 7월부터 84년 7월까지 2,000회가 넘는 동안 매일 투고를 해야 했으니 황석영은 돌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원고를 들고 어딘가 멀리 가서 그곳에서 우편으로 보낸 후 종적을 감췄고 당시 황석영을 잡으러 다닌 사람이 그때 기자였던, 지금의 대 작가 김훈이었다

 

현존 한국의 대작가들 중, 거의 모든 작가들을 통 털어서 아직도 손으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 김훈과 조정래 이 두 사람이다. 어떻든 한국도 대작가들이 지면을 통해서 신작을 발표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은 어떤가

 

곧 50돌이 되는 문예지 ‘샘터’가 영영 없어지게 생겼다. 출판사에서도 문예지나 계간지는 슬슬 꽁무니를 빼는 형국이다. 그 이면에는 사람들이 문예지나 계간지를 그렇게 문학책으로 여기지 않는 다는 것이다.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게 아니야, 책은 그냥 사는 거야,라고 하는 이면에는 책은 예뻐야 하고 들고 다니기에 사람들이 뭐지?하는 시선이 와야 한다

 

문예지나 계간지는 어쩐지 그런 예쁘장한 모습에서는 좀 벗어났다. 때문에 요즘 문예지는 겉모습에도 사활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하루키가 아버지에 대한 글을 기고한 문예지도 그렇게 생겨먹은 게 예쁘장하지는 않다

 

시인 같은 경우 시집 한 권이 나오는 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 계간지나 문예지를 통해 새로운 시를 발표하는데 문예지의 세계가 슬금슬금 조금씩 말살되는 기분이다

 

하루키의 신작 ‘크림’의 대략적인 내용은 안다. 18살의 10월 어느 날, 같이 피아노 레슨을 받던 여자후배에게 피아노 연주회 초대장이 날아오고 초대장을 보고 난 후 답장을 보내고, 공연 당일 11월의 쌀쌀한 날 콘서트 장 앞에 도착을 했는데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건물 속에도 인기척이 없다. 그때 처음 건물로 들어올 때 발견하지 못했던 작은 공원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하느님의 메시지를 듣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노인을 만나는데 노인이 계속 나에게 ‘원’에 대해서 반복한다. 중심의 원 같은 말을 한다. 그리고 대화를 나눈 끝에 그 중심의 원이라는 것이 나의 삶의 크림이 된다고 한다,며 이야기가 이어진다

 

종교적인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설핏 영화 밀양도 스쳐지나갔고, 전문 서퍼와 파도가 등장하는 것으로 ‘하나레이 만(베이)’도 스치고 지나간다. 어떻든 제대로 ‘크림’을 읽어보고 싶다. 안 그렇습니까 하루키스트분들? 하루키를 좋아하고 영어가 된다면 번역 좀 해주세요

 

 

#문예춘추에는 하루키 신작 단편 소설 3편이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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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라디오 2편을 올리기 전에 하루키 통신을 하나 올리려고 한다. 중학교 때부터 어쩌다 하루키를 접하고 난 후 매일 밥을 먹듯 하루키 책을 들여다보게 되어서 어느 순간까지는 하루키를 일부러 멀리하려 했는데 최근에 새로운 책보다는 읽었던 하루키 책을 계속 읽는 것으로 그냥 하루키를 좋아하는 구나,하고 받아들여 버렸다. 그래서 이왕 하루키를 좋아하는 거 하루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을 때, 알고 있는 것들을 전부 왈칵 쏟아내 버리고 싶다

 

하루키가 한국에 출판한 출판물을 제외하고는 방송이나 세계각지의 인터뷰 소식은 잘 알 수 없었는데(어쩌면 그래서 한국 하루키스트들이 더 하루키에 목매는 것 같기도 하고) 최근에는 하루키에 모든 것이 가득한 사이트를 발견하여 그 속에서 헤엄치며 하루키 소식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사이트의 운영자는 진정 하루키스트가 아닌가 싶다. ‘파인팅 하루키’https://finding-haruki.com/라는 이 곳에는 하루키에 관한 모든 것이 전부 들어있다. 그러니까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과 에세이를 제외한 부분도 망라했다. 엄청난 하루키의 인터뷰와 무라카미 라디오 방송과 거기서 소개된 하루키 음악, 그리고 하루키의 기고글과 하루키를 언급한 방대한 책이나 소식지도 전부 여기 이 사이트 ‘파인딩 하루키 닷 컴’에 다 들어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열 번 정도 읽어서 나는 꽤 하루키에 대해서 우쭐해있었는데 나 같은 인간은 하루키를 좋아하는 축에도 끼지 못할 것이다. 이곳에는 일본을 비롯해서 전 세계 각지에서 하루키를 인터뷰 한 글들을 친절하게 전부 한글로 옮겨 놨다. 그 중에서 하나의 기사를 소개하려는데 여러 인터뷰 중에서 저기 밑에 있는 ‘하루키 19년 2월 뉴요커 인터뷰-1Q84 4권 주인공은 덴고의 16살 딸’이라는 기사를 소개하려 한다. 아마도 하루키스트들이라면 눈이 번쩍 뜨일 것이다

 

사이트에는 원문 인터뷰도 링크가 되어있기 때문에 영어가 되면 원문으로 보는 것도 좋다고 본다. 처음에는 기사단장 죽이기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노르웨이 숲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해변의 카프카 이야기도 죽 이어지고 프란츠 카프카의 이야기도 한다. 그리고 제목처럼 사람들이 기다리던 일큐팔사의 4권에 대해서 언급을 한다

 

일큐팔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인터뷰 기사가 굉장히 기쁠 것이고 또 슬플 것이다. 하루키는 70세가 되었지만 뭐랄까 아직 진지한 장난기가 떠나지 않는, 고기를 저민 음악을 듣는 것 같은 인터뷰가 이어진다. 일큐팔사4권의 주인공은 덴고의 16살 딸이며 일큐팔사 이전의 이야기, 프리퀄도 있다고 한다. 오 와우

 

덴고의 딸은 달이 두 개인 세계에서 아오마메와 교접이 없이 아오마에의, 덴고와 아오마메의 딸을 잉태했다. 그리고 원래 세계로 돌아왔다,고 하기에는 마지막이 애매했다. 마치 찰턴 헤스턴의 예전 혹성탈출에서 지구로 돌아온 줄 알았는데 이상한 지구(자유의 여신상이 망가져있고 쓰러져 있던)로 귀환한 것처럼 덴고와 아오마메도 원래의 세계가 아닌 또 다른 비틀어진 세계에서 그 후의 모험?을 기다리고 있었다. 죽어버린 우시카와의 입에서 호우호우 기어 나온 공기번데기들이 덴고와 아오마메의 딸을 추격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하며 뒷이야기를 기다렸는데 어쩐지 인터뷰 기사를 호기롭게 다 읽고 나면 기운이 죽 빠져버린다

 

무라카미 라디오 1편 격인 런 앤 송을 방송하고 난 이후 정규방송으로 편성이 된 건 아니지만 내키는 대로 방송을 하여 올해, 2019년 10월까지 총 9번의 무라카미 라디오 방송을 했다. 여기 ‘파인딩 하루키‘ 사이트에 들어가면 이렇게 모든 방송분의 하루키의 육성을 글로 옮겨놨으며 노래도 바로 들을 수 있다. 정말 대단하다. 박수

 

그리고, 무라카미 라디오 총 9회 방송을 전부 들을 수 있는 곳이 중국판 유튜브 비리비리 사이트다. 이곳에 가면 하루키의 무라카미 라디오의 모든 방송을 들을 수 있다. 요즘 아이패드 같은 기기들이 사파리도 화면 분할이 되니까 따순 해가 비치는 곳에 건방지게 앉아서 하루키의 방송을 들으며 하루키 인터뷰 기사를 읽는 것도 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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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라디오

 

이 글은 책 ‘무라카미 라디오‘가 현실이 된 사건?으로 하루키가 1일 디제이가 되어서 해버린 방송을 글로 옮겼다. 하루키가 도쿄FM 라디오에서 육성으로 ‘런 앤 송’ 방송을 했는데 그걸 글로 옮겨본 것이다. 하루키는 음악을 선곡해서 틀고 중간중간 음악에 대해서 짤막하게 언급을 한다. 하루키는 재즈의 광팬으로 알려졌지만 무라카미 라디오에서는 깊이 있는 재즈보다는 스탠다드한, 팝에 가까운 재즈곡을 주로 튼다.

 

하루키는 평소 인터뷰나 연설에서의 무게감 있는 진지함을 빼고 밝은 톤으로(말 많다 하루키 아저씨 ㅋㅋ) 즐겁고 유쾌하게 방송을 한다. 중간중간 허밍으로 음악을 따라 부르기도 하고 웃음소리도 들린다. 하루키가 틀었던 음악을 유튜브에서 찾아서 같이 들어보면 또 다른 맛이 있다.

 

하루키 라디오,라고 하지 않고 무라카미 라디오라고 한 것을 생각해보면 어제의 글에서 하루키가 아버지에 대한 소견을 밝히면서 하루키라는 이름 보다는, 내밀한 무엇이 깃들여 있는 무라카미,라는 성에 자신의 무게를 좀 더 둔 것을 생각하면 제목에 고개를 끄덕하게 된다. 그때 하루키는 긴 이야기를 하면서 조부의 이름은 밝혔지만 부친의 이름은 끝끝내 말하지 않았다. 하루키는 어머니의 이름도 끝내 밝히지 않았다.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나오면서 육성으로 무라카미 라디오,라고 말하며 시작을 하는데 무라카미 레(이)디오라고 발음을 한다. 그럼 무라카미 씨의 무라카미 라디오로 한 번 들어가 보자.

 

무라카미 라디오1

곰방와 무라카미 하루키데스. 라디오에 출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제 목소리를 처음 듣는다는 분들도 꽤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 방송은 제가 좋아하는 곡들을 틀고 곡과 곡 사이에 제가 약간 이야기도 하는 방송입니다. 청취자들로 받은 질문에도 대답을 하구요, 어, 여러분과 함께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자 그럼 오늘 첫 곡부터 들어보실까요.

 

Madison Time ? Donald Fagen

 

오늘 무라카미 라디오 런 앤 송의 문을 열어준 첫 곡은 도날드 페이건의 메디슨 타임이었습니다. 스티리 단의 도날드 페이건이 뉴욕에서 했던 라이브 음반이었는데요, 키보드 연주자인 제프 영의 밴드가 백업을 맡았습니다. 이 곡은 재즈 피아니스트인 레이 브라이언트가 작곡했는데 1960년 쯤 히트했었죠. 레이 브라이언트는 정통파 재즈 피아니스트로 마일즈 데비이스나 소니 롤링스 등과도 함께 공연한 적이 있습니다. 10대 시절 저는 꽤나 진지한 재즈 팬이어서 저, 레이 브라이언트가 어째서 이런 상업적 음악을 하는 걸까?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만 지금 이렇게 들으니 꽤 좋은 곡이네요. 어깨의 힘을 빼고 그루비하게 말이죠.

 

저는 조깅을 할 때 늘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는데, 한 대에 천곡에서 이천곡이 들어가 있고 그런 걸 7대 정도 갖고 있습니다. 좀 많긴 하죠. 오늘은 이 수많은 라인업 가운데 몇 곡을 들려드릴까 합니다. 달릴 때 듣기 적당한 음악이 뭘까 한다면 ‘정신 사나운 음악은 금물’이라는 건데요, 리듬이 도중에 바뀌어버리면 꽤나 달리기가 힘들어지니까 같은 리듬으로 가능하다면 심플한 리듬인 편이 좋습니다. 멜로디를 술술 흥얼거릴 수 있고 가능하다면 용기도 좀 나누어 주는 듯한 뭐 그런 음악이 좀 이상적이구요. 어.,, 예를 들면 그래요, 이걸 들어봐 주세요.

 

Yo Ho ? Brian Wilson

 

이 곡은 브라이언 윌슨이 만든 디즈니 관련 곡 모음 앨범에 수록됐습니다. 세 곡이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만, 첫 번째가 방금 들으신 이 요호~인데요, 이건 디즈니랜드의 ‘카리브의 해적’ 테마송입니다. 다음의 두 곡은 Heigh-ho, Whistle While You Work 휘파람을 불며 일하자, 입니다. 이 두 곡은 1937년에 공개된 ‘백설공주’에 수록된 곡이죠. 그러니까 디즈니의 오래된 영화 테마와 새 영화 테마를 함께 합친 건데요, 이런 조합이 참 재밌네요. 이 앨범이 나왔을 땐 어,,,왜 브라이언 윌슨이 디즈니의 모음앨범을 내지? 하고 갸우뚱했었습니다만 생각해보면 윌슨 3형제가 태어나 자란 곳은 캘리포니아주의 호손이라는 마을로 애너하임과 가깝습니다. 애너하임이라면 디즈니랜드가 있죠. 어린 시절 브라이언은 디즈니랜드에 가는 것을 엄청 좋아했던 것 같네요.

 

다음 편으로 무라카미 라디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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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하루키가 언급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6월 일본 문예지 문예춘추에 특집으로 실린 하루키의 글이다. 제목은 ‘고양이를 버리다 ? 부재: 아버지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며 아직 한국어로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인터넷에는 많은 번역본이 있다. 여러 번역본을 읽어 본 결과 개인적으로 심야북카페에서 번역해서 낭독하는 것이 가장 좋아서 입을 다물고 그걸 그대로 받아 적었다. 그간 하루키는 2008년 아버지가 죽기 전부터, 또 죽어서도 아버지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2009년 예루살렘 문학상 시상식에서 아버지에 대해서 길게 언급을 했다)고 아버지 역시 살아생전 자신의 아들 하루키의 소설을 거의 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루키는 어느 날 문득(이라고 해야 할지)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하루키가 고양이를 좋아하게 된 환경부터, 그리고 해변의 카프카에서 다무라 녀석과 아버지와의 관계, 토니 타키타니의 아버지가 오버랩 되며 태엽 감는 새에서 러시아 군인을 처형하는 장면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하나레이 베이에서 사치의 모습도 나타난다. 그리고 하루키가 자신이 가장 무섭게 쓰려고 했다는 헛간을 태우다가 어째서 그렇게 쓰였는지에 대해서도 간파가 된다. 일본 우파에 비난을 받을 걸 알면서도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난징사건에 대해서 쓴 계기를 떠올리게 되며, 그것을 생각하면 살아있는 현존 작가에 대한 무한 경의를 표하게 된다. 앞으로 몇 편 볼 수 없는 장편소설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도 깊게 들며, 이하 이야기는 무척 길기 때문에 하루키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 스킵하기 바라며 하루키를 좋아한다면 읽어보면 머리를 끄덕거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양이를 버리다

 

어느 날 나에게 시나가와 원숭이가 다가와서 이봐 무라카미 내가 작가 우대 차원에서 네 이름이랑 성 둘 중 하난 남겨둘 수 있는 선택권을 주겠어. 무라카미 그리고 하루키 둘 중 무얼 선택하겠나.라고 한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잠시 망설여 본다.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는다. 무라카미, 나는 무라카미를 택하겠어. 하곤 그녀석에게 하루키를 넘겨주겠지. 시나가와 원숭이 손에 들어간 하루키란 이름은 내 소설 속에서처럼 흔적이 없이 사라지곤 잊힐 것이다. 무라카미라는 성은 흔하니까 이름을 남겨놔야 되는 거 아닌가요?라고 되묻겠지만 글쎄, 내게 있어서 무라카미는 하루키보다 더 내밀한 무엇이다. 무라카미라는 성에는 그간 내가 침묵해왔던 나의 가족사와 그에 대한 나만의 문장부호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대게는 물음표였지만 언젠가 부턴 길고 긴 말줄임표가 되어버린 나의 무라카미. 이제 나는 작가 생활 40년간 점 3개로 일관해왔던 무라카미 얘기를 시작하려 한다. 모두가 잊었고 나조차 잊을 뻔한 나의 아버지 무라카미 이야기를.

 

초등학교 시절 어느 여름날이었다. 그날 오후 아버지와 나는 집에서 키우던 암고양이를 버리려 해안가에 갔다. 당시 우리 집엔 출신불명의 고양이 몇 마리가 자유롭게 오갔는데 그 중 한 녀석 배가 불러오기 시작한 건지 어쩐 건지 지금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 모호한 이유로 그 암고양이는 퇴출대상이 되었다. 반려동물에 대한 동질의식이 지금과 같지 않던 때라 당시 그런 식의 상식선에서 용인 될 법한 흔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몰고 나는 뒤에 올라타 고양이가 든 상자를 안았다. 슈크가와를 따라 고로엔의 해변까지 가서 고양이가 들어있는 상자를 방풍림 안에 두고는 ‘사요나라‘ 이 한 마디만 남긴 채 뒤도 보지 않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자전거에 삐걱되는 소리가 우리 부자의 긴 침묵을 채우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 불쌍하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는 기분으로 드르륵 현관문을 여는데 아 세상에 아까 버리고 온 고양이가 야옹, 애교를 부리며 우릴 맞아주는 게 아닌가. 어떻게 우릴 앞질러서 집으로 돌아왔는지 그때도 지금도 나는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고양이보다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건 그 순간 아버지의 표정이었다. 얼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이 이내 흥미롭다는 얼굴로 변했고 마침내는 안도감마저 돌고 있다는 것을 나는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그 고양이를 계속 기르게 되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집에 돌아왔으니 뭐 기르는 수밖에. 단념하는 심정으로.

 

나의 할아버지, 무라카미 벤시키는 교토에 있는 제법 큰 절에 지주였다. 그 시절에는 아이가 많은 경우 입을 줄이기 위해 장남 이외의 아이들을 양자로 보내거나 어느 절에 견습생으로 맡기는 일이 흔했다. 그런 무언의 관습에 따라 둘 째였던 나의 아버지는 나라 현 어느 절에 맡겨졌다. 언젠가 여름 아버지와 내가 해변가로 고양이를 데려갔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버지는 얼마지나지 않아 할아버지의 절로 돌아오게 되었다. 물론 우리 집 고양이처럼 할아버지보다 앞질러 도착해 있었던 건 아니다. 추위 때문에 건강을 해쳤다는 것이 귀가 조치의 표면적이유였지만 새로운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게 컸던 듯하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다시 평범한 일상생활을 했다곤 하지만 아니 분명 아니다. 자신의 손을 놓아버렸던 부모에 대한 기억은 유년시절 아버지에 대한 상처로 어느 정도 깊게 자리 잡았던 걸로 보인다. 출가에 실패한 무라카미 가의 일원은 다양한 선택지를 가질 수 없었다. 절 집 아들이 진학한다면 그건 당연히 불교 관련의 학교일터, 아버지는 교토 산중의 어느 학교에서 승려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어두운 새벽 참선을 마치고 마당을 쓸며 공양을 바친 후 경종 공부를 했으리라. 끝도 없는 불교 경전 속에서 생과 사 희로애락과 카르마를 아버지는 무척 모범적인 태도로 탐구했을 것이다. 당시 그가 운명에 대한 공부까지 마쳤는진 알 수 없지만 1938년 시월의 사건은 불교 경전보다 더 혹독하게 운명론을 가르쳐 주었다. 그해 스무 살이 된 아버지는 예기치 못한 사무적 실수로 중일전쟁에 징병되었다.

 

처참한 난징 대학살 이후 10개월이 지난 상황이었음에도 엄격한 신병 교육이 있었고 38식 보병 총이 쥐어졌으며 수송선에 실려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는 중국전선으로 투입됐다. 아버지가 속한 부대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중국군과 게릴라를 상대로 쉴 새 없는 전투를 반복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교토 산속의 절과는 모든 것이 정 반대인 세계. 거긴 틀림없이 커다란 정신적 혼란과 동요가 있었을 것이고 영혼에는 격렬한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고백하건데 나는 혹시 아버지가 이 부대의 일원으로 난징공략전에 참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오랫동안 품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종군기록을 구체적으로 조사해보려는 용기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직접 전쟁얘기를 물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것도 묻지도 듣지도 못한 채 2008년 8월 아버지는 온 몸 구석구석 전이된 암과 심각한 당뇨병으로 교토 니시진 병원에서 90세 일기를 마감했다.

 

딱 한 번 아버지의 소속부대에서 중국인 포로병사가 처형됐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어떤 심정으로 그렇게 갑작스런 고백을 하게 됐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나는 여전히 초등학교 저학년이었고 고양이 사건 때처럼 모든 상황의 전후관계는 불완전하게 남아있다. 고립된 그 기억 속의 아버지는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담담하게 처형광경을 설명하고 있었다. 중국인 병사는 자신이 어떻게 죽게 될지 알면서도 소란을 피우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은 채 침착하게 참수를 맞이했다고 한다. 그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어,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목이 잘려 죽은 그 중국인 병사에 대한 경의를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깊이 간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같은 부대의 동료병사가 처형을 집행하는 것을 옆에서 보기만 했던 건지 아니면 좀 더 깊이 관여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내 기억이 혼탁한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가 처음부터 애매하게 말 한 건지 이제는 확인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어느 쪽이더라도 그 사건이 용사이기 전에 승려였던 무라카미의 영혼에 커다란 응어리로 남았다는 사실은 명백해 보인다.

 

그 후로 아버지는 전장에서의 체험에 대해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스스로 한 일이든 목격한 장면이든 그 어떤 정황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건만은 피를 나눈 아들인 내게 어떤 형태로든 남겨두지 않으면 안 됐다(고) 느꼈던 게 아닐까. 그것이 설령 서로의 마음에 상처로 남게 될 지라도 말이다. 아버지의 회상 즉 사람의 목이 군도로 잘려나가는 잔인한 광경은 말할 것도 없이 어린 나의 마음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하나의 정경으로 다시 말해 하나의 유사체험으로 말이다. 바꿔 말하면 아버지 마음속을 오랫동안 짓누르고 있던 트라우마를 아들인 내가 부분적으로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연결된다는 게 그런 것이기도 하고 역사라는 것 또한 그런류이다. 그 본질은 이어 받는 다는 행위내지는 이어져 내려오는 의식 속에 존재한다. 너무나 불쾌해서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은 내용이더라도 인간은 스스로 그것의 일부로써 이어받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역사라고 하는 것의 의미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 숭고한 의미의 역사는 한 개인 또는 한 가족이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버거운 존재였다.

 

아무런 준비 없이 전이된 아버지의 트라우마는 알게 모르게 아버지와 나 사이 긴 침묵을 불러왔고 해가 갈수록 그 골은 깊어져 내가 도쿄로 대학진학을 하고 역 재즈 카페를 운영하다 작가가 될 무렵에는 무라카미라는 성 말고는 부자지간 그 어떤 연결고리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나와 아버지는 자란 시대도 환경도 달랐고 사고방식과 세계관도 달랐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랬다. 인생에 어떤 시점에서 그런 점을 새삼 관계의 재편성 같은 걸로 인식했다면 여기는 조금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런 새로운 접점을 시간과 공을 들여 추구하기보다 일단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힘과 의식을 집중하고 싶었다. 그때 나는 아직 젊었고 눈앞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많았으며 스스로 추구해야 할 목표를 너무나도 명확히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얽힌 혈연과 사용보단 그편이 내겐 훨씬 중요한 안건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 무렵 나에게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나만의 작은 가정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전쟁 중 약혼자를 잃은, 훗날 나의 어머니가 된 한 여인을 만나 평범한 남편으로서 그 작은 울타리를 지키려 했었던 그 시절 나의 아버지 무라카미처럼.

 

집으로 돌아온 고양이 사건 이후 우리 집엔 더 많은 고양이가 터를 잡았다. 새끼를 밴 고양이나 태어난 새끼 고양이에게도 너그러워졌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문득 그때의 일 하나가 더 생각난다. 그날도 나는 할 일 없이 마루에 누워 새끼 고양이들을 보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놈이 마당에 있던 큰 소나무를 슬금슬금 올라가기 시작했다. 새끼 고양이는 나무 밑동을 기어 올라가다 말고 한 번씩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마치 내 앞에서 자기의 용맹과 기민함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나는 그 녀석의 도도한 눈빛이 꽤나 흥미로워 그래, 어디까지 올라가나 두고 보자 하는 심상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고양이는 줄기와 잎들이 무성해 눈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올라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곤 이내 소나무 위쪽에서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올라갈 수도 내려올 수도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아버지께 구조요청을 했지만 사실 아버지당신께도 별다른 수가 없었다.

 

아카사카 시나몬(‘하루키의 언어‘에도 나오죠)처럼 상공으로 올라가 버린 새끼 고양이는 구출되지 못한 채 하룻밤을 꼬박 울어대더니 어느 순간 종적을 감춰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밤사이 어찌어찌 아래로 내려와 깊은 배신감에 치를 떨며 집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끝내 지상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소나무가지 어딘가에서 탈진 한 채 서서히 죽어갔을지도 모른다. 울음소리가 멈추고 한참이 지나도록 나는 그 소나무를 올려볼 때마다 녀석의 모습을 떠올렸다. 작은 발톱을 세워 필사적으로 가지를 움켜쥔 채 바짝 말라죽은 작고 하얀 새끼 고양이의 모습을. 처음 그 나무 기둥을 올라설 때 그런 기구한 운명이 닥쳐오리라는 걸 고양이는 짐작이나 했을까. 우연히 몰고 온 운명의 소용돌이는 그렇게 새끼 고양이에게도 나의 아버지에게도 도무지 피할 수 없는 가혹한 결말을 안겨주고 말았다.

 

이런 나만의 개인사가 과연 독자들에게 공감대를 안겨줄런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나는 손을 움직여 실제로 문장을 쓰는 행위를 하지 않으면 사물을 생각할 수 없는 유형의 인간인지라 이렇게 기억을 더듬어 과거를 조망하고 그걸 눈에 보이는 언어로, 소리 낼 수 있는 문장으로 치환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문장을 쓰면 쓸수록 그것을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내 자신이 점점 투명해지는 것 같은 불가사의한 감각에 휩싸이게 된다. 허공에 손을 들어 올려 가만히 바라보면 손바닥 반대편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 같은 기묘한 착각이 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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