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넓은 세상에서 주인공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손을 뻗고 손이 닿는 곳에서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떤 좌절을 맛보았고, 어떤 노력을 했을까.

이 세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는 건 일찌감치 일아버렸다. 그러나 내가 속한 학교, 회사에서조차 나는 티 안 나는 변두리 인생일 뿐 단 한 번도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다.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어, 주인공을 늘 할 수는 없잖아? 그러나 내가 쓰는 글 속에서는 내가 주인공일 수 있는데도 나의 글 안에서조차 나는 주인공 주위를 맴도는 주변인일 뿐이다.

분명 어린 시절 모든 것이 나의 중심으로 돌아갔다. 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뱅뱅 맴도는 것 같았다. 내가 중심,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지옥의 화원, 이 영화를 한 줄로 말하자면 ‘만화 같은 등장에 만화 같은 강인함에 만화 같은 전개가 있는 병맛 영화‘다. 이 과함의 분출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랜만에 실컷 웃을 수 있다.

대괴수 에츠코의 과한 립스틱마저도 계산된 터치로 그려낸 캐릭터들의 병맛 과한 일본식 대사와 엔도 케이지가 오피스 레이디로 나타나는 이 기기괴괴하고 과한, 폭발하는 병맛 꽉 찬 영화를 보며 드는 생각은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가정에서, 친구들 무리에서, 내가 다니는 학원에서 심지어 단짝인 친구와 나 사이에서도 주인공은 내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설령 주인공이더라도 그 자리를 내줘야 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 온다.

만화 주인공 특유의, 뭘 잘 못하지만, 천진난만해서 어딘가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를 만들었고 주인공처럼 누구보다도 강해 보이자라고 항상 마음에 새겼다. 하지만 나는, 지고 말았다.

나는 결국, 주인공이 될 그릇이 아니었다. 나 같은 건 어차피 만화에서 흔한 아슬아슬하게 져서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주인공인 척했던 내가, 말도 안 되게 부끄러웠다.

이 영화는 두 가지의 관객으로 나뉜다. 뭐야 씨발라먹을 수박 새끼 같은 영화라며 뛰쳐나가는 관객과 하하하 역시 B급이 좋아, 과한 병맛이 좋아, 하며 보다가 나처럼 그 안을 잘 벌려 각성하게 되는 관객.

비록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시선을 달리보면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나는 또 다른 주인공인 것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지금처럼 열심히 싸우면서 재미있게 지내는 것이다.

영화는 마지막 뜻밖의 전개로 흘러간다. 영화 죠시스(여자들)처럼 온통 병맛이 영화를 꽉꽉 메우는데 잘 보면 꽤나 재미있는 포인트가 있는 ‘지옥의 화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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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부 하나의 포즈로 사진을 찍어요?


2주 전 일하는 건물 로비에 크리스마스트리 포토존이 생겼다. 나는 바로 트리가 보이는 곳에서 일을 하기에 로비를 지나치며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2주 동안 내내 봤다. 아이들과 함께 건물에 들어온 엄마아빠들은 어김없이 아이들을 앉히거나 트리 옆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전부 아이에게 카메라를 보라고 하여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대체로 아빠보다 엄마가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는데 백 퍼센트에 가깝게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보라고 하여 사진을 담았다.


자, 여기 봐, 여기 좀 봐. 폰 보자.


나이가 6, 7세 정도 된 아이들은 그동안 엄마에게 많이 사진을 찍혀봐서 가만히 훈련된 미소를 짓고 카메라를 봤다. 그러나 나이가 어린아이들, 2살 정도, 그 미만의 아이들은 카메라를 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는데도 반드시 카메라를 보라고 해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이상하다, 굳이 아이가 카메라를 보지 않고 고개를 돌리고 있어도, 뒷모습이라도 그것대로 사진을 찍으면 자연스러워 보이고 드라마틱하게 나올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모든 어른들이 아이들의 눈높이보다는 약간 구부정하거나 똑바로 일어서서 아이의 사진을 담으니 카메라가 밑으로 내려다보는 구도로 찍었다. 아마 태그로 들어가서 이 트리를 배경으로 찍은 아이들 사진을 보면 전부 비슷할 것이다.


아이들의 얼굴은 전부 다른데 모두가 비슷한 구도와 비슷한 모습을 사진이 찍혀 있는 건 어째 생각해도 이상하다. 어색하게 훈련된 미소와 아이들을 조금 내려다보는 듯한 카메라의 구도는 완벽하게 어른이 바라는 사진인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커서 지난날의 사진을 보면 왜 나를 이렇게 찍었어?라고 한다.


어떤 아이들은 너무나 순수해서 지나가면서 산타에게 인사를 한다. 오늘은 어떻게 지냈어? 라며 평소 친구에게 하듯이 말을 건넨다. 그때 말을 건넬 때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으면 아주 멋진 사진일 텐데, 그런 아이를 돌아서게 해서 미소 짓게 만든 다음 카메라를 보기 바라며 사진을 담는다.


물론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의 얼굴이 환하게 나오는 사진을 담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폰 갤러리를 보면 아이의 사진이 전부 비슷하다. 엄마의 눈에는 비슷하게 보이는 모든 사진 하나하나가 전부 소중하고 다르게 보이겠지만 사진에서 엄마의 사랑을 소거하면 너무나 재미없고 다 같은 사진일 뿐이다. 한 번쯤은 자유로운 아이의 모습을 담아도 된다.


아이의 사진으로 너무나 유명한 ‘천국의 정원으로 가는 길’은 유진 스미스가 자신의 아이들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아이들이 어딘가를 향해 아장아장 걸어간다. 그 뒷모습을 담았다. 제목처럼 정말 천국으로 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카메라를 응시하며 아이들 사진을 담는 작가 중에 셀리 만이 있다. 셀리 만은 자신의 아이들의 모습을 담았는데 이렇게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을 담아내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사진을 담고 있다. 마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는 듯이.




또 사진 저널리스트, 다큐 사진작가 메리 엘렌 마크 역시 카메라를 응시하는 인물을 많이 담았는데 다큐 사진의 특성이 짙게 드러난다. 메리 엘렌 마크는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빛으로 잘 표현한 사진작가라고 나는 늘 생각한다. 그녀는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검수하기도 했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영화를 보면 아주 짧게 메리 엘렌 마크가 나온다. 그녀는 비교적 우리와 오랫동안 같이 살아있다가 몇 해 전에 죽었다.




모두가 사진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이제 사진이라는 건 한 개인이 매일 수십 장씩 찍으니까 현재는 더 이상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게 되었다. 나의 가족,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기록한다. 이 만큼 추억하기에 좋은 매개는 없다. 내 아이의 모습을 담을 때 눈높이만 맞춰보자. 그러면 시간이 지난 후 그 아이가 조금 컸을 때 꽤나 드라마틱하게 추억할지도 모른다.

너 코


내 코



뭐 어쩌라고


디자인해 봄



출력해 봄



그나저나 트리 그렇다 쳐도 크리스마스는 너무나 기묘해서 하루만 지나면 캐럴이 듣기 싫다고하루 종일 나오는  캐럴들트리는 내년에 치우더라도 캐럴은 그만  틀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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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12-29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배 피는 포스가 장난이 아닙니다. 포스가 함께 하길...

교관 2022-12-30 11:44   좋아요 0 | URL
네 ㅎㅎ 그럴게요
 



어릴 때부터 단팥죽보다 팥죽이 좋았던 나는 일주일 내내 팥죽만 먹으라고 해도 넵! 하며 대답을 할 정도였다. 나에게는 그런 음식이 몇 있다. 사람들은 질린다는데 절대 질리지 않고 몇 날 며칠을 매일 먹어도 좋을 음식들.


나는 카레도 그런 음식이라 일주일 내내 질리지 않고 먹은 적도 있었다. 그때는 대학교 때 자취할 땐데 친구들은 일주일 내내 카레만 먹는 나를 보며 몸에서 카레 냄새난다고 실부라 했지만 자취에 찌든 홀아비냄새나는지들보다 나았다. 고 생각했다. 뭐 도긴개긴이지만.


팥죽에 동치미 무는 정말 찰떡궁합이다. 따뜻한 팥죽을 먹고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고 무를 아작아작 씹어 먹는다. 나에게 있어 가장 완벽한 팥죽먹기다. 팥죽을 먹을 때에는 붉은 김치 말고 열무김치나 동치미가 잘 어울린다. 뭔가 과학적이거나 이유는 없다. 그저 그런 느낌일 뿐이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팥죽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 말은 어릴 때에도 팥죽은 집에서 거의 먹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어릴 때에도 단팥죽이나 호박죽보다는 그냥 팥죽을 좋아했다. 역시 외할머니 때문이었다. 나의 외할머니.


이 세상에 외할머니는 딱 한 명뿐이다. 할머니는 많지만 외할머니는 오직 한 사람뿐이다.


나의 외할머니에게는 많은 손주들이 있었지만 유독 나와 친밀한 관계가 된 것은 내가 4, 5살 즈음 집안 사정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외가에서 외할머니와 2년 정도를 같이 살게 되었다. 매일 밤 엄마가 보고 싶다고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다. 그럴 때 외할머니는 나를 달래야 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사진을 보면 나는 그렇게 서럽게 울고 있었다.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려고 하면 나는 멀리서 온 엄마 없는 놈이라고 따돌림을 당해서 아이들에게 덤벼들다 맞아서 울었다. 그럴 때 외할머니가 원더우먼처럼 나타나서 나를 구해 주었다.


할머니는 울고 있는 나의 등을 슬슬 문질러 주며 팥죽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어 주었다. 처음에는 아무 맛도 나지 않고 싫어 죽을 것 같은, 팥 맛만 나는 팥죽이었는데 어느 순간 외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팥죽을 맛있게 먹었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외할머니가 집에 오시면 3,40분 정도 걸어서 전통시장까지 가서 팥죽 골목에 앉아서 팥죽을 먹곤 했다.


그 팥죽골목이 아직까지 있어서 조깅을 하고 오면서 둘러 오더라도 그곳으로 오곤한다. 그곳에 가면 외할머니의 등이 보이기도 하고, 나란히 앉아서 팥죽을 먹으며 웃던 외할머니가 떠오르기도 한다.


팥죽을 한 숟가락 떠먹고 나면 외할머니는 동치미 국물을 꼭 먹였다. 혹여 팥죽이 목 막히게 하지나 않을까 싶어 동치미 국물을 떠 나를 먹였다. 나의 완벽한 팥죽 먹기는 이렇게 형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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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 인터뷰 ‘바이 더 북’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에세이가 이번에 미국에서 출간된 기념으로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여러 인터뷰가 오고 갔는데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하루키는 마지막으로 읽은 좋은 책으로 피츠제럴드의 ‘마지막 대군’이라고 했다. 이 소설은 하루키가 일본어로 번역한 책이 올해 초에 출간도 되었다.


번역을 하면서 이 소설이 새삼 얼마나 놀라운지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고 했다. 하루키는 헤밍웨이보다 피츠제럴드를 작가로서 더 좋아한다. 고 생각한다.


헤밍웨이가 더 뛰어난 문장을 지녔을지 몰라도 작가로서 죽을 때까지 펜을 놓지 않고 성장하고 발전하고 자신의 고통을 깨물면서 마지막까지 글을 쓴 피츠제럴드에게 애정을 쏟아 냈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서도 말했듯이 ‘인간은 파괴될 수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고 했는데 결국 자신이 패배했다고 느꼈던 건지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에 비해 나락으로 떨어질 때까지 떨어졌지만 마지막까지 펜을 잡고 글을 쓰다 죽은 피츠제럴드에게 한껏 애정을 쏟고 있음을 그간의 많은 에세이에서 크고 작게 언급을 했다.


또 하루키는 인터뷰에서 최근 들어 처음으로 읽은 고전 소설은 도스토옙의 ‘A Raw Yuth’라고 했고 아직 읽어 보지 않은 그의 작품이 몇 더 있고, 발자크도 그렇다고 했다. 커피 중독자 발자크는 김영하도, 천문학자 심채경도 아주 좋아한다. 그런 것 같다.


하루키는 또 그리스에 있을 때, 햇볕이 잘 드는 테라스에서 동네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존 파울즈의 ’The Magus’를 읽었을 때가 가장 마음에 드는 독서 경험이라고 했다. 그때 살았던 섬이 하루키의 소설의 배경이 되기도 해서 더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하루키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모든 소설을 번역했고, 레이먼드 카버는 모든 작품 - 단편, 시, 에세이 전부를 번역했지만 헤밍웨이의 소설은 한 편도 번역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작품에 대해서, 또 원작자의 글을 접하며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 외 여러 인터뷰가 오고 갔다. 재미있는 건 레코드 컬렉션은 신중하고 정성을 다해서 정리를 하지만 책은 마구잡이로 쌓아두는 편이라, 문득 찾고 싶은 책이 있다면 그 책을 찾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떤 책은 결국 찾지 못하고 포기하기도 한단다. 여기까지가 인터뷰의 소소한 소식이다. 


하루키는 헤밍웨이 보다는 피츠 제럴드를 훨씬 좋아한다. 후에 그의 손녀인가, 딸인가? 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또 그 일화를 에세이에 올리기도 했다. 하루키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과는 친구를 해도 된다고 할 만큼 그 소설을 끔찍이도 좋아한다. 그건 아마 김영하 소설가도 그럴 것이다. 저짝 일본에는 하루키가 번역을, 우리는 김영하 소설가가 번역을 했다. 이 소설로 인해 풍부한 직유의 사용으로 문장이 한껏 아름다워졌다고 한다.


나는 사실 위대한 개츠비는 그렇게 재미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한 번 달랑 읽었다. 그러니 나 같은 놈과는 친구가 되지 않는 편이 좋겠지요. 위대한 개츠비라는 소설보다는 피츠 제럴드의 이야기가 훨씬 좋았다.


피츠 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자신을, 자아를 반으로 나누었다고 생각된다. 반은 데이지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 오직 의지만을 지니는 개츠비의 모습과 나머지 반은 그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는 닉의 모습으로 말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보면 제일 첫 장에 ‘다시 젤다에게’로 포문을 연다. 1920년대 피츠제럴드는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글쟁이였다. 출판사들은 그의 글을 내고 싶어 안달복달했다. 피츠제럴드는 그런 미국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다.


피츠제럴드는 생긴 것도 아주 잘 생겼다. 육군 소위로 장교복을 입고 있는 피츠제럴드의 외모는 누구나 반할 만큼 멋있었다. 영화 속 디캐프리오의 개츠비가 데이지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1차 대전이 끝나고 군복을 벗어버리자 피츠제럴드는 한낱 볼품없는 청년의 모습과 같았다.


광고 회사를 다니면서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을 성적 하락으로 중퇴를 하고 광고 문구를 만들면서 꾸준하게 소설을 썼다. 하지만 그의 글은 출판사에서 언제나 퇴짜를 맞았다. 그런 생활을 하던 그의 눈앞에 일생에 한번 사랑에 빠질만한 여자가 나타났으니, 그 여자가 바로 조지아 주와 앨라배마 주에서 가장 미인이었던 ‘젤다 세이’였다.


젤다는 발랄했고 기가 세고 승부욕이 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 뻤. 다. 젤다도 피츠제럴드를 사랑했지만 가난한 남자와 사는 것은 그녀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명문가 집안의 딸로 부족함 없이 자랐고 원하는 것은 가질 수 있는 여자였다. 그런 젤다는 가난한 삶을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는 젤다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다. 피츠제럴드가 그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글밖에 없었다. 젤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런 그녀를 손에 넣기 위해서 피츠제럴드는 세상이 놀랄만한 글을 써야 했다.


피츠제럴드는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젤다를 얻기 위해 피츠제럴드는 글을 썼다. 젤다는 피츠제럴드를 사랑했지만 별 볼 일 없는 피츠제럴드와의 약혼을 파기한다. 그만큼 젤다는 냉정하고 현실에 가까운 여자였다. 피츠제럴드는 마음이 아팠고 그녀가 자신의 곁을 떠나가는 두려움에 무서웠을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가 바로 앞에 있는데 가난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니. 피츠제럴드는 그래서 죽어라 글을 썼다.


압박감에 글을 써야 하는 피츠제럴드의 기분은 어땠을까. 출판사에서 갈구하는 기분 좋은 압박감도 아니며 대중이 원하는 비바람 같은 압박감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자신이 자신에게 바늘로 찌르는 압박감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싸워서 이겨야 하고 넘어야 하는 존재로 말을 많이 한다. 자아라고 하는 것은 정말 그렇게 이겨야 넘어야 하는 존재일까. 자신은 자신의 에고를 보듬어 주고 사랑해주면 우리가 원하는 곳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일까.


고통 끝에 펴낸 자신의 첫 소설 ‘This side of paradise’ 덕분에 젤다가 출판 일주일 후에 자신의 품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위대한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펴낸다. 당시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의 제목이 원래 ' 개츠비'였는데 '위대한'을 삽입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젤다와 출판사의 권유로 '위대한'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 하나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젤다가 옆에 있기에 행복하다고 믿고 있었다. 아마도 굳게, 무엇보다 사랑하는 젤다의 얼굴을 매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에 모든 것을 걸어도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마치 데이지를 바라보는 개츠비처럼 말이다.


그렇게 펴낸 ‘위대한 개츠비’는 실패에 가까웠다. 팔리지 않았다. 피츠제럴드는 경제적 궁핍 속에 시달려야 했지만 2차 대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군인들이 위대한 개츠비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붐이 일어났다. 바로 군인들 자신의 모습이 개츠비에 투사되었기 때문이었다. 1925년에 2만 부에 거친 책은 군인들 덕분에 15만 부가 넘어 팔리게 된다. 비평가들은 개츠비에 대해서 호평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50년대의 미국에 있는 고교에서는 필독 독서로 자리를 잡았고 이후 전 세계가 사랑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피츠제럴드는 이제 부러울 것 없는 생활과 젤다를 완전히 자신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 그 점화가 된 글이 바로 위대한 개츠비였다. 피츠제럴드는 젤다가 원하는 파티를 매일 열었고 지폐에 불을 붙여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젤다가 원하면 그는 다 들어주었다. 매일 파티를 즐기고 술을 마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젤다가 떠나갈 것이기 때문에 두려웠을 것이다.


젤다와 피츠제럴드가 위대한 개츠비로 성공을 거두자 두 사람은 명실 상부한 뉴욕의 셀러브리티 커플로 알려진다. 톡톡 튀고 독립심이 강하고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고 무엇보다 예쁘고 아름다운 그녀를 당시의 미디어와 사람들은 추앙했고 사랑했다.


그녀는 자신의 그런 삶을 더욱 사랑했고 옆에는 당대 최고의 소설가가 늘 지켜봐 주었다. 도취될 수밖에 없었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여자가 늘 웃고 있었다. 부족함이 없었다.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가 빠져 들었고 연일 열리는 파티에 참석하여 술과 문학과 재즈를 즐겼다. 주위에는 돈이 흘러넘쳤고 옆에는 명성이 있는 자신의 남편, 피츠제럴드가 있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다.

자신의 아름다움이.

이 모든 생활이.


파티가 지속되고 개츠비 이후에 개츠비만한 글이 나오지 않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 사람이 피츠제럴드의 절친, 어니스트 헤밍웨이였다. 헤밍웨이는 파리의 한 파티가 열리는 곳으로 피츠제럴드를 찾아간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술잔을 한 손에 뒤고 상류층의 복장을 하고 포마드로 단정하게 머리를 넘긴 피츠제럴드를 찾은 헤밍웨이는 그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이봐 스콧. 요즘 괜찮은가?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이보게 어니스트. 잘 보게. 이것이 삶이라네. 더 이상 무엇이 있겠는가? 자 한잔하고 가게나.


아마도 이런 대화가 오고 갔을 것이다. 이런 장면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잘 나온다.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가 왔음에도 예전 같지 않았다. 변해있었던 것이다. 헤밍웨이는 후에 그가 이렇게 망가진 것은 그의 옆에 있는 젤다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가 그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피츠제럴드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가 원하는 것은 모든 들어주고 싶었다. 피츠제럴드와 젤다는 돈을 물 쓰듯 썼다. 술을 마시면 언제나 만취였고 호텔의 분수에 뛰어들었고 신문의 일 면을 장식했다. 연일 열리는 파티와 파티 사이에 천재적으로 써 내려간 단편은 거액으로 출판사에 팔려 나갔다. 피츠 제럴드의 이 모든 행동과 삶은 오로지 젤다를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젤다와 개츠비 속의 데이지를 욕하지만 젤다는 피츠제럴드의 한없는 사랑을 받았다. 그의 눈과 촉은 젤다를 향해 있었고 그녀가 움직이면 그의 촉도 같이 따라 움직였다. 그녀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세 시간이 걸리는 곳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녀가 바라는 옷이 있다면 어떻게든 구해서 선물했을 것이다. 투정을 부리면 받아줬을 것이고 눈물을 흘리면 안아줬고 매일 밤마다 그녀의 귀에 사랑을 속삭였을 것이다.


젤다의 사진을 보면 헤어스타일이 독특했고 의상도 화려했다. 당시에 가장 핫한 인물임을 나타낸다. 요즘도 하기 힘든 머릿결의 웨이브라든가 스타일은 당시 최고였고, 피츠제럴드의 열렬한 응원을 받고 있었다. 부족함 없이 돈을 쓸 수 있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원하고 바라는 삶일지도 모른다.


부족한 것 없는 집안에서 철없이 자란 여자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하지만 죽을 때까지 철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대로 꽤 멋지고 괜찮은 삶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많은 돈을 거머쥐며 부족함 없이 살기를 원하며 자식에게는 좀 더 나은, 보다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어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현실적인 젤다와 데이지에게 욕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젤다와 피츠제럴드의 방탕하고 호화로운 생활은 십 년 만에 비극을 맞이한다. 미국은 29년에 대공황을 맞이하게 된다. 피츠제럴드의 소설도 파국을 맞이하며 끝을 맺게 된다. 대신 미국의 문학적인 영웅을 새롭게 맞이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였다.


문학의 사조가 바뀌었고 피트제럴드의 글은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헤밍웨이가 글을 통해서 구원을 받지 못했다며 총구를 입에 대고 방아쇠를 당긴 것에 비한다면 피츠제럴드는 어두운 곳에서 죽을 때까지 글을 썼다. 하루키는 이 부분을 몹시 높이 사고 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피츠제럴드는 진정한 글쟁이가 아닐까 싶다.


젤다는 몰락한 이후 자신의 퇴락해가는 모습에서 우울증에 시달렸다. 상승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길이 있는 법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더 이상 아름다운 젤다의 모습이 아니었다. 얼굴에는 알코올 중독자의 모습이 보였고 머리카락은 힘이 없어서 더 이상 이전처럼 예쁘게 말리지도 않았다.


늙어가고 힘 빠진 모습에서 우울해지는 여자가 어디 젤다뿐이겠는가. 사람들은 아름답게 늙어가기를 바라지만 ‘늙다’라는 동사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가 ‘아름다운’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자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예쁘게 나이를 먹었네, 곱게 늙었네, 같은 말을 하지 말고 ‘늙었네’와 ‘나이 먹었네’를 빼야 한다.


젤다는 문학에 관심이 많은 실력을 살려 책도 펴냈지만 출판사는 다른 곳만 쳐다볼 뿐이었다. 젤다가 우울증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 과정을 피츠제럴드가 소설에 그대로 사용하고, 그 사실로 인해 젤다의 병은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깊은 배신감을 받았다. 젤다의 일기와 편지들은 피츠제럴드의 소설 속에 그대로 남아있을 뿐, 젤다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결락과 우울은 너무나 깊고 컸다. 자신을 추앙했던 사람들이 길거리를 지나가면 수군거렸고 손가락 짓을 했다.


저기 젤다가 지나가!

저 여자 매일 밤새도록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술을 진탕 마시고 담배도 지폐에 불을 붙여 피웠대!

그 돈으로 불쌍한 사람들 좀 도와주지 말이야!

이젠 볼품없는 얼굴이 되었군!

남편의 글도 이젠 한물갔대 나 봐!

남편은 젤다의 퇴락해가는 이야기를 소설에 섰대! 불쌍하구만!


이런 수군거림을 젤다는 들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정신병원으로 땅만 보며 걸어갔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르면 무섭도록 잔인해진다.


부흥기가 있었지만 젤다가 피츠제럴드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데이지처럼 톰 뷰캐넌 같은 남편을 만나서 만족하지 못하는 삶을 살더라도 수면 위에서 평탄하게 살아갔을까. 1940년에 피츠제럴드가 죽고 정신병원을 오가던 젤다는 아주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정신병원의 화재로 인해 3월의 봄날에 그녀는 자신의 남편 곁으로 가버린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는 그린라이트를 바라보며 데이지를 생각한다. 5년 만에 나타난 개츠비는 멋있고 유능한 갑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개츠비는 5년 만에 성공의 가도에 올랐지만 그 5년 동안 어떠한 일이 있었을까.


피츠제럴드는 개츠비가 자신을 투자한 5년을 어떤 식으로 투사했을까. 무일푼이었던 인간이 5년 만에 성공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개츠비는 5년 동안 상상하지 못한 일들을 했을 것이다. 오로지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서 개츠비는 어떤 부분에서는 서슴없이 행동했을 일들.


데이지를 사랑하는 자신처럼, 데이지 역시 자신을 자신만큼 사랑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개츠비. 개츠비는 5년 동안 겪은 일들로 인해 자신의 앞을 막는 것을 광기로 밀어 버린다. 방해가 되는 것이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5년 동안 개츠비의 머릿속에는 사랑을 속삭였던 데이지의 모습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마지막에 개츠비는 데이지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그러면서도 개츠비는 처절하게 데이지를 기다린다. 마지막 수영장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휑한 모습이 마치 어셔가의 몰락의 첫 장면을 떠올릴 만큼 황망하다.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받은 편지와 사진을 앨범 속에 포트폴리오로 소중하게 간직했다. 그런 모든 모습을 꾸준하게 바라보는 이, 개츠비의 유일한 친구 닉 캐러웨이가 있었다. 닉은 마지막에 타이핑 한 개츠비라는 글자 위에 손글씨로 ‘위대한’을 썼다. 그곳엔 스콧 피츠제럴드의 모습이 있었다.


지금 현실이 아름다워도 늘 불만스럽다. 현재라는 것이 그렇다. 만족을 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의 이 별 볼일 없는 모습도 과거가 되고 먼 미래에서 우리를 본다면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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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째 한파가 계속되고 있다. 그 와중에도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정도를 달렸다. 강변의 조깅 코스에 사람이 1도 보이지 않고 바람이 없으면 그나마 뭔가에 수긍하며 적응을 하며 달리겠지만 바람이 심하게 불면 아무 생각이 없다. 진정 아무런,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정말 머리에서 생각자체를 아예 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한파 속, 바람이 심한 날 달려보는 걸 권합니다.


여기는 남부지방이고 눈은 거의 볼 수 없는 곳이라 윗지방의 한파보다는 덜 춥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조깅을 할 때 다리는 얇은 레깅스 한 장에 체육복 반바지를 입고 달리는데 조깅을 하면 몸이 달아오르기 때문에 문제가 될 건 없다. 그런데 며칠 동안은 정말 추웠다. 장갑을 끼고 조깅을 했지만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아프고 감각이 없어서 조깅이 끝나고 들어와서 손이 녹으면서 검지 손가락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아직까지 불에 댄 것처럼 꾸덕꾸덕한 느낌이 드는 게, 여기서 심해지면 동상이 걸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건, 참으로 이상한 건 2018년에도 한파가 왔고, 그때에도 몇 년 만에 한파 같은 뉴스가 있었고, 나는 여전히 그때에도 조깅을 했다. 조깅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과 글을 보면 강에 얼음이 꽁꽁 얼어 있어서 보기만 해도 정말 추워! 가 절로 나와는 풍경이었다. 그럼에도 조깅을 하면 몸이 후끈해져서 마지막 까지 훅훅하며 달려서 들어왔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이렇게 춥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요 며칠 한파라고 하지만 2018년처럼 강물에 심하게 꽁꽁 얼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그때보다 이렇게 추운 걸까.


생각해보면 내가 그때보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것이다.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사람들도 그때보다 지금이 더 춥다고 하는데 이유는 그때에 집 안의 보일러 온도가 요즘처럼 이렇게 내려간 적은 없었다고 한다. 2018년의 한파에는 차가운 냉기가 가득했지만 요즘의 한파에는 저 어디서 불어오는 찬 바람 때문에 체감이 더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엊그제는(검지 손가락의 감각이 없을 때) 얼마나 추웠는지 조깅을 하고 들어오면서 찐빵을 사 왔는데 사들고 들어오는 10분 만에 그 뜨거운 찐빵이 싸늘하게 죽어 버렸다. 게임오버였다. 아무튼 추운 것이다. 추운 날 조깅을 하면 분명 그에 대한 보상이 따랐다. 몸이 달아오르며 심장이 펌프질 하여 뿜어내는 피가 혈관을 타고 마구 돌아다니며 손끝과 발끝으로 퍼지는 그 기분을 느끼는 것도 아주 좋고, 다리가 추웠다가 한파에 적응이 되어 가는 것도 좋고, 한파가 불어닥쳐 모든 것이 차갑게 변하는 강변의 풍경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요 며칠 동안 폰 화면 터치는 하고 싶고 장갑은 벗기 싫고.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이 그저 달리는 와중에 근간에 들은 이야기들이 추위와 함께 떠 다녔다. 3교대를 하는 직업이거나 밤을 새우는 직업을 가진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홀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멋있음을 따라한 사람이 박영규가 아닌가. 박영규가 예전 카멜레온을 부를 때는 홀리오 이글레시아스의 한국버전을 보는 것 같았다. 뻐꾸기는 탁란을 한다. 욕정이 타오르는 여자의 해소가 불가피할 때 여성은 비극의 시인이 된다. 삶은 포기하는 게 아니야.


이런 맥락도 없고 근간에 들은 이야기들이 이미지가 되어 한파 속 조깅을 하는데 나의 동무가 되어 주었다. 뻐꾸기 얘기가 나왔으니 세상에서 가장 얄미운 생물이 있다면 뻐꾸기를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뻐꾸기는 탁란을 한다. 자신이 알을 품지 않고 다른 새의 둥지에 뻐꾸기 지 알을 맡긴다.


그런데 아무 새의 둥지에 맡기는 게 아니라 모성애가 아주 깊은 새의 둥지를 골라서 그 안에 자신의 알을 넣어둔다. 그때 자신을 알을 넣는 대신 원래의 알을 밖으로 버려서 깨버린다. 참 못된 놈이다. 더 기묘한 건 그 안에서 뻐꾸기 새끼가 부화를 하잖아? 그러면 어미가 먹이를 구하러 갔을 때 원래 새의 새끼를 뻐꾸기 새끼가 밀어 내서 떨어트려 죽여 버린다.


본능적으로 그 짓을 하는 것이다. 그때 다른 새끼를 밀어 내기 좋게 뻐꾸기 새끼의 등에 오목하게 되어 있어서 그 오목한 곳으로 원래 새의 새끼를 담아서 밀어낸다. 유전적으로 그렇게 생겨먹은 새가 뻐꾸기다. 그렇게 붉은 머리오목눈이 같은 모성애가 강한 새가 뻐꾸기 새끼를 자기 아기로 알고 열심히 키우는데 다 크고 나면 새끼가 어미의 몸 세 배나 된다. 그래도 먹이를 찾아와서 먹이는 아주 이상하고 얄궂은 세계에 뻐꾸기라는 놈이 있다.


홀리오 이글레시아스는 키도 크고 수트가 잘 어울리는 데다 노래까지 너무나 멋지게 부른다. 홀리오 이글레시아스가 '헤이'를 영어보다 더 꼬부라진 스페인어로 부르면 뭇여성들이 그저 넘어가버린다. 여성들이 모이면 홀리오 이글레시아의 칭찬을 하는 바람에 뿔이 나버린 사람이 하루키가 아닌가.


하루키는 에세이에서 ‘나는 그 인가 있다는 가수가 싫다’라는 챕터에서 홀리오 이글레시아스가 인기가 있는 이유는 멋지고 잘 생긴 탓도 있고 노래도 잘 부르지만 사상적으로 텅 비어 있다는 데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했다.

사실 근본 없이 하는 게 더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근본 없는 음식이라든가. 근본 없이 처음 시도하는 영화라든가, 즉 형식의 굴레에 들어가 있지 않고 비록 하늘에 한 번 선을 긋고 사라질지라도 궤도에서 이탈하는 별똥별에 사람들은 열광할지도 모른다. 옆에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삽화가 더 적극적으로 비꼬움을 웃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루키: 내가 이런 식으로 말하면 홀리오 증후군의 여성들은 “그럼요, 무라카미 씨야 그렇게 생각하겠죠” 하고 악의에 찬 말을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왠지 내가 유달리 미남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맞다(웃음). 하루키는 미남을 싫어하는 것이다. 그건 비록 하루키뿐만 아니라 보통의 얼굴?을 가진 남자들은 미남 연예인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여자들은 끊임없이 김태히와 송해교를 자신과 비교하며 누가 더 우월한 얼굴을 가진 지 꼭 묻지만 남자들은 또 그러지는 않는다.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있는 진실을 입 밖으로 전부 내뱉을 수 없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홀리오 이글레시아스 하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그의 아들 이야기다. 아들도 스페인의 유명 가수인 엔리케 이글레시아스다. 얼굴도 잘 생기고 명문 캠브리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종횡무진 활동한 축구선수였던 아버지의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아 키도 190이 넘고 멋지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가수지만 아버지만큼 인기가 없다.


그런 엔리케는 아버지와 사이가 무척 안 좋기로 유명하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엔리케라는 이름이 우리가 들으면 그럴싸하고 멋있지만 우리로 친다면 철수, 만수처럼 그저 재빨리 지어 버린 그런 이름이다. 아키코, 러시아의 쏘냐 같은 이름이다. 명자, 순자처럼 촌스럽다고 느끼는 이름이 엔리케 라는 이름이다. 홀리오 같은 슈퍼스타는 전 세계를 돌며 공연을 한다. 그러다 보면 여성들과 많은 만남을 가진다. 그러다 보면, 까지만 말하자.


아무튼 하루키는 이래저래 홀리오 이글레시아시를 질투한다. 여성들이 모이기만 하면 하루키 얘기가 아닌 홀리오 얘기를 하니까. 어쨌거나 올해도 남은 날들을 쉬지 않고 조깅을 한다면 360일 이상 매일 한 시간 이상 조깅을 한 셈이다. 나는 그렇게 빠르게 달리지 않아서 조깅을 하다 보면 열심히 달리는 조깅무리에게 따라 잡힌다. 그러나 무엇보다 끝까지 걷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날씨에 굴복하지 않고 아직까지는 매일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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