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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어느 정도의 글을 쓰고 있는데 일기는 써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적어보는 오늘의 일기다.


매년 1월 초가 되면 군대 있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간신히 작대기 네 개를 달고 이제 날개를 피려고 할 때였다. 한 해 끝의 겨울과 초의 겨울이 있다면,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난 뒤 혹독한 12월의 차가운 겨울을 지내고 맞이하는 1월의 겨울은 비록 체감은 추울지 모르나 어쩐지 나는 계급이 올라서 그런지 그렇게 추운지 몰랐다.


딱 이 맘 때가 가장 편해지는 시기였다. 비공식적으로 구타에서 완전하게 열외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훈련이 없고 근무만 하기 때문에 내무생활이 기가 막히게 빡세다. 빡센 이유는 뭔가가 고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구타를 당하기 때문이다. 잘 맞으면 가슴이나 등이고 잘못 맞으면 얼굴을 맞는다. 얼굴은 맞으면 표가 나서 잘 때리지 않지만 법무부 소속 중대장들은 우리들, 군인신분과는 다른 일반인이기 때문에 여러 말썽이 위로 올라가면 자기네들도 징계를 받는다. 그래서 그냥 쉬쉬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많이 때리게 된다.


그런 점에서 제대할 때까지 말썽을 일으킨 졸다구 한 번 때리지 못하고 제대를 한 것은 후! 회! 한! 다! 뽀드득. 그러나 군대의 시계도 째깍째깍 가기에 시간이 지나면 이런 절차에서 다 훨훨 벗어나게 된다. 1월 1일이 되면 특식이 나오는데 탕수육이 나온다. 특식이 나오는 날이 있다. 복날에는 삼계탕이 나오고, 뭐 어떤 날에는 갈비탕이 나오기도 한다. 탕수육은 중국집 탕수육만큼 맛있다.


군생활을 구치소에서 보내는 법무부 소속인 우리는, 국방부 소속인 육해공군처럼 취사병이 있지 않다. 사방(감방의 정확한 명칭)의 재소자(죄수들의 정확한 명칭)들이 소내의 식사를 전부 책임진다. 구치소는 교도소와 다르게 미결수들이 구금되어 있다. 미결수라 함은 아직 판사의 선고가 떨어지기 전 재소자를 말한다. 입고 있는 재소자복도 교소도에서 실형을 살고 있는 재소자와는 다르다. 재판이 이뤄지는 가운데 구속이 된 미결수들이 구치소에 가득 있지만 교도소처럼 실형을 살고 있는 재소자들도 있다. 이들은 기결수다.


구치소 내에서 형을 사는 기결수는 소 내의 청소, 소각, 공장, 식사를 담당한다. 그리고 월급이 나온다. 소 내 각 사방에 올라가는 미결수들의 식사는 남자 기결수들이 새벽 5시부터 준비를 한다. 그때 운이 좋아 계호를 하면 그냥 취장 입구에서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식사 준비가 끝나면 컵라면을 하나 끓여 주는데 그게 기가 막히게 맛있다. 고추장 조금, 참기름, 그리고 아주 신선한 계란을 하나 넣어서 주는데 다 같이 앉아서 후루룩 컵라면을 먹으며 아침을 맞이한다.


그리고 직원들과 군인들의 식사는 여자 재소자들이 책임진다. 아무튼 밥이 맛있다. 그래서 직원이고 군인이고 제대가 다가오거나 직원이 되고 몇 년 지나면 살이 붙는다. 아침점심저녁 전부 맛있다. 여자 재소자들은 의외로 살인이 많은데 바람을 피운 남편과 싸우다가 밀었는데 그만,,,, 같은 이유가 있고, 횡령이 많았다. 횡령은 여자 직원에게 사장 놈들이 월급을 제대로 안 주니까 몇 달씩 월급을 받지 못한 여직원이 돈을 들고, 같은 이유가 있다.


그래서 재소자들과 친해지면 그들의 식구들이나 친구들이 먹으라고 넣어준 과일이나 소시지나 오징어를 많이 얻어먹는다. 사방에 올라가면 군복 안으로 귤이나 사과, 특히 소시지는 너무 맛있는데 막 넣어준다. 사방에서 내려올 때 배가 이렇게 불러서 보안실을 지나올 때 직원들이 봐도 그러려니 했다.


1월 1일에는 탕수육이 나왔다. 그때 먹은 탕수육이 좀 웃기지만 내가 지금까지 먹었던 탕수육 중에 제일 맛있었다. 뭐든 많이 먹으면 질리는데 이만큼 퍼 와서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물병에 소주를 담아 식당에 가서 탕수육에 한잔 들이켜면 식당으로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노곤해지면서 기분이 모호해졌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같은 느낌이었다.


탕수육은 아주 깨끗한 기름에 튀겨져서 씹으면 바싹하고 안의 고기는 두툼하고 육즙이 팍 나온다. 소스는 딱 먹기 좋을 정도의 당도와 과일 맛이 많이 나서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맛이었다. 구치소 내에 들어오는 식재료는 전부 1등급이다. 밖에서 처럼 음식으로 장난을 칠 수 없다. 사과도 제일 좋은 거, 양파나 감자 같은 것도 좋은 것들이다. 기름도 여러 번 사용하지 않는다. 옹달샘처럼 깨끗한 기름에 촤르르 튀긴 탕수육은 정말 맛있었다.


식당에서 일을 하는 재소자들은 대부분 어머니 뻘이라 먹고 더 주세요, 하면 어머니들이 좋아하며 마구 퍼 주었다. 어쩌다 밖의 세계와 단절된 구치소에 들어와서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지만 밖에서 만났다면 다 똑같다. 아니 구치소 내에서 이야기를 해도 다 똑같다. 좀 웃기지만 대부분 재소자들과 직원들 그리고 군인들은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다.


물론 폭력전과범들이나 형정신정의약품 취급이나 독방에 갇혀있는 재소자들과는 거리를 두어야 했지만 대부분은 친하다면 다 친하게 지냈다. 특히 나는 군생활하면서 가장 많은 소설을 읽었는데 그 소설 대부분이 사방에서 얻어왔다. 올라가면 막 준다. 다른 잡지책들은 여성이 벗었거나 속옷을 입고 있는 사진은 검열에 걸려 그 사진들을 뺀 잡지가 사방으로 올라가지만 소설책은 그대로 올라갔다.


1월은 춥지만 식당의 창을 사이에 두고 밖과 안의 온도차는 대단했다. 1월 1일은 휴일이라 탕수육을 먹으며 물병에 담은 소주를 홀짝이고 막사로 돌아와서 역시 해가 드는 창가에 앉아서 소설을 보다 보면 어느새 세상이 바뀌고 나는 소설 속에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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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3-01-04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비교도대로 복무하셨군요 ㅎㅎ

교관 2023-01-05 12:22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ㅎㅎ
 


대기 중에 먼지가 되어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았던 학창 시절. 먼지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던 시궁창 같은 학창 시절을 견디게 해 주었던 건 음악을 듣는 것뿐이었다. 내 옆을 지켜 주었던 건 라디오였고 용돈을 모아 모아 구입한 앨범은 위로가 되었다.


중학생이었을 적에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끼지 못하고 방과 후에 라디오를 들으며 집으로 걸어서 가는 시간을 좋아하는 그런 아이였다. 그러다가 음악감상실을 알게 되었지. 그곳에는 온통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있었다. 라디오 헤드, 핑크 플로이드, 제니스 조플린, 비치 보이스, 메탈리카, 바쏘리, 스키드로우, 데프레파드, 스팅, 스웨이드, 라르크 엔 씨엘, 그레이, 히데, 비즈, 자드 등 그리고 크래쉬, 부활, 시나위, 백두산, 블랙홀이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된다. 내일도 필요 없고 지나간 과거 따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음악을 듣고 뮤직비디오를 보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 되는 거였다.


블랙홀의 ‘겨울 풀잎’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다른 아이들보다 내가 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사 중에 ‘사랑의 꽃 피울 수 없던 기나긴 겨울은 가고, 얼어붙은 잠든 벌판에도 사랑에 꽃을 피우네’라는 부분을 듣고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사랑의 꽃을 떠올리며 그걸 미술 시간에 그림으로 그려서 혼이 났던 기억이 있다. 정물화를 그려야 하는데 나는 추상화를 그렸기 때문이다.


강한 메탈 사운드를 뿜어내던 블랙홀이 이토록 애절하게 부르는 록 발라드를 듣고 따뜻한 오물 같은 학창 시절을 기뻐하며 보냈다. 스피드 메탈의 전설 할로윈도 고요한 ‘어 테일 댓 워즌트 롸잇’으로 세계를 휘어잡았던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보컬 주상균 이 형님의 목소리가 천장을 뚫고 저 먼 하늘로 갈 것처럼 아름다웠다. 블랙홀의 명곡은 ‘깊은 밤의 서정곡’이었다. 록을 좋아하는 남자들은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하는 곡이었다. B612의 ‘나만의 그대 모습’과 김성면이 있었던 K2의 ‘슬프도록 아름다운’과 함께 고음역대의 전설이었다.


리드 보컬인 주상균 이 형님의 의식도 아름다워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 주면 ‘깊은 밤의 서정곡’처럼 세상은 아름답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 형님이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주다수 프리스트의 롭 헬포드와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다.


순전히 개인적인 편견이지만 블랙홀의 대단한 점은 아직까지 80년대의 강력하고 씹어 먹을 듯한 메탈사운드를 뿜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노래의 가사의 글이 너무나 좋다. 짧은 가사 내용에 긴 스토리가 함축되어 있다. 이런 내용의 가사는 분명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나온 글은 아니었다.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 고뇌와 깊은 사색의 결정체가 가사로 탄생되었다.


또 블랙홀은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관객이 단 몇 명뿐이더라도 전국을 돌며 공연을 했다. 팬들과 소통을 자주 하던 블랙홀은 팬들이 늘 서울에 올라오는 것이 수고스러운데, 코로나 시기에는 50명 미만은 공연이 가능하다고 하니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팬들이 있는 지역을 돌며 공연을 했다. 몇 명이 없어도 열정적으로 공연을 했다.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이게 가능하게 된 것은 블랙홀의 열성 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블론디의 데보라 헤리가 그 오랜 세월 동안 나오지 않다가 할머니가 다 되어서 팬들 앞에 섰을 때 군말 없이 기다려준 팬들은 그녀에게 환호했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이 소니사의 갑질로 인해 그저 돈벌이로 여겨지는 것을 막은 것은 MJ의 팬들이었다. 블랙홀이 지금까지 활발하게 공연을 하며 강한 록을 할 수 있는 것 역시 블랙홀을 사랑하는 팬들 덕분이었다.


임진모: 우리 한국의 메탈의 영욕을 다 누린 그야말로 한국 록 메틀의 상징적인 이름이다. 한국 헤비메탈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우리에게는 긍지로 다가오는 밴드다. 무엇보다 블랙홀이 잘한 건 지금까지 존재한다는 것이다. 앨범, 공연이라고 하는 가장 중요한 밴드의 활동을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블랙홀은 역사에 남을 밴드다.


정진영 음악평론가: 블랙홀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팬들하고 같이 나이가 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밴드들의 역사를 보면 이렇게 팬들하고 젊었을 때부터 소통하면서 팬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밴드가 얼마나 있었나 싶다. 그런 점에서 사실 블랙홀은 전설이다. 이런 경지에 오른 밴드가 없다. 


무대에서 팬들과 나누는 호흡이 더 깊어질수록 우리의 음악도 깊어져 왔다 - 기타 이원재


공연, 이보다 더 행복은 없다 - 베이스 김세호


작곡가의 의지, 멤버들의 열정, 팬들의 변함없는 사랑이 블랙홀의 원동력이다 - 드럼 이관욱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럽다, 블랙홀 팬들이 블랙홀의 역사를 써가고 있다 - 보컬 주상균



블랙홀의 겨울풀잎 https://youtu.be/Rh_8FbLP0c4 <= Cooing MUSIC 쿠잉뮤직


93년 앨범 중 "내 곁에 네 아픔이" 라이브 https://youtu.be/36ZJA-U-oIM 좋아 죽음 ㅠㅜ <=KBS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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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로 시작하는 인간실격은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굉장한 인기다. 문학적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건 사랑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대단하다. 지난번 ‘위대한 개츠비’처럼 개츠비 보다는 피츠 제럴드의 일대기가 더 흥미롭고, ‘호밀밭의 파수꾼‘보다 샐린저의 일생이 더 흥미 있었던 나로서는 역시 ‘인간실격’의 요조의 이야기보다 다자이 오사무의 일생이 더 흥미롭다.


일본에는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영화도 많다. 게 중에는 사진가로 출발하여 니나가와 컬러를 열도를 넘어 세계로 진출시켜 버린 니나가와 미카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인간실격’도 있다. 니나가와 미카의 색감은 너무나 독특하고 아름다워서 니나가와 컬러가 여기저기 온통 뿌려졌던 때가 있었다. 니나가와는 사진에 만족하지 않고 광고를 섭렵한 후 영화까지 진출을 하는데 그녀의 첫 작품이 묘한 매력을 가진 배우 츠지야 안나를 주연으로 한 ‘사쿠란’이었다.


첫 작품인데 영화 내내 니나가와 컬러가 영상으로 펼쳐져서 정말 놀라게 된다. 게다가 영화를 뒤덮는 시이나 링고의 음악이 귀까지 사로잡는다. 니나가와는 이후 몰락해가는 사와지리 에리카를 데리고 ‘헬터 스켈터’를 만들어 사와지리를 다시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더니 오구리 슌, 미야자와 리에, 사와지리 에리카, 니카이도 후미를 데리고 ‘인간실격’의 요조가 아닌 다자이 오사무 영화를 만들었다.

인간의 자격을 잃은 남자가 7년 전에 쓰고 싶었다는 소설이 쓰이게 되는 과정과 계기를 그리고 있다. 역시 니나가와 미카의 화려한 색감으로 그려졌다. 화려함 뒤에 감춰진 그 쓸쓸함과 고독과 인간일 수밖에 없는 다자이 오사무의 모습을 그려냈다.

다자이 오사무의 사랑은 파괴 같은 것이다. 내 것이 있지만 더 아름다운 것을 가져야 한다. 낡은 사상을 끄트머리부터 주저 없이 파괴해가는 거침없는 영기에 놀라서 파괴 사상을 사랑하고, 파괴 사상으로 사랑을 갈취한다. 파괴는 불쌍하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같이 펴 낸 오타 시즈코 역시 대담한 여성이었다. 사양은, 일본이 전쟁에 광분하고 있을 때 다자이 오사무는 전쟁을 피해 자신의 고향 아오모리로 갔다가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자 다시 도쿄로 돌아와 자신의 말년을 보내게 되는데, 그때 다자이 오사무는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오른다. 그 계기가 된 작품이 몰락해 가는 귀족을 모습을 그런 사양이었다. 사양 발표 후 전국에서 알아주는 작가가 된 다자이 오사무는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요조의 이야기 ‘인간실격’의 윤곽을 구상한다.

오타 시즈코는,

사랑은 좋은데 연예는 나쁜 것인가? 이해가 가지 않아. 그런 애정은 모른다.

결혼은 잘 모르지만 연애라며 잘 아는 여자.

괴로우면서 즐거운 그런 연애가 나쁠 리 없는 오타 시즈코.

연애가 나쁜 거라면 저도 나쁠래요. 불량 이래도 좋아요. 애초에 전 불량이 좋은걸요.

멋진 여자였다.

오타 시즈코는 이혼을 하고 문학에 뜻을 두고 있었는데 오사무에게 편지를 보내 지도를 부탁했다. 다자이 오사무는 일기 쓰기를 권했다. 그 일기의 내용을 쓴 소설이 ‘사양’이 되었다. 이렇게 멋진 여성인 오타 시즈코는 다자이 오사무에게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다자이 오사무는 다시는 오타 시즈코를 보지 않게 된다.

그런 멋진 여성도 또 다른 여성이 나타나면 던져 버리는 말년의 다자이 오사무에게 대드는 편집자에게, 다들 사랑스러워서 품는데 무엇이 잘못인가, 나는 그렇게 생겨먹은 놈이다. 그러니 가려면 가거라.

몸이 끝없이 추락하여 객혈하는 가운데에서도 [인간실격]의 탄생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여인이 야마자키 도미에였다. 야마자키 도미에는 유부녀로 남편은 전쟁에 나가 있었다. 실력 있는 미용기술을 가진 여성으로 다자이 오사무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알고 지낸 지 한 달 만에 다자이 오사무를 사모하게 된다. 그리고 두 달이 되었을 때 같이 잠을 자는 관계로 발전한다.

야마자키 도미에는 다자이 오사무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이 전사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어도 마음의 앙금 같은 것 때문에 갈등이 컸던 모양이었다. 다자이 오사무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하숙을 하며 다자이 오사무와 만나다가 결국 두 사람들은 함께 자살을 한다. 도미에는 주우의 어떤 날카로운 시선에도 다자이 오사무를 놓칠 수 없었다. 도미에는 자살하는 그날까지 일기를 썼다고 한다. 일기의 내용이 대체로 다자이 오사무에 관한 기록이라 일본에서는 다자이 오사무를 연구하는데 그녀의 일기를 참고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와 결혼한 여성 쓰시마 미치코. 오사무가 객혈하며 건강이 악화되는 가운데에서도 그를 보살피고 3명의 아이들을 살뜰하게 챙긴 여성이었다. 결혼 전에는 여학교의 선생이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스승인 이부세 마스지가 힘을 써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이를 평범한 결혼이라고 표현했다. 결혼 전에는 가정을 소중히 지키겠다는 내용의 각서까지 썼지만 오사무는 지키지 못했다.

유명한 일화인, 금각사로 유명한 미시카 유키오가 찾아오는 장면도 영화 속에 나온다.

당신의 소설은 죽음을 쓴 연약한 소설일 뿐이오! 라며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을 폄훼한다. 그때 다자이 오사무는 “너도 나를 찾아온 걸 보면 나의 글이 좋아서 온 것이다”라며 응수한다.

우리나라의 문인들의 일화도 있다. 시인 이상과 소설가 김유정이다. 두 사람은 참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성격이지만 구인회 소속으로 둘이는 참 잘 어울렸다.

이상은 백석처럼 모던 보이에 투사 같은 사람이었지만 김유정은 유약하고 여린 감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으며, 몹시 가난한 데다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았다. 허무와 초현실의 이상의 글과 해학과 풍자로 가득한 김유정의 글로 보아서는 두 사람은 글로써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이상은 '희유의 투사, 김유정'을 쓰면서 김유정을 기분 좋게 표현했다.

두 사람의 일화가 있다. 1936년 가을 이상은 정릉의 한 암자에서 요양을 하고 있는 김유정을 찾았다. 이상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김유정을 찾았지만 본심은 따로 있었다. 더 말라버린 김유정을 보며 이상은 묻는다.

이상: 김 형, 각혈은 여전하십니까?

김유정: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이상: 신념을 빼앗긴 것은 건강이 없어진 것처럼 죽음의 꼬임을 받기 쉽더군요.

김유정: 김 형! 김 형!(김해경-이상의 본명)은 오늘에야 건강을 빼앗기셨습니까? 인제, 겨우 오늘에야 말입니까?

그러자 이상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김유정에게 제안을 한 다.

이상: 김 형! 김 형만 괜찮다면, 저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동반자살을 제안했다. 하지만 김유정은 그 제안을 거절한다. 자신은 내년에도 소설을 쓰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은 내일 동경으로 떠난다고 하고 김유정은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한 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였다.

내년에도 소설을 쓰겠다던 김유정은 돈이 없어 잘 먹지도 못한 채 삶을 마감하고 만다. 그해가 1937년 3월 29일이었다. 그리고 이십여 일 후인 4월 17일에 도쿄의 길을 걷던 중 김해경은 사망하고 만다. 이 둘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어떻든 영화는 니나가와 미카 덕분인지, 때문인지 너무 스타일리시하다. 니나가와 컬러가 이전의 영화처럼 화면을 가득 장식한다. 영화 속 다자이 오사무는 죽음도 장난처럼 여기고 죽음 앞에서는 소설과 같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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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울 때 먹으면 더 맛있는 양념치킨. 근래에 먹는 양념치킨은 대체로 포장을 해서 집으로 들고 와서 먹는데 매장에서 바로, 갓 나온 뜨거운 양념치킨을 먹으면 정말 맛있다. 그때에는 케첩 맛이 많이 나든, 단맛이 많든 상관없이 뜨거운 양념치킨을 푸릅푸릅 먹는 맛이 있다.


한 때 우리의 단골 치킨집이 있어서 술을 마실 일이 있으면 단골 치킨 집으로 향했다. 하얀 접시 위에 갓 나온 뜨거운 양념치킨을 먹는 맛이 좋아서 우리는 후라이드보다는 양념을 주로 주문해서 먹었다. 뜨거운 양념치킨은 밥과도 어울려서 공깃밥도 꼭 주문해서 먹었다.


원래 공깃밥이 없어서 단골인 우리에게 밥을 막 퍼 주었는데 그러지 말고 공깃밥을 팔아라고 해서 그다음부터 공깃밥도 당당하게 메뉴판에 오르게 되었다. 우리가 일주일에 두 번씩 가서 양념에 밥을 비벼 먹으니 곡기가 당기는 다른 손님들도 그렇게 먹게 되었다.


치킨에는 맥주가 어울린다고 하지만 우리는 맥주가 배불러서 양념치킨에는 소주를 마셨다. 맥주는 천조국 놈들처럼 안주 없이 바닷가에 앉아서 홀짝홀짝 마시는 게 훨씬 좋다. 그러나 양념치킨처럼 입 안 가득 맛있게 와구와구 먹을 때는 소주가 좋다. 잘 어울린다.


아버지는 양념치킨에 소주 한 잔 마시는 걸 좋아하셨다. 아버지가 어릴 때에는 양념치킨 같은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점 이상은 드시진 않았다. 어렸던 우리에게 내주었다.


아버지가 회사에 다닐 때 회사는 자주 총파업을 했고 거기에 가담하기를 아버지에게 바랐다. 힘없는 노동자. 파업에 동참을 해야만 권리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굶는다. 파업에 동참하지 않고 작업을 하면 노동자들 사이에서 낙인이 찍힌다. 빌리 엘리엇의 아버지처럼 갈등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가난과 아버지만 바라보는 어린아이들의 얼굴이 눈에 익었으리라.


시간이 지나 양념치킨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그토록 먹고 싶었던 양념치킨을 마음껏 먹지는 못했다. 소주를 한 잔 마신다. 아버지는 노래를 듣는다.


비는 내리고

장맛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선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아버지는 노래를 들었다. 정태춘의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들었다. 다시는 눈물을 흘리지 말자. 총파업으로 물대포에 쓰러져간 동료를 생각하지 말자.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양념치킨 먹는데 아버지가 생각났다. 계신 그곳은 내내 따뜻하니 양념치킨 실컷 드시면서 총파업이니 노동자니 생각지 말고 편히 계시소.


https://youtu.be/AJfvq8fVRX4 정태춘, 박은옥의  ‘92년 장마, 종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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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1-01 1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캬~! 입맛 땡기네요.
희안한 건 울나라 사람들 반반을 사랑한다는 거죠.
짬짜면, 후라이드 반 양념 반. 소맥 등. 왜들 이러고 사나 모르겠어요. ㅎㅎ
새해 복 많아 받아요.^^

교관 2023-01-02 12:09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엔젤링이 어울리는 계절


카푸치노를 마시고 나면 컵에 이런 띠 같은 게 보인다. 몇 해 전에 소지섭이 맥주 광고에서 엔젤링을 유명하게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엔젤링에 대해서 열심히 검색을 해보았는데 맥주의 엔젤링이라는 것은 찾을 수 없었다. 물론 나의 검색 능력 때문이겠지.


그러다가 한 블로그 중에 봉군이라는 블로거가 맥주에 관해서 모든 것을 알려주고 있는데 그 사람이 구글링을 통해서 엔젤링을 찾아본 모양이었다. 결과적으로 광고에서 맥주 엔젤링 띠는 훅 하게 만드는 그저 광고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카푸치노를 마시고 나면 컵에 이렇게 엔젤링 나타난다. 이 엔젤링은 왜 나타나는 것일까. 이건 카푸치노에 들어가는 성분 때문이라고 한다. 카푸치노를 마시고 이렇게 엔젤링 띠가 나타나지 않고 그저 컵 안쪽 면에 흘러내리는 모습이 보이는 카푸치노도 있다.


카푸치노에는 커피 외에 우유가 들어간다. 우유는 데웠을 때, 그러니까 온도가 올라갔을 때 맛의 미묘함이 우유회사마다 다르다고 한다. 저지방을 쓰면 카푸치노 속에서 스팀기가 작동을 했을 때 변성을 가져오기에 많은 바리스타들은 각 회사에서 받아온 우유를 가지고 좀 더 맛있는 카푸치노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엄청나게 한다고 한다.


저 엔젤링 띠는 우유 속의 포화지방의 함량이 최소화되었을 때, 가벼워진 지방이 띠를 형성해서 커피 잔의 벽면에 붙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려면 거품의 양과 질감에 대해서 신경을 써야 하고 우유의 온도를 예민하게 맞춰야 한다. 이런 카푸치노 한 잔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커피에서 눈을 떼지 않고 커피를 만들어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커피쟁이가 만든 커피라면 한 잔이 주는 맛과 기쁨은 배가 될 것이다.


반대로 띠가 형성되지 않고 흘러내린 카푸치노는 지방의 성분이 많을 것이고 커피의 신맛을 죽이는 역할을 하여 카푸치노의 맛이 달리지기도 한다. 이렇게 온도차에 따른 우유가 들어가서 커피의 맛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바리스타들은 스팀기에 주목을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받아온 커피 머신의 스팀기 주둥이를 특별하게 주문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특별한 스팀 주둥이를 주문하는 곳은, 개인이 커피를 만들어 파는 작은 가게인데 그곳 주인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맛있는 카푸치노 하나를 만들기 위해 고심을 하다가 스팀기의 주둥이에 이유를 붙여 자신이 그 스팀기 주둥이를 주철로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그 소문이 알음알음 퍼져 카푸치노에 목숨을 건 바리스타들은 제작을 요구하고 그 주문받은 주철로 만들어내고 있다고 하니 카푸치노의 세계도 굉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몇 천 원 내고 마시는 이 한 잔의 카푸치노 속에 이런 숨은 노력과 꾸준함이 있었다니.


바야흐로 카푸치노가 어울리는 계절이다. 이런 날 카푸치노 한 잔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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