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로 시작하는 인간실격은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굉장한 인기다. 문학적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건 사랑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대단하다. 지난번 ‘위대한 개츠비’처럼 개츠비 보다는 피츠 제럴드의 일대기가 더 흥미롭고, ‘호밀밭의 파수꾼‘보다 샐린저의 일생이 더 흥미 있었던 나로서는 역시 ‘인간실격’의 요조의 이야기보다 다자이 오사무의 일생이 더 흥미롭다.


일본에는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영화도 많다. 게 중에는 사진가로 출발하여 니나가와 컬러를 열도를 넘어 세계로 진출시켜 버린 니나가와 미카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인간실격’도 있다. 니나가와 미카의 색감은 너무나 독특하고 아름다워서 니나가와 컬러가 여기저기 온통 뿌려졌던 때가 있었다. 니나가와는 사진에 만족하지 않고 광고를 섭렵한 후 영화까지 진출을 하는데 그녀의 첫 작품이 묘한 매력을 가진 배우 츠지야 안나를 주연으로 한 ‘사쿠란’이었다.


첫 작품인데 영화 내내 니나가와 컬러가 영상으로 펼쳐져서 정말 놀라게 된다. 게다가 영화를 뒤덮는 시이나 링고의 음악이 귀까지 사로잡는다. 니나가와는 이후 몰락해가는 사와지리 에리카를 데리고 ‘헬터 스켈터’를 만들어 사와지리를 다시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더니 오구리 슌, 미야자와 리에, 사와지리 에리카, 니카이도 후미를 데리고 ‘인간실격’의 요조가 아닌 다자이 오사무 영화를 만들었다.

인간의 자격을 잃은 남자가 7년 전에 쓰고 싶었다는 소설이 쓰이게 되는 과정과 계기를 그리고 있다. 역시 니나가와 미카의 화려한 색감으로 그려졌다. 화려함 뒤에 감춰진 그 쓸쓸함과 고독과 인간일 수밖에 없는 다자이 오사무의 모습을 그려냈다.

다자이 오사무의 사랑은 파괴 같은 것이다. 내 것이 있지만 더 아름다운 것을 가져야 한다. 낡은 사상을 끄트머리부터 주저 없이 파괴해가는 거침없는 영기에 놀라서 파괴 사상을 사랑하고, 파괴 사상으로 사랑을 갈취한다. 파괴는 불쌍하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같이 펴 낸 오타 시즈코 역시 대담한 여성이었다. 사양은, 일본이 전쟁에 광분하고 있을 때 다자이 오사무는 전쟁을 피해 자신의 고향 아오모리로 갔다가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자 다시 도쿄로 돌아와 자신의 말년을 보내게 되는데, 그때 다자이 오사무는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오른다. 그 계기가 된 작품이 몰락해 가는 귀족을 모습을 그런 사양이었다. 사양 발표 후 전국에서 알아주는 작가가 된 다자이 오사무는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요조의 이야기 ‘인간실격’의 윤곽을 구상한다.

오타 시즈코는,

사랑은 좋은데 연예는 나쁜 것인가? 이해가 가지 않아. 그런 애정은 모른다.

결혼은 잘 모르지만 연애라며 잘 아는 여자.

괴로우면서 즐거운 그런 연애가 나쁠 리 없는 오타 시즈코.

연애가 나쁜 거라면 저도 나쁠래요. 불량 이래도 좋아요. 애초에 전 불량이 좋은걸요.

멋진 여자였다.

오타 시즈코는 이혼을 하고 문학에 뜻을 두고 있었는데 오사무에게 편지를 보내 지도를 부탁했다. 다자이 오사무는 일기 쓰기를 권했다. 그 일기의 내용을 쓴 소설이 ‘사양’이 되었다. 이렇게 멋진 여성인 오타 시즈코는 다자이 오사무에게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다자이 오사무는 다시는 오타 시즈코를 보지 않게 된다.

그런 멋진 여성도 또 다른 여성이 나타나면 던져 버리는 말년의 다자이 오사무에게 대드는 편집자에게, 다들 사랑스러워서 품는데 무엇이 잘못인가, 나는 그렇게 생겨먹은 놈이다. 그러니 가려면 가거라.

몸이 끝없이 추락하여 객혈하는 가운데에서도 [인간실격]의 탄생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여인이 야마자키 도미에였다. 야마자키 도미에는 유부녀로 남편은 전쟁에 나가 있었다. 실력 있는 미용기술을 가진 여성으로 다자이 오사무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알고 지낸 지 한 달 만에 다자이 오사무를 사모하게 된다. 그리고 두 달이 되었을 때 같이 잠을 자는 관계로 발전한다.

야마자키 도미에는 다자이 오사무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이 전사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어도 마음의 앙금 같은 것 때문에 갈등이 컸던 모양이었다. 다자이 오사무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하숙을 하며 다자이 오사무와 만나다가 결국 두 사람들은 함께 자살을 한다. 도미에는 주우의 어떤 날카로운 시선에도 다자이 오사무를 놓칠 수 없었다. 도미에는 자살하는 그날까지 일기를 썼다고 한다. 일기의 내용이 대체로 다자이 오사무에 관한 기록이라 일본에서는 다자이 오사무를 연구하는데 그녀의 일기를 참고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와 결혼한 여성 쓰시마 미치코. 오사무가 객혈하며 건강이 악화되는 가운데에서도 그를 보살피고 3명의 아이들을 살뜰하게 챙긴 여성이었다. 결혼 전에는 여학교의 선생이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스승인 이부세 마스지가 힘을 써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이를 평범한 결혼이라고 표현했다. 결혼 전에는 가정을 소중히 지키겠다는 내용의 각서까지 썼지만 오사무는 지키지 못했다.

유명한 일화인, 금각사로 유명한 미시카 유키오가 찾아오는 장면도 영화 속에 나온다.

당신의 소설은 죽음을 쓴 연약한 소설일 뿐이오! 라며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을 폄훼한다. 그때 다자이 오사무는 “너도 나를 찾아온 걸 보면 나의 글이 좋아서 온 것이다”라며 응수한다.

우리나라의 문인들의 일화도 있다. 시인 이상과 소설가 김유정이다. 두 사람은 참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성격이지만 구인회 소속으로 둘이는 참 잘 어울렸다.

이상은 백석처럼 모던 보이에 투사 같은 사람이었지만 김유정은 유약하고 여린 감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으며, 몹시 가난한 데다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았다. 허무와 초현실의 이상의 글과 해학과 풍자로 가득한 김유정의 글로 보아서는 두 사람은 글로써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이상은 '희유의 투사, 김유정'을 쓰면서 김유정을 기분 좋게 표현했다.

두 사람의 일화가 있다. 1936년 가을 이상은 정릉의 한 암자에서 요양을 하고 있는 김유정을 찾았다. 이상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김유정을 찾았지만 본심은 따로 있었다. 더 말라버린 김유정을 보며 이상은 묻는다.

이상: 김 형, 각혈은 여전하십니까?

김유정: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이상: 신념을 빼앗긴 것은 건강이 없어진 것처럼 죽음의 꼬임을 받기 쉽더군요.

김유정: 김 형! 김 형!(김해경-이상의 본명)은 오늘에야 건강을 빼앗기셨습니까? 인제, 겨우 오늘에야 말입니까?

그러자 이상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김유정에게 제안을 한 다.

이상: 김 형! 김 형만 괜찮다면, 저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동반자살을 제안했다. 하지만 김유정은 그 제안을 거절한다. 자신은 내년에도 소설을 쓰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은 내일 동경으로 떠난다고 하고 김유정은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한 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였다.

내년에도 소설을 쓰겠다던 김유정은 돈이 없어 잘 먹지도 못한 채 삶을 마감하고 만다. 그해가 1937년 3월 29일이었다. 그리고 이십여 일 후인 4월 17일에 도쿄의 길을 걷던 중 김해경은 사망하고 만다. 이 둘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어떻든 영화는 니나가와 미카 덕분인지, 때문인지 너무 스타일리시하다. 니나가와 컬러가 이전의 영화처럼 화면을 가득 장식한다. 영화 속 다자이 오사무는 죽음도 장난처럼 여기고 죽음 앞에서는 소설과 같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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