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울 때 먹으면 더 맛있는 양념치킨. 근래에 먹는 양념치킨은 대체로 포장을 해서 집으로 들고 와서 먹는데 매장에서 바로, 갓 나온 뜨거운 양념치킨을 먹으면 정말 맛있다. 그때에는 케첩 맛이 많이 나든, 단맛이 많든 상관없이 뜨거운 양념치킨을 푸릅푸릅 먹는 맛이 있다.
한 때 우리의 단골 치킨집이 있어서 술을 마실 일이 있으면 단골 치킨 집으로 향했다. 하얀 접시 위에 갓 나온 뜨거운 양념치킨을 먹는 맛이 좋아서 우리는 후라이드보다는 양념을 주로 주문해서 먹었다. 뜨거운 양념치킨은 밥과도 어울려서 공깃밥도 꼭 주문해서 먹었다.
원래 공깃밥이 없어서 단골인 우리에게 밥을 막 퍼 주었는데 그러지 말고 공깃밥을 팔아라고 해서 그다음부터 공깃밥도 당당하게 메뉴판에 오르게 되었다. 우리가 일주일에 두 번씩 가서 양념에 밥을 비벼 먹으니 곡기가 당기는 다른 손님들도 그렇게 먹게 되었다.
치킨에는 맥주가 어울린다고 하지만 우리는 맥주가 배불러서 양념치킨에는 소주를 마셨다. 맥주는 천조국 놈들처럼 안주 없이 바닷가에 앉아서 홀짝홀짝 마시는 게 훨씬 좋다. 그러나 양념치킨처럼 입 안 가득 맛있게 와구와구 먹을 때는 소주가 좋다. 잘 어울린다.
아버지는 양념치킨에 소주 한 잔 마시는 걸 좋아하셨다. 아버지가 어릴 때에는 양념치킨 같은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점 이상은 드시진 않았다. 어렸던 우리에게 내주었다.
아버지가 회사에 다닐 때 회사는 자주 총파업을 했고 거기에 가담하기를 아버지에게 바랐다. 힘없는 노동자. 파업에 동참을 해야만 권리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굶는다. 파업에 동참하지 않고 작업을 하면 노동자들 사이에서 낙인이 찍힌다. 빌리 엘리엇의 아버지처럼 갈등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가난과 아버지만 바라보는 어린아이들의 얼굴이 눈에 익었으리라.
시간이 지나 양념치킨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그토록 먹고 싶었던 양념치킨을 마음껏 먹지는 못했다. 소주를 한 잔 마신다. 아버지는 노래를 듣는다.
비는 내리고
장맛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선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아버지는 노래를 들었다. 정태춘의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들었다. 다시는 눈물을 흘리지 말자. 총파업으로 물대포에 쓰러져간 동료를 생각하지 말자.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양념치킨 먹는데 아버지가 생각났다. 계신 그곳은 내내 따뜻하니 양념치킨 실컷 드시면서 총파업이니 노동자니 생각지 말고 편히 계시소.
https://youtu.be/AJfvq8fVRX4 정태춘, 박은옥의 ‘92년 장마, 종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