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중에 먼지가 되어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았던 학창 시절. 먼지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던 시궁창 같은 학창 시절을 견디게 해 주었던 건 음악을 듣는 것뿐이었다. 내 옆을 지켜 주었던 건 라디오였고 용돈을 모아 모아 구입한 앨범은 위로가 되었다.


중학생이었을 적에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끼지 못하고 방과 후에 라디오를 들으며 집으로 걸어서 가는 시간을 좋아하는 그런 아이였다. 그러다가 음악감상실을 알게 되었지. 그곳에는 온통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있었다. 라디오 헤드, 핑크 플로이드, 제니스 조플린, 비치 보이스, 메탈리카, 바쏘리, 스키드로우, 데프레파드, 스팅, 스웨이드, 라르크 엔 씨엘, 그레이, 히데, 비즈, 자드 등 그리고 크래쉬, 부활, 시나위, 백두산, 블랙홀이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된다. 내일도 필요 없고 지나간 과거 따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음악을 듣고 뮤직비디오를 보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 되는 거였다.


블랙홀의 ‘겨울 풀잎’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다른 아이들보다 내가 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사 중에 ‘사랑의 꽃 피울 수 없던 기나긴 겨울은 가고, 얼어붙은 잠든 벌판에도 사랑에 꽃을 피우네’라는 부분을 듣고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사랑의 꽃을 떠올리며 그걸 미술 시간에 그림으로 그려서 혼이 났던 기억이 있다. 정물화를 그려야 하는데 나는 추상화를 그렸기 때문이다.


강한 메탈 사운드를 뿜어내던 블랙홀이 이토록 애절하게 부르는 록 발라드를 듣고 따뜻한 오물 같은 학창 시절을 기뻐하며 보냈다. 스피드 메탈의 전설 할로윈도 고요한 ‘어 테일 댓 워즌트 롸잇’으로 세계를 휘어잡았던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보컬 주상균 이 형님의 목소리가 천장을 뚫고 저 먼 하늘로 갈 것처럼 아름다웠다. 블랙홀의 명곡은 ‘깊은 밤의 서정곡’이었다. 록을 좋아하는 남자들은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하는 곡이었다. B612의 ‘나만의 그대 모습’과 김성면이 있었던 K2의 ‘슬프도록 아름다운’과 함께 고음역대의 전설이었다.


리드 보컬인 주상균 이 형님의 의식도 아름다워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 주면 ‘깊은 밤의 서정곡’처럼 세상은 아름답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 형님이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주다수 프리스트의 롭 헬포드와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다.


순전히 개인적인 편견이지만 블랙홀의 대단한 점은 아직까지 80년대의 강력하고 씹어 먹을 듯한 메탈사운드를 뿜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노래의 가사의 글이 너무나 좋다. 짧은 가사 내용에 긴 스토리가 함축되어 있다. 이런 내용의 가사는 분명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나온 글은 아니었다.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 고뇌와 깊은 사색의 결정체가 가사로 탄생되었다.


또 블랙홀은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관객이 단 몇 명뿐이더라도 전국을 돌며 공연을 했다. 팬들과 소통을 자주 하던 블랙홀은 팬들이 늘 서울에 올라오는 것이 수고스러운데, 코로나 시기에는 50명 미만은 공연이 가능하다고 하니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팬들이 있는 지역을 돌며 공연을 했다. 몇 명이 없어도 열정적으로 공연을 했다.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이게 가능하게 된 것은 블랙홀의 열성 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블론디의 데보라 헤리가 그 오랜 세월 동안 나오지 않다가 할머니가 다 되어서 팬들 앞에 섰을 때 군말 없이 기다려준 팬들은 그녀에게 환호했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이 소니사의 갑질로 인해 그저 돈벌이로 여겨지는 것을 막은 것은 MJ의 팬들이었다. 블랙홀이 지금까지 활발하게 공연을 하며 강한 록을 할 수 있는 것 역시 블랙홀을 사랑하는 팬들 덕분이었다.


임진모: 우리 한국의 메탈의 영욕을 다 누린 그야말로 한국 록 메틀의 상징적인 이름이다. 한국 헤비메탈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우리에게는 긍지로 다가오는 밴드다. 무엇보다 블랙홀이 잘한 건 지금까지 존재한다는 것이다. 앨범, 공연이라고 하는 가장 중요한 밴드의 활동을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블랙홀은 역사에 남을 밴드다.


정진영 음악평론가: 블랙홀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팬들하고 같이 나이가 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밴드들의 역사를 보면 이렇게 팬들하고 젊었을 때부터 소통하면서 팬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밴드가 얼마나 있었나 싶다. 그런 점에서 사실 블랙홀은 전설이다. 이런 경지에 오른 밴드가 없다. 


무대에서 팬들과 나누는 호흡이 더 깊어질수록 우리의 음악도 깊어져 왔다 - 기타 이원재


공연, 이보다 더 행복은 없다 - 베이스 김세호


작곡가의 의지, 멤버들의 열정, 팬들의 변함없는 사랑이 블랙홀의 원동력이다 - 드럼 이관욱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럽다, 블랙홀 팬들이 블랙홀의 역사를 써가고 있다 - 보컬 주상균



블랙홀의 겨울풀잎 https://youtu.be/Rh_8FbLP0c4 <= Cooing MUSIC 쿠잉뮤직


93년 앨범 중 "내 곁에 네 아픔이" 라이브 https://youtu.be/36ZJA-U-oIM 좋아 죽음 ㅠㅜ <=KBS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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