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 본격적인 겨울이 오면 겨울 노래를 들으며 귤을 까먹고 하얗게 변한 마당을 쳐다보는 일이 즐거웠다. 본격적인 겨울은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난 후의 겨울을 말한다. 초딩이나 중딩때에는 크리스마스 전의 겨울은 온통 크리스마스에게 잡아 먹혀 버려서 온통 형형색색 불빛과 캐럴을 듣지만 딱 칼로 자르듯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난 후의 겨울은 많은 겨울 노래를 들으며 보낼 수 있었다.


겨울의 마당은 차갑다. 지나치게 세제를 많이 넣은 빨래처럼 새하얀 마당은 참으로 냉랭하다. 그런 마당의 틈으로 비죽 올라오던 잡초들도 보이지 않기에 마당은 그야말로 하얗게 표백된 세계다. 등에 담요를 덮고 귤을 까먹으며 하얗게 표백된 마당을 보며 듣는 이승환 2집은 겨울의 노래였다.


이승환 2집은 1991년 서라벌레코드에서 발매한 정규 2집 앨범이다. 앨범의 두 번째 곡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은 대중적으로 히트를 쳤고 아직까지 여기저기에서 불리고 있다. 좋은 노래는 세대와 시간을 구분하지 않는다. 1집의 쓸쓸함과 고독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것 같지만 2집은 좀 더 여러 사운드를 담아냈다. https://youtu.be/Vh7_a98wMKQ


이승환은 데뷔 전에 록 밴드와 헤비메탈 밴드에서 활동했다. 그 경험 때문인지 공연을 지금까지 고집을 한다. 이제는 팬들의 고령화로 인해 몇 시간씩 지속되는 이승환의 콘서트를 즐겨야 해서 체력이 중요하게 되었다. 이승환은 골수팬이 확보된 덕분에 90년대 초에도 티브이 활동보다는 공연 중심의 활동을 이어갔다.


“본격적인 음악을 시작하려니 막막하기만 했어요. 경제적인 여건은 물론 변변한 PR계획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팬들에게 제 노래를 직접 들려주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칠 때까지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고 그래도 만약 사람들이 외면한다면 그때는 음악을 포기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라고 1991년 3월 당시의 인터뷰를 회고했다.


앨범 표지에서 엘리베이터 안의 고개 숙인 여자와 그 앞을 스치는 이승환으로 여겨지는 남자의 스침은 어떤 표현일까. 하고 예전에 한참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 2집의 노래들을 죽 듣다 보니 노래들은 만남, 행복, 그리고 헤어짐,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움 속에 지내온 가슴 아픈 추억 속에 느껴지는

따뜻한 기억이 나를 감싸고 있지만 어찌해야 할런지

이대로 지내기에는 너무 답답해

생각을 해봐도 당신을 알 수 없는데

난 정말 세상은 그렇고 그런 걸까 누구나 이렇게 가는 걸까

내가 웃어본지도 오래된 것 같아

사랑하는 그대와 함께 간직했던 아름다운 추억들

이제는 영원히 사라져 갔네 나의 모든 것


https://youtu.be/DsYamtUad1I 먼 시간 속의 추억


A면 4번 트랙의 노래 ‘먼 시간 속의 추억’의 가사다. 가사를 보면 만과 헤어짐, 그리고 추억을 하는 인간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앨범의 표지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이나 인기를 얻었던 노래 ‘너를 향한 마음’은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 노래가 대단했던 건 티브이 출연이 없어서 티브이 가요 프로그램의 수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레코드 판매량을 중심으로 집계하는 차트에서는 91년 9월에 1위를 기록했다.


1991년 10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승환은 같은 해 3월 작곡가 이수은에게서 받은 데모 테이프에서 이 곡을 선택했지만 음반 녹음으로 만난 이후 연락처를 잃어버려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후 이승환이 발라드 베스트 앨범을 다시 녹음할 때 연락이 되지 않아 허락받지 않고 ‘너를 향한 마음’을 재 녹음한 것으로 1998년에 이수은이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소송은 기각되었고 이후에 베스트 앨범 대반에서는 이 곡을 삭제했다고 한다. https://youtu.be/26lw0_Z8oAA


재미있는 사실은 초반, 재반 커버가 다르다고 하고, 3반은 제조사가 달라진 앨범이 이승환 2집이다. 찬은 당시 이승환을 관리해주었던 OKM 인터내셔널 로고와 함께 ‘이승환II’라는 글씨만 적혀 있는 음반이었고, 같은 발매일이 찍힌 재반이 지금 보이는 익숙한 디자인의 커버라고 한다.


이승환 2집을 들으며 귤을 까먹는다. 귤은 껍질이 얇지 않아서 손가락을 푹 넣으면 잘 까진다. 귤이 맛있어서 5개 정도는 그냥 연달이 먹었다. 배가 부른 지도 모르며 귤을 맛있게 까서 먹는다. 이승환은 하숙생을 비트를 강하게 해서 부른다. 노래가 좋다. 그리고 ‘나는 나일뿐’을 들으며 어깨를 들썩들썩해본다. 어쩐지 표백된 마당도 리듬을 타는 것 같다. https://youtu.be/KHlZ_6NQkKA


마당을 쳐다보는 건 그저 보는 것이다. 그때는 시간이 막대한 자산이었고 시간이 흐르는 건 사막 거북이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린 변주 같았다. 집에는 아무도 없고, 노래는 ‘이 밤을 뒤로’가 흐르고, 이 촉촉하고 부드러운 가사와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따라 불러본다.


언제부턴가 엇비슷해진 나의 하루하루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그런 마음에 귀를 기울여

내가 원하는 걸 찾으러 꿈결로 가나

https://youtu.be/CaJBjbChdog


가나,에서 리듬을 타줘야 한다. 오후의 아무도 없는 시간. 담요를 등에 덮고 귤을 까먹으며 마동을 보며 이승환의 노래를 들었다. 조금 있으면 동생이 엄마와 집으로 오고 그러면 이 고요한 자유의 시간이 깨질 것이다. 그전까지는 어떻게든 이 시간을 즐겼다. 마당의 화단에 있는 나무의 마른 가지가 바람에 미미하게 흔들렸다. 그것마저 그림처럼 보였다. 새 한 마리 없고 누구 하나 초인종을 누르지 않았다. 세상은 분명 이런저런 이유로 빠르게 흘러가고 있을 텐데 이렇게 고요하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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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빛 감동, 경쾌한 칼칼함

그리고 긴 여운.

청국장이다. 청국장을 모르는 것은 세상을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내가 알고 있는 건 너무나 협소하기 때문이다.

꼬꼬마 시절, 장마기간에 마루에 앉아 마당에 떨어지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그때는 엄마와 떨어져 외가에 있었는데 비가 오면 나가 놀 수도 없어서 오래되고 안온감이 드는 냄새가 밴 마루에 앉아 몇 시간이고 마당에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외할머니가 청국장에 애호박을 넣어서 끓여서 왔다. 거기에 밥을 슥슥 비벼서 줬는데 나는 먹기 싫어서 도망을 갔다. 냄새나고 맛도 이상한 청국장은 먹기 싫었는데 외할머니는 자꾸 맛있다며 숟가락을 들고 나를 따라다니며 밥을 먹으려 했다.


지 애미와 떨어져 외가에서 지내는 나에게 꼭 밥을 먹여야 한다는 외할머니의 마음도 그랬지만 애초에 밥을 필사적으로 먹지 않으려는 내가 비 덕분에 집 안에 갇히게 되어서 청국장에 비빈 밥의 맛을 느끼게 해 주려고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의 시작에 비가 내리면 일종의 계절적 기시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에 따라 시간의 잔상도 미숫가루처럼 미미하게 떠돌며 설명할 수 없는 잿빛 공간의 아름다움도 떠오른다. 흙으로 된 마당에 비가 떨어져 촉촉하게 변하고 나와 마주한 마로(외가에서 키웠던 큰 개)도 개 집에 엎드려 눈만 껌뻑껌뻑 한 것이 그것대로 하나의 세계였다.


도망 다니다 외할머니에게 붙잡혀 끝내는 밥상 앞에 앉아서 밥을 먹다 보면 또 맛있어서 냠냠 먹게 된다. 그러면 외할머니는 나를 슥슥 쓰다듬으며, 교과이가 다 컸네, 밥도 한 그릇 다 묵고.라고 하면 금세 우쭐해져서 엄마와 떨어져 지낸다는 외로움도 잊곤 했다.


내 외할머니. 가끔 청국장을 먹으면 맛있지만 오래 전의 맛은 아니다. 청국장에 밥을 비벼 먹어도 외할머니의 추억이 빠져 버렸고, 기억이 소멸하고, 무엇보다 보고 싶은, 이제 얼굴도 가물가물한 외할머니가 없어서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청국장이 있다면 일본에는 낫토가 있다. 풀무원에서 낫토를 판매한다. 마트에 가면 낫토가 죽 있다. 먹기가 아주 편하다. 간장도 들어 있어서 간장을 따서 휘저어서 그냥 먹으면 된다. 밥 위에 올려 먹어도 되고, 식빵 사이에 넣어서 먹어도 된다. 청국장보다는 먹기가 훨씬 편하고 간단하다.


그러나 청국장과 낫토는 비슷하지 않다. 전혀 다르다. 청국장에는 바실러스균이 있는데 이를 고초균이라고 한다. 이 고초균에는 유산 발효균의 종류만 100가지 넘는다. 이 수많은 균에서 한 종류의 균을 추출하여 발효한 것을 납두균이라 하는데 이것이 낫토다.


근본적으로 낫토는 청국장과는 완전히 다르지. 이 납두균처럼 한 종류의 바실러스균만을 빼내서 발효시키면 청국장 같은 냄새는 없다. 더불어 청국장만큼의 영양도 없다. 일본은 낫토를 대중화하는 데 성공했다. 정부와 기업의 모종의 거래가 대중을 사로잡았다. 납두균은 간편하기도 하고 발효기간이 청국장에 비해 짧아서 만들기도 쉽다.


청국장에는 당연히 발효향인 시큼한 향이 조금씩 나야 하며 신맛이 있어야 잡균이 들어서지 않고 청국장 고유의 맛과 바실러스가 전해주는 영양도 듬뿍 섭취할 수 있는데, 어쩌면 청국장은 세대가 거듭할수록 전문점에서나 간혹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가 언젠가 청국장 자체가 소멸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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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1-08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접했을 때의 퀴퀴한 냄새만 적응하면 소울 푸드가 따로 없죠.

교관 2023-01-09 12:45   좋아요 0 | URL
맞아요 ㅎㅎ 진정 소울푸드
 

                   아버지의 껌딱지였던 녀석, 이젠 아버지 옆에 나란히




나의 아버지는 개를 너무나 싫어했다.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보면 마당에서 키우던 개가 집 안으로 들어오면 아버지는 큰 소리를 지르며 개 냄새 때문에 빨리 내보내라고 성화였다. 마당에서 우리 집 개를 쓰다듬으며 놀고 나면 아버지는 개 만지고 손 안 씻으면 절대 집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다.


동네에서도 개들은 아버지를 슬슬 피해 다닐 만큼 개와 아버지의 사이는 멀고도 넓었다. 도저히 좁혀지지 않을 그 간극으로 개와 아버지는 줄타기를 했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돌아오시면 마당에 있던 개는 꼬리를 내려서 흔들었고 벽을 타고 슬금슬금 다녔다.


집에서 키우게 된 개는 성견이 된 개가 주인이 어딘가로 가면서 우리 집으로 왔고, 그러다보니 이미 성견이 된 개와 아버지는 친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해 겨울 혹독한 추위가 몰려왔다. 아버지는 한파가 몰려오기 전에 하늘을 한 번 보더니 일요일에 시장으로 가서 두꺼운 비닐과 담요를 사오셨다.


그리고 개 집(도 아버지가 목재로 뚝딱뚝딱 만들었고 개집은 노란색 페인트로 칠해 주었다)을 한파를 피할 수 있게 만들었다. 비닐을 몇 장씩 겹쳐 개집에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꽁꽁 싸매고 집 안에 담요를 몇 장이나 깔았고 벽면에도 담요를 못질해서 붙였다. 개도 뭔가를 아는지 내내 아버지 옆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보기 괜찮은 광경이었다.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을 잘 넘긴 개는 이듬해 봄에 새끼 네 마리를 낳았다. 꼬물꼬물 거리는 새끼들의 아침을 챙겨 주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출근하기 전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우유를 데워서 따뜻할 때 새끼들에게 먹이고, 스프를 일일이 끓여서 새끼들을 먹였다.


그래서 새끼들은 엄마 이외에 아버지가 마당에서 이쪽으로 가면 쪼르르 따라가고 저쪽으로 가면 쪼르르 따라갔다. 그때부터였을까. 아버지는 강아지들을 보기 위해 회식도 하지 않고 한 눈 팔지 않고 곧바로 퇴근을 했다. 강아지들을 입양 보낼 때에도 아버지가 전부 일일이 한 마리씩 주인이 될 사람에게 양도했다.


그 이후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집에 강아지들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밖에서 식사라도 하는 날이면 강아지 걱정에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집으로 들어왔고, 산책 가는 길은 마치 인간과 인간처럼, 또는 강아지와 강아지 같아 보일 정도였다.


아버지가 나가려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면 벌써 나 죽는다고 어찌나 서럽게도 깽깽 우는 지, 기가 막혔다. 잘 때는 붙어 자고, 다리 아프다고 하면 다리 위에서 주물럭 주물럭 해주고, 아이컨텍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하는지. 예전에는 개 만지고 손 씻으라고 했지만 이제는 손 안 씻고 강아지 만지만 큰일이 났다.


돌아가시기 전에 강아지를 대하는 아버지를 보면 예전에 개를 그렇게나 싫어했던 아버지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조깅을 하다가 보면 강변에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서 산책을 하는 아버님들을 유심히 보게 된다.


그들은 강아지가 아니라 아들이나 딸을 데리고 나온 것이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마음이 통하는 유일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라디오 사연에서 어떤 아버님들은 강아지를 회사에 데리고 가는 아버님도 있다고 한다.


개를 싫어하셨던 아버지는

강아지를 끔직이도 사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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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바 알머슨의 눈코입 그림을 집어넣었다



오랜만에 맛있는 녀석들을 봤다. 먹는 녀석들을 한창 볼 때가 있었다. 화면 속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는 이유는 맛있게 먹기 때문이다. 진정성이 없으면 맛있게 먹지를 못한다. 먹고사는 문제는 인류가 생긴 이래 가장 밀접하게 관계된 것이다. 절대 소홀 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가도 먹어야 한다. 살인을 하여 교도소에 갇히더라도 하루 세끼 꼬박 먹는다. 세상의 모든 동물은 배고플 때 먹이를 먹지만 오직 인간만이 배가 고프지 않아도 하루 세끼를 챙겨 먹는다. 그 사이에 진정성이 배제된 먹방들이 나오게 되었다.


옛날부터 먹방 방송은 계속 있어왔다. VJ특공대도 그렇고, 전국 자영업자들을 착한 식당과 그렇지 못한 식당으로 나누어 버린 “제가 한 번 먹어 보겠습니다”라며 시청률에만 독이 오른 먹거리 엑스파일이나, 일요일 아침에 스타들의 단골 음식점을 소개하는 먹방 방송도 있었다. 이런 방송들은 진정성이 없어서 여러 곳에서 두드려 맞았다.


그래서 김재환 감독이 2011년에 다큐영화 ‘트루맛쇼’를 만들었다. 정말 재미있으면서 진짜 충격적이었다. 충격도 이런 충격이 없었다. 우리가 보는 티브이의 방송에서 이렇게 진정성이 1도 없이 식당섭외를 하여 방송을 하는 모습을 여과 없이 그대로 카메라에 담았다. 먹거리 엑스 파일은 또 어떠한가. 정말 엉망진창인 방송이었다. 하지만 엉망진창은 착한 식당이라는 기묘한 커튼 뒤에 가려진 채 사람들은 재미와 욕할 무언가를 찾아다닐 뿐이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2361#comment <= 방송의 미학


그런 점에 비하면 먹는 녀석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진정으로 먹는구나, 진정으로 맛있게 먹는구나, 진정으로 모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구나,라고 느꼈다. 인기가 대단했다. 사람들 역시 먹는 녀석들에게서 진정성을 보았기에 방송을 기다리며 본방을 보고, 재방도 보고, 유튜브로도 챙겨 봤을 것이다. 그러다가 김준현이 나가고 난 뒤에는 나는 거의 보지 않다가 얼마 전에 오랜만에 봤는데 재미가 떨어졌다.


왜 재미가 예전만 못할까. 새롭게 바뀐 먹는 녀석들이 진정성이 떨어지는 것일까. 아니다, 그 녀석들에게는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멤버는 변동이 있었지만 녀석들은 여전히 여지없이 진정으로 먹었다. 잘 먹었고 많이 먹고 맛있게 먹었다. 그럼에도 재미가 없는 이유는 방송을 만드는 놈들 때문이다. 작가들, 피디가 바뀌니까 이렇게 재미가 떨어지는 것이다. 실력 있는 피디들은 1분짜리 촬영영상으로 1시간짜리를 만들어 낸다. 길고 긴 영상을 한 시간 분량으로 편집을 하는 건 전적으로 피디들의 일이며 이들이 어떻게 편집을 하느냐에 따라 영상이 달라진다. 당연한 얘기지만.


실력 있는 피디들이 방송가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니 유튜브로 빠져서 거기서 마음껏 실력을 뽐내고 있다. 유튜브가 좀 더 집중이 좋고, 짤막하고, 자극적이며, 눈에 쏙 들어온다. 한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짧다. 쓸데없이 주절주절 늘어놓지 않는다. 바로바로 댓글도 남길 수 있다. 참여도가 높다. 사람들이 굳이 재미가 떨어지는 티브이 방송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티브이 방송은 점점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게 된다.


그래서 방송국 놈들이 머리를 맞대고 쥐어짜 낸 방편이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들, 인플루언서나 먹방스타들을 티브이 브라운관으로 불러 비슷한 콘셉트로 여러 방송을 만들어서 유튜브보다 더 자극적으로 편집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문제가 터진 방송이 고딩엄빠나 오은영 사태가 나타난 것이다. 비슷한 콘셉트의 채널이 여기저기서 나오니 더 자극적이게 편집을 해야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아 둘 수 있다. 욕을 해도 상관없다. 아니 욕이 나올 정도로 자극적이어야 된다. 그래야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 그게 비록 비극적이라고 해도 방송국 놈들은 그 너머의 무엇을 보는 것이다.


돈쭐 내는 먹방 프로그램에 나오는 먹방 스타들은 아주 잘 먹는다. 그리고 많이 먹는다. 그러나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입 안에 어떻게든 많은 음식을 가득 넣어서 먹을 뿐이다. 절대 맛있게 보이지 않는다. 입이 찢어져라 마구 집어넣어서 먹을 뿐이다. 자극이 되어야 한다. 자극적이게 보이지 않으면 좋은 취지를 떠나 시청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낮은 시청률은 곧 방송의 존폐여부를 관장한다.


사람들은 자극을 원한다. 자극 중에서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자극이 시각적 자극이다. 촉각, 후각은 움직여야 얻을 수 있는 반면에 시각적 자극은 너무나 쉽게 얻을 수 있다. 시각적 자극의 중독에 한 번 빠져들면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다. 하지만 자극은 생명력이 짧다. 자극 안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 없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자극 위에 더 강한 자극으로 덮는다.


우리가 먹는 음식도 그렇다. 무료하고 권태한 일상 속에서 스트레스를 풀어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자극이 음식이다. 자극은 고통과도 비슷하여 더 맵고, 더 강한 음식을 찾아서 먹는다.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그러나 자극은 오래가지 않는다. 매운 불닭이 한 때 유행했던 것처럼 자극은 짧게 지나간다. 단지 그 자리에 더 강한 자극이 다시 올 뿐이다.


이런 방송국 놈들의 자극적인 방송이 없어질까?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른 채널에서 다른 방법으로 또 다른 자극을 들고 나올 것이다. 왜? 사람들은 자극을 원하니까. 그리고 사고가 터지면 사람들은 욕할 대상을 찾아서 욕을 해야 한다. 만약 티브이의 방송이 전부 브로콜리처럼 자극적이지 않고 평범하고 올바르고 도덕적이기만 하면 사람들은 아예 티브이를 보지 않거나 방송국을 향해 돌을 던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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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군대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도 한 번 더 해보자면


세상에는 수많은 멍청이가 있다. 그 수많은 멍청이들 중에 나도 속해 있다. 멍청이들은 하는 짓이 비슷하고 패턴도 눈에 다 보인다. 멍청이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아주 올바르고 대단하다고 생각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이 정도 알고 있는 것으로 됐다,라고 생각한 것들이 여지없이 무너졌던 것을 느꼈을 때가 군대에 있을 때다. 그 뒤로 지금까지 때가 되면 내가 알고 있는 것들, 내가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리셋하고 다시 시작하지만 어떤 벽에 부딪히면 어김없이 나의 얄팍한 지식은 전혀 무용지물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렇지만 바냐 아저씨처럼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내는 길밖에 없다.


군대에서 1월 1일을 두 번 맞이했다. 처음 1월 1일을 맞이했을 때에는 졸다구였다. 너네한테 말년이 올 거라고 생각해? 절대 오지 않아.라고 했던 아주 지독한 고참이 있었다. 정말 지독히도 애들을 괴롭혔던 고참이었다. 드라마 신병이나 디피에서 애들을 괴롭히는 그런 고참이었다. 무엇보다 이 고참에게 걸리면 건조대가 있는 곳이나 세탁실에서 가차 없이 구타를 당한다는 것이다.


일단 시야에 그 고참놈이 보이면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 그리고 그 고참놈이 점오시간을 점검하는 당직이면 막사 전체가 긴장을 탄다. 중대장 뒤에서 무표정의 얼굴로 각 내무반을 돌아다니며 점오를 점검하는데 그때 그 고참놈의 눈에 잘못 띄면 점오가 끝이 나고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훈계와 구타를 당한다. 정말 치가 떨리는 시간이다.


그 고참놈 밑으로는 전부 긴장을 바짝 타고 있다.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졸다구들은 점오 시간에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 고참놈이 풍기는 악마 같은 분위기에 압도를 당하는 것이다. 일렬로 침상에 서서 절대 움직여서는 안 된다. 신발의 끝선도 일직선이 되어야 하고, 군복의 주름도 일직선으로 맞춰야 한다. 이상하지만 그 고참놈은 그런 것까지 전부 다 찾아냈다.


근육도 움직여서는 안 되고, 눈동자도 안되고 오직 코로 숨만 내쉬어야 한다. 그나마 숨을 쉬는 소리가 나면 안 된다. 점오 시간에 앞을 보라보고 바짝 얼어 있는데 그 고참놈이 내 앞을 지나갔다.


부대 열중 쉬엇.


그때 나는 뒤로 넘긴 손에서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그 멍청한 고참놈이 내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린다는 걸 모른다. 다시 앞으로 지나갔다. 나는 숨을 한 번 참고 그때에도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꼼지락꼼지락.


그 고참놈이 잠시 내 앞을 지나가다 멈칫하는 것이다. 나는 순간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내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린다는 걸 알았을까. 폭력적이고 평소에도 화가 많은 고참놈이라 걸리면 나는 초주검이다. 그 고참놈은 우리 내무반이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 고참놈은 다른 내무반의 아이들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구 구타를 했다. 다른 내무반의 그놈보다 고참들도 건드리지 못하는 완전 개사이코 같은 놈이었다. 나는 숨도 쉬지 못하고 있는데 그 고참놈이 알아채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갔다. 그리고 점오가 무사히 끝났다. 휴우.


나는 등에서 땀을 많이 흘렸다. 바보 같은 멍청한 새끼, 내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고. 큭큭큭. 나는 속으로 얼마나 크게 웃었는지 모른다. 너무 통쾌했다. 점오가 끝나고 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우리 내무반 완고가 나를 세면장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모포 까는 건 다른 아이들이 할 테니까 씻으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얼떨결에 흘린 땀을 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완고가 나가면서 조용하게 그랬다.


너 손가락 꼼지락 거리다가 그 녀석한테 걸리면 큰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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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1-05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고참놈 계급이 상병아닙니까? 군기 담당들...

교관 2023-01-06 11:5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