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알머슨의 눈코입 그림을 집어넣었다
오랜만에 맛있는 녀석들을 봤다. 먹는 녀석들을 한창 볼 때가 있었다. 화면 속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는 이유는 맛있게 먹기 때문이다. 진정성이 없으면 맛있게 먹지를 못한다. 먹고사는 문제는 인류가 생긴 이래 가장 밀접하게 관계된 것이다. 절대 소홀 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가도 먹어야 한다. 살인을 하여 교도소에 갇히더라도 하루 세끼 꼬박 먹는다. 세상의 모든 동물은 배고플 때 먹이를 먹지만 오직 인간만이 배가 고프지 않아도 하루 세끼를 챙겨 먹는다. 그 사이에 진정성이 배제된 먹방들이 나오게 되었다.
옛날부터 먹방 방송은 계속 있어왔다. VJ특공대도 그렇고, 전국 자영업자들을 착한 식당과 그렇지 못한 식당으로 나누어 버린 “제가 한 번 먹어 보겠습니다”라며 시청률에만 독이 오른 먹거리 엑스파일이나, 일요일 아침에 스타들의 단골 음식점을 소개하는 먹방 방송도 있었다. 이런 방송들은 진정성이 없어서 여러 곳에서 두드려 맞았다.
그래서 김재환 감독이 2011년에 다큐영화 ‘트루맛쇼’를 만들었다. 정말 재미있으면서 진짜 충격적이었다. 충격도 이런 충격이 없었다. 우리가 보는 티브이의 방송에서 이렇게 진정성이 1도 없이 식당섭외를 하여 방송을 하는 모습을 여과 없이 그대로 카메라에 담았다. 먹거리 엑스 파일은 또 어떠한가. 정말 엉망진창인 방송이었다. 하지만 엉망진창은 착한 식당이라는 기묘한 커튼 뒤에 가려진 채 사람들은 재미와 욕할 무언가를 찾아다닐 뿐이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2361#comment <= 방송의 미학
그런 점에 비하면 먹는 녀석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진정으로 먹는구나, 진정으로 맛있게 먹는구나, 진정으로 모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구나,라고 느꼈다. 인기가 대단했다. 사람들 역시 먹는 녀석들에게서 진정성을 보았기에 방송을 기다리며 본방을 보고, 재방도 보고, 유튜브로도 챙겨 봤을 것이다. 그러다가 김준현이 나가고 난 뒤에는 나는 거의 보지 않다가 얼마 전에 오랜만에 봤는데 재미가 떨어졌다.
왜 재미가 예전만 못할까. 새롭게 바뀐 먹는 녀석들이 진정성이 떨어지는 것일까. 아니다, 그 녀석들에게는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멤버는 변동이 있었지만 녀석들은 여전히 여지없이 진정으로 먹었다. 잘 먹었고 많이 먹고 맛있게 먹었다. 그럼에도 재미가 없는 이유는 방송을 만드는 놈들 때문이다. 작가들, 피디가 바뀌니까 이렇게 재미가 떨어지는 것이다. 실력 있는 피디들은 1분짜리 촬영영상으로 1시간짜리를 만들어 낸다. 길고 긴 영상을 한 시간 분량으로 편집을 하는 건 전적으로 피디들의 일이며 이들이 어떻게 편집을 하느냐에 따라 영상이 달라진다. 당연한 얘기지만.
실력 있는 피디들이 방송가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니 유튜브로 빠져서 거기서 마음껏 실력을 뽐내고 있다. 유튜브가 좀 더 집중이 좋고, 짤막하고, 자극적이며, 눈에 쏙 들어온다. 한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짧다. 쓸데없이 주절주절 늘어놓지 않는다. 바로바로 댓글도 남길 수 있다. 참여도가 높다. 사람들이 굳이 재미가 떨어지는 티브이 방송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티브이 방송은 점점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게 된다.
그래서 방송국 놈들이 머리를 맞대고 쥐어짜 낸 방편이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들, 인플루언서나 먹방스타들을 티브이 브라운관으로 불러 비슷한 콘셉트로 여러 방송을 만들어서 유튜브보다 더 자극적으로 편집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문제가 터진 방송이 고딩엄빠나 오은영 사태가 나타난 것이다. 비슷한 콘셉트의 채널이 여기저기서 나오니 더 자극적이게 편집을 해야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아 둘 수 있다. 욕을 해도 상관없다. 아니 욕이 나올 정도로 자극적이어야 된다. 그래야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 그게 비록 비극적이라고 해도 방송국 놈들은 그 너머의 무엇을 보는 것이다.
돈쭐 내는 먹방 프로그램에 나오는 먹방 스타들은 아주 잘 먹는다. 그리고 많이 먹는다. 그러나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입 안에 어떻게든 많은 음식을 가득 넣어서 먹을 뿐이다. 절대 맛있게 보이지 않는다. 입이 찢어져라 마구 집어넣어서 먹을 뿐이다. 자극이 되어야 한다. 자극적이게 보이지 않으면 좋은 취지를 떠나 시청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낮은 시청률은 곧 방송의 존폐여부를 관장한다.
사람들은 자극을 원한다. 자극 중에서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자극이 시각적 자극이다. 촉각, 후각은 움직여야 얻을 수 있는 반면에 시각적 자극은 너무나 쉽게 얻을 수 있다. 시각적 자극의 중독에 한 번 빠져들면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다. 하지만 자극은 생명력이 짧다. 자극 안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 없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자극 위에 더 강한 자극으로 덮는다.
우리가 먹는 음식도 그렇다. 무료하고 권태한 일상 속에서 스트레스를 풀어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자극이 음식이다. 자극은 고통과도 비슷하여 더 맵고, 더 강한 음식을 찾아서 먹는다.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그러나 자극은 오래가지 않는다. 매운 불닭이 한 때 유행했던 것처럼 자극은 짧게 지나간다. 단지 그 자리에 더 강한 자극이 다시 올 뿐이다.
이런 방송국 놈들의 자극적인 방송이 없어질까?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른 채널에서 다른 방법으로 또 다른 자극을 들고 나올 것이다. 왜? 사람들은 자극을 원하니까. 그리고 사고가 터지면 사람들은 욕할 대상을 찾아서 욕을 해야 한다. 만약 티브이의 방송이 전부 브로콜리처럼 자극적이지 않고 평범하고 올바르고 도덕적이기만 하면 사람들은 아예 티브이를 보지 않거나 방송국을 향해 돌을 던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