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껌딱지였던 녀석, 이젠 아버지 옆에 나란히




나의 아버지는 개를 너무나 싫어했다.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보면 마당에서 키우던 개가 집 안으로 들어오면 아버지는 큰 소리를 지르며 개 냄새 때문에 빨리 내보내라고 성화였다. 마당에서 우리 집 개를 쓰다듬으며 놀고 나면 아버지는 개 만지고 손 안 씻으면 절대 집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다.


동네에서도 개들은 아버지를 슬슬 피해 다닐 만큼 개와 아버지의 사이는 멀고도 넓었다. 도저히 좁혀지지 않을 그 간극으로 개와 아버지는 줄타기를 했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돌아오시면 마당에 있던 개는 꼬리를 내려서 흔들었고 벽을 타고 슬금슬금 다녔다.


집에서 키우게 된 개는 성견이 된 개가 주인이 어딘가로 가면서 우리 집으로 왔고, 그러다보니 이미 성견이 된 개와 아버지는 친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해 겨울 혹독한 추위가 몰려왔다. 아버지는 한파가 몰려오기 전에 하늘을 한 번 보더니 일요일에 시장으로 가서 두꺼운 비닐과 담요를 사오셨다.


그리고 개 집(도 아버지가 목재로 뚝딱뚝딱 만들었고 개집은 노란색 페인트로 칠해 주었다)을 한파를 피할 수 있게 만들었다. 비닐을 몇 장씩 겹쳐 개집에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꽁꽁 싸매고 집 안에 담요를 몇 장이나 깔았고 벽면에도 담요를 못질해서 붙였다. 개도 뭔가를 아는지 내내 아버지 옆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보기 괜찮은 광경이었다.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을 잘 넘긴 개는 이듬해 봄에 새끼 네 마리를 낳았다. 꼬물꼬물 거리는 새끼들의 아침을 챙겨 주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출근하기 전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우유를 데워서 따뜻할 때 새끼들에게 먹이고, 스프를 일일이 끓여서 새끼들을 먹였다.


그래서 새끼들은 엄마 이외에 아버지가 마당에서 이쪽으로 가면 쪼르르 따라가고 저쪽으로 가면 쪼르르 따라갔다. 그때부터였을까. 아버지는 강아지들을 보기 위해 회식도 하지 않고 한 눈 팔지 않고 곧바로 퇴근을 했다. 강아지들을 입양 보낼 때에도 아버지가 전부 일일이 한 마리씩 주인이 될 사람에게 양도했다.


그 이후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집에 강아지들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밖에서 식사라도 하는 날이면 강아지 걱정에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집으로 들어왔고, 산책 가는 길은 마치 인간과 인간처럼, 또는 강아지와 강아지 같아 보일 정도였다.


아버지가 나가려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면 벌써 나 죽는다고 어찌나 서럽게도 깽깽 우는 지, 기가 막혔다. 잘 때는 붙어 자고, 다리 아프다고 하면 다리 위에서 주물럭 주물럭 해주고, 아이컨텍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하는지. 예전에는 개 만지고 손 씻으라고 했지만 이제는 손 안 씻고 강아지 만지만 큰일이 났다.


돌아가시기 전에 강아지를 대하는 아버지를 보면 예전에 개를 그렇게나 싫어했던 아버지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조깅을 하다가 보면 강변에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서 산책을 하는 아버님들을 유심히 보게 된다.


그들은 강아지가 아니라 아들이나 딸을 데리고 나온 것이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마음이 통하는 유일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라디오 사연에서 어떤 아버님들은 강아지를 회사에 데리고 가는 아버님도 있다고 한다.


개를 싫어하셨던 아버지는

강아지를 끔직이도 사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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