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군대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도 한 번 더 해보자면


세상에는 수많은 멍청이가 있다. 그 수많은 멍청이들 중에 나도 속해 있다. 멍청이들은 하는 짓이 비슷하고 패턴도 눈에 다 보인다. 멍청이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아주 올바르고 대단하다고 생각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이 정도 알고 있는 것으로 됐다,라고 생각한 것들이 여지없이 무너졌던 것을 느꼈을 때가 군대에 있을 때다. 그 뒤로 지금까지 때가 되면 내가 알고 있는 것들, 내가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리셋하고 다시 시작하지만 어떤 벽에 부딪히면 어김없이 나의 얄팍한 지식은 전혀 무용지물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렇지만 바냐 아저씨처럼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내는 길밖에 없다.


군대에서 1월 1일을 두 번 맞이했다. 처음 1월 1일을 맞이했을 때에는 졸다구였다. 너네한테 말년이 올 거라고 생각해? 절대 오지 않아.라고 했던 아주 지독한 고참이 있었다. 정말 지독히도 애들을 괴롭혔던 고참이었다. 드라마 신병이나 디피에서 애들을 괴롭히는 그런 고참이었다. 무엇보다 이 고참에게 걸리면 건조대가 있는 곳이나 세탁실에서 가차 없이 구타를 당한다는 것이다.


일단 시야에 그 고참놈이 보이면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 그리고 그 고참놈이 점오시간을 점검하는 당직이면 막사 전체가 긴장을 탄다. 중대장 뒤에서 무표정의 얼굴로 각 내무반을 돌아다니며 점오를 점검하는데 그때 그 고참놈의 눈에 잘못 띄면 점오가 끝이 나고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훈계와 구타를 당한다. 정말 치가 떨리는 시간이다.


그 고참놈 밑으로는 전부 긴장을 바짝 타고 있다.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졸다구들은 점오 시간에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 고참놈이 풍기는 악마 같은 분위기에 압도를 당하는 것이다. 일렬로 침상에 서서 절대 움직여서는 안 된다. 신발의 끝선도 일직선이 되어야 하고, 군복의 주름도 일직선으로 맞춰야 한다. 이상하지만 그 고참놈은 그런 것까지 전부 다 찾아냈다.


근육도 움직여서는 안 되고, 눈동자도 안되고 오직 코로 숨만 내쉬어야 한다. 그나마 숨을 쉬는 소리가 나면 안 된다. 점오 시간에 앞을 보라보고 바짝 얼어 있는데 그 고참놈이 내 앞을 지나갔다.


부대 열중 쉬엇.


그때 나는 뒤로 넘긴 손에서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그 멍청한 고참놈이 내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린다는 걸 모른다. 다시 앞으로 지나갔다. 나는 숨을 한 번 참고 그때에도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꼼지락꼼지락.


그 고참놈이 잠시 내 앞을 지나가다 멈칫하는 것이다. 나는 순간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내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린다는 걸 알았을까. 폭력적이고 평소에도 화가 많은 고참놈이라 걸리면 나는 초주검이다. 그 고참놈은 우리 내무반이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 고참놈은 다른 내무반의 아이들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구 구타를 했다. 다른 내무반의 그놈보다 고참들도 건드리지 못하는 완전 개사이코 같은 놈이었다. 나는 숨도 쉬지 못하고 있는데 그 고참놈이 알아채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갔다. 그리고 점오가 무사히 끝났다. 휴우.


나는 등에서 땀을 많이 흘렸다. 바보 같은 멍청한 새끼, 내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고. 큭큭큭. 나는 속으로 얼마나 크게 웃었는지 모른다. 너무 통쾌했다. 점오가 끝나고 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우리 내무반 완고가 나를 세면장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모포 까는 건 다른 아이들이 할 테니까 씻으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얼떨결에 흘린 땀을 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완고가 나가면서 조용하게 그랬다.


너 손가락 꼼지락 거리다가 그 녀석한테 걸리면 큰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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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1-05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고참놈 계급이 상병아닙니까? 군기 담당들...

교관 2023-01-06 11:5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