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빛 감동, 경쾌한 칼칼함

그리고 긴 여운.

청국장이다. 청국장을 모르는 것은 세상을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내가 알고 있는 건 너무나 협소하기 때문이다.

꼬꼬마 시절, 장마기간에 마루에 앉아 마당에 떨어지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그때는 엄마와 떨어져 외가에 있었는데 비가 오면 나가 놀 수도 없어서 오래되고 안온감이 드는 냄새가 밴 마루에 앉아 몇 시간이고 마당에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외할머니가 청국장에 애호박을 넣어서 끓여서 왔다. 거기에 밥을 슥슥 비벼서 줬는데 나는 먹기 싫어서 도망을 갔다. 냄새나고 맛도 이상한 청국장은 먹기 싫었는데 외할머니는 자꾸 맛있다며 숟가락을 들고 나를 따라다니며 밥을 먹으려 했다.


지 애미와 떨어져 외가에서 지내는 나에게 꼭 밥을 먹여야 한다는 외할머니의 마음도 그랬지만 애초에 밥을 필사적으로 먹지 않으려는 내가 비 덕분에 집 안에 갇히게 되어서 청국장에 비빈 밥의 맛을 느끼게 해 주려고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의 시작에 비가 내리면 일종의 계절적 기시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에 따라 시간의 잔상도 미숫가루처럼 미미하게 떠돌며 설명할 수 없는 잿빛 공간의 아름다움도 떠오른다. 흙으로 된 마당에 비가 떨어져 촉촉하게 변하고 나와 마주한 마로(외가에서 키웠던 큰 개)도 개 집에 엎드려 눈만 껌뻑껌뻑 한 것이 그것대로 하나의 세계였다.


도망 다니다 외할머니에게 붙잡혀 끝내는 밥상 앞에 앉아서 밥을 먹다 보면 또 맛있어서 냠냠 먹게 된다. 그러면 외할머니는 나를 슥슥 쓰다듬으며, 교과이가 다 컸네, 밥도 한 그릇 다 묵고.라고 하면 금세 우쭐해져서 엄마와 떨어져 지낸다는 외로움도 잊곤 했다.


내 외할머니. 가끔 청국장을 먹으면 맛있지만 오래 전의 맛은 아니다. 청국장에 밥을 비벼 먹어도 외할머니의 추억이 빠져 버렸고, 기억이 소멸하고, 무엇보다 보고 싶은, 이제 얼굴도 가물가물한 외할머니가 없어서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청국장이 있다면 일본에는 낫토가 있다. 풀무원에서 낫토를 판매한다. 마트에 가면 낫토가 죽 있다. 먹기가 아주 편하다. 간장도 들어 있어서 간장을 따서 휘저어서 그냥 먹으면 된다. 밥 위에 올려 먹어도 되고, 식빵 사이에 넣어서 먹어도 된다. 청국장보다는 먹기가 훨씬 편하고 간단하다.


그러나 청국장과 낫토는 비슷하지 않다. 전혀 다르다. 청국장에는 바실러스균이 있는데 이를 고초균이라고 한다. 이 고초균에는 유산 발효균의 종류만 100가지 넘는다. 이 수많은 균에서 한 종류의 균을 추출하여 발효한 것을 납두균이라 하는데 이것이 낫토다.


근본적으로 낫토는 청국장과는 완전히 다르지. 이 납두균처럼 한 종류의 바실러스균만을 빼내서 발효시키면 청국장 같은 냄새는 없다. 더불어 청국장만큼의 영양도 없다. 일본은 낫토를 대중화하는 데 성공했다. 정부와 기업의 모종의 거래가 대중을 사로잡았다. 납두균은 간편하기도 하고 발효기간이 청국장에 비해 짧아서 만들기도 쉽다.


청국장에는 당연히 발효향인 시큼한 향이 조금씩 나야 하며 신맛이 있어야 잡균이 들어서지 않고 청국장 고유의 맛과 바실러스가 전해주는 영양도 듬뿍 섭취할 수 있는데, 어쩌면 청국장은 세대가 거듭할수록 전문점에서나 간혹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가 언젠가 청국장 자체가 소멸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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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1-08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접했을 때의 퀴퀴한 냄새만 적응하면 소울 푸드가 따로 없죠.

교관 2023-01-09 12:45   좋아요 0 | URL
맞아요 ㅎㅎ 진정 소울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