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로 시작하는 인간실격은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굉장한 인기다. 문학적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건 사랑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대단하다. 지난번 ‘위대한 개츠비’처럼 개츠비 보다는 피츠 제럴드의 일대기가 더 흥미롭고, ‘호밀밭의 파수꾼‘보다 샐린저의 일생이 더 흥미 있었던 나로서는 역시 ‘인간실격’의 요조의 이야기보다 다자이 오사무의 일생이 더 흥미롭다.


일본에는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영화도 많다. 게 중에는 사진가로 출발하여 니나가와 컬러를 열도를 넘어 세계로 진출시켜 버린 니나가와 미카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인간실격’도 있다. 니나가와 미카의 색감은 너무나 독특하고 아름다워서 니나가와 컬러가 여기저기 온통 뿌려졌던 때가 있었다. 니나가와는 사진에 만족하지 않고 광고를 섭렵한 후 영화까지 진출을 하는데 그녀의 첫 작품이 묘한 매력을 가진 배우 츠지야 안나를 주연으로 한 ‘사쿠란’이었다.


첫 작품인데 영화 내내 니나가와 컬러가 영상으로 펼쳐져서 정말 놀라게 된다. 게다가 영화를 뒤덮는 시이나 링고의 음악이 귀까지 사로잡는다. 니나가와는 이후 몰락해가는 사와지리 에리카를 데리고 ‘헬터 스켈터’를 만들어 사와지리를 다시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더니 오구리 슌, 미야자와 리에, 사와지리 에리카, 니카이도 후미를 데리고 ‘인간실격’의 요조가 아닌 다자이 오사무 영화를 만들었다.

인간의 자격을 잃은 남자가 7년 전에 쓰고 싶었다는 소설이 쓰이게 되는 과정과 계기를 그리고 있다. 역시 니나가와 미카의 화려한 색감으로 그려졌다. 화려함 뒤에 감춰진 그 쓸쓸함과 고독과 인간일 수밖에 없는 다자이 오사무의 모습을 그려냈다.

다자이 오사무의 사랑은 파괴 같은 것이다. 내 것이 있지만 더 아름다운 것을 가져야 한다. 낡은 사상을 끄트머리부터 주저 없이 파괴해가는 거침없는 영기에 놀라서 파괴 사상을 사랑하고, 파괴 사상으로 사랑을 갈취한다. 파괴는 불쌍하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같이 펴 낸 오타 시즈코 역시 대담한 여성이었다. 사양은, 일본이 전쟁에 광분하고 있을 때 다자이 오사무는 전쟁을 피해 자신의 고향 아오모리로 갔다가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자 다시 도쿄로 돌아와 자신의 말년을 보내게 되는데, 그때 다자이 오사무는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오른다. 그 계기가 된 작품이 몰락해 가는 귀족을 모습을 그런 사양이었다. 사양 발표 후 전국에서 알아주는 작가가 된 다자이 오사무는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요조의 이야기 ‘인간실격’의 윤곽을 구상한다.

오타 시즈코는,

사랑은 좋은데 연예는 나쁜 것인가? 이해가 가지 않아. 그런 애정은 모른다.

결혼은 잘 모르지만 연애라며 잘 아는 여자.

괴로우면서 즐거운 그런 연애가 나쁠 리 없는 오타 시즈코.

연애가 나쁜 거라면 저도 나쁠래요. 불량 이래도 좋아요. 애초에 전 불량이 좋은걸요.

멋진 여자였다.

오타 시즈코는 이혼을 하고 문학에 뜻을 두고 있었는데 오사무에게 편지를 보내 지도를 부탁했다. 다자이 오사무는 일기 쓰기를 권했다. 그 일기의 내용을 쓴 소설이 ‘사양’이 되었다. 이렇게 멋진 여성인 오타 시즈코는 다자이 오사무에게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다자이 오사무는 다시는 오타 시즈코를 보지 않게 된다.

그런 멋진 여성도 또 다른 여성이 나타나면 던져 버리는 말년의 다자이 오사무에게 대드는 편집자에게, 다들 사랑스러워서 품는데 무엇이 잘못인가, 나는 그렇게 생겨먹은 놈이다. 그러니 가려면 가거라.

몸이 끝없이 추락하여 객혈하는 가운데에서도 [인간실격]의 탄생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여인이 야마자키 도미에였다. 야마자키 도미에는 유부녀로 남편은 전쟁에 나가 있었다. 실력 있는 미용기술을 가진 여성으로 다자이 오사무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알고 지낸 지 한 달 만에 다자이 오사무를 사모하게 된다. 그리고 두 달이 되었을 때 같이 잠을 자는 관계로 발전한다.

야마자키 도미에는 다자이 오사무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이 전사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어도 마음의 앙금 같은 것 때문에 갈등이 컸던 모양이었다. 다자이 오사무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하숙을 하며 다자이 오사무와 만나다가 결국 두 사람들은 함께 자살을 한다. 도미에는 주우의 어떤 날카로운 시선에도 다자이 오사무를 놓칠 수 없었다. 도미에는 자살하는 그날까지 일기를 썼다고 한다. 일기의 내용이 대체로 다자이 오사무에 관한 기록이라 일본에서는 다자이 오사무를 연구하는데 그녀의 일기를 참고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와 결혼한 여성 쓰시마 미치코. 오사무가 객혈하며 건강이 악화되는 가운데에서도 그를 보살피고 3명의 아이들을 살뜰하게 챙긴 여성이었다. 결혼 전에는 여학교의 선생이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스승인 이부세 마스지가 힘을 써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이를 평범한 결혼이라고 표현했다. 결혼 전에는 가정을 소중히 지키겠다는 내용의 각서까지 썼지만 오사무는 지키지 못했다.

유명한 일화인, 금각사로 유명한 미시카 유키오가 찾아오는 장면도 영화 속에 나온다.

당신의 소설은 죽음을 쓴 연약한 소설일 뿐이오! 라며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을 폄훼한다. 그때 다자이 오사무는 “너도 나를 찾아온 걸 보면 나의 글이 좋아서 온 것이다”라며 응수한다.

우리나라의 문인들의 일화도 있다. 시인 이상과 소설가 김유정이다. 두 사람은 참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성격이지만 구인회 소속으로 둘이는 참 잘 어울렸다.

이상은 백석처럼 모던 보이에 투사 같은 사람이었지만 김유정은 유약하고 여린 감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으며, 몹시 가난한 데다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았다. 허무와 초현실의 이상의 글과 해학과 풍자로 가득한 김유정의 글로 보아서는 두 사람은 글로써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이상은 '희유의 투사, 김유정'을 쓰면서 김유정을 기분 좋게 표현했다.

두 사람의 일화가 있다. 1936년 가을 이상은 정릉의 한 암자에서 요양을 하고 있는 김유정을 찾았다. 이상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김유정을 찾았지만 본심은 따로 있었다. 더 말라버린 김유정을 보며 이상은 묻는다.

이상: 김 형, 각혈은 여전하십니까?

김유정: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이상: 신념을 빼앗긴 것은 건강이 없어진 것처럼 죽음의 꼬임을 받기 쉽더군요.

김유정: 김 형! 김 형!(김해경-이상의 본명)은 오늘에야 건강을 빼앗기셨습니까? 인제, 겨우 오늘에야 말입니까?

그러자 이상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김유정에게 제안을 한 다.

이상: 김 형! 김 형만 괜찮다면, 저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동반자살을 제안했다. 하지만 김유정은 그 제안을 거절한다. 자신은 내년에도 소설을 쓰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은 내일 동경으로 떠난다고 하고 김유정은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한 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였다.

내년에도 소설을 쓰겠다던 김유정은 돈이 없어 잘 먹지도 못한 채 삶을 마감하고 만다. 그해가 1937년 3월 29일이었다. 그리고 이십여 일 후인 4월 17일에 도쿄의 길을 걷던 중 김해경은 사망하고 만다. 이 둘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어떻든 영화는 니나가와 미카 덕분인지, 때문인지 너무 스타일리시하다. 니나가와 컬러가 이전의 영화처럼 화면을 가득 장식한다. 영화 속 다자이 오사무는 죽음도 장난처럼 여기고 죽음 앞에서는 소설과 같아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뜨거울 때 먹으면 더 맛있는 양념치킨. 근래에 먹는 양념치킨은 대체로 포장을 해서 집으로 들고 와서 먹는데 매장에서 바로, 갓 나온 뜨거운 양념치킨을 먹으면 정말 맛있다. 그때에는 케첩 맛이 많이 나든, 단맛이 많든 상관없이 뜨거운 양념치킨을 푸릅푸릅 먹는 맛이 있다.


한 때 우리의 단골 치킨집이 있어서 술을 마실 일이 있으면 단골 치킨 집으로 향했다. 하얀 접시 위에 갓 나온 뜨거운 양념치킨을 먹는 맛이 좋아서 우리는 후라이드보다는 양념을 주로 주문해서 먹었다. 뜨거운 양념치킨은 밥과도 어울려서 공깃밥도 꼭 주문해서 먹었다.


원래 공깃밥이 없어서 단골인 우리에게 밥을 막 퍼 주었는데 그러지 말고 공깃밥을 팔아라고 해서 그다음부터 공깃밥도 당당하게 메뉴판에 오르게 되었다. 우리가 일주일에 두 번씩 가서 양념에 밥을 비벼 먹으니 곡기가 당기는 다른 손님들도 그렇게 먹게 되었다.


치킨에는 맥주가 어울린다고 하지만 우리는 맥주가 배불러서 양념치킨에는 소주를 마셨다. 맥주는 천조국 놈들처럼 안주 없이 바닷가에 앉아서 홀짝홀짝 마시는 게 훨씬 좋다. 그러나 양념치킨처럼 입 안 가득 맛있게 와구와구 먹을 때는 소주가 좋다. 잘 어울린다.


아버지는 양념치킨에 소주 한 잔 마시는 걸 좋아하셨다. 아버지가 어릴 때에는 양념치킨 같은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점 이상은 드시진 않았다. 어렸던 우리에게 내주었다.


아버지가 회사에 다닐 때 회사는 자주 총파업을 했고 거기에 가담하기를 아버지에게 바랐다. 힘없는 노동자. 파업에 동참을 해야만 권리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굶는다. 파업에 동참하지 않고 작업을 하면 노동자들 사이에서 낙인이 찍힌다. 빌리 엘리엇의 아버지처럼 갈등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가난과 아버지만 바라보는 어린아이들의 얼굴이 눈에 익었으리라.


시간이 지나 양념치킨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그토록 먹고 싶었던 양념치킨을 마음껏 먹지는 못했다. 소주를 한 잔 마신다. 아버지는 노래를 듣는다.


비는 내리고

장맛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선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아버지는 노래를 들었다. 정태춘의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들었다. 다시는 눈물을 흘리지 말자. 총파업으로 물대포에 쓰러져간 동료를 생각하지 말자.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양념치킨 먹는데 아버지가 생각났다. 계신 그곳은 내내 따뜻하니 양념치킨 실컷 드시면서 총파업이니 노동자니 생각지 말고 편히 계시소.


https://youtu.be/AJfvq8fVRX4 정태춘, 박은옥의  ‘92년 장마, 종로에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23-01-01 1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캬~! 입맛 땡기네요.
희안한 건 울나라 사람들 반반을 사랑한다는 거죠.
짬짜면, 후라이드 반 양념 반. 소맥 등. 왜들 이러고 사나 모르겠어요. ㅎㅎ
새해 복 많아 받아요.^^

교관 2023-01-02 12:09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엔젤링이 어울리는 계절


카푸치노를 마시고 나면 컵에 이런 띠 같은 게 보인다. 몇 해 전에 소지섭이 맥주 광고에서 엔젤링을 유명하게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엔젤링에 대해서 열심히 검색을 해보았는데 맥주의 엔젤링이라는 것은 찾을 수 없었다. 물론 나의 검색 능력 때문이겠지.


그러다가 한 블로그 중에 봉군이라는 블로거가 맥주에 관해서 모든 것을 알려주고 있는데 그 사람이 구글링을 통해서 엔젤링을 찾아본 모양이었다. 결과적으로 광고에서 맥주 엔젤링 띠는 훅 하게 만드는 그저 광고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카푸치노를 마시고 나면 컵에 이렇게 엔젤링 나타난다. 이 엔젤링은 왜 나타나는 것일까. 이건 카푸치노에 들어가는 성분 때문이라고 한다. 카푸치노를 마시고 이렇게 엔젤링 띠가 나타나지 않고 그저 컵 안쪽 면에 흘러내리는 모습이 보이는 카푸치노도 있다.


카푸치노에는 커피 외에 우유가 들어간다. 우유는 데웠을 때, 그러니까 온도가 올라갔을 때 맛의 미묘함이 우유회사마다 다르다고 한다. 저지방을 쓰면 카푸치노 속에서 스팀기가 작동을 했을 때 변성을 가져오기에 많은 바리스타들은 각 회사에서 받아온 우유를 가지고 좀 더 맛있는 카푸치노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엄청나게 한다고 한다.


저 엔젤링 띠는 우유 속의 포화지방의 함량이 최소화되었을 때, 가벼워진 지방이 띠를 형성해서 커피 잔의 벽면에 붙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려면 거품의 양과 질감에 대해서 신경을 써야 하고 우유의 온도를 예민하게 맞춰야 한다. 이런 카푸치노 한 잔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커피에서 눈을 떼지 않고 커피를 만들어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커피쟁이가 만든 커피라면 한 잔이 주는 맛과 기쁨은 배가 될 것이다.


반대로 띠가 형성되지 않고 흘러내린 카푸치노는 지방의 성분이 많을 것이고 커피의 신맛을 죽이는 역할을 하여 카푸치노의 맛이 달리지기도 한다. 이렇게 온도차에 따른 우유가 들어가서 커피의 맛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바리스타들은 스팀기에 주목을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받아온 커피 머신의 스팀기 주둥이를 특별하게 주문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특별한 스팀 주둥이를 주문하는 곳은, 개인이 커피를 만들어 파는 작은 가게인데 그곳 주인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맛있는 카푸치노 하나를 만들기 위해 고심을 하다가 스팀기의 주둥이에 이유를 붙여 자신이 그 스팀기 주둥이를 주철로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그 소문이 알음알음 퍼져 카푸치노에 목숨을 건 바리스타들은 제작을 요구하고 그 주문받은 주철로 만들어내고 있다고 하니 카푸치노의 세계도 굉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몇 천 원 내고 마시는 이 한 잔의 카푸치노 속에 이런 숨은 노력과 꾸준함이 있었다니.


바야흐로 카푸치노가 어울리는 계절이다. 이런 날 카푸치노 한 잔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내가 이 넓은 세상에서 주인공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손을 뻗고 손이 닿는 곳에서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떤 좌절을 맛보았고, 어떤 노력을 했을까.

이 세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는 건 일찌감치 일아버렸다. 그러나 내가 속한 학교, 회사에서조차 나는 티 안 나는 변두리 인생일 뿐 단 한 번도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다.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어, 주인공을 늘 할 수는 없잖아? 그러나 내가 쓰는 글 속에서는 내가 주인공일 수 있는데도 나의 글 안에서조차 나는 주인공 주위를 맴도는 주변인일 뿐이다.

분명 어린 시절 모든 것이 나의 중심으로 돌아갔다. 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뱅뱅 맴도는 것 같았다. 내가 중심,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지옥의 화원, 이 영화를 한 줄로 말하자면 ‘만화 같은 등장에 만화 같은 강인함에 만화 같은 전개가 있는 병맛 영화‘다. 이 과함의 분출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랜만에 실컷 웃을 수 있다.

대괴수 에츠코의 과한 립스틱마저도 계산된 터치로 그려낸 캐릭터들의 병맛 과한 일본식 대사와 엔도 케이지가 오피스 레이디로 나타나는 이 기기괴괴하고 과한, 폭발하는 병맛 꽉 찬 영화를 보며 드는 생각은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가정에서, 친구들 무리에서, 내가 다니는 학원에서 심지어 단짝인 친구와 나 사이에서도 주인공은 내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설령 주인공이더라도 그 자리를 내줘야 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 온다.

만화 주인공 특유의, 뭘 잘 못하지만, 천진난만해서 어딘가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를 만들었고 주인공처럼 누구보다도 강해 보이자라고 항상 마음에 새겼다. 하지만 나는, 지고 말았다.

나는 결국, 주인공이 될 그릇이 아니었다. 나 같은 건 어차피 만화에서 흔한 아슬아슬하게 져서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주인공인 척했던 내가, 말도 안 되게 부끄러웠다.

이 영화는 두 가지의 관객으로 나뉜다. 뭐야 씨발라먹을 수박 새끼 같은 영화라며 뛰쳐나가는 관객과 하하하 역시 B급이 좋아, 과한 병맛이 좋아, 하며 보다가 나처럼 그 안을 잘 벌려 각성하게 되는 관객.

비록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시선을 달리보면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나는 또 다른 주인공인 것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지금처럼 열심히 싸우면서 재미있게 지내는 것이다.

영화는 마지막 뜻밖의 전개로 흘러간다. 영화 죠시스(여자들)처럼 온통 병맛이 영화를 꽉꽉 메우는데 잘 보면 꽤나 재미있는 포인트가 있는 ‘지옥의 화원’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왜 전부 하나의 포즈로 사진을 찍어요?


2주 전 일하는 건물 로비에 크리스마스트리 포토존이 생겼다. 나는 바로 트리가 보이는 곳에서 일을 하기에 로비를 지나치며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2주 동안 내내 봤다. 아이들과 함께 건물에 들어온 엄마아빠들은 어김없이 아이들을 앉히거나 트리 옆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전부 아이에게 카메라를 보라고 하여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대체로 아빠보다 엄마가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는데 백 퍼센트에 가깝게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보라고 하여 사진을 담았다.


자, 여기 봐, 여기 좀 봐. 폰 보자.


나이가 6, 7세 정도 된 아이들은 그동안 엄마에게 많이 사진을 찍혀봐서 가만히 훈련된 미소를 짓고 카메라를 봤다. 그러나 나이가 어린아이들, 2살 정도, 그 미만의 아이들은 카메라를 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는데도 반드시 카메라를 보라고 해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이상하다, 굳이 아이가 카메라를 보지 않고 고개를 돌리고 있어도, 뒷모습이라도 그것대로 사진을 찍으면 자연스러워 보이고 드라마틱하게 나올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모든 어른들이 아이들의 눈높이보다는 약간 구부정하거나 똑바로 일어서서 아이의 사진을 담으니 카메라가 밑으로 내려다보는 구도로 찍었다. 아마 태그로 들어가서 이 트리를 배경으로 찍은 아이들 사진을 보면 전부 비슷할 것이다.


아이들의 얼굴은 전부 다른데 모두가 비슷한 구도와 비슷한 모습을 사진이 찍혀 있는 건 어째 생각해도 이상하다. 어색하게 훈련된 미소와 아이들을 조금 내려다보는 듯한 카메라의 구도는 완벽하게 어른이 바라는 사진인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커서 지난날의 사진을 보면 왜 나를 이렇게 찍었어?라고 한다.


어떤 아이들은 너무나 순수해서 지나가면서 산타에게 인사를 한다. 오늘은 어떻게 지냈어? 라며 평소 친구에게 하듯이 말을 건넨다. 그때 말을 건넬 때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으면 아주 멋진 사진일 텐데, 그런 아이를 돌아서게 해서 미소 짓게 만든 다음 카메라를 보기 바라며 사진을 담는다.


물론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의 얼굴이 환하게 나오는 사진을 담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폰 갤러리를 보면 아이의 사진이 전부 비슷하다. 엄마의 눈에는 비슷하게 보이는 모든 사진 하나하나가 전부 소중하고 다르게 보이겠지만 사진에서 엄마의 사랑을 소거하면 너무나 재미없고 다 같은 사진일 뿐이다. 한 번쯤은 자유로운 아이의 모습을 담아도 된다.


아이의 사진으로 너무나 유명한 ‘천국의 정원으로 가는 길’은 유진 스미스가 자신의 아이들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아이들이 어딘가를 향해 아장아장 걸어간다. 그 뒷모습을 담았다. 제목처럼 정말 천국으로 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카메라를 응시하며 아이들 사진을 담는 작가 중에 셀리 만이 있다. 셀리 만은 자신의 아이들의 모습을 담았는데 이렇게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을 담아내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사진을 담고 있다. 마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는 듯이.




또 사진 저널리스트, 다큐 사진작가 메리 엘렌 마크 역시 카메라를 응시하는 인물을 많이 담았는데 다큐 사진의 특성이 짙게 드러난다. 메리 엘렌 마크는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빛으로 잘 표현한 사진작가라고 나는 늘 생각한다. 그녀는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검수하기도 했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영화를 보면 아주 짧게 메리 엘렌 마크가 나온다. 그녀는 비교적 우리와 오랫동안 같이 살아있다가 몇 해 전에 죽었다.




모두가 사진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이제 사진이라는 건 한 개인이 매일 수십 장씩 찍으니까 현재는 더 이상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게 되었다. 나의 가족,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기록한다. 이 만큼 추억하기에 좋은 매개는 없다. 내 아이의 모습을 담을 때 눈높이만 맞춰보자. 그러면 시간이 지난 후 그 아이가 조금 컸을 때 꽤나 드라마틱하게 추억할지도 모른다.

너 코


내 코



뭐 어쩌라고


디자인해 봄



출력해 봄



그나저나 트리 그렇다 쳐도 크리스마스는 너무나 기묘해서 하루만 지나면 캐럴이 듣기 싫다고하루 종일 나오는  캐럴들트리는 내년에 치우더라도 캐럴은 그만  틀어달라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22-12-29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배 피는 포스가 장난이 아닙니다. 포스가 함께 하길...

교관 2022-12-30 11:44   좋아요 0 | URL
네 ㅎㅎ 그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