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라고 꼬신다 ㅋㅋ 깨끗하다면서


도대체 술이 문제일까,

아니다 어쩌면 이 사회가 문제일지 모른다.


술을 마시는 사람이 문제일까. 후배 녀석이 만취에 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가보니 엉망진창이었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몰골이었다. 온몸에 붕대를 감고 얼굴은 전부 어딘가에 갈렸는지 형편없었다. 하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녀석은 굴지의 제조업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회사 내에서도 정문에서 술이 덜 깨면 돌려보낼 정도로 음주에 엄격하다. 하지만 엄격해서인지 회사원들은 회식으로 회포를 풀고 2차 3차를 가서도 술을 마신다.


우리나라는 술에 관대하다. 온갖 잘 나가는 연예인들이 밤 10시만 넘으면 소주잔에 소주를 채워 한 잔 맛있게 비우고 캬 한다. 유튜브에서는 본격적인 술방이 이루어진다. 본격적이라는 말은 잘 나가는 연예인들이 술 마시는 채널을 만들어서 술을 마신다.


우리나라는 술 광고를 밤 10시 이후에 내보내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밤 10시 이후 술 광고가 아예 없다. 만약 술 광고가 있어도 모델이 술을 마시는 장면은 광고에 넣지 않는다.


우리나라 주류 회사에서도 광고에는 스포츠스타나 여자 연예인들은 쓰지 않는다고 자체적으로 규정을 정해 놨다. 하지만 그걸 지키는 주류회사는 없다.


현재 한국의 물가는 거짓말 좀 보태서 살인적이다. 가장 저렴하게 구입해서 먹을 수 있었던 방울토마토와 김마저 서민들은 벌벌 떨며 사 먹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부자들은 예외로 두고, 저소득층 중에서도 혼자 살거나 어른들만 있는 집에서는 서로 덜 먹거나 다른 걸 먹거나, 과일과 야채를 매일 먹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저소득층이라도 아이들이 있으면 아이들은 굶길 수 없다. 80년대는 저소득층이라도 과일과 채소는 원 없이 사 먹을 수 있었다. 채소마저 비싸서 마음껏 사 먹지 못하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일까. 독립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에서도 외국 노동자가 한국 물가는 너무 비싸다고 했다.


술을 마시는데 관대하면 술을 권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광고에 아이유, 김지원, 파친코의 김민하, 공유 등 잘생기고 예쁜 연예인들처럼 술을 마시면 깨끗하고 청초하다는 느낌을 준다. 과음을 하는 연령층은 점점 더 어려지고 있다. 불황일수록 소주는 날개 달린 듯 팔려나간다. 과일과 채소는 비싸서 사 먹지 못하지만 소주는 사 마시게 된다.

                                        대세만 하는 소주 광고


스타들이 술을 마시고 약간 흐트러지면 대중은 자지러진다.

그 정도로 좋아해 버린다.


이영지가 하는 유튜브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에서 스타들과 술을 마시면서 방송을 하는데 영지의 리드미컬 한 리드와 술이 있어서 아주 재미가 있다. 술을 마시면 모두가 다 저렇게 기분 좋고 깔끔하고 깨끗하게 마실 거라 착각을 한다. 그 착각을 하는 대부분의 연령층이 어리다. 차쥐없의 게스트 스타들도 대부분 아이돌이거나 나이가 어리다. 그러니 보는 연령층 또한 20대가 많다. 그들은 술을 마시면 스타들처럼 깨끗하게 마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술 권하는 한국, 술 마시는 것에 관대한 사회에서 술을 마시다 보면 절제와 자제가 되지 않는다.


술에 관대한 사회가 무서운 이유는 4인 가족 시대에서 1인 가족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혼자 살게 되면 음식을 해 먹는 건 언감생심이며 손을 뻗을 수 있는 곳에 쉽게 둘 수 있는 것이 술이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기분도 좋고 피도 쭉쭉 돌게 하지만 그 적당히가 어느 정도인지 그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다.


시애틀 밸뷰 같은 곳의 술집에서는 10시가 되면 테이블 위에 술병을 다 없앤다. 그리고 술도 팔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새벽에도 뼈다귀해장국에 소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담배는 악착같이 경고를 한다. 영화를 볼 때, 드라마를 볼 때 흡연 장면은 모자이크가 된다. 도대체 그게 무슨 짓일까. 기안이 티브이 방송도 하지 않는 쿠팡 플레이 SNL에서 흡연을 한 건 온 언론에서 큰일이 난 것처럼 기사를 냈다.


영상 속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나. 흡연은 간접 피해를 줄지 모르겠지만 가장 피해를 많이 입는 건 당사자일 것이다. 담배는 악으로 규정짓고 있는데 술에는 관대하다.


만취 운전자는 묻지 마 살인자와 다름없다. 만취 운전자에게 사고를 당해 하루아침에 죽음으로 간 사람들 대부분이 하루 벌어 열심히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들이었다. 술에 취해 욱 해서 자신이 가장 사랑해야 할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폭행을 가한다. 술에서 깨어나면 잘못했다고 빈다. 하지만 만취하면 다시 폭행을 일삼는다.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법은 그들을 단호히 대하지 않는다. 도대체 술에 대해 왜 이토록 관대하고 권하는 한국인지 모르겠다.


2018년에 광고에서 캬 하는 음주 장면이 사라진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러나 사라지기는커녕, 지금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는다. 외국에서는 자기 술은 자기가 주문해서 자기가 알아서 마시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한 테이블에 앉아서 술을 마시는 순간 모두가 한 사람처럼 술을 마신다. 다 같이 들어서 건배를 하고 다 같이 완샷을 한다.


"꿀꺽, 캬~" 술 광고에서 음주 장면 사라진다 (2018.11.14/뉴스투데이/MBC)

https://youtu.be/uFHujaudKsQ?si=4vBrPb4eVDIp8XVE


아무리 생각해도 티브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흡연 장면은 모자이크를 하면서 술을 마시는 장면은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듯하게 보여주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열심히 일하고 집에 들어온 주인공이 라면에 소주 한 잔에 모든 것이 싹 내려가는 듯한 표정과 멘트를 한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드라마 속에서 술은 많이 마시면 강한 사람으로 표현되고 담배를 많이 피우면 루저로 표현이 된다. 우리는 이상한 세계의 중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종시처럼 소주시 같은 새로운 도시를 하나 만들어서 그 도시 내에서는 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술집도 없고, 마트에서도 술은 판매하지 않고, 도시 내 술 반입도 안 된다. 술이 싫은 사람, 술을 못 마시는 사람, 술을 마시기 싫은 사람들이 소주시의 시민이 된다. 술이 없기 때문에 다른 도시에 비해 음주로 인한 사고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타 도시의 시민이 소주시에 사는 친척집에 왔다가 술이 마시고 싶은데 도시에 술이 없어서 친구들에게 텀블러 10개에 소주를 가득 부어서 가지고 오라고 해서 소주시에서 몰래 술을 마신다. 그러나 금방 시청 음주계 직원들에게 걸리고 만다. 그리고 그중에서 한 명이 달아나서 만취에 운전을 하다가 죽어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잘 죽었다는 쪽과 반대쪽으로 나뉘었고 두 집단은 시위를 하면서 점점 과열되기 시작한다. 급기야 정부는 소주시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은 사형에 처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사람들은 양분화가 되어 내란이 일어나는 이야기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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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라는 건 참 어렵고, 너무 어렵고 복잡하고 애매하다. 특히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는 특별함과 동시에 속박과도 같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간관계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그 사람과 싫든 좋든 가까이 있어야 한다. 학교, 교실, 군대, 회사, 동네, 사무실, 학원 그리고 가족.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는 인간관계라는 말이 성립되기 애매하다. 멀리 있는 사람과는 인간관계가 복잡할 필요가 없다. 복잡하고 난해한 인간관계는 늘 나와 밀접하게 붙어있는 사람들이다.


세 자매 중 첫째와 막내는 부산 영도 본가에서 엄마와 함께 살고 둘째는 서울에서 방송국 작가로 일하다가 아버지 제사로 인해 고향으로 온다.


회사에 간 첫째, 학교에 간 막내 대신 둘째가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엄마는 자주 깜빡깜빡한다. 그러다가 엄마가 일하는 도시락 공장에서 실수로 불을 내고 만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지만 그 기회로 엄마의 치매 초기라는 걸 알게 된다.


너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언니에게 말하지만 언니는 퉁명스럽고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옆에서 잘해드리고 요양원이라는 말을 꺼낸다. 둘째는 그런 언니가 이해되지 않아서 요양원에 엄마를 보내지 말고 간병인 같은 말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의 관계를 이어주지 못한다. 모두가 일을 하고 와서 간병인 가고 난 후 누가 엄마를 밤새도록 캐어할 것이며,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같은 현재에 닥친 문제들. 관계에 있어서 나 하나만 생각할 수 없고 가족이라고 해서 어설프게 아는 척해서도 안 된다. 힘들다, 이 놈의 관계라는 건 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을까.


엄마는 일본에서 태어났고 일본 이름 하나코는 어릴 때 부산으로 와서 60년 동안 한 번도 일본에 가보지 못했다. 외할머니에게서 온 편지는 일본의 한 정신병원에서 의사가 써준 편지.


엄마는 자기 때문에 싸우는 딸들에게 마지막으로 교토에 가고 싶다고 한다. 이 영화는 엄마가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떠들썩하지 않는다. 치매가 천천히 인간의 뇌를 파먹듯, 영화는 조용하고 천천히 하지만 깊게 현실의 문제, 가족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죽고 못 살았던 내 새끼는 나중에 사랑하는 이를 만나 나를 떠난다. 형제자매는 피로 이어져 모든 걸 나누며 이해하는 관계일 것 같지만, 피로 이어졌다는 이유로 서로가 서로에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기도 한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과의 관계는 편하면서 어렵고 이상한 관계. 인간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 그런 존재가 모여 있다. 그러니 이상하고 또 이상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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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간인데 매일 하늘이 다르고 바람이 다르다. 올해 사월과 오월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어떤 사람은 봄비가 내리는 게 좋다고 하는데 나는 봄비든, 여름비든, 가을비, 겨울비, 비가 내리는 날은 별로다. 예전에는 무신경하게 창을 사이에 두고 앉아서 창밖에 비가 내리는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곤 했는데 요즘은 그것도 별로다.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데 여름이 되어서 일이 주 정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또 가뭄이라고 뉴스에서 난리를 떨 것 같다. 항상 최악의 가뭄, 같은 말들이 있었다. 최악의 가뭄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생각하는 게, 여기 강물이 말라빠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최악의 가뭄이라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최악, 역대급 같은 말을 너무 남발하는 게 아닐까 싶다. 역대급이라는 말이 뉴스에서 자주 들으니까 이 말이 참 듣기 싫다.


이번 코첼라에서 르세라핌이 역대급 무대였다고 했는데 그건 정말 역대급이었다. 역대급이라는 말은 그럴 때 사용해야 한다. 처참함의 정도가 역대급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 이상해서 엔믹스와 베몬의 완벽한 무대는 잘 봐지지 않는다. 특히 베몬의 라이브는 소름 돋을 정도로 좋다. 그러나 노래가 어렵고 고퀄이라 따라 부를 수 없는 지경에 무대까지 완벽하니 감탄하다가 지나가는데, 요즘 말 많고 탈 많은 하이브의 신예 아일릿의 마그네틱의 라이브는 마치 유치원 아이들이 무대를 하는 것 같아서 도대체 이게 케이팝의 현실이야? 하면서 계속 보다 보니 그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노래가 아주 쉽고 리듬이 단순해서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러다 보면 아일릿 얘네들이 라이브만 잘한다면, 같은 마음이 들어 버린다. 처첨한 무대를 계속 보니 슈퍼 이끌림~이 입에 맴맴도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다. 이 모든 게 정말 하이브의 계략일까 덜덜덜.

비가 많이 오는 가운데 사이사이에 맑은 날이 있었다. 어떤 날의 저녁은 구름이 층위를 나타나며 어둡기 전에 푸른 하늘이 펼쳐지더니 어느 날 저녁은 동쪽 하늘인데 노을과 비슷한 색감을 드러냈다. 참 신비한 컬러였다. 일 년 중에 한 번은 이런 색감의 하늘을 본다. 자주 볼 수는 없다. 하루나 이틀 정도 볼 수 있다. 365일 중에 한두 번 볼 수 있는 이런 하늘의 색감을 바라보고 사진을 한 컷 찍는다. 저녁 7시가 넘은 시간이기 때문에 찰나로 어두워지고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묘한 색감은 사라지고 만다.

노을은 노을대로 타오를 수 없을 정도로 타오른다. 휴지를 집어던지면 확 타버릴 것 같다. 노을을 담은 멋진 사진을 보러 가지 말고 직접 이렇게 자주 노을을 보자. 아름다운 것을 찾으러 다니기보다 곁에 있는 아름다움을 봐야 한다. 노을은 저녁에 나오면 볼 수 있다.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이 아름다운 노을은 볼 수 없다. 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소중한 것들은 늘 가까이 있으니 가까이 있을 때 어쩌고 하는 말을 한다. 동의한다. 그러나 인간은 늘 가까이 있는 것들은 놓치게 된다. 나 역시 인간이라 가까이 있던 소중한 무엇인가를 그동안 많이 놓치며 살았다.

너무 아름다와서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봄,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데 이만큼 가면 저만큼 도망가는 봄, 그렇게 봄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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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슴슴한 도다리국을 먹었는데 고요함이 입 안으로 확 들어오는 느낌. 도다리 매운탕만 먹었는데, 온통 축제 같은 분위기라 도다리의 맛은 뒷전이고 뻘건 양념 맛이 후려쳤는데 이렇게 고요한 맛이 묵직하게 입안을 채우다니, 너무 맛있는 거였다.


이 독립영화 ‘은하수’를 보고 나니 슴슴한 도다리 국을 먹은 느낌이다. 이런 영화라면 양팔을 벌려 격하게 환영하고 싶다.


영화는 가타를 잃어버려 그 기타를 찾으러 다니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나이가 많은 인디밴드 3인조 혼성 ‘은하수’는 자신들의 노래를 알아주는 곳을 찾으러 다니지만 그 어디에서도 받아주는 곳은 없다. 버스킹을 해도 아무도 듣지 않는다.


맏형 동은은 어린 시절 가정폭력에 집을 나와 펜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그곳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최호섭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가 두고 간, 사인이 된 그 기타를 아르바이트 비로 기타를 구입한다. 그 기타는 자신의 심장과도 같다.


하지만 그 기타는 어쩌다가 당근으로 팔려 나가고, 기타가 바뀌고, 다시 사채업자에게로 갔다가 어떤 할머니에게로 간다.


모두가 기타에 얽힌 사연이 하나씩 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에게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고 싶고, 누군가는 태어날 아이를 위해 과거를 청산하고 노래를 만들어 주고 싶다. 또 다른 누군가는 30년 전에 실종된 기타를 치던 아들을 위해 기타를 준비한다.


기타라는 게 악기 중에서 가장 접하기 쉽다. 하지만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 작은 오케스트라의 음을 낸다. 기타 하나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은하수는 노래를 부른다. 가사 중에 ‘우주 속 작은 빛이라도 의미가 있어’라는 부분은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먼지 같은 존재지만 먼지가 하찮지 존재는 하찮지가 않다.


이 영화에 카메오로 나오는 사람들이 대단하다. 노브레인의 이성우, 플라워의 고유진, 김현정과 박선주 등 마지막에는 최호섭도 나온다. 재미있었다.


영화의 유머를 장착한 대사도 겉돌지 않고 웃음이 나온다. 이 영화는 확고한 진실보다 흔들림이 많은 가능성이 훨씬 낫다고 말하는 것 같다. 밴드 은하수가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아주 따뜻하고 재미있는 영화 [은하수]였다.


고해형이 연기도, 게임도 잘하는데 노래까지 잘 부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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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해지면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아름다운 것만 찾게 돼



유난히 익숙해져 그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기분인지 감지하고 있지 못했다. 카페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가요가 끝없이 흘러나왔다. 노래는 계속 우리가 있어서, 우리가 있어서, 하는 가사가 나왔다. 나는 처음 보는 카페에 처음 맛보는 음료를 마시며 처음 앉는 자리에 앉았다. 그럼에도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익숙함 때문에, 익숙한 느낌이 드는 것 때문에 낯설지 않은 외로움이 들었다. 외로움은 느닷없거나 천천히 물처럼 차오르거나. 5월의 밤바다는 무척 차갑거나 아주 차갑거나.


여기서는 바다가 보인다. 바다를 매일 보는 나로서는 바다가 나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바다와 내가 사랑하는 사이라면 둘 중에 하나는 힘을 가지는 자가 된다. 바다가 나를 덜 사랑하게 되는 순간부터 바다는 나에게 힘을 행사한다. 더 사랑하는 나는 바다에 맹목적으로 매달리게 된다. 온전한 사랑을 하는 쪽은 매달리는 내 쪽이다. 하지만 오늘 바다와 나는 이별을 한다. 온전하게 하는 사랑과도 이별을 한다. 그리고 나는 내일의 바다를 다시 만난다.


그녀는 내가 만들어준 음식을 남김없이 먹었다. 내가 반도 먹지 않고 있으니 내 것을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끄덕였다. 음식을 만들고 있으면, 만드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 그녀는 나처럼 끄덕이며 입을 오물 거렸다. 미도리가 한 말이야. 그녀는 진지하게 듣지는 않았지만 내가 하는 말은 다 듣고 있었다. 카페의 문 근처에는 화분이 있었고 화분에는 난이 자라고 있었다.


언젠가 그녀는 내게 말했다. 난을 키웠어요. 개와 고양이와 달리 아무런 표현을 못하기에 물을 주고 정성스레 보살폈는데 자꾸 썩는 거예요. 내내 속상했는데 난은 다른 꽃처럼 물을 위에서 뿌려주면 안 된다는 걸 알았어요. 뿌리가 물을 마실 수 있게 해야 위에서 썩지 않는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요. 사람들도 먹는 음식이 다른데, 전부 다른 꽃들이 어째서 다 똑같이 물을 위에서 뿌려야만 한다고 생각을 했을까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전 너무 슬펐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을 하고 나서 손가락을 죽 펴서 손톱을 확인하는 듯 손가락 끝을 보았다.


이별이 이별이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익숙함이 내 삶에 깊게 들어와 있기 때문일까.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뭘 하면 안 되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시간 속에 내 몸은 풍덩 빠져 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하는 김광석의 노래가 떠올랐다. 이별에 익숙해져야 하겠지만 익숙해지는 것은 자의가 아니라 시간에 의해서이다.


시간이란 순수하여 모든 것을 하얗게 만들어 버린다. 시간은 기억도 하얗게 만든다. 너는 시간 속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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