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은 정말 대단하다. 시네마 천국의 시네마 파라다이스가 흐르면 우리는 대번에 토토가 되어 테이크로 흘러가는 키스의 장면을 바라보며 추억 속으로 들어가 알프레도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시네마 천국의 영화 음반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 자산이다. 음악을 들으면 알프레도를 찾아가서 영사기를 돌렸던 토토의 어린 시절, 엘레나 와의 뜨거운 사랑, 그리고 타버리는 극장을 보며 오열하는 장면, 알프레도와의 헤어짐이 장면 장면 스쳐 지나간다.

 

알프레도는 엘레나의 메시지를 어째서 토토에게 전해주지 않았을까. 영화를 봤을 때는 그런 알프레도에게 조금은 화도 났지만 시간이 지나 토토가 세계적인 감독이 되었을 때, 그 지난날의 지난한 시간을(엘레나와 맺어지지 않았기에) 보냈기에 토토는 그 슬픔을 영화로 승화시켜 세계적인 감독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상처는 슬픔을 만들고 슬픔은 때때로 예술의 동력원이 되기도 한다.

 

이 앨범의 A면 6번 러브 테마를 듣고 있으면 그 아름다운 선율과 필름이 돌아가면서 나오는 사랑하는 이들의 키스 장면은 사랑을 했기에 헤어짐의 키스도, 사랑을 시작해서 불타는 키스도 토토의 촉촉한 눈가를 통해 하나의 테이크로 스쳐간다.

 

시네마 천국을 좋아한 사람이라면 대번이 음악이 흐르면 그 장면, 하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감독판이 있는데 그건 두 시간이 훨씬 넘는 173분짜리다. 감독판을 봐야 엘레나와 토토의 재회 부분이 있다. 압축판은 그 엘레나의 시퀀스가 통째로 날아갔다.

 

시네마 천국은 언제 어떻게 꺼내느냐에 따라 지금 내가 처한 현실과 영화의 경계 지점에 어떤 식으로 다가갈 수 있는지 다른 사유를 제공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는 여전히 영화 같은 삶을 간절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눈물이 말랐다고 생각이 들 때 시네마 천국을 살며시 꺼내서 보면 촉촉하게 눈가를 적셔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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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누군가 나의 책을 읽고 리뷰를 해주었는데 글을 쓴 나보다 더 글을 좋아해 준 것 같은 기분이다. 나의 다른 책이 나온다면 읽을 계획이라는 말에 묘한 기분이 든다. 시와 소설은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작년의 나에게 일어난 신기한 여러 개의 일 중에 하나는 단편영화를 제작하여 극장에까지 올려 상영을 한 신입 영화감독이,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봐 달라며 보내온 일이었다.

 

나는 시나리오를 한 편도 본 적이 없다. 보내온 시나리오를 펼쳐 보고 이것이 영화 시나리오라는구나, 하며 신기해했다. 시나리오라는 것은 소설과는 다르고 에세이와는 전혀 다른, 마치 눈앞에 노을 질 무렵에서 어스름해질 무렵으로 넘어가는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는 주인공인 시원과 주영이 있는 듯하다.

 

S#이 뭔지, 인서트에 대해서 찾아봤던 작년이 떠오른다. 시나리오 어땠어요?라고 물어오면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시나리오에 대해서 나 같은 인간이 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시나리오에 대해서 묻지 않았고 나 역시 시나리오에 대해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어쩌면 서로가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글’이라는 크고 굵고 단단한 강이 흐르고 있어서 마르지 않는다는 것을 무언으로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우리 사회가 변영주 감독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변영주 감독은 어떤 우울하고 암울하고 슬픈 영화 속에서도 위트와 유머를 찾아낸다. 이 사회가, 그 속의 우리들이 변영주 감독 같다면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변영주 감독이 인간이 망가지는 길의 첫 번째는 같은 영화를 수십 번 본다. 두 번째는 그 영화에 대한 리뷰를 작성한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뛰어들면서 망가진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기분 좋게 망가지는 것이다. 한 번도 망가지지 않고 죽는 것 또한 불행하고 슬픈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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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정장 상의 안으로 보이는 흰색 블라우스는 단추 두 개는 풀어져있어서 책상에 앉아 있으면 그녀의 가슴골이 살짝 드러났다. 그런 박는개의 모습이 의도적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남자직원들의 시선은 언제나 박는개에게 향해 있었다. 그녀와 책상이 가까이 있는 남자직원들은 자신의 일을 하면서 박는개의 몸매를 가끔씩 훔쳐보느라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했다. 박는개의 몸은 호리병처럼 호리해서 그런지 가슴은 더 커보였다. 회사 내 박는개의 존재는 사무실의 풍경을 감쪽같이 바꾸어 버렸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꾸벅꾸벅 조는 남자직원들의 모습이 없어진 것이다.

마동은 는개와 잠깐씩 이야기를 해 본 결과 그녀의 상상력은 어떠한 범위를 넘어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분명하지만 마동이 속해 있는 회사는 똑똑한 사람보다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을 원하고 있었고 그런 사람이 창의적의 일을 하는 이 회사에 어울렸고 그녀는 그런 사람 중에 단연 돋보였다. 상상력이 떨어지지 않으면 무한한 발전이 있다는 것을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 대번에 알 수 있었고 그녀에 비해 보통 인간의 상상력이 너무 미흡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인간은 결혼을 하고 상상하는 능력이 부재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고 그렇게 되면 결국 협소하고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 버리기 일쑤다. 그녀가 지적이고 박식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식을 드러내는 일에는 소극적이었다. 반면에 일에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알고리즘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멋스러움을 가지고 있었고 마동은 그 모습을 찾아내면 은밀한 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기쁨에 찬 박는개의 심연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는개와 이야기를 하면 평범한 사람에게서 벗어나는 것 같아.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마동이 평소에 그녀에게 가끔씩 하는 말이었다.

 

"그래, 감기가 너무 심한 것 같아." 마동의 목소리는 사람의 목에서 나올 수 있는 소리가 이미 아니었다. 그녀는 마동의 어깨를 만져주고 자양강장제를 마동의 손에 쥐어 주었다. 는개의 묘한 분위기가 정장 밖으로 연기가 흘러나오듯 멈출 수 없이 뿜어져 나왔지만 지금 마동은 는개의 넘치는 매력을 느낄 만큼 일반적인 몸 상태를 지니고 있지 못했다. 매력을 흡수하기에 마동의 몸은 너무 지치고 고통스러웠다. 마동의 눈에도 그녀는 책속의 주인공처럼 지적이고 아름다웠지만 성적으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지금은 자신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을 했다. 몸이 앙상하게 변할 정도로 아픈데 눈치 없이 발기까지 해버리면 그건 정말 균형이 깨지는 일인 것이다.

는개는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마동에게 자양 강장제를 한 병 건네주며 한마디를 던졌다. 마동은 는개의 말에 대답을 했지만 언어라는 것이 마동의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분해되어 버린 비행기 잔해처럼 잔인했다.

마동은 웅웅거리며 자신의 귀로 들리는 이명에 더욱 머리가 지끈거리고 조여왔다. 시야가 협착하고 전등의 빛이 강하게 발산했다. 마동이 앉아있는 자리에서 주위에 있는 직원들의 의식이 의도함이 없이 마동의 뇌로 전달되었다. 밤처럼 집중을 할 수 없었고 무차별적으로 이명은 귀 안으로 들어와서 뇌의 여러 곳을 마구 찔렀다. 해가 숨어 버린 어둠이 지배하는 밤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의식이 자글자글 거리며 뇌 속, 작은 구간 속으로 징그럽고 아프게 파고들었다.

자글자글. 웅웅. 자글자글. 웅웅.

직원들의 의식은 머릿속으로 침투하여 속절없이 쌓였다. 뉴욕의 거리 뒷골목에 쓰레기가 분리되지 않고 쌓이듯 마동의 머리를 둘러싸고 있는 벽을 허물어트리려고 창으로 찌르고 돌을 던져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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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개구리

 

개구리의 본명은 소옥이었다. 소옥이는 지네 학교의 문예부 부장으로 기철이와 우리가 몇 날 며칠을 같이 써서 교지에 실은 유재하의 글을 보고 우리학교로 찾아왔다. 남자고등학교에 당당하게 찾아온 소옥이를 보며 학교 아이들은 창문에서 휘파람을 불었고 추파를 던지는 애들도 있었다.

소옥이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앞만 보며 곧장 걸어서 교무실로 들어와서 문예부 선생님을 찾아서 용무를 말하고 문예부에서 기철이를 만났다. 그게 소옥이, 그러니까 개구리가 우리와 어울리게 된 처음의 장면이었다.

 

개구리는 버지니아 울프를 무척 좋아했고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을 여러 번 읽은 문학소녀였다. 매일 습작을 했고 원고지를 구기고 펴는 걸 게을리 하지 않았다. 개구리는 몇 시간이고 꼼짝 안고 책을 읽었는데, 우리와는 조금 스타일이 달랐다.

우리도 책을 좋아했지만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한 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대부분 어딘가에 쭈그리고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며 책을 좀 읽었고, 슈바빙에 너무 일찍 가서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 책을 읽었고, 또는 슈바빙 주인 누나가 어딘가 외출을 해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계단에 앉아 책을 읽거나, 당구를 칠 때 큐대를 잡지 않고 친구들이 게임을 하는 동안 책을 읽거나 했다. 보통 이런 식이었다.

 

어떻든 개구리는 책을 좋아했다. 역시 읽는 방법은 달랐지만 우리도 그랬다. 개구리의 입에서 나오는 풍부한 단어와 어휘력과 독특한 음악취향이 우리를 그녀에게로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들어 버린 것 같았다.

개구리는 안경을 썼는데 안경 밖으로 튀어 나올 만큼 큰 눈동자를 지녔다. 뒷머리를 툭 치기만 해도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큰 눈이 얼굴에 붙어 있으니 꽤 조합이 나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사진에도 관심이 많아서 나에게 사진에 대해서 이것저것 질문을 많이 했다. 질문은 늘 어려웠고 대답이 시원찮으면 졸업한 선배(사진과에 진학을 한)를 만나게 해달라고 나를 조르기도 했다.

그렇게 두드려팼던 선배들을 다시 만나야 한다니 생각만해도 치가 떨렸다. 개구리의 학교에는 사진부가 없었기 때문에 개구리는 흘러넘치는 사진에 대한 호기심을 푸는 창구를 나로 하여금 풀려고 했다.

개구리는 가제보의 ‘아이 라이크 쇼팽’을 즐겨 들었는데, 노래방에서 그 노래를 부를라 치면 전주부분만 몇 분이나 나오기에 우리는 이미 지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가제보의 그 노래는 꽤 좋아서 개구리가 올 댓 재즈에 오면 올리브가 가제보의 노래를 틀어 주었다. 꽤나 그 순간은 낭만적이었다.

 

집이 울릉도인 득재의 생일에 우리는 올 댓 재즈에 모였다. 올리브가 특별히 주방에서 닭을 튀겨 왔다. 그냥 페리카나를 배달 시켜 먹기를 우리 모두는 바랐지만 우리의 바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올리브의 요리 솜씨는 좀 뭐랄까, 긴장을 하고 음식을 대하게 만들었다. 과연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늘 팽팽하게 자리를 잡았다. 올리브가 끓여주는 라면은 라면일 뿐인데도 치약 맛이 나는 그런 능력을 지녔다.

올리브가 야심차게 닭을 두 마리나 튀겨 왔다. 닭이란 온도를 맞춰서 기름에서 튀기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도 닭튀김을 여러 번 집어먹은 우리들은 돌아가며 화장실을 갔다 왔다. 뭘 집어넣어서 튀겼는지 닭에서는 매실 맛이 나기도 했고, 시큼한 맛이 나기도 했는데 식초를 가득 넣어서 튀겼다고 했다. 맙소사.

득재만 기분이 좋아서 술을 계속 마시며 닭을 먹었다.

그러던 중 득재가 눈이 풀려 말했다.

“세상에 좋게 헤어진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어. 좋게 헤어지는 방법을 알아 보기 위해 좋지 않게 여러 번 헤어지는 경험을 하는 바보도 없다고 씨발, 헤어질 땐 미친놈 취급을 당하더라도 울부짖고 매달릴 수 있을 때까지 매달리는 거야. 왜냐하면 이 세상 이별의 대부분은 그대로 영원히 이별이 되기 때문이야! 그때 입 밖에 내지 못한 말은 영원히 갈 곳을 잃어버리게 된다구!”

득재의 머리는 테이블로 푹 떨어졌다.

개구리가 그 큰 눈으로 득재를 시부지기 바라보았다. 득재를 바라보는 개구리의 눈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엿보였다. 올 댓 재즈에는 아이 라이크 쇼팽이 반복되어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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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자를 알게 된 건 순전히 음악감상실 때문이었다. 프랑스 음악이라고는 에디트 피아프, 파트리샤 까스 정도였다. 조지 밴슨의 ‘낫띵스고나 체인지 마이 러브 포 유’를 불러 인기를 얻은 글렌 메데이로스가 엘자와 노래를 같이 불러 알게 되었다.

 

글렌 메데이로스,라는 이름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어쩐지 촌스럽지 않으며 이름이 긴데도 발음하면 길어 보이지 않고, 영어 발음이 좋은 사람이 ‘글렌 메데이로스’라고 발음하면 호감이 대번에 갈 것 같은 이름이다. 글렌 메데이로스는 이름만큼이나 좋은 얼굴로 노래까지 잘 불러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건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받게 하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글렌 메데이로스는 엘자와 ‘프렌드 유 기브 미 어 리즌’이라는 듀엣곡을 불렀다. 여기서는 엘자도 영어 버전으로 부르는데 ‘엉 로망 뒤£¥$§#&’에서는 엘자가 불란서버전으로 부른다. 영어로 하면 ‘러브 올웨이즈 파운드 어 리즌’이다. 뮤직비디오는 80년대 불란서인지 미국인지 아름다운 해변에서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를 너무 잘 연기한 덕분에 실제 사귀기도 했다.

 

엘자의 얼굴은 불란서의 얼굴보다는 구라파의 얼굴에 가까워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불란서 출신 배우들, 줄리엣 비노쉬나 줄리 델피의 얼굴이 엘자에게 보인다. 엘자의 얼굴은 되게 동양적인데 눈은 구라파, 언어는 불란서 뭐 이런 느낌이다. 엘자는 가수지만 데뷔는 영화로 했다.

 

이름도 멋진 글렌 메데이로스와 듀엣을 불러 알게 된 엘자의 노래를 음악감상실에서 여러 곡 들었다. 머리에 박혀있던 샹송의 이미지가 깨졌다. 엘자의 노래는 장벽 같던 샹송이 아니었다. 엘자의 노래는 꼭 가요를 듣는 것 같았다. 강수지가 불란서어로 부르는 느낌? 제대로 설명할 수 없지만 들어보면 가요처럼 친숙하다.

 

한때 불란서 음악을 꽤 들었는데 대체로 가요와 비슷하여 듣기 편해서 신기해하기도 했다. 얼마 전 티브이 먹방예능 국경 없는 포차인가, 거기서 에펠탑이 보이는 곳에서 열린 포장마차에서 프랑스인들의 흥이 어쩐지 한국인과 비슷하게 보였다.

 

미래 같은 걸 모르고 그저 하루를 견디기 바빴던 중고등 시절에는 그래서인지 음악을 꽤 다양하게, 집중적으로 들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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