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간 각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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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를 입어보고 나와서 여자는 남자친구에게 묻는다.
어때? 예뻐?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남자가 피곤한 얼굴로, 어 괜찮네. 그거 사면되겠다.
그러자 여자가, 그래? 그럼 아까 거랑 이거랑 둘 중에 뭐가 더 예뻐?
이런 질문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피곤한 남자는 한숨을 쉬며,
하아 글쎄 뭐 아까 것두 뭐 지금도 괜찮구.
예쁘냐고 물었는데 괜찮다고 대답하는 남자.
여자는 들고 있던 치마 두 벌을 다 내려놓는다.
죄송한데요, 저 좀 더 둘러보고 올게요.
이것은 쇼핑이 계속될 거라는 무서운 선언! 남자는 더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또 시작이네.
그러고도 한 시간 남짓.
그렇게 옷 가게를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는 동안 남자는 점점 인내심을 잃어간다.
그러니까 말을 해봐, 네가 찾는 스타일이 정확히 어떤 건데? 아니 뭔가 찾는 게 있을 거 아니야. 긴치마면 긴치마! 짧은 거면 짧은 치마, 뭐 뭐 딱 붙는 거, 펄럭거리는 거 그런 게 있을 거 아니야.
여자친구의 대답은, 그냥 예쁜 거.
그 어이없는 대답에 남자기 막 폭발하려는데 여자가 그런다.
그리구 나는 다리가 안 예쁘니까, 그거 카버 해줄 수 있는 거.
이건 또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남자가 쳐다보자 여자가 그런다.
내가 처음 치마 입고 나왔을 때 니가 그랬잖아, 나 다리 못생겼다구.
남잔 진심으로 놀란다.
무 무슨 소리야, 내가 내가 언제?
그때, 내가 다리 안 예뻐서 치마 잘 안 입는다 그랬더니 니가 아무 말도 안 했잖아, 아 그러세요? 그런 표정으로.
남자는 억울해서 숨이 넘어간다.
아니, 아무 말도 안 하면 못생겼다는 거야? 야 그러면 그때 우리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막 니 다리 보면서 어우, 다리가 정말 예쁘시네요, 막 그랬어야 되는 거야?
그 숨 넘어가는 소리에 대한 여자의 대답.
어!
예전에 아흔이 다 된 할머니들의 무용 사진을 찍어준 적이 있었죠. 아휴, 이젠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못해, 사진도 찍기 싫어,라고 말하면서도 할머니들은 새 스카프를 두르고 립스틱을 좀 더 붉게 바르고 없는 머리를 빗고 또 빗었습니다. 할머니들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안 될 것 같아요. 몸만큼 마음도 같이 늙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이란 내 마음은 아직도 귀여운 척하고 싶은 열일곱 언저리에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은 것뿐.
난 다리가 못생겨서 치마 안 입어!
자신의 미운 부분을 굳이 밉다고 인정받고 싶은 사람은 없는 법이죠. 나의 이 못생긴 부분도, 나의 이 못난 부분도 너만은 예쁘게 봐주면 좋겠다는 이야기. 연애하다 보면, 부부로 살다 보면 빈말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 빈말에 자신의 마음이 담긴다면 그건 어쩌면 빈말이 아니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