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좀 재미없는 인간이라 고전영화도 왕왕 본다. 디브이디가 많았는데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서 볼 수 있는 날이 도래하고부터는 더 이상 구입하지 않게 되고, 그러다보니 그 많던 디브이디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바람과 함게 사라지다, 도 

벤허도

사운드 오브 뮤직도 특히 올리브 트위스트는 여러 번 본 영화였는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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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뭉치인 톰은 베키에게 약혼을 하자고 하는데 이미 에미에게도 한 번 했던 말이라 베키가 화가 난다. 73년에 나온 영화도 아주 재미있는데 조디 포스터가 꼬꼬마 베키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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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녀석 허크(허클베리 핀)와 벤과 함께 가출하여 해적이 되려고 한다. 이 녀석들 집을 뛰쳐나와 뗏목을 타고 동네를 떠나고 만다. 하지만 부서진 뗏목만 발견하고 마을에는 세 아이들이 죽은 줄 알고 장례를 치르는데 거기에 나타난다. 이게 다 계산을 하고 아이들끼리 짜고 치는 일을 벌인 것이다. 사고뭉치, 장난꾸러기 톰과 허크. 이후로 톰과 허크는 보물을 찾으러 동굴로 기어 들어가고,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범인을 체포하기도 한다. 어린이의 눈으로 보면 정말 재미있는 것 투성이가 톰 소여의 모험이다. 원두막을 지어 놓고 그 속에서 사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 역시 좌충우돌 흥미로 가득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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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소여의 모험은 마크 트웨인의 1800년대 소설로 마크 트웨인은 사람이 실패를 하는 이유는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다 안다고 착각해서이다, 같은 멋진 말을 한 소설가다. 어떡하면 이런 멋진 말을 만들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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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소여의 모험에 대한 기억이 하나 있는데, 내가 어릴 때에도 톰 소여의 모험은 이 만화였다. 깊게 빠져서 보곤 했는데, 3학년 때 담임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소설 속 인물에 대해서 써 내라고 했는데 나는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을 써 냈다. 그리고 불려나가서 혼났다. 실존 인물이 아니라서 한 시간 내내 손을 들고 벌을 썼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이게 그렇게 벌을 받을 만한 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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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3학년 녀석이 허구의 인물을 좋아한다고 써 낸 글이 담임의 마음의 어느 부분을 긁었는지 한 시간 내내 벌을 쓰고 있었다. 그 사건은 어쩐지 내내 기억이 난다. 난 그때 동화 부였는데 거기에도 못 나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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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은 얼핏 휙 지나치면서 보면 아인슈타인과 닮았다. 늘 입에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고, 우체국에서 일했다고 한 것 같았다. 톰 소여에도 나오지만 그 만화에 흑인이 많이 나오는데 노예, 주인 개념이 없다. 마크 트웨인 역시 흑인들과 애정이 두터웠다고 한다. 그 기저에 동정은 없었다고 한다. 감상주의를 멀리했는데, 맑은 마음이 아니고서는 인간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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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은 도서관에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 지식을 쌓았다고 한다. 마크 트웨인의 놀라운 점은 글을 써 기고하고 돈을 번 것도 있지만 발명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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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윌리엄 포크너의 ‘곰’을 읽고 있는데 책만 펼치면 잠이 쏟아진다. 윌리엄 포크너 역시 마크 트웨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소설로 읽으면 도저히 아이들이 모험을 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모험의 강도가 세다. 그 속에서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인의 정신과 사회상을 깊이 다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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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째서 그런 생각 따위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까.

 

마동은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지만 이미 해버린 생각을 지우개로 지운다거나 없애지는 못했다. 그 여자에 대한 생각의 물방울들이 뇌의 표피에 가득 붙어 촉촉하게 만들었다. 흥분되는 기분을 멈출 수가 없었다. 비가 떨어져서 탁탁 튀었지만 달은 희미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달이 지니고 있는 냉철한 달빛을 마동은 쳐다보았다. 오늘밤에는 달이 청아하지 않았다. 구름에 가려 아슬아슬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을 뿐이었다.

마동은 대나무공원의 벤치에서 여자가 오고 있는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떨어져 벤치에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벤치의 끝을 잡고 팔굽혀 펴기를 15회씩 두 번을 했고, 천천히 무릎을 구부렸다 폈다. 그것을 다시 세 번 반복했다.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그녀가 걸어와야 했지만 긴팔에 긴치마를 입은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동은 기다리고 있었다. 슬슬 애가 타기 시작했다. 머리의 한편에서는 어서 조깅코스를 달리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여자를 기다리고픈 마음이 마동을 그 자리에 계속 잡아 두었다. 언제나 머리와 마음이 부딪힌다. 여자에게 다가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마동은 고개를 흔들었다. 처음 보는 이상한 여자를 생각할수록 마음속에 흐리고 엷은 비감 같은 것이 생겨났다.

 

지금 내가 뭐하는 것인가. 모르는 여자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을 내가 꿈꾸고 있는 건가.

 

마동은 계속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머리카락 끝에 붙은 빗방울이 허공으로 춤을 추며 떨어져 나갔다. 비는 소나기에서 강도가 줄어들어 흩날렸다. 치누크가 불어와 흩날리는 빗줄기를 지그재그로 세상에 뿌렸다. 시선으로 떨어진 비가 마동의 어깨와 콧등을 적셨다. 한여름에 떨어지는 비는 더 이상 시원하지 않았지만 땀을 흘리고 맞은 비는 상쾌한 기분을 자아내게 했다.

마동은 손등으로 콧등의 비를 닦은 후 조깅코스의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 보았다. 마동의 페니스가 조금은 진정이 되었지만 아직은 트레이닝 하복의 앞섶이 봉긋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지금은 개불이 딱딱하게 냉동이 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마동은 약간 빠르게 걸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지만 가슴골이 매력적인, 긴팔에 긴치마의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되돌아서 200미터를 왔지만 사람의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스쳐 지나치기도 했는데 이제 돌아가 버린 것일까.

 

마동은 혼란스러웠다. 기이한 기분을 자아내게 하는 바람부터 여름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의 여자까지.

 

이 모든 게 내가 만들어 낸 현실의 모순일까.

 

환상이라고 하기에는 긴팔의 긴치마를 입은 여자와 스치는 야릇한 접촉이 있었고 시각적으로 들어온 정보가 정확하고 생생했다. 마동은 자신이 받아들여서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뇌파를 끄집어내보고 싶었다. 이것이 진정 마동이 꿈꾸고 있는 모습인지 아니면 실제로 마동이 본 모습인지 지금은 판단을 미뤄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일 정신과 상담도 받아야하고, 끝내지 못한 회사의 작업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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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이란, 이라크의 불편한 영화도 많이 봤다. 화면이 불편한 영화도 있지만 그 내용이 불편하여 음식을 먹으며 볼 수 없는 불편한 영화들을 그동안 많이도 봤다. 그래서 어지간한 불편한 영화가 아니면 나는 영화를 보면서 불편하지 않다. 사람을 토막 내는 고어물을 보면서 라면을 먹고 목을 잘라먹는 화면의 불편함으로는 내가 김밥을 먹는 것을 막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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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영화 ‘레슬러’를 보는 내내 억지와 불편의 연속이 계속되어 눈물이 나올 뻔한 영화는 근래에 이 영화가 처음이었다. 이 영화는 한국식 늙은이 영화다. 이런 영화가 지속적으로 나올수록 한국 영화는 발전과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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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과거 레슬링 선수였던 귀보는 아들을 국가대표로 만들고 싶어 하는 그런 내용이다. 그 사이에 아들인 성웅과 소꿉친구인 가영이가 성웅의 아버지 귀보, 유해진을 좋아하고 그런 가영을 성웅이 좋아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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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나 차이나는 친구의 아빠를 좋아한다는 건 판타지 일 수 있다. 비난은 아니지만 비판은 받을 만하다. 내 딸이 딸의 친구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그건 비판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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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영화가 가영이를 대하는 태도다. 비판받아야 하지만 귀보를 향한 가영의 사랑은 진심이다. 하지만 가영이가 귀보의 체육관에서 귀보와 훈련을 받는 장면에서 영화는 가영이의 엉덩이를 클로즈업한다. 영화의 세계관은 가영이의 육체는 사랑을 나눠도 되는 몸이지만 가영이의 정신은 어린아이로 대하고 있다. 역겨운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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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내내 여자를 대하는 태도를,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 하고 노출이 있는 옷을 입어야 하고, 의사로 나온 황우슬혜는 처음 선 보는 자리에서 섹스를 하자고 한다. 영화는 여자를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다. 가영의 철없는 사랑이 사회가 이루어 놓은, 늙은이들이 만들어 놓은 모든 질서를 파괴하는 나쁜 것,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 옳은 것에서 반하는 것으로 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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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은 물론 어리다. 그렇지만 내가 만나본 스무 살 중에서는 나보다 훨씬 현명하고 똑똑하며 용감한 스무 살들도 있었다. 모든 스무 살의 사랑이나 행동이 어리석고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현재의 나보다 못한 현재의 스무 살도 있겠지만 나보다 훨씬 나은 스무 살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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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의 시작도 스무 살이었던 이화여대 학생들이 제대로 된 학교를 만들어 싶어서 들고일어나면서 부터다. 현재 소녀상이 이렇게 전국, 여러 나라에 세워질 수 있었던 것도 스무 살이었던 대학생들이 추위에도 천막을 치고 그 속에서 잠을 자면서 지켜왔기에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그 어떤 꼰대들이, 늙은이들이 할 수 없는 것을 스무 살이기에 가능하다. 이런 영화는 나와서는 안 되는 영화이며 이 영화는 비난받아 마땅한 망작, 졸작, 괴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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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처럼 전혀 땀도 흘리지 않고 무표정한 주차요원을 '이스터석상'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스터석상은 할 일을 마치면 다시 돌아가는 턴테이블의 바늘처럼 의자가 있는 자리로 총총히 되돌아가서 앉았다. 그리고 매의 눈으로 자신이 할당받은 구역 안의 주차구간을 샅샅이 주시했다. 이스터석상의 움직임에서 불필요한 움직임은 전혀 찾아 낼 수 없었다. 의자에 앉아서 휴대전화를 보거나 담배를 피거나 누군가와 말을 섞지도 않았고 무더운 날씨나 주차요금을 내지 않고 그냥 가는 사람들 때문에 짜증을 내지도 않았다.

이스터석상은 그만의 세계 속에서 이 세계를 접목시켜 활동하고 있었다. 그것이 타인과 다른 모습이지만 많은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이스터석상만의 방법일지 몰랐다. 이스터석상은 독자적인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다.

약 때문인지 플라시보 때문인지, 불쾌한 증상들은 사라졌다. 태양의 무시무시한 열기도 조금은 참을만했다. 그렇지만 태양이 쏘아대는 빛은 너무나 눈이 부셨다. 눈을 제대로 뜨고 있기 힘들 정도였다. 아직 가을이 오려면 한참 남았는데, 선글라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당일]

조선후기 춘화 속에는 시냇물이 흐르는 정자위에서 달밤에 부엉이 울고 대청마루를 침실삼아 정사를 벌이거나 풍광이 좋은 산천을 배경으로 섹스를 즐기는 모습이 자주 나왔다. 자연과 남녀의 몸이 하나가 되는 음양의 조화로 야외 정사는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여겨졌던 모양이었다.

예전의 에로틱 공간이라면 추수절을 앞둔 보리밭이나 물레방앗간과 폭포가 단연 으뜸이었다지만 지금은 밤의 해변이나 계곡도 좋을 것이다. 침입수가 우거진 자연림 속에서 달빛을 받으며 섹스를 즐기면 꽤 낭만적이거나 멋진 일이다. 파도 소리, 풀벌레 소리가 울려 퍼지고 먼 곳에서 들리는 인기척은, 없어서는 안 될 야외 섹스의 묘미이다. 너무 고요하기만 해도 어딘가 이상하다. 섹스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가정에서 단조로운 섹스보다 황폐하고 지저분한 화장실 옆에서 격렬하게 하는 섹스를 사람들은 동경했다. 결혼하고 몇 년 지나면서 남자들은 창녀들과의 격렬함을 찾아서, 아내들은 보이프렌드를 찾아서 헤매기도 한다.

물위로 얼굴만 내민 채 물 속에서 하는 은밀한 짓거리, 산책길에 밤바람을 즐기며 껴안은 채 걷다가 나무에 기대어 하는 키스, 인적 없는 밤바다, 으슥한 리조트 풀장 근처에서 들리는 가쁜 숨소리는 영화 속에서만 가능할까. 파도 소리, 바람 소리와 함께 무드가 집으로까지 이어져 가면 부부는 더 없이 좋은 사이가 된다. 야외 섹스는 우리 조상들도 즐기는 편이었으며 예부터 건강한 정사로 불렸다고 한다.

 

야. 외. 섹. 스. 는. 우. 리. 조. 상. 들. 도. 즐. 기. 는. 편. 이. 었. 으. 며. 예. 부. 터. 건. 강. 한. 정. 사. 로. 불. 렸. 다. 고. 한. 다.

 

책에서 본 문구와 활자들이 마구 마동의 머릿속에 나열되었다. 마동의 머리와 온몸의 세포는 가슴골이 깊은 신비한, 미쳐 보이기까지 한 여자와 야외에서 하는 섹스를 그리며 흥분을 지속시키고 있었다. 마동은 여자를 떠올릴 때마다 페니스가 피노키오의 코처럼 조금씩 자라나는 것 같았다. 트레이닝복 앞섶이 점점 부풀어 올랐다. 그렇지만 현실은 정론처럼 착착 이어지는 귀결이 아니라 변증적으로 행해지는 모순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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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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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바닷가에 바람이 심하게 붑니다. 이것을 우리는 해풍이라 합니다. 해풍을 문학적으로 애이불비하며 지내온 바다를 어루만지는 바람이라 일컫습니다. 바다는 해풍으로 인해, 마치 사랑을 잃은 초현실 미술가가 그려 놓은 그림처럼 심하게 울고 있습니다. 주름을 수십 개 만들어서 출렁거립니다. 카페 안에서 보면 이 모든 게 그저 꿈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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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을 듣고 있으면 애이불비 한 바다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어느 날 박새별이 파릇한 이십 대 초반에 부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들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린 목소리에 그렇게 덤덤하게 부르는데 한없이 듣고 있던 나를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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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는 류근 시인의 유언이었는데 김광석이 곡을 입힌 것이라 했습니다. 가끔 시라고 불리는 것을 적고 있으면 감성이 남다르네 같은 말을 듣습니다. 시는 감성이 아니라 고통으로 써내는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감성으로 시를 적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고통 없이 시를 적어내는 것 또한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시에는 그 시인의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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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여기 바닷가에서 당신이 준 박정대 시집을 매일 읽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슬라브식 사랑과 어딘지도 모를 어느 해의 연안, 그리고 춥고 뜨거운 하늘과 바다를 몇 번씩 건너곤 했습니다. 오늘의 해풍도 바다의 고통이 일으킨 바람이라 생각합니다. 해풍은 바다를 울게 만들고 덕분에 한 계절이 아프게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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