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 알렌의 Fuck You는 세상에서 가장 신나고 따뜻하고 싱그러운 퍽 유다

 

이렇게도 노래를 맛깔스럽게 부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릴리 알렌은 퍽 유를 산뜻하게 부른다

 

이 정도로 욕을 하려면 네 녀석이 싫은 것을 넘어서 아무 관심도 없게 되어 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틀에 박혀 있고 타인의 눈치나 보고

주위의 이야기에 자제력을 잃고

그것을 나에게 강조하는

너 따위에게는 이젠 관심이 1도 없구나

 

그렇게 되면 이렇게도 신나게 퍽 유를 날릴 수 있다

 

이어폰을 들으며 릴리 알렌 처럼 퍽 유 퍽 유 해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 할 것이다

 

안 좋은 일이 있다면

미운 사람이 있다면

릴리 알렌처럼 흥겹게 퍽 유를 외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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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부러울 것 없어 보였던 상후

 

정작 상후는 효상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풍족한 환경 속에서 하기 싫은 것을 하는 것보다 풍족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것이 훨씬 부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상후는 효상이나 친구들 앞에서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학생치고는 많은 용돈을 아버지에게 받은 상후는 병적으로 그것을 빨리 써버렸다.

 

상후는 인문계를 다니면서 피아노 레슨을 받은, 어찌 보면 이상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피아노를 배우는 것은 순전히 엄마 때문이었다. 상후는 엄마의 편애를 받으며 자랐다. 바이올린을 전공하여 쾰른 음대에 간 형은 어릴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으며 엄마가 원하는 대로 커주었다. 하지만 상후는 아니었다. 엄마의 교육열은 자식이 잘하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하고 싶은 걸 아이에게 시키려고만 한다.

 

상후는 엄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엄마의 품에 안겨 잠들어 본 적도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오로지 엄마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 피아노를 쳤지만 형만큼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상후의 엄마는 첫째는 바이올린을 둘째는 피아노로 어머니 자신이 못 이룬 꾼을 대신 이루고 싶었다.

 

하지만 상후는 외국으로 나가서 피아노를 전공할 만큼의 실력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상황에서 어떤 선을 넘지 못하는 것이 자신보다 못한 상황에서 하고 싶은 기타를 치는 효상이 훨씬 부러웠던 것이다.

 

상후는 르코르뷔지에 같은 건축가가 되고 싶었다. 르코르뷔지에도 음악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엄마에게 편애를 받으며 자랐다. 르코르뷔지에의 엄마도 형만을 사랑했다. 르코르뷔지에는 결국 엄마에게 한 번의 사랑도 느끼지 못하고 건축을 선택했다. 상후는 르코르뷔지에에게 어떤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상후가 바라보는 그의 건축물은 순수했다. 르코르뷔지에가 만든 건축물에는 안온감과 따뜻함이 하얀 순백색으로 덮어 있었다. 상후는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엄마가 못 준 따뜻함을 상후에게 주었다. 하지만 엄마가 벽을 만들어 만나지 못하게 했다. 상후는 노래방에 가면 오래된 노래 ‘슬픔의 심로’를 불렀다. 노래 가사에는 이런 말이 있다.

 

‘때론 슬픔에 아파 어쩔 줄 모르고, 이룰 수 없는 순간들을 그렸어요. 정다웠고 정다웠던 지난날의 이야기 속에, 우리 이제는 떠나야 하나요. 이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 햇살이 비추면 온 마음을 열고 나그네가 되어요.’

 

과묵했던 상후는 어쩌면 그때부터 나그네가 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후의 고민을 알고 있던 기철이와 아이들은 상후가 손을 내밀면 손을 잡아 주었고, 상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엄마를 대신 할 순 없지만 힘이 들면 억지로 일어나 힘을 내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들은 상후에게 쓰러지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쓰러지고 쓰러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하지만 주저앉지는 말자. 쓰러지면 일어나면 되지만 주저앉으면 일어나기가 너무 힘드니까. 우리는 상후의 손을 잡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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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이 시대에 휴지가 업는 인간의 생활이 가능하리라 보는가-  -급기야 식수가 떨어지고 식품이 바닥을 보이면 사람들은 점차 변이하게 되다  사람들은 며칠 동안 헤매다가 불안에 또 며칠을 보내고 고통으로 며칠을 다시 보낸다  그리고 서서히 눈빛이 달라지며 바뀐 세상에 적응을 하다-  -정신은 생존을 위해 아이처럼 변했다가 어느 틈에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때 그 순간마다 그리고 생필품이 완전히 바닥을 보이게 된다  상상이 가나-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 약을 받아먹어야 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약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고 그에 따른 후유증이 나타날 것이며 사람들은 어딘가를 향해 칼을 뿜어낸다-  -생존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본질본성에서 비롯되다  무서운 일이 일어나게 되다-  마른번개를 제외한다면 세상은 그야말로 그림 속 세상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장군이는 틈을 두었다.  -우왕좌왕 속에서 질서를 찾고 서로를 위해주다가 곧이어 지금보다 좀 더 들어내 놓고 인간들을 서로 밟으려고 하다 사재기가 만연하게 될 것이고 많이 비축한 인간의 밑으로 새로운 인간이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다-  -약탈이 이어지다  질서가 무너지고 무엇인가가 탄생하다  인간들 중에서 어두운 존재에 빌붙는 협력자가 나타날 것이고 사람들은 그를 새로운 지도자로 여기고 그의 지시에 따라서 움직이게 되어 버리다-   -여자들은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 의해서 몸은 유린당하고 복종이라는 탈냉전 시대의 낡아빠진 유물론적 인간을 대하는 사고방식이 도래하다-  -어두워진 하늘을 피해 땅 밑으로 들어가 버린 인간들은 여자가 눈에 보이면 드러나지 않게 여자의 다리 사이로 한 뼘의 그것을 집어넣을 것이고 그동안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죄악이 도래한다-  -복종은 상납이라는 방법으로 여자들을 그것들에게 바쳐질 것이고 정부는 급기야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최고 통치권자는 나눠 먹기 식의 자본을 회수해서 어디론가 가버리다-  -결국에는 소수만 남게 되다  남은 인간들은 방어막을 펼치다가 뚫어지기 시작하면서 패닉에 빠지게 되다-  -인간들은 태어나면서 지니게 되는 윤리적 주체라는 관념을 몽땅 박탈당하게 되다  무서운 일이 일어나게 되다-  장군이는 고개를 마동에게로 돌렸다. 도자기색 눈동자가 마동의 눈동자와 맞물렸다.  -누군가는 막아야 하다-  작은 신음소리가 마동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신음 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했다.   

장군이는 들었겠지.

 하지만 장군이는 마동의 신음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어두운 세계는 다가오는 저것에 의해서 도래하는 것이다. 환영(illusory)적으로 보이던 어둠에 세상이 먹혀버리는 모습.  -나도 두렵다  무척  아주 만이-  -너도 조심하는 게 좋다  너에게는 너의 인지가 막지 못하는 어둠의 도트가 잇다-  그 어둠의 도트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업다  우리는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타협이라는 것과 정출하는 방법을 잘 터득햇다-  -타협에 응하면 불편한 점이 만다  대신 마음의 편안함과 조용하고 고향에 온 기분이 들다  그런 기분으로 살아가게 되다-  -적당히 짖어주고 적당히 먹고 적당히 꼬리를 흔들면 되다  그렇게 타협을 하면 오래전처럼 피를 위한 전투는 하지 안아도 되다-  -그런데 마른번개가 몰고 올 그 무엇의 존재에서 피비린내가 심하게 풍겨오다  그 중심에 왜 인지는 모르나 '너'가 잇다-  장군이는 입을 벌리지 않았고 마동의 눈을 보며 텔레포트로 마동에게 자신의 의식을 전달했다. 해무는 깊이를 더해가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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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이와이 슌지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허진호 감독이 있다. 허진호 식 멜로에는 꺼내보지 못한 깊은 사랑에 관한 숨은 매력이 가득하다. 차마 말로 할 수 없어서 목 바로 밑까지 차오르는 말들과 심장에 바늘로 찌르는 듯 저리는 느낌들이 허진호 식 멜로에 꽉 들어차있다

 

어쩐지 허진호 식 한국 멜로 이전에는 마치 연애를 해 보지 못한 사람이 억지로 연애 이야기를 만든 느낌이 있다. 박찬욱은 허진호에게 연애박사 허 감독이라도 한다

 

허진호 감독의 연애 이야기의 숨은 매력은 섬세함이다. 허진호의 스타일은 리허설을 할 때 배우들에게 "자 한 번 앉아보자, 그럼 니네같으면 어떻게 할까? 이렇게? 자 해보자" 식이다

 

그래서 한 컷을 건지는데 시간이 엄청 소요된다. 그는 우리가 일상에서 충분히 만날 수 있는 요소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비를 타고 사랑이 시작된 10년 전의 영화 '호우시절'은 마음까지 젖게 만든다. 정우성과 고원원의 러브레터 같은 수채화 이야기

 

책장을 넘기듯 넘어가는 테이크 1, 테이크 2

한 컷 한 컷에 진득하게 은유를 녹여내는 배우들과 감독

 

그건 마치 주인공이 되어 박동하의 마음에 이입이 되기 충분하다

 

비는 그렇게 사랑을 몰고 온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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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배송미

 

배송미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스쳐 지났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워터덕에서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배송미는 일송여고에 다니고 있었는데 패티 보이드 같은 얼굴을 하고 마네킹 같은 몸매를 하고 있었고 자신의 학교에서 선생님도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잘 나가는 아이였다. 배송미의 전설 같은 이야기는 각 학교에 퍼져 있어서 소문처럼 떠돌았는데, 학교에 잘 나가지 않았고 가끔 모델 일을 하면서 받은 돈으로 워터덕이나 클럽에서 노는 아이들과 어울려 다닌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여러 고등학교에서는 이미 연예인 같은 사람으로 여겨지는 아이였다. 우리와는, 나와는 전혀 어울릴 수 없고 어울리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학교를 나가지 않고 수업을 듣지 않아도 학교에서 건드릴 수 없었던 이유는 배송미의 큰 오빠가 지역에서 가장 큰 조직의 부두목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후배들에게는 무서운 언니였고 동기들에게는 늘 같이 있고 싶은 친구였고, 남학생들에게는 데이트 한 번 하고 싶은 여학생이었다. 그녀를 따라다니는 남자들 중에서는 대학생들도 많았다.

 

건너편에서 맞장을 떠서 한 번도 져 본적이 없는 배송미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배송미를 블랙박스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게 너야,라는 황당한 말을 들은 것은 며칠 전이었다. 중앙남고에 다니고 있던 내 어린 시절 같이 자란 윤민이라는 녀석이 집 앞으로 찾아와서 만났더니 덥석 그러는 것이다.

 

내용은 이랬다.

윤민이는 배송미의 외모에 반했다. 비교적 일송여고와 가까이 있는 중앙남고 남학생들은 일송여고의 배송미를 열광하다시피 했다. 선물이며 편지가 늘 교실 책상위에는 수두룩 빽빽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배송미는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었다. 윤민이 녀석은 공책에다가 배송미의 이름만으로 공책 한권을 다 써 버릴 정도로 머릿속에는 온통 배송미의 생각뿐이었다. 그러다가 일송여고 앞에서 배송미를 기다리고 있다가 선물을 전달했는데 차이고 말았다. 하지만 윤민이에게 그 충격이 그녀를 잊게 만들지 못했다.

 

그러던 중 윤민이는 배송미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밤늦게 전화를 해서 통화를 하는 것에 성공을 했다. 그. 리. 고.

 

윤민이 녀석은 나의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나의 외모를 말하고, 내가 사진부라는 것과 합기도 도장에 다닌 것부터 몰려다니는 친구들의 이야기까지 해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매일 늦은 밤에 배송미와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다. 김윤민이 아닌 내가 되어 배송미와 매일 밤 전화를 했으며 그러기를 두 달이 흘렀다. 배송미가 만나자고 한 것이다. 다운타운에 있는 블랙박스에서.

 

블랙박스는 각 학교에서도 제일 잘 나가는 아이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교복을 입고는 출입이 안 되며, 입은 옷 또한 유행에서 조금 멀어지거나 머리도 평범하면 들어가지 못했다. 누군가 앞에서 넌 안 돼! 넌 아니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모습을 한 채로는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분위기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주 평범한 모습으로 짧은 스포츠형 머리를 한 채 청바지를 입고 배송미의 맞은편에 앉았다. 윤민에게 배송미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싫어하는 것, 어떤 잠옷을 입는지를 들었다. 윤민이는 내가 혹시나 잘못 말할까봐 여러 가지를 일러주었다.

“근데 이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라는 내 말에 윤민이는 “씨바 몰라, 그냥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 너도 한 번 만나봐.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애니까 말이야.”

 

블랙박스는 창문이 없었다. 온통 어두웠고 아주 옅고 얕은 조명이 미미하게 비칠 뿐이었고 모두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곳에 조금만 앉아있다가는 온 몸에 담배냄새가 가득 배여 빨아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 십 분 동안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와서 배송미에게 구십 도로 인사를 하고 지나간 여자 후배 무리가 몇 번 지나갔고, 가죽바지를 입고 부츠를 신은 남자들이 와서 배송미에게 아는 척을 했다.

 

하지만 배송미는 반갑게 그들에게 인사를 받아주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의자에 앉아서 앞에 놓인 주스를 마실 뿐이었다. 배송미는 눈 화장을 했고 속눈썹을 붙였다. 눈 밑의 화장이 진했고 입술 역시 진한 색이었다. 앞머리는 더듬이처럼 보였는데 스프레이로 고정이 되어 있어서 바람에도 망가지지 않을 것 같았고 머리에는 손수건으로 머리띠를 만들고 있었는데 산뜻하게 보였다.

 

티셔츠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치마는 아주 짧아서 허벅지가 다 드러났다. 무엇보다 어두운 곳에서 보는 배송미의 얼굴은 정말 인형 같았다. 작은 얼굴에 눈코입이 다 들어가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나는 커피를 마셨고 배송미는 오렌지주스를 마셨는데 빨대를 사용하지 않아서 입을 댄 곳에 립스틱 자국이 선명했다.

 

“너 전화상의 목소리가 더 굵구나. 이렇게 만나니까 어때?”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사실 윤민이가 일러준 배송미의 이야기는 전혀 듣지 않았다. 너무 많은 말을 한꺼번에 들었다. 그걸 듣고 맞장구를 치는 것이 어쩐지 좀 우스운 일이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해주기 위해 나왔는데 나도 속물일까.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배송미와 나는 뭔가 어울릴만한 꺼리가 전혀 없었다.

 

“나도 합기도를 했거든. 넌 천지관이랬지. 난 신장동에 있는 도장에 다녔어. 검은 띠까지는 못 땄지만 재미있었어”라는 배송미의 말을 계기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생각보다 순수했다. 소문처럼 강하고 욕설을 입에 달고 담배를 피운다는 말은 전혀 아니었다. 배송미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아무도 배송미에게 와서 담배를 달라고 하지 않았고 배송미도 블랙바스의 탁한 공기를 싫어했다. 그녀는 웃을 때 얼굴에 빛이 났다.

 

“여기 별로지? 담배연기만 없으면 꽤 괜찮은 곳이야. 주스 한 잔에도 몇 시간씩 앉아있을 수 있고. 시끄럽게 수다를 떨어도 나무라는 사람이 없어. 어디를 가든 학생들은 늘 제재를 받으니까. 우리 오락실에 갈까?”

그래서 우리는 근처에 있는 화성오락실에 갔다. 나는 헥사를 하면 몇 시간이고 할 수 있었다. 벽돌 깨기도 그렇고 잘 하는 오락이 있었는데 헥사를 했을 때 배송미는 옆에 앉아서 계속 감탄을 했다.

 

그리고 나는 사진에 관한 이야기와 친구들과 친구들이 좋아하는 작가들의 이야기, 특히 배송미는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이야기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럼, 그 스캇? 스콧? 그 작가는 자신의 아내인 젤다를 본떠서 데이지를 만들었다는 거야? 너 이야기를 들으면 데이지는 정말 나쁜, 암튼 그렇네. 그런데 그런 여자를 개츠비는 잊지 못해서 5년이 지나서 다시 찾아와서 구애를 하고? 하지만 데이지는 그런 개츠비에게 또 상처를 주고?”

나는 스콧 피츠제럴드와 개츠비를 섞어가며 일대기와 개츠비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배송미는 정말 눈이 반짝거리며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너 어째서 그동안 전화상으로는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만 했어?”

“어 뭐 그냥. 만나면 해주려고 했지”라고 거짓말을 해버렸다. 거짓말이란 한 번 하고 나면 제트기류를 타게 된다. 배송미와 오락실에 있는 동안에, 옆에 남자가 있음에도 남자들이 와서 배송미에게 관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늘 그런 일이 일상인듯 배송미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너 탁구 치니?”

우리는 탁구도 쳤다. “나 오빠들이 네 명이라 오빠들과 탁구장에 많이 갔었어”라는 배송미는 탁구를 잘 쳤다. 내가 생각하는 배송미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였다.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좋아하는 외모가 예쁜 그런 여학생이었다. 그리고 김밥을 먹으러 갔다. 다운타운에 있는 김밥 집에는 처음 갔는데 거기는 배송미가 자주 가는 곳인지 가자마자 이모들이 반갑게 배송미를 아는 체했다. 배송미역시 그곳에 늘 앉는 지정석이 있는 나를 자신의 자리로 안내했다.

 

재잘재잘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윤민에게 들은 배송미의 이야기는 배송미의 입에서 듣는 배송미의 이야기와는 많이 달랐다. 잘 웃었고, 잘 먹었고, 잘 놀라고 호기심도 많았다.

“여기는 김밥에 들어가는 밥에 밑간을 먼저 해. 그래서 김밥 안에 들어가는 재료가 많지 않아도 오래 씹고 있으면 아주 맛있어. 너 사진 잘 찍는다며?”

“잘 찍지는 못하고……”

“나중에 나 사진 좀 찍어줘. 예쁘게 사진을 찍고 싶어. 사진관에서 찍는 사진 말고 야외에서 하늘하늘 원피스 입고 이렇게 예쁘게 말이야.” 배송미는 입 안에 김밥이 다 보이는데도 크게 웃었다. 나는 그러겠노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녀를 그 이후에 다시 보지 못했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짐작을 했을 것이고 나를 위해서 그렇게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전화상의 나와 눈앞에 있는 내가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날 하루 동안 슈바빙에도 가지 않고, 올 댓 재즈에도 가지 않고 기철이나 아이들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나는 말 그대로 일탈을 했다. 일탈 속에는 일상에서 느껴볼 수 없었던 흥분이 있었다. 일탈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일탈 속에는 일상에서 만날 수 없는 편안함이 배제되어 있었다. 일탈도 일상이 되면 그것이 행복인지 분간하기 힘들어진다. 좋은 옷을 입어도 단지 그때 뿐, 좋은 옷도 일상이 되어 버리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배송미 역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났을 것이다. 늘 만나는 친구들과 늘 하는 말투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일탈을 즐겼을 것이다.

 

문득 삶이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채플린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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