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혜시는 여기서 커다란 나무를 비유로 들면서 장자의 말을 사람들이 듣지 않는 까닭은 크기만 하지 쓸모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다 떠나버린다고 말한 데서 천하의 이야기꾼 장자가 당시 사람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혜시가 장자의 아픈 데를 찌른 거죠. 하지만 장자는 세상에서 쓸모가 있다고 하는 자들이 이성()’, 곧 살쾡이로 비유하면서 바로 반격합니다. 시랑(豺狼)이라 하지 않고 이성이라고 한 것은 상대가 절친한 벗인지라 많이 봐준 표현입니다. 시랑은 승냥이로 흔히 살쾡이보다 악질적인 짐승으로 그려지거든요. 어쨌든 이놈들은 몸을 바짝 낮추고 있다가 다른 짐승을 잡아먹는 데 뛰어난 자신의 재능을 믿고 높은 곳 낮은 곳 가리지 않고 이리저리 날뛰다가 결국 덫이나 그물에 걸려 죽고 맙니다. 사람으로 치면 남을 죽이고 자신도 죽고 마는 전쟁광들이라고 할 수 있죠.


(91)

마무리하자면 장자는 커다란 나무는 바로 쓸모없기 때문에 도끼에 찍혀나갈 염려도 없고 어떤 사물도 해칠 염려가 없는데 어찌 쓸모없다는 이유가 괴로운 것이겠는가 하고 반박합니다. 결국 장자는 쓸모없음이 바로 큰 쓸모이고, 큰 쓸모가 바로 양생(養生)에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지요.


(148)

<1>을 통해 장자는 모든 존재가 평등한 제물의 세계를 들려 주었습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죠. 인간 세상에 만연한 것이 차별입니다. 그런 차별은 어떤 근거에서 나오는가? 장자가 보기에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차별의 근원에는 언어가 놓여 있습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물을 분류합니다. 이 분류는 대단히 폭력적입니다. 장자는 이러한 사실을 밝힘과 동시에 차별이 없는 세상을 희구했던 옛 성인 요와 순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152)

여기서 도를 대단한 추상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흔히 만나는 사물을 제대로 보는 것이 바로 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장자가 보기에 사물을 이런 저런 방식으로 나누기 시작하면 그런 사람의 눈에는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당연히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겠죠. 누가 현자인지 보일 턱이 없습니다. 그런 걸 보면 노예의 무리의 섞여 있는 백리해가 현인인 것을 알아보고 양 다섯 마리를 주고 풀려나게 한 진나라 목공이나, 현인 월석보를 말 한 필과 바꿔 온 제나라 재상 안영 같은 이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173)

그에 따르면 성인은 해와 달을 곁에 두고 우주를 옆구리에 낄 정도로 스케일이 큰 존재이지만 늘 만물과 함께 하려 하고 희미한 도에 자신을 두어서 노예도 존중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것은 나에게 이롭고 어떤 것은 해롭다는 식으로 분류하여 이로훈 것은 취하고 해로운 것은 피합니다. 그런데 성인은 만물을 차별하지 않기 때문에 이해에 따라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한 사람도 똑같이 존중합니다. 사람을 볼 줄 아는 것이지요. 굳이 성인이 아니라도 그런 경우는 있습니다.


(182)

우리는 어떤 권위에 의존해서 옳고 그름을 가리려고 하지만 장자가 보기에 그런 것들은 모두 화성(化聲), 곧 변화하는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꿈처럼 일시적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둠에 갇힌 존재일까요? 어떻게 해도 행복해지거나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일까요? 장자는 한 가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바로 천예(天倪)’라고 하는 자연의 도를 따라 만물을 조화하는 것입니다. 자연의 도를 따르게 되면 세상이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여길 수 있게 됩니다. 시비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장자가 바라는 경지입니다.


(193)

장자가 꿈을 꿉니다. 유명한 호접몽(胡蝶夢)입니다. 꿈에 나비가 되어 날아다닙니다. 사람이 날아다니는 상상을 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않을까요? 그런지 적지(適志)’라고 표현한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뜻에 꼭 맞아서 전혀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자기가 장자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나비가 된 것이죠. 사실 난다는 표현은 인간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을 이루었다는 뜻으로 쓰이지요. 장자의 첫 이야기는 대붕이 날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대목은 바로 장자 자신이 날아가는 장면입니다. 대붕은 구만리의 하늘을 타고 납니다. 그리고 장자는 물롸’, 곧 나비가 됨으로써 하늘을 납니다. 구만리의 하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비의 날개는 아주 가벼우니까요.


(202)

우리의 삶은 끝이 있지만 지식은 끝이 없다. 끝이 있는 것을 가지고 끝이 없는 것을 추구하면 위태롭다. 그런데도 지식을 추구하면 더욱 위태로워질 뿐이다. 착한 일을 하더라도 명예에 가까이 가지는 말며, 나쁜 일을 해도 형벌에 가까이 가지는 말고, 중간을 따르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삼으면 자기 몸을 보호할 수 있고, 생명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고, 어버이를 모실 수 있으며, 천수를 다 누릴 수 있다.”


(263)

물욕을 탐하지 않는다는 것은 외부와의 관계를 차단한다는 뜻이 아니라 외부의 물욕을 나서서 맞이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가만히 머물지 못하는 것은 이목의 욕망을 따라 마음을 가만히 두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곧 이목의 감각을 닫아서 외부의 자극을 차단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극을 그대로 두되 그것을 따라가려는 심지(心知)의 욕망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 귀신도 찾아와서 머물고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는 겁니다. 고대의 성왕인 우임금과 순임금, 그리고 전설의 주인공 복희씨와 궤거씨는 모두 이런 방법으로 천하를 다스렸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272-273)

말이란 바람이 일으킨 물결처럼 일정함이 없고 행동에는 득과 실이 있습니다. 바람이 일으킨 물결은 쉽게 동요되고 득과 실이 있는 행동은 쉽게 위태로워집니다. 그 때문에 분노가 일어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없으니 교묘한 말과 지우친 말 때문입니다. 짐승이 죽을 때가 되면 마구 짖어대서 숨이 거칠어지는데 이때 거친 마음이 아울러 생깁니다. 과실을 따지는 문책이 정도에 지나치면 반드시 어리석은 마음으로 대응하면서도 스스로 그런 줄 모르니, 만약 참으로 그런 줄 모른다면 그 결과를 누가 알겠습니까. 그 때문에 법언에 이르길 명령을 멋대로 바꾸지 말며 억지로 이루려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한도를 넘어서면 넘치게 된다고 한 것입니다. 명령을 바꾸고 억지로 이루는 것은 위태로운 일입니다. 일이 잘 이루어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한 번 잘못된 일은 미처 고칠 수 없으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사물의 자연스러움을 타고 마음을 자유롭게 노닐게 해서 어쩔 수 없음에 맡겨 마음을 기르면 지극할 것이니 어찌 꾸며서 보고하겠습니까. 군주의 명령을 그대로 전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으니, 이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371)

자연이 하는 일을 알고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아는 사람은 지극한 사람이다. 자연히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은 자연을 따라 살고,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아는 사람은 그가 알고 있는 것으로 그가 알지 못하는 것을 길러 천수를 마쳐서 중도에 요절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앎이 성대한 사람이다. 비록 그러하나 근심이 있으니 앎이라는 것은 마주하는 것이 일정한 뒤라야 꼭 맞게 되는데 마주하는 것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내가 자연이라고 생각한 것이 인간에 속한 것이 아닌 줄 알며, 내가 인간에 속한 것이라 여긴 것이 자연이 아닌 줄 알겠는가. 참다운 사람이 있은 뒤라야 참다운 앎이 있게 되는 것이다.”


(387)

옛날 참된 사람은, 그 모습이 산처럼 우뚝 솟아 있으면서도 무너지지 않으며, 부족한 것 같지만 남에게 받지 않으며, 몸가짐이 법도에 꼭 맞지만 고집하지 않으며, 텅 빈 것처럼 허술하지만 꾸미지 않았다. 환하게 밝아서 마치 기뻐하는 것 같고, 임박해서 움직여 마지못한 듯하며, 가득히 자기 안색을 나타내는 일도 있지만 몸가짐이 법도에 맞아 자신의 덕에 머물며, 넓은 마음으로 세속과 함께하는 것 같지만 오연히 제약받지 않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감추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무심히 말을 잊어버린다.”


(393)

죽거나 태어나는 것은 명이다. 밤낮처럼 일정함이 있는 것이 자연인지라 사람이 관여하지 못하니 이것이 사물의 본모습이다. 저들은 단지 하늘을 부모로 여겨 온몸으로 사랑하는데 하물며 그보다 더 높은 대상이겠는가. 사람들은 단지 세상의 군주가 자기보다 낫다고 여겨 온몸을 바치는데 하물며 참다운 군주이겠는가.”


(401)

도는 제 모습과 분명함은 있지만 작용이 없고 눈에 보이는 형체가 없는지라, 전해줄 수는 있지만 받을 수는 없으며, 터득할 수는 있지만 볼 수는 없으니, 스스로 뿌리가 되어 하늘과 땅이 아직 있기 이전에 예로부터 분명히 있어 온 것이다. 귀신과 상제를 신령하게 하고, 하늘과 땅을 만들며, 태극보다 앞서 존재하면서도 높은 체하지 않으며, 육극 아래에 머물면서도 깊은 체하지 않으며, 하늘과 땅보다 앞서 있으면서도 오래된 체하지 않으며, 상고보다 오래되었으면서도 늙은 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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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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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일본계 영국인으로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을 읽었단다. 노벨문학상 수상한 이후 그의 첫 번째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던 소설이고, 기대를 져버리지 않은 작품이라고들 이야기했던 작품이란다. 아빠는 가즈오 이시구로 작품은 <나를 보내지 마> 이후 두 번째 작품이란다.

<클라라와 태양>이라는 소설은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등장하는 이야기란 걸 읽기 전에 알고 있었단다. 어떻게 이야기를 꾸려나갈까 기대를 하면 책을 펼쳤단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나를 보내지 마>도 그렇고 <클라라와 태양>도 그렇고 가까운 미래에 일어난 법한 이야기를 잘 만들어낸 것 같더구나. 그러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했을 때의 윤리적인 문제, 로봇의 권리 등은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한 생각거리도 던져 주었단다.

아빠는 이번에 읽은 <클라라와 태양> <나를 보내지 마>보다 더 좋았단다. 그리고 <클라라와 태양>을 읽으면서, 천선란 님의 <천 개의 파랑>이라는 소설도 많이 떠 올랐단다. 그 소설도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는 세상을 다뤄서 그랬던 것 같구나. 아빠는 <천 개의 파랑>이 좀 더 좋았단다. 따뜻하니 더 사람 냄새는


1.

클라라는 AF라고 부르는 인공지능 로봇으로 가게 진열되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단다. AF Artificial Friend 의 약자이니 인공 로봇 친구쯤 생각하면 될 것 같구나. 친구도 인공로봇이 대신해주는 그런 시대인가? 클라라는 AF B2 모델로 최신 모델은 아니었어.. 최신모델은 B3까지 나와 있었지. 클라라는 한창 동안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가 조시라는 하는 소녀가 샀단다.

조시는 엄마 크리시, 가정부 멜라니아와 함께 살고 있었어. 아빠는 이혼해서 같이 안 살고, 언니 샐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 죽었단다. 이 시대 아이들은 아이들의 재능이나 지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임의로 향상이라는 조치를 취했어. 그런데 그것이 몸이 허약해지고 자주 아프게 되는 부작용이 있었단다. 그래서 부모들은 망설이기도 하지만, 자식들의 경쟁력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서 그 조치를 하게 된단다. 소설의 분위기 상 조시의 언니 샐이 그 부작용으로 그만 죽고 만 것 같았어. 그렇다면 둘째는 안 할 것 같은데, 조시의 엄마 크리시는 조시에게도 또 향상조치를 했단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향상조치를 하고, 교류 모임을 갖더라도 그런 아이들만 모였단다. 그런데 조시에서도 부작용이 나타나서 몸이 허약하고 자주 아팠단다. 물론 이런 조치를 안 하는 극소수의 사람들도 있단다. 조시의 이웃집 친구 릭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야. AF향상에는 관심이 없는 릭. 순수한 인간이라고 할까. 릭은 향상을 한 조시를 안타깝게 생각했어.

이런 조시가 클라라를 선택을 한 것이란다. 조시는 천성이 착했어. 클라라가 인공지능 로봇이지만, 장난감 대하듯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 대하듯 해주었단다.

….

엄마들이 마련한 친구들의 정기 교류 모임이 있었는데, 조시는 릭도 초대했어. 릭은 어렸을 때부터 친한 친구였으니까. 그런데 릭도 꺼림칙했고, 교류 모임에 참석한 다른 친구들도 릭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어. 릭은 향상을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다른 친구들은 조시와 달리 AF를 장난감 다루듯이 했어. 클라라를 보고 조롱하기도 했고, 지난 모델이라면서 멸시하기도 했어.

이것이 이 소설에서 그리는 가까운 미래의 모습이란다. 임의의 조치로 재능이나 지능을 향상시킬 수 있지만, 인간성이 점점 사라지는 모습이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구나.


2.

일요일을 맞이하여 조시의 제안으로 다 같이 모건이라고 하는 폭포 구경을 가기로 했어. 클라라가 집에 와서 제대로 된 외출을 한 적도 없어서 말이야. 그런데 조시가 몸이 갑자기 더 안 좋아져서 엄마는 조시에게 못 가게 했어. 그리고 엄마는 클라라와 단 둘이 다녀와도 되는지 물어봤어. 클라라에게 외출을 시켜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으니까 말이야. 조시가 반대를 할 수 없었지.

엄마와 클라라 단둘이 폭포에 다녀왔단다. 조시의 엄마와 클라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어. 조시의 엄마는 무척 외로워 보였어. 조시마저 향상의 부작용으로 몸이 허약하니 죄책감도 있는 것 같고, 조시가 죽으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어. 그걸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조시의 엄마는 조시가 죽으면 클라라가 조시를 대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아. 그래서 클라라에게 조시의 걷는 모양도 배우게 하고, 조시의 모든 것을 배우라고 했어. , 그랬다고 그 상실감을 채울 수 있을 지

클라라는 조시가 몸이 좋지 않다는 생각에 조시를 회복시키려는 노력을 했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그리고 클라라는 한 가지 믿음이 있었단다. 태양에서 나오는 자양분이 죽어가는 생명도 되살릴 수 있다는 믿음. 그래서 햇빛을 클라라 방에 비추게 하려고 이런 저런 노력도 했어.

….

조시가 아파서 병석에 있으면서도 가끔 시내에서 가서 초상화를 그리곤 했단다. 클라라가 온 이후 초상화를 그리러 갈 때 클라라도 동행을 했고, 조시의 아빠 폴도 동생을 했단다. 폴은 이혼해서 따로 떨어져 살고 가끔씩 조시를 만나는 것 같았어. 조시의 엄마와 아빠는 조시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을 두고 심한 말다툼을 하기도 했단다. 왜 싸우나 했더니 그 초상화를 그리는 목적 때문이었단다. 초상화가 일반적인 초상화가 아니고 3D로 그리는 초상화인데, 이는 조시가 죽은 다음에 클라라가 조시를 대신할 수 있게 하는 조치였던 거야. 그러니까 조시의 엄마는 이미 조시를 거의 포기한 상태이고, 조시의 아빠는 그런 엄마를 인정할 수 없던 거지.

그에 비해 클라라는 여전히 조시를 살리려는 노력을 했단다. 시내에 있는 먼지를 만드는 기계가 햇빛을 방해한다고 생각해서 그 먼지를 만드는 기계를 고장내기로 했어. 그런데 그 먼지를 만드는 기계를 고장내기 위해서는 클라라 자신의 두뇌에 있는 액체 절반을 써야 한다고 했는데, 그 위험까지 무릅쓰고 먼지를 만드는 기계를 고장 냈단다. 하지만, 클라라는 몰랐어. 그 기계가 한 개가 아니라는 걸.. 그러니까 큰 효과를 낼 수 없었지.

클라라는 태양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이었어. 클라라는 조시의 방에 햇빛이 많이 들어오도록 블라인드를 최대한 열어두었고, 멀리 창고에 거울을 이용하여 햇빛이 조시의 방으로 들어오게도 했어. 이런 노력들 때문인지 다른 요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조시는 몸이 많이 좋아져서 회복했단다. 그리고 원하는 대학도 갈 수 있게 되었어. 클라라가 무척 뿌듯했겠구나.

….

시간이 흐르고 클라라는 AF들이 모여 있는 창고 같은 곳에서 있었어. 옛 가게의 매니저가 찾아와서 재회를 하게 된단다. 구형 모델의 클라라의 삶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거 보구나.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났단다. 어느 정도 예상이 되었지만, 굳이 클라라를 버렸어야 했나 싶구나. 조시가 집에 방문하게 되면 반갑게 맞아줄 수도 있고, 엄마의 벗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클라라는 비록 인공지능 로봇이지만 사람보다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단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하지고 학습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단다. 그렇다면 클라는 사람인가? 아닌가? 육체는 사람과 다르지만, 영혼은 더 사람답다.. 사람의 기준을 삼을 때 육체로 삼아야 하나? 마음이나 영혼으로 삼아야 하나세상은 점점 삭막해지고, 지구 환경이 점점 살기 어려워져도 인간의 따뜻한 본 모습을 잊지 말고 살아가자꾸나.


PS:

책의 첫 문장: 로사와 내가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우리는 매장 중앙부 잡지 테이블 쪽에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도 창문이 절반 넘게 보였다.

책의 끝 문장: 그러더니 다시 가던 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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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6-10 0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하는 책 ~ 축하드립니다 *^^*

bookholic 2022-06-11 01:06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저도 좋아하는 책^^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새파랑 2022-06-10 1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달 축하 북홀릭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6월도 열정독서 바랍니다~!!

bookholic 2022-06-11 01:06   좋아요 2 | URL
매달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고요...^^

이하라 2022-06-10 1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당선 축하드려요.^^
행복으로 가득하신 주말되세요~~

bookholic 2022-06-11 01:07   좋아요 1 | URL
늘 감사드립니다...
시원하고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그레이스 2022-06-10 1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bookholic 2022-06-11 01:07   좋아요 1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고요...

서니데이 2022-06-10 21: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bookholic 2022-06-11 01:11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주말 되시길....^^

thkang1001 2022-06-11 0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주말마다 한 권씩 보고 있는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시리즈. 지난번까지 해서 NOON 세트를 마감하고 오늘부터는 MIDNIGHT 세트 시작이란다.

MIDNIGHT 세트 1권은 체코의 작가 프라츠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책이란다. 아빠의 독서기록을 찾아보니 이 책은 아빠가 17년 전에 읽은 적이 있더구나. 벌레로 변한 주인공나중에는 주인공이 꿈에서 깨어날 것이라 예상하면서 읽었는데 그것이 꿈이 아니고 그냥 그것이 현실로 끝나는 것에 약간은 당황했던 기억이 있구나. 17년 전에 읽은 책에는 <변신>을 포함하여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었는데 줄거리가 생각나는 것은 <변신> 하나뿐인 것을 보니, <변신>이 명작이긴 명작인가 보구나.

하지만 <변신>이라는 소설에서 풍기는 우울하고 가라앉은 분위기 때문인지 아빠는 지은이 프란츠 카프카의 다른 책을 마구 읽겠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더라. 지은이 프란츠 카프카가 워낙 명성이 자자해서, 사 둔 책은 두어 권 있었는데 아직 펼쳐보지는 않았어. 아무래도 <변신>이라는 소설의 분위기 때문에 다른 책들도 쉽게 못 펼치는 것 같음. 지은이 프란츠 카프카는 신경 쇠약 등 건강이 좋지 않아서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하였다고 하는구나. 불쌍하구나.

 

1.

소설 <변신>은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작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어. 이번 책에는 <변신> <시골의사> 이렇게 두 작품이 실려 있단다. <변신>에 대한 이야기만 간단히 해줄게.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 아직 이십 대 초반의 총각인데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고 있단다. 아버지는 5년 전에 사업이 망하고 집에서 백수로 지내고, 엄마는 전업 주부이고 여동생 그레테는 열일곱 학생이었어. 판매사원으로 일하는 것이 즐거운 것도 아니고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이었어. 그러던 어느날 그레고르는 아침에 일어났는데, 자신이 커다란 벌레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돼. 목소리도 이상하게 변하고 움직이는 것도 제 맘대로 안되고 그랬어. 당황하여 어떻게 할지 모르고 출근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방에서 나갈 수가 없었어.

출근 시간이 지나자 회사 지배인까지 방문했어. 밖에서 식구들과 지배인의 계속된 독촉으로, 그레고르는 결국 문을 열고 흉측한 벌레로 변한 자신을 보여주었어. 다들 깜짝 놀랬어. 당연하겠지. 비록 벌레로 변했지만, 희망을 가졌어. 다시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변할 거라는 희망. 가족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놀래면 안되니까 방에서 혼자 지냈단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그의 모습을 돌아오지 않는 거야.

회사를 못 나가니 돈을 못 벌고, 집에 사정이 점점 안 좋아졌어. 식구들도 처음에는 그런 그레고르를 동정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레고르를 외면했어.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서 아버지는 경비로 일하게 되었고, 엄마도 소일거리를 찾고, 동생도 가계에서 일하게 되고, 집에 빈 방에 하숙생들도 들였어. 진작에들 그레고르의 어깨의 짐 좀 덜어주지그가 회사의 그 엄청난 스트레스로 인해 벌레로 변해 버리기 전에 말이야….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식구들은 그레고르를 그레고르로 보지 않고 벌레로 보기 시작했어. 먹는 것도 사람이 먹는 것이 아닌 벌레가 먹는 것을 주고, 아버지는 그를 보면 공격하기도 했어. 더 시간이 지날수록 식구들은 그에게 먹을 것도 주지 않았어. 조그마한 방 안에서 몸도 움직일 수 없는 그는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결국 죽고 말았단다.

무엇이 그레고르를 벌레로 만들었을까. 아빠가 생각하기에 집안에서 가장 역할의 부담감,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그를 벌레로 만들지 않았을까 싶구나. 소설 속 벌레는 현실에서는 불치병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구나. 불치병에 걸린 이를 외면하는 가족이 적긴 하겠지만, 그 병이 계속 길어진다면고칠 수 없이 죽음만 기다리는 것이라면그런 측면에서는 그동안 식구들을 위해 그레고르가 애써 온 것을 생각하면 식구들이 무척 잘못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아빠라면 곤충이 아니라 더 흉측한 모습을 바뀌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제 모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함께 아파했을 텐데 말이야. 아마 대부분의 식구들이 그렇겠지? 소설 속 식구들이 비정상이겠지? 명작이라고 하지만 공감이 안가는 그런 소설이었음.

 

PS:

책의 첫 문장: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에서 흉측한 모습의 한 마리 갑충으로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

책의 끝 문장: 잘못 울린 야간 비상벨 소리에 덜컥 응했다가-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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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5-26 0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드나잇 세트 시작하셨군요. 17년전에 이미 읽으셨다니 대단하십니다~!! 갑충(?)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재미도 있더라구요 ^^

bookholic 2022-05-28 00:00   좋아요 1 | URL
네... 밀린 미드나잇 독서편지를 부지런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보물선 2022-05-26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레는 어쨌든 징글 ㅋㅋ그레고리 불쌍~

bookholic 2022-05-28 00:02   좋아요 0 | URL
벌레는 아무리 예뻐도 벌레....
어느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벌레로 변하지 않도록 고레고리처럼 살지 않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고요~~~
 














(6-7)

철학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인 소통 능력을 키워 주기도 합니다. 철학이 정립된 사람은 말과 글에 모호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쉽고 명확하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에서도 그 뜻과 의도를 재빨리 파악합니다. 그런 면에서 철학이야말로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한 실용적인 학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20)

그러나 이성적 존재인 사람은 모든 가격을 뛰어넘기 때문에 가격으로 따질 수 없는 존엄성을 지닌다. 따라서 인간은 그 무엇과도 교환할 수 없으며, 그 존재만으로 존엄성을 지닌다는 게 칸트의 생각이다. 자신의 자녀가 아무리 못났더라도 남의 자식과 교환하고 싶어 하는 부모는 없지 않은가. 다만 칸트는 존엄성을 지닌 인간에 대해 한가지 조건을 달았다. 도덕적 자율성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만이 존엄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즉 맹목적인 욕망에 따르지 않고 자율적 판단에 따라 도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성을 지녀야만 존엄성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24-25)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칸트가 말한 자율성을 추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즉 본인의 도덕적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에 제약을 받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서 인간을 수단으로만 삼아도 될 만큼 가치 있는 일은 없다.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결국 자신의 존엄성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자본주의도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기술 발달과 자본 축적을 도모해야 한다. 인간을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사례가 여전히 남아 있는 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철학의 쓸모도 여전할 것이다.


(39)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화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한탄했다.

술에 취하고 욕정으로 가득 차고 고마운 줄 모르고 욕심 많은 야망의 노예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을 나는 매일 만나야 한다.”

세네카가 약 2,000년 전에 지목한 사람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매일 만나는 사람이기도 한다. 지하철을 타면 가끔 술 취한 사람들이 악취를 풍기고 주정을 한다. 일터에는 배려심 없는 언행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 친절과 배려를 베풀어도 고마움을 모르고, 오히려 제 욕심을 채우느라 남의 권리를 침해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학교에 가면 팀 활동에 전혀 기여하지 않은 채 얌체처럼 무임승차하는 친구가 있다. 앞에서는 친한 척하면서 뒤에서는 흉을 보는 친구도 있다.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세네카가 살았던 시대에 비교하면 안락하고 풍요롭지만, 복잡한 사회 속에서 날마다 치열한 경쟁을 하며 살아야 한다. 스트레스와 화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43)

세네카는 인간이 화를 내는 주된 이유는 나는 잘못한 게 없어.’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화를 내는 이유가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오만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화를 내는 이유가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오만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화를 내서 상대를 제압한다고 해도 결국 화를 낸 사람은 지는 것이다. 세네카는 화가 났을 때 거울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거울 속 화난 모습과 평소의 모습을 비교해 본다면 화를 내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끔찍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65)

쇼펜하우어는 독서를 스스로 깨달아야 할 것을 다른 사람이 대신 깨우쳐 주는 것으로 단언했다. 독서에 대한 지독한 악평이다. 그러니까 독서란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과정을 무턱대고 뒤따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술 시간에 선생님이 미리 그려 놓은 점선을 따라 펜으로 덧칠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을 깊이 하다가 책을 읽으면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쇼펜하우어는 단언한다. 결국 독서를 하는 동안의 머릿속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 노니는 놀이터라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독서에 대해 이보다 더 가혹하고 비관적인 생각이 또 있을까?


(109)

노자의 <도덕경>에 관한 가장 흔한 오해는 무위자연설(無爲自然設)에 관한 것이다. 세상만사가 모두 허무하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방관하라는 말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뜻이 아니다. 노자가 말하는 무위자연이란 모든 억압과 인위적인 것을 버리고 자연의 흐름과 함께하면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뜻이다. 


(110)

<도덕경> 40장에는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이라는 말이 나온다. 반대로 가는 것이 도()의 운동성이라는 뜻이다. 노자는 모든 사람이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에는 반드시 함정이 있기 마련이며, 남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방향은 결국 위험할 길일 수 있다고 설파한다. 많은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역발상이야말로 노자의 전체 사상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남들이 모두 가려고 하는 길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그 길은 외로운 길이며, 특히 나이가 어린 사람은 더더욱 선택하기가 어렵다.


(125-126)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유로운 풍요 속에서 느끼는 행복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은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우리가 행복이라 여기는 물질적인 풍요,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 온갖 종류의 행복한 삶을 위한 조건일 뿐이지 그 자체가 행복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理想)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스승 플라톤과는 달리 현실적이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추구하는 육체적 쾌락의 욕구, 명예욕, 물질욕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다만 그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그 자체가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197)

최첨단 과학의 시대에 종교는 왜 이토록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까? 그것은 여전히 과학 지식으로 풀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과학이 발달한 시대라고 해서,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죽음의 공포가 완전히 우리 곁을 떠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도로 과학이 발달한 초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더더욱 초자연적인 힘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그 상징적인 예로, 첨단과학이 집결해 있는 자동차를 세워 두고 안전 운전을 기원하며 고사를 지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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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5 0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5-25 2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22-05-25 1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
10대를 위한 철학 읽기 수업이라...
그냥 윤리 교과서를 읽는 게 훨씬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고교 철학 교과서...좋은데...

bookholic 2022-05-25 23:47   좋아요 0 | URL
나중에 저희 애들이 고딩이 되면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지구를 위한 변론 - 미래 세대와 자연의 권리를 위하여
강금실 지음 / 김영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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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2022년 아빠가 즐겨 보던 녹색평론이 이런 저런 이유를 1년을 쉬기로 한 해란다. 녹색평론을 통해 지구의 환경 문제, 기후 문제에 대한 글을 많이 읽었단다. 그러다 보니 지구 문제, 기후 문제에도 관심이 가게 되고 그와 관련된 책들에도 눈이 가곤 한단다. 이 책도 책 제목을 보고 어떤 책인가 싶어서 자세히 보다가 지은이를 보고 살짝 놀랬단다.

아빠가 좋아하는 분이셨어.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그 동안 정치를 그만두시고 무슨 일을 하시나 싶었는데, 엄청 좋은 일을 하고 계시고 있었더구나. 정치권에서 물러나신 것이 2008년이었고, 그 이후 다시 원래 자리인 법조계로 돌아오셨대. 그리고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에 진학을 해서 문명과 생태 공부를 하셔서 지구 환경과 생태에 관한 공부를 계속 하셨다고 하는구나. 2015년에는 지식공동체 지구와사람을 창립해서 활동하고 계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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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지구와사람은 학교를 목표로 한다. 만나서 배우고 가르치고 교류하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지구와사람은 처음부터 학술 교육 문화의 세 영역을 미션으로 설정했다. 문화적 감수성을 일깨우는 작업을 통해 학습과정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하지만 대학 수준의 교육기관이 아니라 아주 작은 규모의 모임에서 이런 목표를 추구하며 운영해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자주 한계에 부닥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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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 있을 때고 그랬지만, 그 분야를 떠나서도 계속 멋지시구나. 이렇게 지구 환경과 생태를 공부하셔서 몇 년 전에 강금실 장관님이 녹색당 회원이 되고, 녹색당을 지지하셨던 거구나. 지구와 생태에 대해서 공부하신 지 10년이 넘었는데, 그 내력도 만만치 않으실 것 같고, 이런 분들이 탄소중립 시대에 꼭 필요한 분인데 현실은 강금실 장관님과 가장 반대편에 있는 이들이 권력을 잡게 되었으니 안타깝구나.


1.

산업혁명 이후 지구 환경이 급격하게 황폐화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인간의 서식지를 위해 너무 많은 자연이 사라졌다는 데 있단다. 산업문명 초기 지구에서 인간의 서식지는 14%였는데, 지금은 77%라고 하는구나. 그러니까 예전에는 14%의 땅에서 지구를 망가뜨리고, 나머지 84%의 땅이 자정 능력으로 지구 환경을 살려냈는데, 지금은 77%의 땅에서 지구를 망가뜨리고, 나머지 23%의 땅이 자정 능력으로 지구를 살리려고 하니, 그게 역량 부족이 되어버려서 결국 지구가 점점 황폐화되고 있는 거지.

기후 변화도 다 이런 원인으로 일어나는 거야. 지구의 평균 기존이 산업화 시작 대비 1.5℃가 넘어가면 커다란 위기에 봉착한다고 하는데, 1.5℃ 넘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언제 넘느냐가 관건이 되고 말았단다. 현재 1.09℃ 까지 높아졌다고 하는데, 그 정도만 해도 온갖 기상 이변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남극과 북극의 빙하들이 녹아 내리고 있으니 말이야. 1.5℃가 넘어가면 얼마나 많이 기상이변과 우리가 모르는 전염병들이 생겨날까. 그리고 1.5℃를 넘기면 땅 속에서 저장되어 있는 온실가스가 방출되게 되어 그 이후 기온 상승은 더 가파르게 진행된다고 하는구나. 무서운 이야기들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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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지구 시스템의 구성 요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비선형적으로 작용한다. 환경의 비선형 변화가 갖는 위험은 현재 물리적으로 관찰하고 측정할 수 있는 범위 밖으로 나갈수록 증가한다. 어느 부분에서 언제 티핑 포인트에 도달해 재앙이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다. 가령 기온이 1.5도를 넘을 경우, 빙하가 녹아서 전 지구적으로 해수면이 높아질 뿐 아니라 산악지대 영구동토층이 녹아서 매장되어 있던 온실가스가 방출될 수 있다. 결정적인 위험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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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장관님이 법조계에 있다 보니, 환경과 생태 문제에 접근할 때에도, 법과 함께 생각하셔서 지구법학이라는 것도 이야기해 주었단다. 지구와 자연에도 권리를 인정하자는 것이란다. 사람에게는 인권이라는 것이 있고, 동물들의 권리를 생각해야 하는 동물권이라는 것도 있고, 그렇다면 자연과 식물의 권리는? 2008년 에콰도르에서는 국민투표로 자연의 권리를 인정한 첫 번째 나라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이렇게 지구법학이 중요하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관심들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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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지구법학은 생태위기에 답하기 위해 창안된 새로운 패러다임의 법학이다. 지구법학은 지구와 인간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지구와 인간의 상호 증진적 관계를 지향하는 지구 중심적 패러다임 전환을 추구하면서 다듬어졌다. 산업문명과 근대법이 생명과 자연을 취급하는 생각과 방식에 근본적 결함이 있음을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 새로운 세계관과 법 제도를 제시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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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에게 시간이 없단다. 우리는 지금까지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너무나 낙관적인 믿음이 있어 그 사태를 더 키워온 것 같구나. 기후 변화? 뭐 누군가 해결책을 만들어서 해결할 수 있겠지? 이렇게 말이야. 하지만 기후 변화는 누구 한두 명이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모두가 노력을 해야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하는 단계에 이르렀단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끌어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쉽지 않은 것 같구나. 앞으로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해야 할 것들은 점점 뒤로 미루고시험 벼락치기처럼 탄소중립이라는 것을 될 수 없을 텐데, 다가올 미래가 좀 두렵기도 하구나.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조심씩 노력하자꾸나. 그리고 지구를 살리기 위해 불편한 일이 있더라고 감수하자꾸나. 그것이 지구를 살리고 미래를 살리는 법 아니겠니.


PS:

책의 첫 문장: 존 레논의 <이매진> 2003년 참여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후 근무할 당시 틈틈이 즐겨 듣던 노래다.

책의 끝 문장: 모든 존재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삶을 상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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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5-23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구법학회라는게 있었네요
저자는 강금실 변호사구요^^

bookholic 2022-05-24 23:58   좋아요 1 | URL
책 읽을 때는 인지를 못했는데
그레이스 님께서 말씀해주시니, 지구법학과 강금실 변호사님이 그렇게 이어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