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돌연변이 현상 자체는 무작위로 벌어지는 사건이다. 돌연변이 유전자의 운명, 즉 미래 세대에 그 유전자가 확산되고 지속될지 아니면 사라져 버릴지는 그것이 좋은 변화(유익한 돌연변이)인지 나쁜 변화(불리한 돌연변이)인지 또는 상관없는 변화(중립적 돌연변이)인지에 달려 있다. 무작위로 시작된 유전자 돌연변이는 자연 선택/도태 과정에서 당사자와 후손에게 충분히 유익하면 영구화된다. 이와 반대로 불리한 돌연변이는 그 유전자를 가진 아이가 살아남더라도 확산되지 않고 금방 사라지고 만다. 인류가 생존해 온 1만 세대라는 기간 동안 우리의 게놈은 천천히 그러나 확고한 걸음으로 상당히 큰 변화를 겪었다. 무작위로 시작된 돌연변이지만 그중 유익한 것들은 선택적으로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72)

지구상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부터 인간은 몸에 필요한 열량을 제공하는 음식을 간절히 원했다. 우리는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할 능력이 있어서, 음식이 풍부할 때 과식을 해서라도 남은 열량을 지방으로 축적해 다음에 찾아올 기근을 이겨낼 수 있다. 또 다양한 음식을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로 바꿀 능력도 갖추고 있다. 굶주림은 개인뿐 아니라 생물 종 전체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기에 우리의 본능과 인체 내 조절 장치는 전부 과식을 해서라도 당장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을 흡수하는 쪽으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기울어 있다.


(89)

영양 실조와 굶주림은 인간의 생존을 끊임없이 위협해 왔다. 그러니 우리 몸이 음식-특히 몸에 꼭 필요한 핵심적인 음식-을 원하고, 오염되거나 독이 든 음식은 먹고 병들거나 죽지 않도록 알아서 거부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 몸은 허기와 입맛, 소화를 북돋고 제어하는 다양한 호르몬과 기관에 의존한다. 결국 우리는 충분한 열량을 섭취해 소화하도록 하는 유전자와, 주기적인 식량 부족에서 살아남아 종을 보존할 수 있게 지방을 넉넉히 저장하도록 하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의 후손인 것이다.


(94)

쓴맛은 좋은 느낌이 아니다. 독이 든 식물은 흔히 쓰므로 쓴맛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우리 몸이 만들어 낸 일종의 방어 기제다. 모든 미각 세포 중 쓴맛을 알아차리는 세포가 가장 예민하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소량의 쓴 물질까지 감지할 수 있다. 아무리 적은 양의 독도 피하는 것이 언제나 중요하기 때문이지 싶다. 쓴맛 감지를 돕는 유전자는 25가지가 넘는다. 단맛과 감칠맛 감지 유전자는 둘 다 합쳐 겨우 3가지뿐이라는 사실과 대조된다.


(154)

항상 불확실한 식량 공급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인간의 몸은 반복되는 아사의 위협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진화했다. 우리의 미뢰는 열량 밀도가 높은 지방, , 단백질을 원하도록 만들어졌다. 소장과 대장은 섭취한 음식, 특히 원래 형태에서 분해되어야 하는 음식에서 영양소를 최대한으로 흡수한다. 거기에 대해 우리는 가능할 때마다 과식을 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어서 장래에 있을지 모르는 식량 부족에 대비해 지방을 저장한다.


(163-164)

우리 조상들은 현대인보다 안정적으로 물과 소금을 손에 넣을 기회가 보장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미래의 부족에 대비해 물과 소금을 찾고 소비하고 충분히 몸속에 저장하도록 몸이 적응해야만 했다. 그리고 물과 소금이 부족해지면 다양한 호르몬이 동원되어 탈수로 인해 혈압이 위험할 정도로 낮아지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요컨대 루스벨트는 인류의 생존을 20만 년 동안 보장해 온 과잉 보호 형질과 호르몬들이 작동한 결과로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171)

모든 온혈 동물은 체온을 아주 좁은 범위 내에서 유지해야 한다. 인간의 경우 그 온도는 화씨 98.6(섭씨 37) 정도고 다른 포유 동물은 대부분 그보다 약간 더 높다. 주변 온도보다 체온을 더 높게 유지하려면 우리는 열량을 태우면서 나오는 열에 의지해야 한다. 그러나 높아진 주변 온도나 신체 활동 때문에 많은 열량을 단시간에 태워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열이 생기면 열을 식힐 수도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고기를 공급하는 사냥감에 비해 우리가 크게 유리한 점은, 오래도록 육체 활동을 해야 할 때 과열을 피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주변이 더울 때 이 능력은 더욱 빛을 발한다.


(181)

나트륨과 물의 경우 과잉 보호가 주는 유리함은 간단하다. 몸에 나트륨과 물이 부족하면 탈수현상이 일어나 몸 전체에 혈액을 충분히 보낼 수 있는 최저 수군 이하로 혈압이 낮아질 수 있다. 혈압이 너무 낮아지면 우리는 기절하거나 죽는다. 이에 반해 나트륨과 물이 몸에 조금 더 있으면 땀을 많이 흘리거나 설사를 하거나 한동안 물을 못 마시는 일이 있어도 혈압이 위험할 정도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남아도는 나트륨과 물 때문에 혈압이 조금 높아져 그 상태로 몇 년 동안 지속되더라도 몸이 견뎌낼 수 있다. 따라서 몸에 물과 나트륨이 조금 남는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너무 없는 것을 걱정하는 쪽으로 몸의 미세 조정 장치가 작동하는 것이 합당하다.


(207)

과도한 나트륨 섭취는 우리 몸의 과잉 보호 성향을 더욱 부추겨 필요 이상으로 혈압을 높인다. 고혈압의 원인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소금을 더 먹으면 혈압을 높인다. 고혈압의 원인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소금을 더 먹으면 혈압은 더 올라간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나트륨을 1그램 더 먹을 때마다 혈압은 2.1수은주밀리미터 상승하고 고혈압이 될 확률을 17퍼센트 높인다. 지나친 나트륨 섭취는 심장, 신장, 혈관에 손상을 가져오며, 하루에 나트륨을 6그램 이상 섭취하면 사망 위험을 높일 개연성이 아주 높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 세계적으로 한 해에 150만 명 이상이 나트륨 과다 섭취로 목숨을 잃는다고 추산한다.


(243)

두려움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위험한 상황을 피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두려움 덕분에 공격당하는 일을 모면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적어도 당분간은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간혹 위험을 피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을 했는데도 공격적인 경쟁자의 공격을 받는 상황에 처한 조상은 본능을 총동원해 자신을 보호하는 행동을 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을 살렸던 이 방어 본능은 현대를 사는 우리의 심리 상태 중 일부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293-294)

1628년 영국의 의사 윌리엄 하비가 혈액 순환을 최초로 상세히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 의학은 진일보했다. 모두 합치면 9 6000킬로미터에 달하는 동맥, 정맥, 모세혈관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순환계에는 5쿼트( 4.7리터) 정도의 피가 돌고 있다. 이 폐쇄 순환 체계에 아주 조금한 구멍이라도 생겨 피가 새기 시작하면 우리 몸은 출혈로 인한 사망을 방지하기 위해 댐에 난 구멍을 막듯이 즉시 피를 응고시킨다. 하지만 원래 출혈로부터 우리를 구해 주는 이 응고 장치가 필요하지 않을 때 작동하면 혈전이 생기는데, 이 혈전-로그 오도널의 관상 동맥에 생긴 것-은 우리를 몹시 아프게 하거나 심지어 죽일 수도 있다.


(396)

자연 선택은 훌륭한 체제다. 수천 년에 걸쳐 우리가 환경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아마 그 속도는 점점 가속이 붙어 갈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속화더라도-그리고 유전자뿐 아니라 후성 유전학적 꼬리표까지 나서서 이 과정을 진행하더라도-자연 선택의 속도가 지금까지 변해 오고 또 앞으로 변해 갈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필요 이상의 음식과 소금을 섭취하고, 과도하게 불안과 우울을 느끼고, 혈액이 너무 잘 응고하는 이 타고난 형질을 막거나 되돌리는 일을 우리 몸이 자연스럽게 해내리라고 믿고 맡겨 둘 수가 없다. 대신에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킬 방법-정신력으로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법-을 찾아야 할 것이며, 동시에 과학의학의 도움을 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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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서구 철학 전통에서 거울은 자기 인식의 단계이자 도구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거울을 통한 착각에 불과하다. 자기 눈으로 자기를 본다? 보는 주체와 보이는 대상이 같다면 자기 복제가 아닌가. 결국 자기 시력(視歷) 수준에서밖에 볼 수 없다. 보고 보이는 것으로부터 자유. 안다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과정에서의 관계성이다. 인간은 자기 외부의 타자를 통해서, 나와 다른 타인을 통해서,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부분적으로 자기를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46-47)

타인과 소통, 의미 있는 일에 몰두, 자신을 잊는 헌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움, 사랑, 솔로의 꿋꿋함, 실존의 조건…… 이런 인식이 외로움에 대한 나의 개똥철학이었다. 이런 삶도 외로움을 덜어주신 한다. 그러나 쉬운가? 김영갑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확실히 몰두할 대상이 있어서 나나 타인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외로움은커녕 약간 흥분 상태였다. 당시에는 처음 보는 사진이 너무 황홀해서인지 글이 읽히지 않았다. 사진가의 글은 별로라는 생각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51-52)

책의 좋은 점은 머리에 저장할 수 있다는 점인데, 나는 책읽기가 아니라 책이라는 물건을 좋아하고 있다. 생계 노동 외 대부분의 시간을 책 청소와 정리로 보낸다. 책장 청소를 위해 특별 구입한 청소기로 1, 마른걸레로 2, 물수건으로 3. 주제별, 저자별, 저널별, 논문별로 분류한다. 매일 정리해도 끝이 없다. 엽서, 포스터, 문구류에 대한 집착도 있어서 그 관리도 만만치 않다. 유복은 고사하고 이사를 꿈꾸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사후 기증도 마음이 놓이질 않으니, 병이다.

<무소유>를 읽으면 뭐하나. 법정의 말대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니 노예가 따로 없다.


(60)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라는 말이 있지만 실제 그럴까. “하는 일 없이 나이만 먹는구나.” 심란해하는 이들이 더 많다.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악랄한 이데올로기. 나이에 맞는 정상적인 삶과 성취가 있다는 생애주기 개념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질병 때문에 인생의 공백이 생긴 경우 누굴 탓하랴. 일본의 유명한 배우 와타나베 켄은 승승장구하던 시절 백혈병 진단을 받고 첫 단독 주연작을 포기했다.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기적적으로 재기했다.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그의 진정성과 젊은 날 투병의 영향일 것이다.


(62)

뒤처진 인생이란 결국 타인에게 뒤처졌다는 얘기인데, 다른 이들도 똑같이 뒤쳐졌으므로 덜 괴로워해도 되지 않을까. 더구나 당대 자본은 나이에 맞는 지위가 아니라 어린 나이에 지위를 초과 달성한 이들을 원한다. 어차피 웬만한 사람은 다 루저. 뒤처지지 않으려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길을 잃지 않으려고 마스터플랜을 쥐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81)

지난 금요일 아침부터 겨우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이날을 기억할 정도로 올여름은 더웠다. 나만의 감식법인데 ‘8월 하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나이듦에 대한 심정을 알 수 있다. “드디어 가을이 왔다.”고 좋아하는 이들은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사람이고, 올해 같은 8월이 가는 것조차 서운한 이들은 스스로 나이들었다고 생각하는사람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후자다. 인간은 원래 소통 불가능한 동물이지만 이 심정을 젊은이는 모를 것이다. 역지사지가 가장 어려운 영역은 나이 차이가 아닐까. 한쪽은 거쳐 왔고, 한쪽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완벽한 비대칭.


(91-92)

소박하게 살고 싶어서, 만사가 귀찮아서, 사람이 싫어서…… 은둔을 고민하지만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은둔이 도피 이상이 되려면 입장이 확실해야 한다. 나의 잠정 결론. 은둔의 이유는 세상이 나를 더럽혀서가 아니다. 내가 세상을 더럽히므로 떠나야 한다. 마음이 편하다. 마음만이라도 거사(居士).


(117)

나는 늘 내 문제가 궁금하고 그로 인해 생성되는 삶의 화학에 골몰하는 편이다. 내게 인생의 절정, 결정적 순간은 패배 후의 복기다. 무엇인가 잘못되었을 때, 혼돈과 의문의 시간에 바로 복기할 수 있다면! 그 깨달음의 절실함과 기쁨을 어디에 비교할까. 집약된 배움, 농축된 시간, 바둑의 복기는 요다 노리모토 9단의 휘호처럼 이치고이치에”(一期一會, 다시 오지 않을 단 한번의 기회)일지 모르지만, 삶은 복기의 연속이다. 그래야 한다. 매 순간이 대국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복기는 트라우마, 집착, 후회를 가져온다. 지나간 일을 제대로 해석하는 것.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다.


(154)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 권력자다. 자기 충족적 삶은 최고로 힘을 지닌 상태다. 인간은 권력 지향적이기 때문에 권력감이 없으면 외로운데, 자기 몰두형 인간은 권력에 무심하다. 사실, 이 행복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


(191)

, 참 국립국어원은 남성 페미니스트여성에게 친절한 남자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앞에 예쁜 여성에게만붙이면 완벽하네요!


(220)

말을 섞는 것은 살을 섞는 것보다 관능적인 행위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나는 섹스보다 대화가 더 심각한 인간관계라고 생각한다. 말이 통한 다음에 올 천국과 파국을 알기에, 되도록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엮이는 것만큼 재앙도 없다. 말은 물질이다. 말 한마디는 빚만 갚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게 한다. 나는 예전에 이송희일 감독의 우린 친구가 없으면 끝이잖아.”와 서울인권영화제 표어였던 나는 오류입니까?”로 몇 달 버틸 양식을 구했다.


(241)

과학자는 신이 아니다. 과학자이기 이전에 자신의 정체성, 자기 연구의 의미, 자신이 속한 사회의 역사와 언어, 개인의 위치성을 알아야 한다. 동물들의 행위가 약육강식인지, 협력인지, 경쟁인지, 돌봄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판단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먼저 질문해야 한다. 잠깐, 백번 양보해서 여성의 모든 문제가 호르몬이라고 치자. 그것도 모두 출산력과 관련이 있다면 저출산 시대에 여성을 보호하고 지지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언제나 인간 문제는 팩트여부가 아니라 팩트를 만들어내는 권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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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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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장 빠르게 알려진 한국 작가를 한 명 뽑으라고 하면 단연 김초엽 님이 아닐까 싶구나. 데뷔작부터 나오는 책마다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작가 김초엽 님의 첫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을 읽었단다. 아빠는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을 통해서 처음 김초엽 님을 알게 되었고, 그 책에 실린 단편 소설들을 읽어보았단다. 2회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차지했던 <관내분실>과 가작을 받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려 있었지. 그리고 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만난 <인지 공간>까지 이렇게 총 세 편의 김초엽님의 단편 소설을 읽었단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아주 확 와 닿지는 않았단다. 사람마다 자신들과 맞는 작가들이 있으니까 말이야. 어쩌면 아빠가 장편 소설보다 단편 소설에 흥미가 좀 적은 이유도 있을 수 있었고

그런 김초엽 님께서 처음으로 장편 소설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들었어. 앞서 읽었던 세 편의 작품들이 아빠에게는 크게 감동을 주지 못해서 출간 소식은 들었지만, 쉽게 손은 가지 않았단다. 그런데 먼저 읽은 사람들의 평들이 너무들 좋았단다. 아빠가 귀가 얇아서 그런 것에 잘 흔들리잖니. 소재도 환경에 관한 소설이라고 하더구나. 어떻게 이야기를 끌어갈까 궁금했단다. 그래서 읽었단다. 오호, 김초엽 님의 단편을 읽을 때랑은 느낌이 전혀 달랐어. 장편 소설이 처음에도 불구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이야기의 전개, 짜임새 있는 스토리 라인한 마디로 아주 깔끔한 소설이었단다. 앞서 김초엽 님이 소설이 아빠한테 잘 안 맞는다고 했던 말은 취소. 예전에는 우리나라 SF 소설이 좀 취약하다는 생각을 아빠가 갖고 있었는데, 최근에 읽은 우리나라 SF 소설들은 모두 기대를 웃도는 재미를 보여서 이제는 그런 생각을 갖지 않게 되었단다. K-SF라는 말이 나오길


1.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후의 우리나라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단다. 2058년 한 연구소에서 실수로 자가 증식하는 먼지가 만들어졌단다. 그 자가 증식하는 먼지는 더스트라고 불렀어. 그 더스트는 빠른 속도로 온 지구를 휩쓸었고, 그 더스트는 생명체들을 죽이고 위협이 되었어. 그래서 인간들은 더스트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돔을 건설하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돔시티라고 곳에서 생활하게 되었단다. 사람들도 더스트에 노출되면 생명을 잃었거든. 물론 더스트에 내성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어. 사람들은 그들을 내성종이라고 불렀어. 이 더스트을 없애기 많은 과학자들이 노력을 하였고, 디스어셈블러라는 것을 개발하여 더스트를 없앴다고 하는구나. 2064년에 디스어셈블러를 개발했는데, 더스트를 모두 없앤 것은 2070년이었대. 사람들은 그 시절을 더스트 시대라고 불렀단다.

그리고 또 60년이 흐른 시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단다. 아영은 더스트 생태 연구 센터에서 일했는데, 강원도 해월에 모스바나가 증식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사하러 갔단다. 모스바나는 피부에 닿으면 그 독성으로 피부에 상처를 입게 되어서 악마의 식물이라고도 불렀어. 모스바나는 더스트 시대에 새로 생겨났다가 한창 번식을 한 후에 지금은 거의 사라진 덩굴식물인데 그것이 다시 증식했다고 해서 조사를 간 것이었어. 모스바나가 생각보다 넓은 곳에 증식되었고, 가끔 푸른 빛을 보인다고 했어.

푸른 빛이라는 말에 아영은 어린 시절 이웃에 살던 이희수라는 할머니의 정원이 떠올랐어. 그 때도 어떤 식물에서 푸른 빛이 보였거든. 아영은 푸른 빛을 내는 모스바나에 대한 조사를 했어. 인터넷에서 에티오피아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이 푸른 빛을 내는 모스바나를 알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줬어. 때마침 에티오피아에서 더스트 시대 재건 60주년 기념 학회가 있었는데, 그때 만나면 되겠다고 생각했단다. 아영은 에티오피아에서 연락을 남긴 나오미를 만나고, 모스바나의 숨겨진 비밀을 듣게 된단다.


2.

더스트 시대. 더스트에 내성을 갖고 있어 죽지 않는 내성종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들은 신변에 위협을 받곤 했어. 그들의 피가 더스트에 내성을 갖게 한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야. 그래서 그런 내성종들을 쫓는 사냥꾼들도 있었어. 아마라와 나오미는 자매인데 그들도 내성종이었어. 그들은 내성종들이 모여 살고 있는 마을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그 마을 찾아 떠났단다. 그 마을의 이름은 프림 빌리지라고 했어. 그 마을은 말레이지아의 케퐁 지역에 있었고, 간신히 그 마을 찾은 아마라와 나오미는 그 마을의 일원이 되었단다.

프림 빌리지는 지수라는 사람이 리더였어. 동네 사람들은 지수에게 지수 씨라고 불렀단다. 그는 드론과 기계를 다룰 줄 알았고, 고장 난 것도 잘 고쳤어. 그래서 그것들을 이용해서 외부 침입자들이 오면 공격해서 막아내기도 했단다. 내성종들을 찾아 공격해온 사냥꾼들이었지. 나오미는 하루라는 아이와 마을을 정찰하는 일을 하게 되었어. 그리고 우연히 지수 씨와도 친해졌는데, 지수 씨는 온실을 갖고 있었고, 그 온실은 레이첼이라는 사람이 관리를 했단다.

어느날 더스트 폭풍에 예보 되었어. 그들이 아무리 내성종들이었지만, 더스트 폭풍은 강한 바람과 함께 엄청난 먼지를 몰고 오기 때문에 마을이 폐허가 될 수도 있거든이 더스트 폭풍은 돔시티까지 망가뜨려 돔시티 안의 사람들도 죽일 정도로 강력했어. 그러면 이걸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온실에서 식물만 가꾸던 레이첼은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이 직접 개량한 식물을 심으라고 했어. 그 식물은 번식력이 엄청 강해서 그 식물을 심었더니 그 식물은 곧바로 마을 주변에 무성해졌단다. 그 식물이 바로 모스바나였어.. 동네를 감싸 안았던 모스바나 덕에 더스트 폭풍을 이겨낼 수 있었단다. 이 모스바나는 더스트를 제거하는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었거든. 모스바나는 지수 씨와 레이첼이 처음부터 이걸 목적으로 개량한 식물이었던 거야.

모스바나의 효과를 본 프림 빌리지 사람들은 이제 이 식물이 지구를 살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 그냥 이곳을 지키자는 사람들도 있어 내분도 있었지만, 그들은 각자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면서 모스바나를 전파하기로 했단다. 그들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모스바나를 퍼뜨렸고, 번식력 좋은 모스바나는 금방 온 세상을 뒤덮었단다. 그러니까 더스트 시대를 종식시키는데 가장 큰 역할은 한 것은, 앞서 이야기한 디스어셈블러가 아닌 모스바나였던 거란다. 물론 디스어셈블러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야. 아마라와 나오미도 자신의 모국인 에피오피아를 가는 길마다 모스바나를 퍼뜨리기도 했단다. 그것뿐만 아니라 지수 씨가 더스트에 중독된 사람을 치료하는 분해제를 만들었는데 그것도 같이 가지고 가서 더스트에 중독된 사람들을 치료해 주었어.


3.

이야기를 듣는 아영은 이야기 속 지수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웃에 살고 계시던 이희수 할머니를 것을 깨닫게 된단다. 온실에서 모스바나를 키우고, 기계를 잘 다루고, 이름도 비슷하고 말이야. 그래서 어린 시절 살던 마을을 찾아가서 이희수 할머니의 발자취를 쫓았어. 이희수 할머니는 해월 근처 요양소에서 몇 년 전까지 머무르다가 돌아가셨다고 하더구나. 그 요양원에는 이희수 할머니가 남긴 회고기록이 있다고 했어. 아영은 그 회고기록을 봤어. 거기에는 지수 씨가 레이첼이 했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었단다. 그리고 레이첼이 사람이 아닌 사이보그 로봇이라는 사실도 알게 돼. 그래서 아영은 수소문 끝에 레이첼을 만나게 되고, 지수 씨와 추억이 깃들어 있는 회고기록이 담긴 칩을 전해주게 된단다.

…..

아빠가 중간중간 이야기들을 빼먹고 이야기를 해서 다소 앞뒤가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이해해주렴. 핑계일 수 있지만, 너무 지나친 스포일러는 그렇잖니…^^ 미세먼지가 극성인 우리나라에 모스바나 같은 식물이 있으면 좋겠구나. Shon은 이 책을 읽기에는 아직 어려울 것 같고, Jiny는 이 책을 읽어볼 수 있을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책표지가 너무 예뻐서 딱 너 스타일일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김초엽 님의 <지구 끝의 온실> 식물을 주제로 한 SF라서, 읽으면서 천선란 님의 <나인>이라는 SF도 살짝 생각났단다. 그 소설에도 식물이 중요한 역할을 했잖아. 아빠가 천선란 님의 <나인>을 웹툰으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는데, 김초엽 님의 <지구 끝의 온실>도 웹툰이나 영화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다음 작품이 무척 기대되는구나.


PS:

책의 첫 문장: 낡은 차가 덜컹거리며 오르막 흙길 앞에 멈춰 섰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그곳에서 밤이 깊도록 유리벽 사이를 오갔을 어떤 온기 어린 이야기들을.


당신은 재건의 역사를 식물들의 관점에서 재구성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그 작업이 수행되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인류는 그간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 역사만을 써온 것일까요. 식물 인지 편향은 동물로서의 인간이 가진 오래된 습성입니다. 우리는 동물을 과대평가하고 식물을 과소평가합니다. 동물들의 개별성에 비해 식물들의 집단적 고유성을 폄하합니다. 식물들의 삶에 가득한 경쟁과 분투를 보지 않습니다. 문질러 지운 듯 흐릿한 식물 풍경을 바라볼 뿐입니다. 우리는 피라미드형 생물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식물과 미생물, 곤충들은 피라미드를 떠받치는 바닥일 뿐이고, 비인간 동물들이 그 위에 있고, 인간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반대로 알고 있는 셈이지요. 식물들은 동물이 없어도 얼마든지 종의 번영을 추구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언제나 지구라는 생태에 잠시 초대된 손님에 불과했습니다. 그마저도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위태로운 지위였지요. - P364

마음도 감정도 물질적인 것이고, 시간의 물줄기를 맞다보면 그 표면이 점차 깎여나가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어떤 핵심이 남잖아요. 그렇게 남은 건 정말로 당신이 가졌던 마음이라고요. 시간조차 그 마음을 지우지 못한 거예요.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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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22-04-08 0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라마인가 영화인가 나온대!

bookholic 2022-04-08 21:12   좋아요 0 | URL
오호, 그렇군요~~ 기대됩니다~~^^
야옹이와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요~~^^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미술 방구석 미술관 2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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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예전에 재미있게 읽은 <방구석 미술관>이란 책이 있단다. 세계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 소개와 그들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해주는 그런 책이었어. 두 번째 이야기를 담은 <방구석 미술관 2>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을 이번에 읽었단다.

이번에는 한국 편으로 우리나라의 미술가들의 이야기로 꽉 채워져 있단다. 열 분의 미술가를 소개해주고 있는데 모두 현대 미술을 하신 분들이란다. 아빠가 미술에 문외한이라서, 우리나라 현대미술가라고 하면 떠오르는 분들이 한 손으로도 헤아리기 어렵더구나. 이 책에는 모두 열 분과 그들의 작품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기억이 오래가지 못해서 그 분들의 자세한 작품들과 미술 성향에 대해서는 금방 까먹겠지만, 성함은 잘 기억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우리 나라에도 이런 멋진 미술가들이 계시다고 말이야. 지은이 조원재 님 덕분에 잘 모르고 있던 우리나라 현대미술에 대해 조금이라도 눈을 뜰 수 있어 좋았단다.


1.

이 책에서 현대미술가들은, 이중섭, 나혜석, 이응노, 유영국, 장욱진, 김환기, 박수근, 천경자, 백남준, 이우환, 이렇게 열 분이란다. 이 열 분 중에서 유명한 몇몇 분들만 알지, 나머지 분들은 잘 모르는 분들이야. 이 열 분에 대해서 간추려서 너희들에게 모두 이야기해주면 좋겠지만, 그것은 나중에 너희들이 책을 읽어서 만나길 바라고 아빠는 몇 분만 이야기해 볼게.

먼저 소 그림으로 유명한 이중섭 님. 얼마 전에 너희들이 보는 책에도 나와서 너희들도 알고 있는 그런 분이잖아. 1916년 평안남도 평원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는데, 부잣집에서 태어났대.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접할 수 있었고, 공부도 곧잘 해서 그 유명한 오성고보 출신이라고 하는구나. 일본에 유학을 갔다가 일본인 야마모토 마사코라는 분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대. 야마모토 마사코는 이름을 이남덕으로 바꾸고 우리나라에서 생활했다고 하는구나. 부유한 집안에서 일본 유학을 하고, 일본인과 결혼을 한 이중섭이지만, 늘 마음 속에는 나라를 빼앗긴 현실에 가슴 아파했고, 그것을 소를 통해서 우리 민족을 표현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그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의미로 소를 그렇게 열심히 그리게 된 것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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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타국에 나라를 빼앗긴 슬픈 현실, 말문마저 탄압으로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 이중섭은 민족의 존엄성을 그림에 담고자 했습니다. 그 존엄성을 은밀하게 담아 우리 민족만이 알아챌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가능케 할 존재는 소였습니다. 그의 소 사랑은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틈만 나면 들에 나가 소를 구석구석 관찰하며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기숙사에 있는 그의 방에는 소의 몸통, 앞발, 뒷발, 꼬리, 머리 등을 스케치한 그림들로 가득했고, 중섭은 그 스케치와 함께 잠들었다고 합니다. ‘소를 나만의 방식으로 그려내겠다는 그의 열정은 주변 지인들이 보았을 때 미친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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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 되어 본격적인 그림을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얼마 못 가서 한국 전쟁이 나고 부산과 제주로 피난을 가게 되었어. 거기에 아내는 폐렴에 걸리고 아이들은 영양 실조에 걸리게 되자, 이중섭은 아내와 아이들을 친정이 있는 일본으로 보냈단다. 그리고 혼자서 힘들게 생활을 이어갔고, 일 년 뒤 어렵게 얻은 배표로 일본에 가서 일주일 간 가족들을 만나고 돌아왔단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중섭은 다시 가족을 만나기 위해 정말 열심히 그림을 그렸단다.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열어서 그림을 팔면 돈이 생기니까 말이야. 하지만, 이중섭의 그림을 사간 사람들에게 돈을 받지 못했어. 거의 도난 당한 거나 마찬가지였지. 일본으로 가족을 만나려 가려던 꿈도 깨지고 말았지.

이런 일을 겪고 난 이중섭은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걸려서 그림 활동도 거의 하지 못했어. 말년에는 정신병원까지 가기 되고, 무연고자로 삶을 마감했다고 하더구나. 이제 고작 마흔 살인 1956년의 일이었단다. 아빠가 이중섭 님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 이중섭 님의 아내 이남덕 님은 아직 생존해 계시더구나.

신여성으로 더 유명한 나혜석 님. 1896년 수원의 부잣집 딸로 태어나서 어렸을 때부터 신식 교육을 받았어. 일본으로 유학 가서 서양화를 공부했단다. 신식 여성으로 자유 연애를 하였고, 최승구라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단다. 하지만 최승구는 이미 유부남이었고, 최승구는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했어. 최승구는 이혼을 하려고 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이혼을 하지 못했어. 그러다가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지병이 악화되어 그만 죽고 말았단다.

사랑의 슬픔을 뒤로 하고 나혜석은 1919 3.1운동에도 참가했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어. 이때 감옥에 갔을 때 일본에 있는 김우영이라는 변호사가 나혜석을 변호해주겠다고 한국행 배에 몸을 실었단다. 김우영. 이 분은 나혜석이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부터 나혜석을 짝사랑하던 분이란다. 나혜석이 감옥에 갇혔다고 하니 다른 일 모두 제쳐두고 온 거야. 하지만 김우영이 한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출옥한 상태였다고 하는구나. 김우영은 나혜석에게 계속 구애를 했단다. 그리고 결국 3가지 조건을 걸고 나혜석은 김우영과 결혼을 했단다. 그 세가지 조건은 아래와 같았단다.

. 일생을 두고 지금과 같이 나를 사랑해주시오.

. 그림 그리는 것을 방해하지 마시오.

. 시어머니와 전실 딸과는 별거케 하여주시오.

신여성의 당당한 요구 조건이구나. 그렇게 김우영과 결혼을 하고, 그들은 아이 셋도 낳았단다. 그러면서도 계속 그림을 그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어. 워킹맘으로써 아이도 키우고 그림도 그리고 한 거야. 김우영이 포상으로 세계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그때 나혜석도 동행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유럽에 가게 되었고, 파리에서 생활하게 되었어. 파리의 나혜석은 그림을 더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김우영만 한국으로 보내고 파리에 남게 되었단다. 김우영은 혼자 남은 나혜석이 걱정되어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던 최린에게 나혜석을 보살펴달라고 했는데, 나혜석과 최린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단다. 최린이 나혜석을 꼬셨다고 했다나.

이 일을 우영이 알고 나혜석을 귀국시켰단다. 그리고 이혼했어. 나혜석은 <이혼 고백장>을 문예지에 싣는 당시에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단다. 이런 일을 벌이자 식구, 지인마저 그녀를 피했어. 나혜석은 이혼 후 홀로 힘들게 생활하했어. 가난과 싸워야 했고, 보고 싶은 아이들을 보지 못해서 무척 힘들어했어. 그렇게 보니 병이 생기고 53세라는 적은 나이에 무연고자로 어떤 병원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단다. , 이중섭 님도 그렇고 나혜석 님도 그렇고 불운한 말년이시구나.

….

이응노 님. 1904년 서당집 아들로 태어났어.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는데, 아버지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단다. 집을 떠나 무작정 서울로 가서 당시 유명한 화가인 김규진을 찾아가 제자가 되었단다. 김규진으로부터 동양화를 배웠고 나중에 일본 유학을 가서 서양화를 배워서 동양화와 서양화를 접목시킨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단다.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다른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전쟁으로 인해 또 어려움을 겼었단다. 이응노의 아들이 북에 남겨진 채 전쟁이 끝나고 말았어. 이산 가족의 아픔도 겪어야 했단다. 그가 미술에 더욱 전념하여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게 되었단다. 이응노는 미술 공부를 위해 미국에 건너갔다가 다시 파리로 가게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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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노력. 그것도 목적이 있는 노력. 50대의 나이에도 항상 깨어 있고자 노력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과 작품에 반영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이응노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의 예술에서 영원히 늙지 않는 젊음이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시대에 깨어 있던 그의 작품은 1957년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 갤러리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전에 출품됩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판매되어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됩니다. 곧 이어 자크 라센느(세계미술평론가협회 프랑스 지부장)가 프랑스로 그를 초청하죠. 이미 한국미술계에서 승승장구하며 환갑을 앞두고 있던 거장 이응노. 이제 좀 쉬겠다고  해도 누구도 안 말릴 나이에 그는 새로운 도전에 또 한 번 몸을 내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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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화가의 재능을 꽃피우게 되었단다. 이런저런 새로운 시도를 했고, 이곳에서도 동양화와 서양화의 접목을 계속 시도했어. 이런 점들이 파리에서 인정을 받아 그곳에서도 유명한 화가가 되었단다. 파리에 파리동양미술학교도 설립해서 한국서화를 소개했단다. 이렇듯 몸은 타국에 있지만, 민족주의자였던 이응노. 그러던 어느날 고국에서 그런 이응노에게 국내로 초대를 했단다. 그렇게 오랜 만에 고국에 돌아왔는데,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감옥이었단다. 당시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이라고 간첩 조작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에 연루된 것이란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단다. 얼마 전 동베를린의 북한대사관에서 이응노에게 아들의 편지가 있으니 오라고 했어. 전쟁 때 헤어진 아들의 편지라고 하니 안 갈 사람이 어디 있겠니. 그렇게 동베를린 북한대사관에 갔는데, 다시 북한에 가면 아들을 볼 수 있다고 했대. 뭔가 낌새가 이상해서 다시 파리로 돌아온 일이 있는데, 이 일로 당시 우리나라 중앙정보부는 이응노를 간첩을 몰아 붙인 거야.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간첩 조작하는데 유능한 중앙정보부를 이길 수 없었어. 무서운 시절이었단다. 그렇게 2년형을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단다. 파리를 비롯한 유럽의 화가들이 우리나라 정부에 탄원을 하게 되었고, 결국 출소하여 다시 파리로 돌아갔단다. 그는 결백하지만 오랫동안 간첩 화가로 낙인이 찍혔고, 정부로부터 계속된 감시를 받아야 했단다. 조국의 배신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그는 한국서화를 알리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말이야. 이응노는 어쩔 수 없이 프랑스로 귀화를 했지만, 그는 조국을 잊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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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한국인이지만 한국에 갈 수도, 작품을 나눌 수도 없던 예술가. 20년 전부터 주변에서 권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이 거절해왔던 그것, 프랑스로의 귀화를 1983년의 응노는 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프랑스 사람이 되나, 나는 한 번도 내 조국을 잊어본 일이 없어요. 비록 조국이 나를 버린다 해도 난 나의 피와 정신 속에 살아 있는 조국을 버릴 수 없지.’ 유럽에 온 이후 끝까지 한국 신문을 놓지 않았던 그. 전시를 위해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저 멀리 보이는 한반도를 바라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 프랑스 유수의 미술관들이 자신의 작품으로 국가사업을 하는 것을 보며 자신의 재능이 외국을 위해 사용되고 있음에 깊은 안타까움을 토론했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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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89년 파리에서 심장마비로 삶을 마감하고 만단다.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독서 편지가 계속 밀리다 보니, 독서 편지의 내용이 점점 부실해 지는구나. 미안하구나. 김환기 님과 김향안 님의 사랑 이야기도 해주고 싶은데 그건 얼마 전에 아빠가 이야기로 했으니 생략할게. 김환기님은 그 분의 미술 세계나 작품 세계의 이야기보다 김향안 님과 사랑 이야기가 더 강하게 남는구나. 그런데 이 분들의 사랑이야기가 낯설지 않아서 생각해보니 예전에 읽은 소설가 이상에 관한 소설, 김연수 님의 <굳빠이 이상>에서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단다. 이상과 변동림(이 분이 나중에 이름을 김향안으로 바꾸지), 김환기와 김향안. 이 분들의 사랑 이야기를 영화로도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단다.

오늘은 이만 할게. 이 책에 소개된 나머지 분들에 과한 이야기는 나중에 너희들이 커서 이 책을 읽음으로써 만나길 바래. 그 때는 아빠의 기억력으로는 이 책의 내용을 거의 다 까먹을 테니 너희들이 다시 이 책의 이야기를 해주면 좋을 것 같구나.^^


PS:

책의 첫 문장: 얼마 전 일입니다.

책의 끝 문장: 모든 것이 <관계항>속이군요.


우리는 왜 이중섭을 국민화가라 부를까요? 아마도 그의 삶에서 나온 소를 비롯한 모든 그림이 20세기 한민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는 타인의 삶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삶 자체를 소에 이입해 그렸죠. 그가 겪은 고난과 아픔은 당시 한반도 위에서 생을 이어가던 모든 이의 고난과 아픔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고난과 아픔을 직접 겪어본 적 없지만, 이상하게도 중섭의 그림을 볼 때마다 마치 기억 속에 묻어둔 어떤 파편을 끄집어내 마주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아마 중섭이 시대의 산증인으로서 자신의 감정을 그림에 온전히 이입시키고 있기에 가능해진 일일 것입니다. 그 결과, 중섭의 그림은 영원히 살아 숨 쉬며 우리와 감정으로 소통합니다. 중섭과 중섭의 그림은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 들어와 ‘애달프면서도 따뜻한’ 기억의 조각이 됩니다. 그렇게 중섭은 국민화가로 우리 마음 한편에 남게 되었습니다. - P44

"당시 내 머릿속에는 민족적인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어요. 모두들 서양화만을 그린다면 동양화는 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그는 동양화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전통 동양화가 아닙니다. 동양화와 서양화를 조화롭게 융합시키는 미지의 길을 선택합니다. (사실상 지구상에) 어느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그 길을 ‘개척’하기로 한 것이죠. 동양화로는 이미 일정 수준의 경지에 오른 응노. 그렇기에 이제 그가 할 일은 서양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서른두 살의 나이로 일본 유학길에 오릅니다. 가족들에게 논밭까지 장만해주던 간판점 ‘개척사’를 미련 없이 처분하고 말이죠.
- P114

"나는 우리가 쓰는 말과 문자, 흰 옷을 입는 기상 등 깨끗하고 고상하고 착한 우리 민족성을 그리고 싶습니다."
-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 중에서
격동의 20세기 한국의 근현대사. 끝없이 변모하던 시대의 물결을 예민하게 감각하며 자신의 작품을 변신시킨 예술가. 자칫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민족의 예술정신을 현대에 살아 있게 하고자 삶의 모든 것을 던진 예술가. 86년의 생애 수없이 작품의 외형을 변신시켰지만, 그 안에는 오직 인간에 대한 순수한 애정만을 채웠던 고암 이응노. 시대를 초월해 그의 작품에서 영원히 울려 퍼져 나갈 시는 이것이 아닐까.
모두, 함께, 어울려, 자유와 평화의 춤을.
- P139

그(유영국)에게 사업은 가족을 경제적으로 지키고, 자신이 예술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예술에 대해선 무한한 꿈을 가지고 있던 이상주의자였지만,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선 돈이라는 수단이 기반이 되어야 함을 알고 있던 현실주의자였죠. 그런데 그는 또 너무 많은 돈을 원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 P167

"나는 소녀 적부터 가슴속에 커다란 감상의 주머니를 지니고 있다. 그 주머니가 이날 이때까지 나를 살게 하는 것 같다."
소녀 시절부터 가슴에 품어 온 ‘감상의 주머니’. 그 주머니에서 외할아버지와의 행복한 추억이 담긴 <조부>가 나왔듯이 뱀 역시 그 주머니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경자에게 뱀은 행복한 추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어릴 적, 친구(화자)가 산나물을 캐다 독사에 물려 죽은 기억이 뇌리에 남아 있는 만큼 뱀은 ‘저주를 불러오는 악한 것’이었죠. 자신의 삶이 저주의 늪에서 빠져나와지 못하고 있을 때, 그녀는 본능적으로 ‘감상의 주머니’에서 뱀을 끄집어냅니다. 그리고 그 저주의 대상을 피하지 않고 직시하기로 합니다. 자신의 삶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저주를 물리치기 위해 뱀을 그리며 정면으로 돌파하기로 합니다. 말이 좋아 예술이지 그녀에게 이 행위는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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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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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학창 시절 연습장 겉표지에 있던 시 한 편이 있었어. 박인환 님의 목마와 숙녀라는 시였는데, 그 시에 나오는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이 나왔어. 이 버지니아 울프라는 사람이 누구길래 시에 썼을까? 궁금했단다.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으니 어디 찾아볼 수도 없었어. 그런 궁금증 때문에 그 이름이 잊혀지질 않더구나. 그리고 중학교 때 숙제 중에 시화(詩畵)” 그리기가 있었어. 교과서에 나오는 시는 좀 그렇고, 남들이 모르는 시()를 골라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연습장 겉표지에 있던 박인환 님의 목마와 숙녀라는 시로 시화를 그렸단다. 그 시의 정확한 의미도 모르지만, 그냥 있어 보였어. 당시 아빠도 중딩이었잖니.^^ 그렇게 아빠한테 버지니아 울프는 낯선 시에 등장하는 이름으로 기억했단다. 시 제목이 목마와 숙녀이니, 시 제목 속의 숙녀 이름이 버지니아 울프였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야.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아빠가 책에 관심을 갖게 되고 나서 버지니아 울프가 유명한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자기만의 방>, <댈러웨이 부인> 등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말이야. 하지만 책 소개를 봤을 때 아빠 취향과 거리가 좀 있는 책들이라고 생각이 되어 펼쳐보지는 않았단다. 그런데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에 네 번째 책이 바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란 책이라서 읽게 되었단다. 아빠가 순서대로 읽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사실, 아빠가 예전에 민음사에 출간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샀어. 읽지 않고 모셔두고 있었지만 말이야. 그 때 기억으로는 그 책 두께가 꽤 되는 것으로 기억했는데, 이번에 읽은 이 책은 너무 얇았다. 그래서 민음사에서 나온 책을 찾아보니, 그 책에는 두 개의 작품이 실려 있더구나. , 그렇구나

이번에 지은이 버지니아 울프의 삶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 보았단다. 사진의 분위기와 달리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분이더구나.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생긴 정신질환으로 끝내는 안타깝게 자살을 하셨지만 살아 계시는 동안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고, 부조리한 세상, 특히 여성들의 불평등에 대해 소리를 내시던, 행동하는 지식인이셨단다.


1.

이 책의 제목만 알고 있을 때는 아빠는 이 책이 소설 책인 줄 알았단다. 그런데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과 소설>에 대한 강의를 한 것이란다. 때는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10년 정도 지난 때로, 어느 정도 사회가 안정이 되어가던 시기였어. 사회는 안정화되어 갔지만, 남녀불평등을 당연히 여기던 그런 시절이었단다. 그런 때에 <여성과 소설>을 강연하면서 버지니아 울프가 강조한 것은 여성들도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는 이야기를 한 것이란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자기만의 방은 정신적 여유 같은 상징적인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에 존재하는 공간으로서의 방을 이야기라는 것이라고 했어. 자기만의 공간에서 글을 쓸 수 있는 자유가 있다면 셰익스피어보다 훌륭한 여자 작가가 나올 것이라고 했단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유명한 소설가는 대부분 남자인 이유는 여자는 남자들에 비해서 자유롭지 않고, 자기만의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단다. 그의 말에 공감하게 되더구나. 그리고 여자에 대한 책도 여자 작가보다 남자 작가에 써낸 글들이 많았던 시절이란다. 심지어 아내를 때리는 것을 남성의 권리라고도 했어. 역사 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극소수이고 말이야. 어떤 글쓰기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여자가 있어도, 그가 해야 하는 노동 때문에 그 능력을 꽃피울 수 없는 것이 당시 유럽 사회였단다. 유럽 사회뿐만 이겠니, 다른 곳은 더 심했겠지. 이런 불평등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순응하며 살았겠지만, 버지니아 울프는 그것이 옳지 않다고, 바꿔야 한다고 큰소리를 냈단다. 옳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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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여자들은 일반적으로 무척 차분하다고 여겨지지만, 여자들도 남자들과 똑같이 느낀다. 남자 형제들처럼 재능을 위해 훈련이 필요하고 노력할 마당이 필요하다.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에, 지나치게 답답한 침체에 시달린다. 더 혜택을 누리는 동료 인간들이 여자는 푸딩을 만들고 양말을 뜨개질하고, 피아노를 치고 가방에 수나 놓아야 된다고 말한다면 편협하다. 관습이 여성에게 필요하다고 공언한 것 이상을 하거나 배우려는 여자들을 비난하거나 비웃는 것은 경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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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강연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런 사회를 가지기 위해 여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당부의 말도 남겼단다. 그것은 이런 남녀 불평등을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에게 큰 깨우침을 주는 그런 말씀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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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155)

나는 여러분에게 책임을 기억하라, 더 숭고해지라, 더 영적이 되라고 당부해야 할 겁니다. 얼마나 많은 게 여러분에게 달려 있는지, 여러분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상기시켜야 마땅하겠지요. 하지만 그런 권고들은 안전하게 남성들에게 맡겨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내가 구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달변으로 조언할 테고 사실 그래 왔습니다. 내 마음을 뒤져 봐도, 동반자가 되고 평등해지고 세상이 더 고양된 목적을 갖도록 영향을 미치는 데 대한 고귀한 정서가 없네요. 나도 모르게 간단하고 지루하게 말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자기다워지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말이지요. 내가 고귀하게 들리게 말할 줄 안다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 꿈을 꾸지 말라고 말하겠습니다. 사물을 그 자체로 생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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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강연을 옮겨 놓은 글이긴 하지만, 쉽게 읽히지는 않았단다. 1920년대 유럽 시대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점도 있고, 강연에서 인용된 사람들을 잘 몰라서 더욱 그랬던 것 같아.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가 주장하려던 것은 확실히 이해를 했단다. 남자와 여성은 평등하다. 같은 자유를 누려야 한다. 오늘날은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남녀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단다. 그리고 그런 불평등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페미니즘이 있고 말이야. 그렇다 보니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페미니즘의 상징적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단다.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이 되었고,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 같구나.

오늘은 이렇게 간단히 이야기하는 것으로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한데 <우린 여성과 소설에 대한 강연을 요청했는데, 그것과 자기만의 방이 무슨 관련이 있나요?>라고 물을지 모르겠네요.

책의 끝 문장: 하지만 우리가 그녀를 위해 노력하면 그녀가 올 거라고, 그러니 가난하고 불확실한 처지더라도 노력하는 게 가치 있다고 분명히 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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